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 문학기행 그리고 변산, 부여(2014.6.13)
바쁜 출근길, 서초구민회관 앞에서 우리는 정주사내외를 눈빠지게 기다렸다.
버클리대에 있는 딸내미 초봉이를 만나고 돌아오자마자,
양재역에서 출발하는 여행에 참여하고저 부부는 허둥대고 있겠지.
여행준비에 고심초사한 결과, 졸고있는 회장님보고,
"볼일이 있는데요."해서 간신히 들린 망향휴게소.
휴게소 인근에는 망향의 동산이 있다.
일본의 침략으로 고국을 떠나, 고향을 그리다 가신 해외동포들이 묻혀있는,
'커피 한 잔에 1500원?'
'1500원이면 이슬이 한병반이 아니야?'하고,
돌아선 우리들.
초여름인데도, 소나무들은 더위에 시달리고 있고,
공주 정안을 지나자니 밤꽃이 한창,
누구들은 좋겠네.
회장사모님께서 공들여 준비한 간식 주머니를 돌리셨는데,
여인용 남정네용 솔로용 세가지가 있었다.
여인용에는 껌이 더 들었다고했는데, 솔로용엔 무엇이 더 들어있었는지?
금강하구를 지나,
군산 강변로에 있는 채만식문학관에 들렸다.
마침 김병종의화첩기행을 읽고 있는 중이라,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문학관 앞 조그만 연못에는 수련이 피어 있고.
자화상 한 장, 찰칵
문학관을 돌아보는 '탁류'의 주인공 초봉이의 아버지 정주사.
30년대 군산내항과 부잔교.
군산항의 옛이름은 진포, 채만식이 소설'탁류'에서 '눈물의 강'이라고 불렀던 금강의 끝머리에서 시작되는 항구.
군산은 주변에 산이 많아 그 이름이 군산이었다는데, 산언저리마다 옹기종기 정겹게 모여 살던 촌락들을 일제가
재구성하고 항구를 확장해 근대적 신도시로 바꾸었다. (김병종의 화첩기행1)
백릉(白菱)채만식선생(1902-1950)
중앙고, 와세다대학에서 수학을 했지만, 살림도 넉넉치 못했고,
부모에 의해 짝지워진 결혼을 혐오했다,
그래서 두번째 부인을 얻었지만, 본부인의 자식들에게도 배척을 받은 불행한 사람이었다.
그의 대표적 단편, 레디메이드인생.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국문학사의 한편.
레디메이드인생! 현대 대다수의 지식인들 생각도 같지 않은가?
대표적 장편 '탁류'
현대를 사는 우리는 더 거세고 오염된 탁류 속에서 헤메고 있지, 아마.
기념촬영 한 컷.
이제 문학소년 소녀들은 채만식선생이 살았던 그 시대 군산 속으로 갈 것이다.
옛 군산세관.
서울역, 한국은행과 더불어 국내 서양고전주의 3대 건축물.
여성시대를 맞아 새로 부임한 세관장.
옛세관에 남아있는 옛군산항.
군산항은 장미동에 있는데, 藏米라는 뜻만 보아도,
이곳이 옛날 일본이 드넓은 호남평야에서 거두어들인 쌀을 반출해갔던
군사전진기지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기념촬영2.
봉화회는 이상한 모임이다.
모이면 웃음이 번진다.
이웃 허청(전통적인 시골의 창고)에 있는 말.
말통은 사전에도 없는 말.
되, 말하면 되는데--
군산근대역사박물관,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박물관 앞에는 고려시대양식의 은적사 삼층석탑이 옮겨져 와 있다.
인근 장미갤러리에선 하반영화백의 전시가 있었다.
이거리는 문화의 거리로 정착된 분위기.
장미는 장미가 아니다.
옛날 쌀을 나르던 기차와
문제가 되었던 해양경찰선.
해양경찰이 없으면 되겠어?
흥분 잘하는 정치꾼과 이를 따르는 우매한 백성.
옛 조선은행에서 군산근대건축관으로 탈바꿈.
옛것은 옛 그대로 두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조선은행 군산지점은 초봉이와 결혼했던 바람둥이 은행원 태수가 근무하던 곳.
