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성보기 마등령을 넘다 (2004.10.1-3)

난해 2015. 9. 26. 23:09

 

1. 백담사를 거쳐 오세암으로

 

  10.1(금) 상봉동 터미널에서 7:10 용대리 행 버스를 타기 전, 일행들이 메고 온 배낭의 중량 검사를 했을 때는, 민경희를 제외하고는 자기 먹을 것은 가지고 왔는지 걱정이 되었다. 자기 것은 자기가 책임지라고 강조했는데 말이다. 하여튼 버스 안에서 6명은 곧 즐거워졌다. 신민규가 제자들과 오세암에 온다고 하니 오늘 먹을 걱정은 해결될 것 같고, 내일 마등령을 넘어 척산 온천에 몸뚱이 푹 담그고 있으면, 정성익이 우리를 하조대로 모실 차량을 대기시키고 있을 터이고, 하조대에 도착하면 정지형이 회 떠놓고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말이다. 더구나 한사모 모임의 주인공들이 올 것만 같으니 금상첨화가 아닌가?

  10시 반이 되어 용대리에서 하차했을 때, 같은 차에 탔던 봉정암 가는 보살님들이 가져 온 호박죽을 탐내었었는데, 일행은 외면하고 백담사행 버스 정류장으로 길을 재촉했다. 호박이 늙어서 그렀다고? 정류장은 부산에서 단체로 온 불자들로 붐볐고, 우리는 대여섯 대의 버스를 보낸 후에야 탈 수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삶은 왕밤 다섯 알 씩 분배하였는데, “오늘 점심이오.”하니, 옆의 보살님들 얻어먹기를 포기하는 눈치이다.

백담사 앞에서 하차하여, 한용운 선생의 체취를 느껴 볼 기회도 포기하고 길을 서둘렀을 때는 김용문 회장님의 아쉬움이 컸다. 백담사 관람도 못하고, 지불한 입장료에 포함된 백담사 관람료를 환불받지 못해서 말이다. 날씨는 꾸물꾸물해지기 시작 하여, 좋은 풍치도 즐길 사이 없이 젊은 세 처자 뒤를 따라 잰 걸음을 하였더니, 한 시간 남짓하여 영시암에 도착했다. 처자들은 대입합격 기도 차 봉정암에 간다고 했다. 30대로 보았는데--- 이제 우리 눈도 많이 늙었나보다. 뒤처진 일행과 합류하여 오세암 가는 골짜기로 들어서, 다래덩굴 밑에서 라면을 끓였다. 라면 맛 우리를 죽여주었다. 옆에서 주먹밥 먹던 보살들, 라면 얻어먹기는 포기하고, 홧김에 왜 남정네들 만 왔는냐하며 시비조였다.


  길 다시 떠났을 때는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곧 빗줄기가 굵어졌다. 길은 가파르게 올라 쳤다. 우리 홍성복의 고행이 시작됐다. 큰 언덕 둘을 넘어 오세암이 저 멀리 보였을 때 얼마나 반가웠던지. 만해선생은 동학혁명에 가담 후 혁명이 실패하자, 오세암에서 스님이 되셨다. 또 생육신의 한분인 김시습선생도 이곳에서 출가하셨다. 인조 때 설정(雪淨)스님이 고아였던 형님의 아들이 성불한 것을 기리고자, 이름도 오세암으로 개명하고, 절을 중건하였다고 한다. 법당 뒤에는 관음봉, 동자봉이 우뚝 서있고, 마등령, 봉정암 가는 길이 나있다.


  꾸역꾸역 몰려드는 불자들 때문에 먼저 서둘러 올라 종무소로 갔는데, 예약이 안됐으면 하루 지내기가 어렵다고 하여, 행정 책임을 맡고 있는 스님한테 사정을 하였다. 삼성암에서 왔노라고. 그러면 2호실(올여름 5명이 잤던 방)을 배정할 터이니, 고생이 되더라도 다른 14명과 함께 자라면서 접수를 받았다. 오늘 식수인원이 천명이란다. 뒤늦게 도착한 일행과 함께 배정된 방엘 갔더니, 남정네들이 자리 안 뺏기려고 누워 있는데, 발들일 틈이 없다. 그때가 3시 조금 넘었으니까, 공양시간까지 2시간 반 이상 남았다. 비는 오고, 몸은 으슬으슬하고, 종각 밑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것도 잠시였다. 경희와 나는 대표로 불전에 어색한 참배를 하는 동안, 못 말리는 친구들 임시 비닐 숙소에서 카드 돌리다가 강제 하산당할 뻔했다. 하여튼 재빨리 저녁 공양하고 숙소로 돌아와 자리를 선점했다. 뒤늦게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처사들, 입장이 뒤바뀌자, 당혹해했다. “여보슈들 자리 등기 냈어?” 다리도 제대로 뻗지 못한 11시간, 그래도 밤 10시 넘어 소등했을 때는 그 좁은 방에서 비비고 누워 코를 고는데, 우리의

