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깊은 골짜기에 자리를 잡은 성북동,
한양도성을 서쪽 울타리로 두른 아늑한 마을.
영조때 혜화문 밖 선잠단 부근에 성북둔이란
군사시설을 두면서부터 성북동이라 불림.
멕시코, 에티오피아, 네팔 대사관이 있고
캐나다, 독일, 일본 등의 대사관저가 있는
살기 좋은 곳.
선잠단은 누에를 처음 치기 시작했다는 서릉씨를
양잠의 신으로 받들어 국가의례, 선잠제를 지낸 곳.
백성들에게 양잠을 장려하고 누에치기의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는 고려때부터 시작됨.
1414-1430년 선잠단지가 새롭게 마련되었고
선잠제는 1908년 선잠단의 신위를 사직단에서
배향하면서 중단되었다.
걷기에 좋은 봄날.
우리아파트 동네엔 산수유꽃이 이미 피었고.
신도가 아니더라도 마음에 와닿는다.
누브티스는 새롭다는 프랑스어와 구상한다는
그리스어의 조합이라고.
그리고 김영한, 길상화보살(1916-1999)로
유명해진 길상사.
초파일(5.15) 연등접수를 받고있고.
보통은 대웅전을 지나는 문루 위에 있는데-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신다.
대원각의 주인이며 길상사로 대원각을
시주한 김영한의 영정이 극락전에 있고.
세워진 절인지라 절이라기보다
쉼터의 느낌.
느티나무는 이절의 260년 넘은 보호수.
결코 조용할 것 같지 않은 절.
요정자리 위에 푸른 향기.
고위급 인사, 재벌들의 비밀회동장소로
이용되었겠지.
70-80년대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기생관광의
무대로 활용되었고.
대원각은 북한공산당 부주석, 박헌영의 이복누이,
조봉희씨 소유였는데, 왕마담 조씨가 간첩행위로
잡히고, 6.25동란이 끝나자,
김영한이 자연스럽게 요정주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을 받고
김영한 대원각 주인은 법정에게
1,000억 가치의 대원각을 시주.
1997년 길상사가 세워졌다.
길상사 설립식 행사에 김수환추기경 방문.
김추기경 서거 1년 후 법정도 타계.
두 분의 관계도 각별하다.
무소유를 주창한 스님을 싫어하는
분들도 많다.
미국에서의 수술 등.
불교는 원래 무소유의 종교 아닌가.
김영한도 사망, 화장하여
절터에 뿌려짐.
현호색과 두해살이풀, 4-5월 개화.
지구온난화로 꽃의 개화시기가 빨라졌다.
1937년 백석시인으로부터 자야로 불리웠다는
보살은 어려운 환경에서 기생이 되었고
1955년부터 한식당(대원각) 운영.
사당 앞에는 시주 길상사 공덕비가 있다.
길상사라는 이름은 김영한이 제의.
백석의 일본유학시절 주소가 도쿄 길상사
1875번지에 살았다고 해서.
잘못 추정된 주소라고 판명되었지만.
설을 부인하고 있다.
백석은 통영출신 박경련을 좋아해 청혼을
했으나 거절당했고 그녀를 생각하며
통영바다를 거닐며
바다라는 시를 남겼다.
백석은 평북 정주 출생, 아오야마학원 졸업.
단편소설로 등단했으나 시인으로 변신.
토속방언을 즐겨 사용했고,
나이 서른 전에 한반도에서 가장
뛰어난 서정시인이 되었고.
광복후 북한에 머물었으나
북한 문학계에선 잊혀진 사람이었고
남쪽에선 기피인물.
'바닷가에 왔드니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구붓하고 모래톱을 오르면
당신이 앞선 것만 같구려
당신이 뒷선 것만 같구려
그리고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당신이 이야기를 끊은 것만 같구려
바닷가는
개지꽃에 개지 아니 나오고
고기비눌에 하이얀 햇볕만 쇠리쇠리하야
어쩐지 쓸쓸만 하구려 섧기만 하구려'
(백석, 바다)
*개지꽃 : 나팔꽃의 평북 방언
물푸레나무과 개나리와 더불어 봄의 전령사.
개나리는 대한민국 고유식물이나
영춘화는 중국 원산.
개나리는 꽃잎이 4개, 영춘화는 5-6개.
개나리보다 빠르게 3월초 개화.
길상사는 역시 시민의 좋은 휴식처.
법정이 1975년 송광사 뒷산, 불일암에서
수행한 연고로 이절을 송광사 말사로 등록한
것은 합리적인 것인지.
비록 송광사 창건당시 이름이
길상사라고는 하지만.
법정이 천주교 신자, 최종태 조각가에게
의뢰 봉안한 것.
분위기가 성모상 같기도 하고.
조선중기 (1600-1650)에 건립한 곳으로 추정.
영안모자 백성학회장이 종교화합의
의미를 전하고자 기증한 것.
사자들 가운데 모셔진 석가모니.
스페이스 슈퍼노멀(Space Supernormal)은
문이 닫혔고. 아쉬워라.
한성대입구역까지 다시 걸어나왔고.
건너편 한성대쪽은 국민학교 3학년때 놀이터.
성벽 밑에서 곤충채집도 했고,
여름엔 아이스께끼 외치는 소리가
울려퍼진 곳.
도토리편백집에서 이베리코돼지찜에
시원한 맥주 한잔.
앳된 여종업원 유니폼엔 '도토리 돼지, 불쌍해'.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돼지가 도토리만
먹으니 안불쌍해요?
맛이 담백하고 맥주에도 궁합이 맞고.
사람들이 어울리는 곳이 좋지.
길고 복잡한 뒷골목을 헤맸지만
역시 젊은이들의 골목.
서성거릴 수 있는 학림다방을 찾았지만
여고생들이 아래층부터 진을 치고 있었고.
2-4층까지 차지하는 다방.
옛날 비엔나커피와 클라식음악이 생각나는.
1975년 이후 한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서울의 낡고 오랜 다방.
서울미래유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산하 미술관)에서는
'어디로 주름이 지나 가는가' 전시중.
이날의 산책은 이곳에서 종료.
14천보를 걸었다.
영춘화, 노랑괴불주머니꽃을 보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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