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월) 새벽 정든 모투에카 숙소를 떠났다.
물론 여직원들과의 다툼이 있었지만.
시장도 이틀씩이나 봤었고.
전날 오후 트래킹에서 돌아왔을 때 그녀들,
미안했던지 잘 다녀왔냐고 새새덕거렸다.
사무실은 한산했고.
그러나 길떠난지 얼마 안되어 되돌아 왔다.
큰 수해로 피해를 입은 타카카힐의 통제로.
모투에카는 넬슨 자치구, 인구 8천의 소도시.
과거에는 담배가 주작물이었으나, 과수원이
성행하고, 최근 와인이 명성을 얻고 있다.
마오리어로는 웨카섬.
웨카새가 많이 서식하기 때문.
남섬에서의 우리 일정은 넬슨지역을 떠나
그레이 마우스, 프란츠조셉 빙하,
마운트쿡, 와나카, 퀸스타운, 인버카길,
해안을 따라 북상하여 더니든, 아카로아,
크라이처치, 카이코우라 그리고 픽턴.
픽턴에서 배를 타고 북섬으로 가는 일정.
26일은 푸퐁가를 보고 그레이마우스로
가는 빡빡한 일정.
숙소의 나이먹은 여직원은 여행자문의 달인.
길수친구의 말대로, 심각한 도로사정을
NZTA(교통국)에 알아봐 주었고,
내일 숙소로 예약한 폭스빙하 숙소에
전화를 걸어, 취소할 수 있는지 물었다.
우리는 마운트쿡을 여유있게 관람하려고,
숙소를 잡은 것인데, 빙하에서 그곳을 가려면
가로막힌 산맥 때문에 빙 돌아가야 한다고.
대답은 NO.
숙소가 없어 젊은이들이 자는 호스텔을
예약한 것이지만, 87불(7만원)도 아깝고,
숙소예약이 만만치 않아, 그대로 GO.
9시에 맞추어 고개를 넘으려 했지만
이미, 늘어선 차량이 만만치 않았다.
길수친구는 도로가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다닐 수 있을 뿐더러 긴급한 차량만
통과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9시에 오라해서 다시 왔고, 푸퐁가를 가려고
머나먼 한국에서 왔으니 긴급차량이
아니냐고 답변하려 맘먹었다.
다행히 통과되어 고개길을 넘었지만,
일반통행이 되어, 가는 차 오는 차를 교대로
보내려니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2.20일자로 보도된 이곳 모두에카강의 범람.
얼마나 큰 태풍이 지나갔는지.
모두에카는 이 강의 입구에 위치한다.
고개를 넘자 도로는 말짱했다.
모두에카에서 푸퐁가(Puponga)까지는
106키로, 2시간 거리. 다시 오려면 4시간.
이시간도 도로가 정상적일 때.
모두에카에서 숙소가 있는 그레이
마우스까지는 390키로, 6시간 거리.
우리는 얼마나 무모했는지.
뉴질랜드의 길은 꼬불꼬불 산길이라
키로수 대비 시간이 엄청걸린다.
중간기점 콜링우드에 도착.
말끔하고 아담한 도시.
빵집에 들려 점심거리를 사고.
푸퐁가는 남섬 의 최북단으로
넬슨자치구역 소속. 황새부리처럼
길쭉하게 나온 곳이 Farewell spit(곳).
돌출한 사구, 모래톱이다.
콜링우드, 타카카를 잇는 둥근 바다가
Golden bay(만).
큰 태풍이 불면 고래떼가
밀려와 수백마리가 죽었던 곳이
훼어웰곳이다. 고래님들, 잘 가시오.
훼어웰곳을 받치고 있는 근저, 북쪽
둥근 곳에 멋진 화라리키비치가 있고.
푸퐁가에 가면 길을 잘 찾으려니 했더니.
비포장길이 나오고, 비포장길을 달리다
지나가는 차량을 세워 물어보니,
우리가 잘못 온 것같은 느낌.
우왕좌왕하고 서로간 언성이 높아졌다.
이길이 맞다. 저길이 맞다.
길수친구에게 전화를 했더니, 받지를 않고.
우리는 길을 되돌려 포장길에서
i-site(여행자정보센타)를 겸하고 있는
카페를 찾아 물었더니,
시간은 없고, Hilltop Walk를 택할 수 밖에.
푸퐁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에
오르려면, 사유지를 통과, 양목장에 올라
양똥을 밟아야 한다.
멀리 훼어웰곳이 보인다.
이곳에서 기념촬영하는 것으로 만족할 밖에.
(흥구친구 촬영)
썰물때인가 보았다.
양들은 아랴, 우리의 마음을.
이삼일 코스를 단숨에 때우려니.
다시 와서 훼어웰곳, 화라리키해변을 걷고,
북쪽의 까까지른 절벽을 봐야지.
그러나 마음 뿐이겠지.
이곳은 옛날에 석탄광산이었나 보다.
이들의 표현이 시적이다.
파도의 리듬-
물개들 뛰놀고
100종이 넘는 새들이 지저귀는 곳.
Here I stand,
watching the tides go out--
돌아오는 길,
드넓은 골든베이의 모래사장.
Golden bay?
그럴 만하다.
골든베이 전망대에서 점심,
콜링우드에서 산 빵으로.
이곳엔 빈 농산물 판매대가 있었다.
'블루베리 $6'
'돈은 이통에 넣으시오'라고 쓰인.
돌아오는 길, 고개 정상에는
조지 마일즈의 추념비도 있었고.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나보다.
마침 용변이 보고 싶어
으슥한 곳을 찾았더니,
청결한 야외화장실.
