해외여행

북유럽 가을여행(탈린, 상트페트로부르크)

난해 2017. 11. 23.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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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월) 아침, 잠도 충분했고, 9시 탈린도착

바로 하선하여 10시부터 시내관광이라 느긋.

항구에서 시가지까지 도보로 10-15분.

 

갑판을 한바퀴 도는 기분도 널널했다.

15시간반의 항해시간도 길다는 느낌도 없고.

아침부터 수영하는 젊은이들은 없었지만.

 

 

전망대에서 본 탈린.

 

발틱삼국의 하나, 에스토니아는 스위스크기에

인구는 1,4백만. 에스토니아어는 핀란드계

우랄어로 핀란드문화권이라 할 수 있다.

러시아어 사용 국민이 26%나 되고.

 

복음루터교 14%, 러시아정교 13%,

공업, IT기반이 튼튼하고, 국민소득이

18천불로 발틱삼국 중에선 제일 많다.

 

13세기부터 덴마크, 독일, 스웨덴,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다가 1990년 독립 선언.

 

1989년 8월, 발틱 삼국 인구의 1/4에 달하는 

2백만명이 만든 인간띠를 기억할 것이다.

 

그 열망이 모여 1991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삼국이 독립했고.

소련 해체의 결과였지만.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에서 처음 본

건물, 느낌이 좋았다.

 

중세의 진주라는 탈린은 중세건물이 잘 보전된

붉은색 지붕의 핀란드문화권의 항구도시.

 

인구 43만명.  샤머니즘이 남아있는

아시아적 분위기의 도시이기도 하다.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고, 고지대 톰페아언덕은 지배세력의

권역이었고, 저지대는 무역거점이었다.

 

 

 

 

우리는 먼저 톰페아 언덕을 찾아

알렉산더 넵스키성당을 방문.

신도들의 80%가 러시아인이다.

 

1885년 러시아가 지배하던 시절,

에스토니아영웅들 무덤 위에 세운

러시아정교회 성당.

 

 러시아인들이 에스토니아인구의 1/4이고,

상위계층을 형성.  러시아검찰이 발틱3국의

독립합법성을 검토했었다는 얘기도 있었고.

 

삼국의 국민소득도 13-18천불로 안정되었지만,

그들의 애환이 곳곳에 서려있는 것같다.

 

 

현재 국회의사당. 13세기 덴마크인이

건축한 것을 18-19세기에 리노베이션.

 

이 톰페아 성은 에스토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과거 지배자의 힘을 과시하는 상징.

 

 

톰교회. 1219 덴마크인이 세운 목조교회였으나

대화재, 스웨덴 러시아간 전쟁후 소실되었다가

1789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

 

외관은 고딕양식이지만, 내부는 후기

르네상스와 바로크양식의 혼합.

 

현재는 에스토니아 루터란교회의 총본산.

교회 내부에 귀족가문의 문장과 묘비가 있다.

 

 

우리는 톰페아언덕의 전망대에서

아기자기한 14-15세기 중세

붉은 지붕의 건물들에 빠져들었고.

 

 

제일 높은 건물이 올레비스테교회.

 

15세기 한동안 전세계에서 가장 높았던 건물,

지금도 탈린시내에서 가장 높다.

교회의 이름은 11세기 노르웨이왕

올라브2세에서 따왔다고.

 

올라브는 항해자들의 수호성인.

 북유럽에서 가장 인기있는 남자이름.

 

 

친근감을 보이는 갈매기.

 

 

수줍어하는 에스토니아 여인.

 

 

우수에 찬 에스토니안 부부.

 

상류층에 있는 러시아인들에게

큰 반감을 내보이지 않을 것 같은.

 

 

비까지 내려 예쁜 거리는

우리의 마음을 더욱 애잔케하였다.

 

 

톰페아(Upper Town)에서 낮은 지대의

거리로 나서니 맥주를 권하는 둥그런 얼굴.

 

 

 

라에코야광장 근처에 있고, 14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홀리 스피릿교회.

스테인드그라스가 유명.

 

 

홀리 스피릿교회의 일부.

부분 부분이 아름다웠다.

 

 

 

 

1422년부터 약국으로 사용되어온 라에압택.

 

 

 

시청사 앞 라에코야광장.