대표선수 홍성복의 솜씨는 양반 중의 양반이다. 한숨 못잔 이수영, 그래도 추위를 피한 것만도 행복 아니냐고 해서 마음이 놓였다.


 아침 공양은 5시 반부터 시작됐다. 보살님들의 새치기는 끝이 없어, 줄이 줄어들지를 않았다. 그래도 그 많은 식구들 한 시간 안에 식사 끝내는 것 보면 대단했다. 줄서는 동안 하늘은 새털구름으로 온통 뒤덮여 있었는데, 어느새 맑은 가을하늘이 되었다. 자연의 신비라 할까? 저 멀리 샛별이 빠른 속도로 이동을 했었는데, 사실은 구름의 빠른 이동이었다. 피곤했던 우리들의 마음이 구름과 같이 깨끗이 걷혔다. 그런데 해우소 앞에서 새치기하던 한 보살님, 옆에서 핀찬을 하는데도 까딱하지 않았다.

 

2. 마등령 넘어 설악동으로

 

  오세암에서 하루 지낸 불자들의 거의 대부분은 봉정암으로 향했고, 우리가 마등령비탈길을 오르기 시작했을 때는 숲 속에 고요만 깃들어 있었다. 한잠 못잔 수영이를 비롯해 모두는 피로를 싹 떨쳐버리고 숲속을 향했다. 마등령의 단풍은 어제 온 가을비로, 하루 사이에 몰라보게 울긋불긋해졌다. 마등령 고개에 올라섰더니 미시령을 새벽에 넘어오는 등산객들과 마주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을의 정적을 깨고 헐떡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성복과 수동이의 것 같았다. “성보기가 마등령에 올라탔다고!!” 그 기념으로 헐떡거리며 뒤늦게 올라오는 성보기의 후배들에게 과자 하나씩 보시를 했다.


  마등령을 올라타면 곧 공룡능선과 장군봉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온다. 우리는 수동이가 공룡능선을 타자는 것을 간신히 말려 장군봉을 향했다. 그 길부터는 양지바르지만 급경사이다. 멀리 대청, 중청, 소청이 보이고 그 왼쪽으로 화채능선이 이어진다. 화채능선 아래는 응달인지라 단풍이 이쪽과는 달리 새빨갛다. 소리쳐 가을을 외쳐보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신봉주가 떠나는 날이었다. 의지의 사나이가 우리가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떠나는 날이었다. 언젠가는 만나리라. 의지의 사나이가 가을에 떠나니, 가을하늘이 더 파란 것 같았다.


  기념사진 찍고 급경사를 엉금엉금 기는데 소순영이가 오늘 새벽 설악산에 왔다고 연락이 왔다. 저 앞에 신나게 내려가는 친구 있어, 불러보니 성보기였다. “좀 봐줘, 천천히 내려가자고.” 얼마 가자니 대머리 총각이 라면 끓여먹자고 보챘다. 샘물도 있고 하여 또 산중 취사를 하였다. 그래서 배낭에 있는 먹을 것은 다 꺼냈다. 골뱅이, 참치, 총각김치, 라면, 컵라면, 배, 사과-----중량미달 배낭에서 온갖 것이 다나왔다. 그중에서 제일 반가운 것은 어제 저녁부터 굶은 것, 소주였다. 라면 냄새 풍기는데, 성익이, 지형이와 핸드폰 연결이 되었다. 지형의 하조대별장 키, 양념 돼지불고기와 오징어 회 준비해 놓고 서울 올라가는 중이라고. “고맙다, 이놈들아. 아무리 잘해도 너희들은 놈들이야.” 그러고 보니 정성익이 부러웠다. 매일 떡치고, 떡 나르고 종마장 경영하고-- 와중에 한사모 주인공하고 통화가 되었다. “하좃대로 오시지요.” 그러니 전화 수화기 내려놓는 소리가 철커덕하고 들려왔다.


