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자유여행 3
6시 조금 지나 숙소를 출발하였다.
일찍 여행을 떠난다고 하니, 호텔측에서 도시락을 싸주었다. 생각치도 못했던 친절.
너무 이른 시각이라 전철좌석은 많이 비어있었다.
대만전철의 좌석배치는 우리와 달리 일자가 아닌데,
똑같은 공간에 앉을 수 있는 인원은 같지만, 정감이 갔다.
전철내에선 음식을 먹거나, 껌을 씹을 수가 없다.
음식을 먹는 모양새가 보기에 좋지 않을 뿐아니라, 청결유지에도 좋을듯.
안내방송시 역이름이 세가지 틀린 발음으로 안내되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대합실에서 빵도시락을 먹고, 7시30분발 화리엔(花蓮) 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창밖에는 보슬비가 내리고, 일행과 떨어진 자리에 혼자 앉아
차창밖 풍경을 보며 가려니, 우수가 밀려오는 것도 같고.
기차가 타이페이를 벗어나자, 30대후반 아줌마가 내 옆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아침을 안먹었던지 컵라면을 먹는데, 새색씨처럼 옆얼굴을 안보이려고,
줄곧 창쪽으로 틀어 앉아갔다.
그러다 내쪽을 힐끔 쳐다보이기에 말을 붙여보았더니,
엄청 얘기하고 싶어했다. 남편과 음식점을 하고 있는 모양으로
한자를 써가며 예기를 했는데, 잘 안통했다.
그녀는 이란역에서 내리고,
일본의 전원같은 경치가 펼쳐졌다.
열차안에는 히다찌에어콘 광고판이 있었다.
타이완사람들은 일본의 첫식민지였음에도 불구, 일본인을 그리 싫어하지 않는 것같다.
본토 사람들과 달리 이야기도 조용조용히 하고, 예의 있고 질서의식이 강한 것이
분명 우리보다 한수 위인데, 그러한 면에서 일본을 좋아하는지?
타이페이시내가 온통 일본차 일색이라고 황윤건친구가 몇번이고 투덜대었는지.
큰강도 흐르고 이국적 풍경이 흘러갔다.
비가 그치려나보다.
화리엔은 타이완 동부해안에 위치한, 태평양연안에 있는 도시이며,
타이완에서 가장 큰 현이다.
11시 훨씬 지나 화리엔역에 도착한 우리는 정신이 없었다.
버스투어를 해야할지, 택시를 대절할지 결정해야했기 때문에.
역에서 떨어진 관광안내소에 들려 버스투어를 알아보는데,
버스보다 값을 낮게 제시하는 택시기사가 있어, 택시를 대절하기로 결정했다.
2천위안이니까, 8만원정도.
출발하자마자 사진의 아가씨가 일하는 가게에서, 대나무잎 말은 모양의 것을 사서 시종
질겅댔는데, 하나 달래 씹어보았지만 영 아니올시다였다. 중독물질이 들어있을까?
기사 이친구, 이곳 원주민 아메이족은 아닌지?
타이루거공원입구
타이루거는 길이 20키로, 높이 3천미터에 이르는 대리석의 협곡이다.
장춘교를 지나,
타이루거공원의 길을 놓는데, 지질이 약해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공사하다보니,
3년남짓 기간 동안 200여명이 사망하고 70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허리가 아파, 무거운 광각렌즈를 사용 못하고 50미터 단렌즈를 쓰다보니.
풍경사진들이 시원찮다
장춘사가 보인다.
타이완 100악(岳)중 27악이 이공원내에 있으며,
작년 이곳에서 한국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굴렀으나,
다행이도 나무에 걸려 큰 화는 면했었다고.
대리석계곡이라 물색이 옥색이다.
굴속은 제비집이라고.
위험구간에서는 안전모를 쓰고 구경을 해야했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고.
공로자 장징꾸어총통(장지에스의 아들,1910-1988)의 흉상
흉상이 있는 쉼터에서 식사를 했다.
맛이나 가격이나 유원지의 바가지는 없었다.
우리의 기사, 란꾸어창(53세)
28, 23살의 아들 둘을 두었는데, 장가를 못갔다고.
손님을 잘만나 소통도 잘하고 했지만, 역으로 돌아가는 길엔 얼마나 급하게 차를 모는지.
한국이나 타이완이나 기사에겐 시간이 돈.
이곳에서 만난 젊은 한국인들, 기사가 여자인데 설명을 잘 안해준다고 불평이 대단.
소통의 기술이 있어야.
계곡은 온통 대리석.
계곡의 제일 큰 절, 시앙떠스 입구
우리의 미륵전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봄의 향연은 이미 시작되고.
본전가는 길의 붉은 마음
본전의 황색지붕이 돋보였다.
나부끼는 나무의 마음
탑과 미륵불이 이절의 명품들이다.
계곡을 다시 빠져나와 우리는 태평양연안의 치싱탄으로 차를 달렸다.
치싱탄의 파도는 높았다.
이곳에 일곱개의 작은 못이 있었다기도 하고, 이곳에서 북두칠성이 잘 보인다고도 하고.
호리호리하지만 모진 해풍을 이겨내는 키다리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님은 너무 가까이 있는데.
우리는 왕군고구마 하나를 사서 셋이 나누었다.
6시50분발 기차가 떠나려면 시간이 너무 널널해,
역전 근처에 있는 유명한 쩡지마수 찹쌀떡집에 들려 모찌를 사먹었는데,
맛은 별로였다.
화리엔의 유명한 맛집,라오사오찬꾸안을 찾아가는 길, 거리의 빵집,
경주황남빵집처럼 사려는 사람들이 줄서있었다.
구시가지에 있는 맛집까지 걸어가려했으나, 다리 허리는 아프고하여 택시를 타고 갔으나,
영업시간전이라 문은 닫혀있고, 물어물어 해안가를 찾아갔다.
길찾는데 도움주려는 여학생들 너무 친절했고,
역시 구시가지는 길들도 복잡하여, 지도로 찾기는 역부족이었다.
바닷가로 가는 구시가지는 일본식집들이 많았고, 향수를 일으킨다할까?
드디어 찾은 바닷가
여기에도 운동하는 사람들 줄을 잇고.
참새때들도 정겨웠다.
바다가 보이는 좁은 골목길
날은 저물어갔다.
춘지에를 앞두고, 돈 많이 들어오라고.
드디어 다시 찾은 라오사오찬꾸안
다행히 이집에는 진먼까오량지우 작은 병이 있었다.
황윤건친구, 술은 똑같이 나누자고.
밤이 되자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였다.
오는 기차에서 소방사로 일하는 젊은 친구와 같은 자리에 앉아왔다.
한국에서도 소방사는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직업이라했더니 얼마나 좋아하던지.
호리호리해서 어떻게 불을 끌까 생각했지만,
예의 있고 영어도 잘하는 총각이었다.
헤어질때 조그만 태극마크의 북이 달린 핸드폰걸이를 주었더니,
답례로 인절미를 주었다.
10시 훨씬 지나 숙소들어오는 길,
편의점에 들려 맥주, 큰대접라면, 안주 사가지고 와서 한잔하는 재미.
천병헌친구 불끄자하고, 불끄니
금새 코를 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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