 

17세기부터 시민들의 만남의 광장이자

큰 시장, 처형장으로 이용된 탈린의 중심지.

11월 중순부터 크리스마스마켓이 열린다.

 

 

저지대 시가지(Lower Town)의 중심,

시청사건물. 1404년 지어진 그대로다.

 

65미터의 종탑이 있는데, 그 꼭대기에

탈린의 수호신 토마스성인이 있다.

외침에 시달려온 시민들은

'게으른 토마스', '늙은 토마스'라고 한다고.

 

역사박물관이 있고,

용의 모양을 한 물받이 홈통이 있다.

 

 

이곳은 호박으로 만든 보석이 유명.

 

 

분위기도 있고, 한잔 마셔볼까.

15세기 분위기로 에스토니아 전통요리 등을

즐길 수 있는 올데한사 등 음식점들이 많다.

 

 

아담한 콘서트홀.

 

 

탈린을 떠날 때까지 비는 그치지않고

거리는 차분했다.

 

9백년 가까이 이민족의 연이은 통치 속에서도

그리고 탈린이 전략적 요충지였음에도

중세의 아름다움을 고히 간직해온

비결이 있을 만하다.

 

 

육로로 상트페트르부르크 가는 길,

궂은 가을비는 여전했고,

가을의 빛도 여전했다.

 

길쭉하고 답답해보이는 발트해.

발트해는 하얀 바다라는 뜻. 빙하가 녹아서

만들어진 바다물은 짜지않고 밍밍하다고.

 

그 바다에서는 러시아, 독일, 스웨덴, 덴마크

등 열강의 치열한 전투가 그칠 날이 없었다.

 

 

열강의 한 가운데 끼어서 삶을 이어온

발틱삼국 사람들.

평평한 땅은 그들의 침입을 더욱 쉽게 했을 것.

 

그나마 리투아니아는 14-16세기에

강력한 제국을 건설했었다.

 

 

가끔 잘 가꾸어진 에스토니아 농가가

스쳐 지나가고.

 

 

평안북도 정주출신 백석선생이 

 함경도 자작나무를 칭송하듯이

북구사람들도 자작나무를 많이 사랑한다고.

 

사우나에 사용하고, 봄에는 고로쇠물로 마시지,

뿌리는 자이리톨을 만들고, 줄기는 종이 대신

이콘화 그리는데 이용하지,

 

땔감은 물론 집, 가구, 그릇 만드는데 쓰지,

마트로슈카인형 만드는 데도 쓴다.

 

 

적송군도 많이 지나갔다.

 

 

새떼들도 지나가고.

 

 

쌓인 낙엽들도 아름답고.

 

 

북구의 가을은 역시 황색의 계절.

 

 

나르바는 에스토니아 세번째 큰 도시. 인구 7만.

면직공업이 강하고, 황마, 대마, 가구 등을 생산.

우리는 이곳에서 러시아 입국절차를 밟았다.

 

여직원이 버스에 올라 여권검사를 하고,

우리가 버스에 내려 입국도장을 받은 다음,

또 한 직원이 올라 입국인이 찍혔는지 검사.

RedTape는 적색국가에서 나왔나? 

 

나르바는 핀란드만 나르바강어귀에서

14키로 올라간 강유역에 위치.

 

13세기 세워진 후 교역중심지로 발전했다.

덴마크, 독일 튜턴기사단, 러시아를 거쳐

스웨덴 땅이 되었다가, 1700년 표토르대제가

 

공격에 실패하고, 4년 뒤 탈환했다.

1991년 독립시 에스토니아땅으로.

 

견고한 성을 보면, 도시의 투쟁사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국경을 넘자 러시아땅은 웬지 황량해보였다.

원래 큰 나라이라 토지이용도가

작은 나라와는 다르겠지.

 

우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

10/8일 묵었던 Karelia호텔에 짐을 풀었다.

요번 여행의 마지막 숙박지.

 

 

10/17(화)일 상트페테르부르크

낡은 아파트 사이로 동은 텄다.

 

아침 식사때, 퇴직하고 러시아 여행중인 중국인

부부와 같은 테이블에서 이얘기, 저얘기.

상해에 살며 아이가 없다는 부부는

말소리도 조용조용하고 교양이 넘쳤다.