  “라면 죽여주는데, 용문회장님의 술독이 비었으니 어떻게 하나?”하는데, 경희가 샘물 병을 꺼냈다, 오세암 약수라고 하면서. 그래 시원하게 마셨더니, 그게 그거였다. 그래서 우리는 더 취했다. 내려가면서 기어가면서 하는데, 어느새 장군봉 옆이다. 성보기가 그랬다, 자기도 오늘 내려가는 것은 솔직히 힘 든다고. 아직 해는 지지 않았는지 젊은 처녀들이 꾸역꾸역 올라왔다. “금강굴에 올라가면, 일캐럿 짜리 금강석 주고 있어요.”하니, 코 큰 친구 둘이 열심히 금강굴을 향했다. “You are the happiest men, aren't you?" 서양 친구들은 설악산에 듬뿍 취해 있었다.

 

3. 신흥사 입구, 하조대 그리고 그 후

   

  신흥사 입구를 지나서인가, 동동주 파는 집에서 수동이가 한잔 샀다, 어제 오세암에서 쫓겨 날뻔 하면서 얻은 소득으로. 공원 입구에서 척산 온천가는 택시 한 대를 잡아 한 대에 여섯 명이 탔다, 만원주고. 땀을 많이 흘려서 체중이 빠졌는지, 여자 두 명은 더 태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원조 척산 온천은 비좁았지만 물은 끝내주었다. 밖으로 나오니 훨훨 날 것 같았다. 아까 그 택시를 다시타고 하조대를 향했다. 하조대 별장문을 열자마자 냉장고 문부터 열었더니, 술안주가 그득했다. 냉장고 문 위에는 “야 xx들아!”하는 성익의 메시지가 있었다.


  갑자기 시장기가 느껴지는 것이 아니겠어? 밥하고, 돼지고기 굽고, 라면 끓이고, 소주 사오고--- “왜 음식 맛은 좋은데, 술맛은 없지? 왜 그럴까? 옆이 허전하고." 갑자기 피곤이 엄습해 오기는 했는데, 그래도 한판 돌리기로 했다. 성보기가 경희 훌라 강습을 시작했지. 몇 번 안 돌리고 성보기가 포기했다, 이런 제자는 난생 처음이라고. 돈 따먹은 수동이는 자빠져 주무시고, 넷이 돌렸다. 수동이 빠진 다음에는 누가 왕초였는지 잘 모르겠다.


  아침 새벽부터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제 일찍 잔 놈이 누구였던가? 라면 귀신인가? 6시 정도 되어 베란다에 나오니 동녘이 붉게 타올랐다. 모처럼 만의 동해안 일출이었다. “하좃대의 해야! 솟아라!” 용문 회장님, 사진 찍기 바빴다. 그리고 어제 남은 음식을 입으로 치우는 라고 바빴다. “봄철에 지형이 마나님한테 잘 보여야 초대를 받을 것 아니겠어.” 우리가 나올 때 회장님이 사모님 사진틀에 메모를 남겼다. “되게 이쁘지!” 분리수거하고 나오니 아파트 입구에 코스모스가 잔뜩 피어있었다. 회장님이 사춘기를 회상하는 것 같았다. 읍내 버스 타고 양양 고속 터미널로 갔다. 시간이 한 시간 가량 남았으니, 김수동 선생님이 신문지 깔자고 했다. 회장님이 체통은 지켜야한다고 해서 밖으로 나왔더니, 통나무 집 모델 하우스가 있었다. 마당에 6명 앉는 식탁도 있었고. 그래서 체통을 지켜가며 또 돌렸다.


  상경 길은 초고속도로였다. 일요일 10시 넘어 일찍 출발했으니까 말이다. 모두들 주무시다, 소사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했다. 점심은 버터 바른 옥수수 하나씩으로 했다. 음-- 꿀맛이었다. 터미널에서 소득 올린 수동이한테 식후 커피 한잔사라 했더니, 차 햇빛 가리개를 전리품으로 샀다. 마나님한테 줄 기념품이라고 했던가?

어찌했던 요번 여행도 괜찮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