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빈관쪽으로 향하자 마주친 카페, Cordonnerie.
파리, 구두수선하는 구두방 자리에 있는 카페라는데-
서촌 부트 카페라고.
옛날 한옥집에 차린 카페.
모임에서 청와대를 관람하자는 의견이 있어
세 명이 신청을 했더니 나만 당첨.
추점 운이나 행운이 없는 편인데도.
또 관람하려는 마음이 별로인데도.
종로구 성북구에 걸쳐 있는 서울의 주산,
남산(262m), 인왕산(338m), 낙산(125m)과
함께.
북악산을 중심으로 조선의 성곽이
세워졌고.
용산, 마포구를 경계로 한강과 만나는 봉우리,
용산이 주산이 되려나?
용산은 한양도성 밖.
조선의 울타리를 벗어난 도약?
77천평의 면적.
미국 백악관의 3배가 넘는.
경복궁 후원자리에 1978년 건립.
국빈을 맞는 장소, 대규모회의및 연회장소.
2층은 연회장소.
고려조 이궁자리,
조선조 경복궁의 후원자리.
1991. 9월 준공(노태우대통령때).
관람신청시 개인은 4인까지.
청와대 중심건물.
4월말 운문산 등산 후 방문했던
울산 가지산 동쪽에 있는 절, 석남사의
청기와지붕을 보았을 때보다 못한 감흥.
잘 손질된 나무들은
자연의 나무, 숲보다 못하고.
경복궁의 북문, 신무문이 보이고.
음기가 강해 평소 닫아두고
왕의 비밀행차 등 특별한 경우에
사용했던 문.
왕이나 대통령이나 늙고 싶지 않았겠지.
자리를 잡았던 곳.
왕궁을 지키기 위한 수궁과 융문당, 융무당,
경농재, 벽화실, 오운각 등 건물이 있었고
임금이 친히 농사를 일궈 농사를 일깨운
여덟 배미(8도 강산)의 논이 있던 곳.
융문당과 융무당이 있던 높은 터에
경무대가 있었고.
1939년, 7대 총독 미나미 지로때 건축,
이후 3명의 총독이 거쳐갔고,
1948년 미군정사령관(하지) 숙소.
이후 역대 대통령 집무실.
1991년 본관이 준공되자,
1993년 김영삼대통령때 철거.
윤보선대통령이 청와대로 명칭 개칭.
역사적 건물을 철거한 것은
아쉬운 일이라는 게 다수의 의견.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든 나무는
정선 두위봉 기슭의 1,200-1,400년 된
주목 삼형제(천연기념물).
맏형은 김유신(595-673), 계백장군
(-660)과 비슷한 나이.
닭의 장풀과 여러해살이풀.
방사선지표식물. 방사선을 쪼이면
분홍색으로 변한다.
관저는 대통령과 가족의 거주공간.
우리나라 전통양식의 뜰과 사랑채로
구성했다는데, 글쎄.
으리으리.
50-100cm 키, 습한 풀밭, 물가를 좋아하는.
6-8월 개화.
키는 2m, 6월 개화.
꽃잎이 여러겹으로 겹쳐서 핀다.
경복궁 후원에 연회를 베풀기 위해 지은 건물.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는다는 뜻.
한옥건물의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역시 옛것이 좋군.
흥구친구 소시적 경무대를 방문했을 때
연못에서 큰 메기를 보았다는데-
백합과 여러해살이풀.
7-8월 등황색 꽃을 피운다.
지난해 나온 잎이 새순이 나올 때까지
남아있어 어린 자식을 보호하는
어미같다 하여 훤초.
어머니를 높이 부를 때 훤당.
또 어머니가 거처하는 집 마당에
원추리를 심었고.
어린 잎은 대표적 산나물
(권혁세)
국내외 귀빈에게 우리나라 전통가옥 양식을
소개하거나 의전행사, 비공식회의 등 개최.
강태성(1927-)작.
15회 미전 대통령상 수상작가.
잔디, 소나무 그리고 젊은이 가족.
바늘꽃과, 달맞이꽃과 달리 낮에 피는 꽃.
꽃말은 '무언의 사랑'.
몇 사람이나 쉴 수 있을런지.
산쪽으로 나있는 산책길을 걸었다.
경복궁 후원에 있는 휴식을 위한 정자.
자연의 풍광이 신선세계 같다하여
오색 구름을 뜻하는 오운정.
이전된 위치.
일명 미남불.
9세기형 통일신라 전성기때 양식.
연꽃문양이 새겨진 사각형대좌는
보기 드문 형태라고.
총독관저에 있던 것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아주 가까워 보이고.
백악관보다 3배 넓은 청와대.
본관과 관저의 위용.
콘크리트 건물에 갇혀지내는 통수권자,
그리고 막강했던 비서진들.
각 부처 그리고 국민과의 소통이 원활할
수가 있었을까.
신하들의 눈치를 살폈던 조선의 왕들
보다 막강했던 권력.