 

뒤가 시끄러워 돌아다보니

우리팀의 경상도분들. 여보시오, 조용하시게나.

중국인들도 사람나름.

 

 

페테르고프에 있는 여름궁전 가는 길.

아파트가 예술이었다.

 

페테르고프는 페테르의 궁전이라는 뜻.

상트페테르부르크 관할하에 있고,

상트페테르부르크도심 서부에 위치하며

 인구는 65천명.

 

 

거리는 가을의 절정 속에 있었고.

 

러시아여행하면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17,8세기만해도 러시아는 스웨덴 오스만투르크를

두려워했던 약소국.

 

강대국의 기초를 닦은 표토르대제(1672-1725)는

발트해 깊숙한 곳에 위치한 갯벌지대에

상트페테르베르크를 건설했다.

 

이 도시는 1918년 레닌이 피의 혁명을

일으키고 수도를 모스크바로 이전하기

전까지 제정러시아 권력의 중심지.

 

러시아 예술의 황금기(19세기)에는

이 두도시를 중심으로 푸시킨,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등의 대문호와 차이콥스키 등

작곡가 등이 활약했었다.

 

14-16세기 피렌체를 중심으로 미켈란제로,

라파엘로 등이 활약하여 르네상스의

불길을 일으킨 것과도 많이 비교된다.

 

 

드디어 표토르대제의 여름궁전 도착.

 

이 궁전은 표토르대제가 프랑스황실을 방문하고,

베르사이유궁전 못지않은 궁을 지으려고

한 것으로 1714년에 착공했으나, 완공에

150년이 걸렸다고.

 

20여개의 궁전과 140개 분수, 7개의 공원이

있고 여름궁전은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

 

물의 낙차를 이용한 분수를 만들려고

언덕위공원을 조성했고, 예술의 진수를 보이는

아랫공원은  야외조각전시장 등으로 사용.

 

 

입구에서 본 여름궁전.

 

표토르대제는 극단적인 양면성을 가진 사람.

러시아가 후진성에서 벗어나 유럽국가로

탈바꿈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영웅이지만,

수많은 국민들을 희생시킨 폭군.

 

권력투쟁 끝에 24살로 통치자가 되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불행했다. 두번째 부인

예카테리나 뿐이 유일한 위안이었고.

 

유일한 후계자인 아들도 갈등 속에 처형했고

알코올중독으로 얼룩진 말년을 보냈다.

 

결국 두번째 부인에게 왕위가 넘어가고,

다음엔 그의 딸로, 그의 손자로 넘어갔다가

결국은 손자며느리, 예카테리나 2세(1729-

1796)에 이르러서야 나라가 안정되었다.

 

 

정적이 흐르는 궁전 뒷뜰. 

여름궁전의 1층은 응접실, 서재, 침실이고

2층에는 가구와 도자기 등을 전시.

 

 

 

 

측면에서 본 여름궁전.

 

 

곳곳에 조각상이 있고.

 

 

아랫정원의 분수.

 

 

 

우리는 궁전의 가을 속으로.

 

 

궁전에서 보면 우측에 있는 아랫정원 분수.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 트리톤이

바다괴물의 입을 찢고 있는 조각.

 

트리톤은 반인반어로, 소라고동으로

파도를 일으키거나 잠재운다.

 

 

밑에서 본 아랫정원 분수.

여름 피서를 위한 궁전인만큼 140개의

분수가 있고, 분수에 정성을 쏟은 느낌.

 

 

아랫정원에서 본 기라성같은 궁전들.

 

표토르대제는 제정러시아의 위엄과 황제의

권위를 과시하려고, 유럽최고의 건축가

예술가를 동원하였다.

 

분수는 나오고 있지않지만, 중심분수의

조각상은 사자의 입을 찢는 삼손상.

 

스웨덴과의 볼타바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한 것이라고. 사자는 스웨덴을 의미.

 

 

수없는 금조각상들. 여름궁전은 연민트색의

겨울궁전과 다르게 연분홍색으로 했다.

 

 

궁전의 물줄기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배들이 도착하는 해변까지 연결된다.

 

 

아름다운 아랫정원의 무늬.

 

 

이궁전은 음악홀로 사용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