뉴질랜드사람의 사람됨을 알 것같았다.
모투에카지역에는 동굴들이 많다.
타카카언덕을 또 넘자니 선도차량이
차량을 인도하여 가서는,
다시 기다리던 차량을 이끌고 온다.
미국횡단여행시 보았던 풍경.
제복입은 경찰이 기다리다 수고했노라고
찬 물병 한병씩 건내주었다.
그 인간미와 그 시원한 물맛.
그레이마우스 가는 길,
대로를 따라 갔어야 하는데,
빨리간다고 내비말을 듣고 산길을 갔더니
통행금지.
24키로를 더 가서 되돌아와야 했다.
풍수해 현장을 보고와선 금새 잊었다.
바쁜 길은 돌아서 가라고?
날씨가 심상찮다.
뉴질랜드 날씨는 이랬다, 저랬다.
우리는 주유소가 보이면 기름을 넣었는데,
한 주유소, 가스스테이숀이라 써있었다.
태욱친구 내려서 물었다.
"기름 넣는데가 여기서 얼마나 되나요?"
직원은 멍한 표정으로 할 말을 잃고.
미국을 자주가는 친구, 7학년이라오.
운전시간만 10시간 넘게 걸려
그레이마우스의 Apostle View Motel에 안착.
다행스럽게 직원도 붙임성 있고
시설도 좋았다, 주위도 맘에 들었고.
방 침대 위에는 검은색 브라자가 놓여있었고.
태욱친구 기념품으로 접수했는데,
어쨌는지.
우리는 매일 길수친구에게
카톡으로 보고하고, 사진도 보냈다.
그는 오늘의 우리 행로를 보고 받고
'7학년의 죽자살자 여행'이라 명했다.
숙소의 인근 풍경.
그레이마우스는 웨스트코스트 자치지역의
가장 큰 타운, 인구는 14천명.
자치지역인구의 42%이니
얼마나 널널한 지역이냐.
이 타운은 서던알프스 어귀의 평원 위,
그레이강 입구에 위치한다.
맑은 날이면 남쪽으로 마운트쿡이 보이고.
탄광지대로 알려졌고,
포우나무라는 옥이 생산되며, 북쪽 45키로
지점에 펜케익이라는 명물바위가 있다.
시간관계상 우리는 못보았지만.
이날의 저녁, 얼마나 맛있었던지.
하쉐프, 수고한 기사님을 잘 모시고 있다.
2/26(월) 이곳을 떠나는 날.
태욱친구 이곳 아줌마와 금새 친해졌다.
시골사람들의 인심이 좋듯
격의가 없다, 사무실의 여인도 그렇고.
숙소 밑에 무엇을 깔았는지
바닥이 쿨렁쿨렁했지만.
숙소를 떠나, 타운 중심에 있는
카운트다운에 들려 시장도 보고.
우리는 해안도 달리고
고개도 넘어,
프란츠죠셉그래셜 가는 길에
이안테(Ianthe)호수에 들렸다.
이호수는 왕가누이강으로 흐른다.
이호수는 보트타기, 수영, 송어낚시가 유명.
일일어획량, 낚시시기 등을 제한하고 있다.
다시 길을 달리니 좋은 날씨에 풍경도 좋았고.
캠핑장에 자리피고, 그레이마우스에서
장보아 온 음식으로 점심.
남섬 전체가 이번 풍수해로 고통을 겪고
도로는 파손되어 정체되었다.
프란체죠셉그래셜에 도착하니,
헬리콥터 관광이 성행중.
이들영업장은 여행자정보센타(i-site)
역할도 하고 있다.
우리는 오늘의 숙소가 있는 훡스그래셜
(Fox Gracial)에 들렸더니,
빙하입구가 폐쇄되어 있었다.
우리는 Franz Josef빙하로 되돌아와
1시간 반짜리 트래킹을 했다.
입구에서 본 빙하
빙하는 녹고
토사는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4년 동안의 빙하의 변화는 놀랍다.
붉은 색은 망간이 함유되어 있다는 표시.
미국 데스벨리의 다양한 색갈들을
상기시켜 주었고.
빙하트래킹의 종점이 다가왔다.
더 이상 접근하지 마시오.
빙하트래킹을 마치고 훡스빙하에 있는
호스텔에 짐을 풀었다.
호스텔은 레스토랑을 겸하고 있어
종업원을 보기는 하늘에 별따기.
짐을 나르는 중
작은 카메라 렌즈뚜껑을 잃었다.
남섬으로 오는 배갑판에서
큰 렌즈뚜껑을 잃었었는데,
7학년의 품행은 어쩔 수 없지.
침실에 들어서니 침대는 2층침대 두개.
이부자리는 갈은지 오래된 것같고.
프랑스 젊은 친구, 피곤한지 누워있었다.
길수친구는 이, 빈대가 들끓는다고
이런 숙소에서 자지말라 했는데.
숙소는 구하기 힘들고,
또 이런데서도 자보아야지.
우리처럼 나이든 사람은 없었다.
이층 식당 한구석에 있는 한 처자,
식사가 끝날 때까지 미동도 안했다.
태욱친구가 이층을 오르나리며 준비한 끝에
포도주 곁들인 저녁식사도 맛있게 하고.
여행내내 끼니때마다 포도주를 생략한
적이 없었다. 빵으로 때울 때를 제외하고.
식사를 끝내고 동네 한 바퀴.
이런 산골동네에 1929년 개교한
학교가 있었다.
산보후 꿀잠.
이부자리가 드럽건 말건
이층 잠자리건 말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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