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 산 넘어 찾아갔더니 3
파묵칼레에서 3시간 반 걸려 도착한, 고대도시 에페소의 남문쪽에 있는 음악당, 오데온.
1,400명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시낭송 음악회 대표자회의 등이 열렸다고.
기원전 20세기부터 사람들이 살기시작하여,
기원전 11세기에는 이오니아의 식민도시였고,
BC6세기부터 페르시아 지배를 받았으나,
BC4세기에 알렉산더대왕이 이들로부터 해방시킨 에베소는
소아시아 최고 항구도시, 상업중심지로 발전해왔으며,
1세기 사도바울이 전도활동을 펴온 곳으로
인근에 사도요한의 묘가 있다. 요한이 이곳에서 요한계시록을 썼다고.
1세기 도미티아누스황제에게 받쳐진 사원.
그는 기독교박해에 앞장 섰으며 요한을 밧모섬으로 귀양보냈다.
폴리오샘의 아치.
1세기 유력한 귀족 폴리우스가 세운 샘터.
에페소로 공급되는 물을 관리하던 곳.
멤니우스의 묘.
멤니우스는 로마독재관 술라의 손자.
시저와 동시대 사람으로 시저의 눈밖에 나 에페소로 쫓겨 나왔다고.
니케(승리)의 여신상, 나이키신발의 원조.
그리스 승리의 여신 니케는 제우스의 전차를 몰았다. 영어로는 나이키.
트리아누스황제의 분수대.
5현제시대 두번째 황제. 황제의 석상은 없고, 발만 남아있다.
헤라클레스의 문,
힘과 용기, 재치있는 영웅 헤라클레스가 사자가죽을 어께에 두르고, 에페소의 길을 지키고 있다.
헬라크레스문에서 셀수스도서관까지의 거리, 쿠레데스거리.
쿠레티는 로마의 행정, 종교업무를 관장하던 사제를 말한다.
그당시의 수세식 화장실.
셀수스도서관.
로마총독 셀수스를 기념해서 지었고, 지하에 그의 무덤이 있다고.
코린트양식의 기둥을 볼 수 있고,
정문 입구에 예지, 덕성, 사려, 학술을 상징하는 여성상이 있다.
도서관 인근에는 환락가를 안내하는 표지가 있다.
기원전 1-3세기짓고, 1-2세기 로마시대때 재건축한, 24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원형극장.
이곳에서 검투사와 맹수의 싸움도 있었지만,
한때 아르테메스신을 지킨 사람들이 바울과 추종자들에 대한 반대운동도 했다고.
아르테메스여신은 사냥, 동물수호신이며 풍요와 생명의 신으로 아폴론과 쌍둥이남매.
극장에서 아르카디안거리를 걸어나가면 에페소항구.
휴양의 도시 아이발릭으로 이동하다 세밭휴게소에서 토스트 한쪽.
휴게소에는 반갑게도 제비와 제비집이 있었다.
에베소에서 3시간반 걸려 아이발릭에 도착.
카리프호텔에서 석식후 해변에 나오니, 황혼은 짙어가고,
그리스쪽에서 달이 뜨고 있고.
바다건너 그리스 섬에선 불이 켜지고 있었다.
해변 카페에서 양고기와 맥주 한컵,
양고기를 노리는 개와 고양이, 탐욕스럽고도 염치없이 고기를 노렸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양가죽가게를 들렸다.
'마담,을 계속 불러대는 끈질긴 남자, 끈적스러웠다.
20유로짜리 가방사며 3유로 깍았더니, 엽집에 전화해서 동전 한웅큼 가져오길래,
대신 조그만 지갑으로 거스름을 받았다.
어깨에 매는 가방 하나를 더 사고 돌아서려니, 가방에 얼룩이 있어,
얘기를 했더니, 다른 재고는 없고,
여주인, 우리 마나님의 손을 잡더니 손의 얼룩점을 가르키며,
'내츄럴, 내츄럴'했다. 얼마나 웃어댔는지.
그러고보니 여행 6일째. 여행도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4시기상, 6시 트로이로 출발했다.
바다 건너는 그리스.
8시 트로이 도착.
입구에는 트로이 목마.
트로이유적지는 기원전 30세기 청동기시대부터 로마시대까지 9층으로 층층이 되어있다.
잦은 지진으로 시대별 층을 이루었는데, 아직도 발굴중.
트로이는 에게해와 흑해를 잇는 다르다넬스해협 가까이에 위치, 옛부터 번영을 누려왔다.
호메로스가 썼다는 일리어드는 그리스문학의 가장 오래된 서사시.
일리어드는 트로이인들의 왕성, 일리온에서 유래한 일리온의 노래.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간 누가 아름다운가의 경쟁에서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아프로디테의 손을 들어준데서 발단한 전쟁.
독일의 부호 슐리만이 전설이 사실임을 확인하려고 발굴을 시작했는데,
7층(기원전 12-14세기,호메로스의 시대)이 트로이시대 것이라고.
서쪽의 성
난공불락의 성진입로.
우물터 성벽 제단등이 혼재해 있다.
원형극장, 광장역할도 해서, 민주주의가 이곳에서 싹을 텄다고.
겔리보루로 건너가기 위해 랍세키항으로 가는 길, 붉은 지붕과 바다가 잘 어우러져 있었다.