탁류에 나오는 미두장(米豆場).
쌀콩 등을 취급하는 선물시장. 말하자면 시카고 곡물시장같은 것이다.
선물은 곡물의 계절진폭, 풍흉으로 인한 가격등락 등을 피하기 위한 장치이지만,
역선택을 하면 위험이 증폭된다.
당시 군산항 미두장은 매일매일 조작된 오사카의 미곡시세로 사고파는
도박장이었는데, 수많은 지주들이 여기 뛰어들어 거덜이 났다.
탁류의 정주사도, 채만식선생의 부친도 그중의 하나였다.
군산근대건축관 이층에서 일층 바닥에서 상연되는 영상물을 볼 수 있다.
바닥화면에는 옛조선은행건물이 있고 그앞을 행인들이 지나고 있다.
건축관에서 항구를 보려니, 멋진 느티나무 한 그루가 시야를 가렸다.
흥청거렸던 옛 번화가를 걸었다.
태양은 뜨겁고, 옛 영화는 어디 갔는지, 거리는 한산했다.
벼르던 군산맛집, 중앙식당에서 반지회 반지구이 그리고 아나고탕(붕장어탕)을 들었다.
반지회 그맛과 고소한 붕장어탕 맛, 먹어봐야 알리라.
중앙식당은 탁류에 나오는 째보선창 삼거리 뒷골목에 있다.
반지는 멸치과에 속하는 20센티 정도의 바닷물고기로 봄 가을에 잡히고,
5-6월이 가장 맛있다. 강화도의 밴댕이와는 틀리다.
밴댕이는 청어과에 속하는 15센티 정도의 물고기로, 젓갈로 많이 이용된다.
반지는 경기도에서 밴댕이라 불려 더욱 혼동을 준다.
술병은 쌓여가고, 기분은 엎되고.
식당 창문도 예술적으로 보였다.
째보선창 뒷골목엔 나무생선상자가 쌓여 있다.
옛날에는 나무생선상자 흔히 볼 수 있었는데--
그나마나 옛날 째보선창에는 째보선장이 있었나?
' 남자가 사랑할 때'는 30년대 영화아냐?
개팔짜는 역시 개팔짜. 바람부는 시원한 뒷골목에선.
30년대 건물은 찌그러지고--
아쉽다.
언젠가는 비가 뿌리는 밤의 째보선창 부둣가도 걸어보고 싶고,
색시있는 선술집에서 한잔하고도 싶고.
우리는 다시 여름 속으로--
채식주의자 우리기사님.
채식하는 사람들은 아마 돈을 싫어하지.
우리는 새만금으로 끌려갔다. 그 푸른색 속으로---
새만금은 만경강 동진강 하구를 개발하여,
만경 김제방조제를 더 크게 새롭게 확장하여,
만경 김제평야 옥토를 새로이 일구겠다는 신념이 들어가 있다.
굴곡진 100키로 해안선을 비응도-고군산군도-변산반도를 연결하는 33키로 직선방조제로 만든 대공사,
간도 크지.
그 시원한 바닷바람 속에서 1차 하모니카 열연이 있었다.
그리고 순이 웃음이 있었다.
화장실에의 초대.
세상에 화장실문 열어주며 인도하는 낭군 또 있을까?
격포항에 도착하니,
격포항산책길 초입에 생각깊은 청년 한 사람.
격포항은 항상 파란배로 가득차 있다.
격포항은 전라우수영 격포진이 있던 수군의 근거지.
80년 중반, 격포항에서 무인도 찾아갔다가,
초소에서 음료수와 바꾼 싱싱한 생선덕에 모두(선장 포함) 술취해 낮잠자다 깨어보니,
썰물이 되어 배는 바위에 걸려있고,
주위의 여수고깃배 소리소리쳐 불러타고 간신히 돌아와 월요일 출근했던 기억.
산책길은 하얀등대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산책로 벤치는 불다불다 지친 바람을 위한 자리.
등대와 볼록 나온 배, 항해에는 지장이 없겠지.
다시 닭이봉전망대로의 산책을 시작했다.
달기봉이 맞지 않을까?
전망대 오르는 길, 검은 봉투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