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을 거슬러 올라, 지리산둘레길따라 2
우리는 광의면 수월리 수한마을로 들어섰다.
수한마을회관의 구호
500년된 느티나무와 쉼터, 체력단련장.
나무는 오백세에서 더 이상 나이를 먹지않는다.
경운기타고가는 젊은이들, 봉사왔는가?
경운기 모는 촌부, 갈림길에서 우리가 방황하니, 말없이 손을 뒤로 휘저었다.
늘어선 가로수, 나그네의 눈을 편하게 했다.
방광마을로 들어섰다. 멀리 철쭉동산이 보였다.
산불난 자리를 현명하게 꾸며놓았다.
방광마을은 임진왜란 때 남양홍씨들이 피난와 이룬 동네로, 판관도 배출했다고.
오월, 익어가는 우리밀.
이번 여행의 백미, 천은사 가는 길로 들어섰다.
뒤돌아보면 광의면들, 넓고 시원했다.
노고단 아래 천은천이 휘돌아 가는 곳, 참새미골
천은사 아래 천은저수지
18세기 혜암선사가 중건한 고찰, 오래된 사찰건물들이 맘에 든다.
원이름은 절내 솟는 감로수에 연유하여 감로사였으나, 큰 구렁이를 죽이자, 샘이 솟지않고 감추어졌다고 하여
천은사로 되었다고.
이광사선생의 글씨로 18세기 이후 화재가 없었다고 한다.
사천왕문을 들어섰다.
고풍스럽지만 정다운 사찰건물들
적막이 감도는 극락보전
사찰음식의 근원
나그네생각
봄바람에 흔들리는 연등
친구를 부르고 있는 다람쥐
초가원가든의 연잎대통밥과 민들레대포.
값에 비해 맛은 별로.
곧 모내기가 시작되겠지.
구례읍가는 농촌버스
기사는 도시전철, 교통망에 쏟아붓는 막대한 투자를 못마땅해했다.
온당리 철쭉동산과 난동마을 이팝나무
구례읍내 엄지네 따로국밥집과 옆집, 복지작명국
엄지네는 간판만 덜렁 걸려있을 뿐, 폐가였다.
엄지네 옆집의 담장이넝쿨
읍내를 한바퀴 돌아 구례터미널로 돌아오는 길, 매천 황현선생의 기념사업회를 들렸더니
연곡사만 걸려있을 뿐.
황윤건군왈 '황씨는 인물이 없다' 자소했다.
매천 황현선생(1855-1910)은 구한말 4대시인의 한사람으로 1910 국치를 통분하여
자결한 시인으로 황희 황진, 병자호란 때 의병장 황위의 후손이다.
을사조약이후 민영환 조병세 홍만식선생 등께서 자결하자,
이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오애시를 지었다.
이번 여행의 모토를 천천히로 하여 (뒤편 가운데 봉우리가 노고단)
찻잎파는 여인의 부탁도 들어주며, 자리도 지켜주고 했으나
하동터미널에서 산 표로는 5시 45분차를 탈 수 없었다.
업무시스템이 낙후되어선지,
구례 하동 영업소간의 마찰 때문인지,
하동에서 산 표로는 구례에선 탈 수가 없다고.
영업소직원과 말싸움 끝에
7시45분 마지막 버스를 타고,
전철 마지막 차를 탈 수 있을까 맘조렸다.
마침 금요일이고 다음날이 어린이날이라 고속도로는 정체시간이 길었다.
그래도 여행은 즐겁고, 우리의 여행은 느림의 미학을 살리려한다.
구례 지리산둘레길을 다시 완보하여, 300여키로 지리산둘레길을 마감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