겔리보루는 1차대전시 연합군과 케말아타투르크가 이끄는 터키간의 격전지로서
50만명 사상자가 났는데, 결국은 연합군이 철수하고 말았다.
겔리보루가 있는 다르다넬스해협(터키어로는 차낙칼레해협)은 에게해와 마르마라해를 연결하는 요충지.
아시아쪽 랍세키항에서 배를 타고 다르다넬스해협을 건너서
다르다넬스해협에도 그리스신화가 있다.
한 왕국에 아타마스왕과 왕비, 둘사이에서 나은 남매가 있었다.
왕은 테베왕의 딸인 이노와 다시 결혼했는데, 이노는 전처소생 아이를 제물로 바치려했다.
왕비는 아이를 구하기위해 기도를 드리자,
전쟁의 신 헤르메스는 날개달린 양을 보내 아이들을 구하는데,
잠든 딸 헬레가 그만 떨어져, 다르다넬스해협에 빠져죽었다.
유럽쪽 겔리보루항에 도착했다.
겔리보루식당에서 고등어구이
식후 멋쟁이 인솔자 고여사, 구두를 닦았다.
이스탄불시장가는 길, 유채꽃 노랑의 물결
유채밭은 이어졌다.
여름엔 해바라기물결이곘지.
그랜드바자에 도착, 장을 둘러보고.
슐탄 마흐메트에 의해 조성된 시장,
5천개의 상점이 모여있는 실크로드의 마지막 시장이며, 터키 최대의 카펫과 귀금속시장.
발을 들여놓으면, 한국촌놈들 길잃기 딱 좋다.
시간갖고 제대로 쇼핑 못해 못내 아쉬웠다.
첫날 식사했던 식당 근처에 있는 부하라93 레스토랑에서 터키식 저녁을 들었는데,
주인이 독실한 이슬람이었던지, 술을 안팔았다. 아! 술 한잔없는 이스탄불 마지막 저녁.
식당을 나오니 야채시장.
오른쪽 친구왈, "My father is a farmer." 유창한 영어로 손님을 끌었는데,
어디서 많이 듣던 말.
장보고 오다 뭘 빠뜨렸나?
갈라타다리근처 에미뇌뉘선착장에서 보스포루스 크루즈를 시작했다.
이곳은 지중해를 도는 크루즈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같이 배를 탄 터키가이드, 친구를 데리고 승선했다.
폴란드애인을 둔 이친구 폴란드어를 비롯, 4개국어에 능통하나, 말이 없었다.
말을 시켜야 신나서 말을 하고.
표를 끊는 등 잡일은 이친구가 다 했다.
사원 오른쪽, 돌마바흐체궁전 시계탑이 보인다.
궁전을 보는 친구.
그러나 궁전은 불이 꺼져 있고.
화려한 호텔, 다음에 와서 한번 자야지.
밤에는 마시고 즐기고,
보스포루스대교에선
돈많은 젊은이가 다리에 글을 써 프로포즈를 하고 있었는데, 그장면을 놓치고 말았다.
다리 밑.
아시아쪽 위스퀴다르에는 별장인지, 궁전인지.
배위에는 성소피아사원에서 기도하던 여인이 앉아 있었다.
배에서 내릴 때에는 옆배에서 춤추고 노래하던 터키청년들이 우릴 보고, 광란의 몸짓을 했는데,
우리도 내리면서 엉덩이를 흔들어 답례했다.
그리고 우리가 전세 낸 배에서는 처음엔 터키곡이 나오더니,
내릴 때엔 우리노래가 애잔하게 흘러나왔다.
아, 아쉬운 이스탄불의 마지막 밤.
그밤이 아쉬워 호텔에 돌아와선,
남은 서울물 세팩에, 육포와 김, 기분이 팽 돌았다.
떠나는 날,
우리가 첫날, 마지막날 묵었었던 아르테미스호텔의 조식은 성찬.
나온 치즈의종류는 가지가지고, 소나무꿀은 달콤했고.
공항가는 길, 어둠이 걷히고.
이스탄불공항.
마지막 보는 보스포루스다리.
올때도 타슈켄트에서 6시간 가량 머물렀는데, 올때와는 달리 사진 한장 찍을 여유가 없었다.
맥주마시랴, 면세점에서 마나님 부르면 뛰어가서 돈내랴---
조그만 면세점에서는 목걸이 등을 세일중이었는데,
착하고 이쁘장한 우즈베키스탄 여종업원, 두 아줌마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인천공항에 내려선, 갈때와 마찬가지로 신세계라운지에서 아침먹고,
6호선 타고 왔는데, 장거리 버스타기에 지쳤는지,
친구부부는 화랑대역에서 내린다는게 봉화산역까지 갔고,
우리부부는 기지창까지 갔다오는 해프닝을 벌였다.
위스퀴다르 갈 때 비를 만났네.
내님의 코트가 길어 그 끝이 진흙에 끌리네.
내님이 잠에서 깨셨네, 그 눈이 피곤해 보이시네.
님은 나의 것, 나는 님의 것. 누가 우리를 갈라놓을까?
내님에게 셔츠는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이노래를 들으면 흥이 나고,
또 이상한 나라에 온 것같기도 하고.
좋은 여행을 하게 계기를 마련해준 친구부부에게 감사를 하고,
언젠가 자유로운 터키여행을 같이 하면서 피를 나눈 그들과 교류를 하는 기회가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