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고 싶은 섬, 굴업도(2016.6.17)
봄에 피는 군자란이 유월에 꽃을피웠다.
얼마나 기다렸을꼬.
섬여행은 오랜 기다림의 결과물이다.
날씨 때문에 기다리던 섬여행을 포기한 기억이 누구나 한둘은 있을 것이다.
6/16-6/17계획했던 요번 여행도 날씨 때문에 하루 미루어졌다.
그나마 갈 수 있었으니 다행이고.
약속장소에서도 기다림의 연속.
일행 한 명이 열차를 잘못 타는 바람에 한 30분 기다렸을까.
오랜만에 인천 연안부두에서 배를 탔다.
굴업도를 가자면 한시간 넘게 배를 타고 덕적도로 가서
두세시간 이상 기다려 다시 배를 타야 한다.
오랜만의 바다 출사,
섬은 외로움과 기다림의 대명사.
맞을 사람, 보낼 사람을 오래 서서 기다려 맞고 보내야 하니까
섬이란 말이 생겼을까?
갈매기들도 쌔우깡 한 개 받아먹으려면
한참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덕적도에서 나래호를 한 시간 정도 타면
굴업도 선착장에 닫는다.
인천에서 덕적가는 고속훼리 코리아나호는
좌석권은 있으나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배이지만,
나래호는 고스톱치기 알맞은 마루 방에
사나이들 딩굴고 있으니, 천상 검은 배 연기를 맡으며
바다 내음새를 음미하며 선상에 있을 수 밖에.
선착장에 대기하고 있던 타이탄트럭에 경쟁적으로 올라탔다.
짐만 올리고 사람은 걸어가라는 차주의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누구 하나 짐짝 취급한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오후 한시 가까이 되어, 우리는 고씨네 민박에 짐을 풀었다.
아침 5시45분에 집을 나섰고,
연안부두에서 배가 출발한 시각은 9시.
점심 간단히 들고
마침 음악회가 있어 해변으로 가는 타이탄을 타고
오후 일정을 시작했다.
오후 일정은 목기미해변-연평산-코끼리 바위-덕물산-목기미해변-민박집
코스이다. 거리는 7-8키로.
간만의 차가 없어서 토끼섬은 갈 수가 없다고 했다.
앞에 보이는 산은 덕물산.
우리는 해변이 끝나갈 무렵 왼쪽 언덕으로 올라섰다.
바닷바람은 만만치 안않고
바람에 누운 풀들을 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오랜만에 오염되지 않은 해변을 걷고 경사가 심하지 않은 언덕을 넘고,
서어나무 숲을 지나 급경사를 올랐다.
정상(128미터)에서 온길을 뒤돌아봤다.
목기미해변 저편 끝쪽이 트래킹 시작점.
정상 기념 한 컷.
초여름 한낮의 바다는 눈부셨다.
비록 쨍한 날씨는 아니었지만.
코끼리섬 쪽으로 내려오니
서울 비르투오지(Virtuosi) 챔벌 오키스트라 단원
세명의 연주회가 있었다.
비르투오지는 서울음대 이경선교수가 감독이고,
서울 인천시향, kbs교향악단 일부 단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재능기부, 개인적 여행, 환경보호차원 등
복합적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연주회장 앞에 큰 코끼리 한 마리 서있었다.
연주회 끝나고, 연주자들은 해변을 걷고
관중들은 언덕을 걷고.
사진을 못찍으면, 날씨 탓.
언덕 위 강한 바람에도 아랑곳 않는 작은 나무들.
덕물산 정상(138.5미터)을 올랐다 하산하여,
아래쪽에서 캠핑하는 젊은 친구들이 쌓아놓은 탑 앞에서.
왼쪽이 목기미해변,
오른쪽 능선이 연평산 가는 길.
더 이상 갈곳이 없는 사람은 안다
섬이 왜 바다에 홀로 떠 있는 것인지
떠나간 사람을 기다려본 사람은
백사장에 모래알이 왜 그리 부드러운지 안다
섬은 그리움의 모래알
거기에서 울어본 사람은 바다가 우주의
작은 물방울이라는 것을 안다.
바다 갈매기는 떠나간 사람의
잡을 수 없는 마음이라는 것을 안다
(원재훈의 '섬에서 울다')
우리는 산을 다시 내려와서
작은 돌탑을 쌓은 젊은이들을 만났다.
내 초라한 모습에 반하여
저들은 얼마나 혈기왕성한가.
"젊은이들 좋은 밤 보내시게."
캠핑장 앞에 나무 한 그루, 그 강한 바람에도 강건했다.
석양은 멀지 않고,
갈매기 한 마리
떠나간 사람의 마음인가.
일출이 5/15, 일몰이 19/51.
낮이 긴 날중의 하루에 우리는 이곳에 왔다.
전이장의 타이탄 다시 불러타고 민박집에 오니
고쳐진 지붕도 마음에 와닿았다.
모두들 고생했으니,
저녁 특식으로 5만원짜리 우럭구이 시켰다.
다섯명이 실컷 먹고도 남았다.
왼쪽에서 세번째가 고씨민박 할머니.
마을 아낙네들과 함께한 소시적의사진.
영감님은 10년전 사별.