관람한 많은 민초들의 생각은 어떠할까.
한없이 높은 사람이 부러울까.
구경하는 것만으로 감지덕지?
우리에겐 생소한 칠궁.
왕(추존된 왕 포함)들을 낳은 일곱비빈들의
신위를 모신 사당.
칠궁자리에는 원래 육상궁만 있었다.
영조 생모 숙빈최씨의 신위를 모신.
고종, 순종때 도성 안의 사당을 옮겼는데
1929년 덕인궁을 옮기면서 칠궁이 되었다.
육상궁과 연호궁, 선희궁과 경우궁은 한
사당 안에 있어 사당건물은 다섯.
수복방, 냉천 등은 모두 육상궁에 딸린 시설.
정문 가까이에 있는 송죽재, 풍월헌,
삼락당은 제례를 준비하는 재실로
영조 초년에 지어진 것.
종묘와 더불어 조선시대 왕실에서 사당을
어떻게 짓고 운영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귀중한 문화유산.
매년 10월 넷째주 월요일
칠궁제를 지낸다고.
원종의 생모인 인빈김씨 사당.
남양주시 진접, 순강원에 묻힘.
인조(1595-1649)는 1623년 반정으로 왕위에
오르자 정원군(1580-1619)을 원종으로 추존.
저경당은 1908년 육상궁으로 옮겨짐.
인빈김씨(1555-1613)는 선조가 가장 총애했던
후궁이며 3남 5녀를 두었다.
2남 신성군이 세자가 되길 바랐으나
병사했고, 3남이 정원군.
숙종의 후궁, 장희빈(-1701) 사당.
서오릉에 묻힘(대빈묘).
1908년 육상궁으로 옮겨짐.
권력투쟁의 도가니 속에서 사랑과
고통, 갈등과 희망을 한 몸에 품었던 여인.
영조는 영조생모 숙빈 최씨를 기리기 위해
사당인 육상묘를 육상궁으로 승격시킴.
파주 광탄, 소령원이 숙빈최씨 묘.
숙빈 최씨(1670-1718)는 숙종(1661-1720)
의 후궁이며 영조의 생모.
보잘 것 없는 궁중나인이었지만 영조-
순종까지 숙종의 혈통으로 왕위를 잇게 함.
소박한 품성과 미덕으로 숙종과 연잉군
(영조)에게 정성을 다한 결과랄까.
정작 본인은 7세에 입궁, 아픈 삶을
살았던 비운의 어머니.
영조(1694-1776)의 후궁인 정빈이씨 사당.
파주 광탄, 수길원에 안장됨.
효장세자(1719-1728)는 사도세자(1735-1762)
의 이복형, 심지가 굳고 효성이 지극했다고.
영조의 사랑도 많이 받았고.
정조가 왕으로 추존.
영조는 왕자시절의 첩, 정빈이씨(1694-1721)
가 왕세제 시절에 죽자, 직접 제문을 지음.
영조의 어진이 보관되어 있다고.
육궁은 영조 생모 숙빈최씨의 사당
육상궁에서 시작되었으니.
냉천물이 흘러 고이는.
선희궁은 사도세자(추존 왕, 장조)의 어머니,
영조의 후궁 영빈이씨사당.
정조의 할머니.
무덤은 서오릉 안에 있는 수경원.
영조는 영빈이씨가 세상을 떠나자
사당을 의열묘라 하였으나,
정조가 선희궁으로 고침.
영빈이씨(1696-1764)는 영조의 깊은
총애를 받았고, 1762년 사도세자 폐위
시에도 크게 동요치 않았다.
후궁인 수빈박씨 사당
1908년 육상궁으로 사당이 옮겨왔고.
무덤은 남양주 진접읍에 있는 휘경원
수빈박씨(1770-1822)는 행실이 착하고
예절이 바를 뿐 아니라 말이 적고
극히 검소하여 현빈이라 칭송이 자자했다.
고종(1852-1919) 후궁인 순헌황귀비 엄씨 사당.
청량리 영휘원에 묻힘.
순헌황귀비 엄씨(1854-1911)는 1897년
영친왕을 낳은 뒤 귀인이 되었고,
대한제국 설립 이후 황비책봉을 받았다.
그녀는 교육사업에 열성적이어서 양정의숙
(양정고), 명신여학교(숙명여고)등을 설립.
느티나무는 오동나무, 먹감나무(검은
줄무늬가 들어간 감나무)와 더불어
좋은 목재를 생산하는 나무.
1768년이면 영조 44년.
영조는 무수리라고 소문났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엄청 신경을 쓴 것 같다.
뒤편에 삼랑당, 세 개의 현판이 달려있음.
영조때 건립한 것.
재실은 제례를 준비하는 곳.
마련된 시민휴식공원, 무궁화동산.
번듯한 건물의 옥인교회.
이완용집터에 세운 교회.
세꼬시회+물회+갈치조림+테슬라.
청와대 관람은 그렇고
처음 가본 칠궁은 그시대의 역사를
반추하게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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