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년은 우리년, 셋째 다리를 튼튼히(2007.2.17)
정해 년이 우리의 해가 되는 것이 정상이지만, 일부 젊은 친구들은 나이가 모자라고, 일부 늙은 친구들은 도로 젊어질 수도 없고. 환갑이 된다는 것은 대단하지만, 사실 한 해 전이 제일 힘들었지. 그러나 자식들은 잔치가 뭐냐 하고, 우리들은 애들 뒷바라지에 정신이 없고. 동진 군이 대표로 친구들 모아 놓고, 술 한 자리 하고 감에, 우리들 사실 친구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 아니겠어.
목요일 돌발, 일요일 북한산 등반, 현직 군이 활기를 불어 넣어, 몇 친구들 다리가 튼튼해졌지. 어떤 친구는 셋째 다리까지 건실해지고. 일주일 두 번의 산행, 우리에겐 적당한 운동 아니겠어. 일요일이 어려우면 토요일로 하고. 항상 현직에 있는 친구가 일주에 두 번 쉬면, 친구들 너무 무리할 것 없어. 우리의 건강이 소중하고, 우리의 마음도 중요하니까.
돌발로 말하면, 상호 군한테는 미안하지만, 1/4일 수락산으로 시작해, 1/11일은 아차산을 거쳐 망우산으로 내려와, 해장국집 들려, 노래방 들려, 우리 앞날의 근심 걱정을 털어 버렸지. 1/18일은 운길산 수종사에 들려, 유 수종 군의 건강함을 감사드렸고, 상갑 군의 차 예절에 대한 강의도 들었지. 1/25일 수락산으로 돌아 왔다가, 2/1일 강화의 고려산을 걸었어. 그 추운 날 2시간 전부터 문수산 입구에서 제자리 뛰기하고 있던 유 재명 군을 합류시켜, 고려산 부드러운 능선을 탔을 때는 추위는 어디 갔는지. 고려산 오르는 길, 용문 도사가 점지한 어르신네의 무덤 앞에 자리 잡고, 좋은 자리 빌려주어 고맙다고 넙죽 절하고, 부침개 먹고. 하산하여 경희 군이 안내한 삼식이 탕에 소주 한 잔하니, 저 멀리서 봄이 오는 게 아니겠어.
2/8일은 망월사에서 모여, 원효사를 거쳐 포대를 타고 회룡사 앞을 지날 때는, 우리의 친구 윤 병기 군이 반갑다고, 그렇지만 천천히 오라고 하더군. 2/15일 수락산에서는 현직 군이 위스키 시험장을 차렸지. 버번과 몰트와 윈저의 맛을 그대들은 아냐고. 꾀동이 수동 군 양주에는 도통했더구먼. 그날 모두의 의견은 산은 산같이 타자고. 한 두 시간 타자고 목요일을 허비함은 자연에 대한 모독이라고.
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내게 두고는 당신 때문에 저뭅니다.
해가 산마루에 올라와도
내게 두고는 당신 때문에 밝은 아침이라고 할 것입니다.
땅이 꺼져도 하늘이 무너져도
내게 두고는 끝까지 모두다 당신 때문에 있습니다.
다시는, 나의 이러한 맘 뿐은, 때가 되면,
그림자같이 당신한테로 가오리다.
오오, 나의 애인이었던 당신이여. (김 소월의 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매주 일요일에는, 교보에서 만나 승가사로 해서 문수사에서 공양 받고, 보국문 대남문 거쳐 갈 때면, 씩씩하게 우리와는 반대 길로 하산하는 영욱 군을 만나게 되고, 그와 함께 커피 한 잔하고, 찐 고구마도 먹고. 그런데 매 주일 만날 때마다 영욱 군을 만나는 시각은 앞 당겨지지. 영욱 군이 신선이 되어가나? 물론 북한산 산행 길에도 위스키 시음장이 있지. 예를 들면, 바렌타인 30, 17, 12년을 맛보는데, 바렌타인도 여자인가? 서른 살 노처녀도 있고, 세븐틴 발랄함도 있고. 북한산 백미는 흰 눈 덮인 산길인데, 앞에 가는 새댁 넘어지면 웃을 수도 없고, 현직 군이 넘어지면 전봇대가 넘어지는 것 같아, 넘어지라고 할 수도 없고.
그건 그렇고, 음력 그믐날, 남규, 영욱, 수동, 경희 군과 함께, 정릉, 보국문, 위문으로 해서 몇 년 만에 백운대를 올랐어. 오늘 따라 서양친구들이 왜 그리 많은지. 영욱 군, 코 큰 여자 둘의 손을 잡아 주었는데, 그녀들 “복 많이 받으세요, 영욱 씨”하는 것 아니겠어.
내가 이렇게 횡설수설하는 것은 ‘우리 친구들 자주 만나자고.’ 10년 후면 우리 같이 산타는 친구 몇 명이나 되겠어. 그리고 그 이전에 셋째 다리의 억울함도 풀어줘야 되지 않겠어.
(2007. 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