황해도 피난민이었던 그는 땅콩농사를 지으셨다.
옛날 이곳은 덕적도와 마찬가지로 흥청거리던 민어산지였다.
말린 민어 한마리 육지에 가면 쌀 두말.
옹진군은 황해도가 가까워
황해도 출신이 많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마당을 보고 독상을 차려 홀로 먹었다.
자유부인들은 섬음식에 질렸는지, 우럭에 체했는지.
아침후 개머리초원 가는 길의
마을 뒤에 있는 큰마을해변.
홀로 텐트치고 있는 친구, 외로운지 지팡이로 이름을 쓰고 있었고.
해변은 밀려온 쓰레기가 나딩굴었다.
좀 있으니 쓰레기 치우자는 마을 여이장의 방송이 있었고
마을사람들 경운기 끌고나와 쓰레기를 치웠다.
개머리초원 입구, 빨간 산게 한 마리.
우리나라에선 처음 보았다.
해무가 잔득 끼어있는 개머리언덕을 올랐다.
앞에 있는 해변이 큰마을해변.
앞서가는 한 남자와 두 여인.
같은 배로 왔고 내방과 가장 가까운 방에서 머물었다.
어제 우리가 트래킹에서 돌아오니,
벌써 술이 오른 상태였다.
한여인은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었고.
오늘 아침 화장실에서 남편에게 전화로 하는 말.
아침은 잘 들었냐고. 밥맛 없으면 물말아 먹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이곳에서 방목되고 있는 사슴들, 경계태세이다.
이백 마리가 넘는다고.
초원의 정상에서 조금 더 갔다가
다시 해변으로 돌아오니 파도는 그리 심하지 않았는데.
덕적에서 출발한 배가 일기 관계로 한 시간 늦게 출항했다 한다.
바다날씨는 알 수가 없다.
해변은 자연과 사람이 만들어놓은 합작품.
병아리꽃나무.
굴업도는 인천 옹진군 덕적면에 속하는 인구는 8가구 10여명 되는, 바다로 엎드린 섬.
해안선 길이 12키로. 덕적도에서 남서쪽으로 13키로.
중생대 백악기(1억4천년에서 7천년전)에 형성된 섬.
이섬은 나무 68종 풀 111종이 살고 있는 생태계가 살아있는 섬이다.
금방망이 백선 큰천남성 고사리 이팝나무 서어나무 소사나무
산게 먹구렁이 황조롱이 상괭이(토종 돌고래)등등
12시 민박집 인사하고
타이탄타고 선착장에 나오니,
나래호에선 주말손님들이 쏟아져 나왔다.
여행객수송에 경운기도 동원되고,
섬에 활기가 돌았다.
잘 있거라, 굴업도.
왼쪽이 개머리초원 능선
오른쪽은 덕물산.
덕적도 가까와지니 날이 개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날씨가 언제 중국 영향권에서 벗어날까?
요번 여행에서 정남씨 조카사위의 신세를 단단히 졌다.
출발 당일 연안부두에서 정남씨 부군과 조카사위를 만났었는데,
덕적도 일주를 해주겠다고 했다.
조카사위와 처삼촌이 동갑인데 여간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그는 덕적도 일원의 유명인사와 친분이 있었고, 덕적도에 별장도 있었다.
인천으로 가는 배는 16:30분 출발하고
우리는 한시 지나 덕적도에 도착하여 시간도 널널했다.
그의 호의로 덕적도 선착장 앞에서 해물국수 맛있게 들고,
지인이 모는 콜밴으로 덕적도 순례를 시작했다.
우리는 선착장에서 성황당고개를 넘어 서쪽 끝에 있는 능동자갈마당을 들렸는데
몇 송이 안남은 해당화가 안스럽게 피어 있었다.
검은 자갈투성이의 자갈마당.
옛날 외국신부의 덕으로 세워진 둑방에서 휴식중인 갈매기들 날려보냈고,
적송이 우거진 웰빙산책로를 걸었다.
굴업도 전이장, 덕적도 이장 경력이 있는 콜밴 사업주, 조카사위는
서로 잘 아는 사이인지라,
굴업도에선 전이장과
덕적도에선 콜밴 장사장과
섬에 관한 재미있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서포리 선착장 앞의 바위에는 갈매기 한 마리 쉬고 있었고,
휴업중인 선착장엔 낚시군 몇이 있었다.
선착장 근처의 바위얼굴, 큰 민어를 낚은 인물상(환상의 섬 홍보물)을
사진에 담았다.
그리곤 배낚시 후 돌아오는 조카사위를 서포리해수욕장
선착장에서 기다렸다.
그는 함박웃음을 띄고,
수확물을 자랑했다.
덕분에 우리들은 굴젓선물을 추가로 받았고,
덕적도 진리선착장에 있는 그의 지인들은
벌써 그의 어획고를 알고 인사말을 건냈다.
(덕적도 안내도)
(굴업 덕적도 가는 길)
*덕적 굴업도는 인천보다 충남 당진이 더 가깝다.
연안부두에 도착한 우리는
밴댕이골목 온양집에서 병어조림으로 여행을 마무리했고,
모두 지하철로 귀가했다.
모두들 수고했습니다.
정남씨 고마웠고요.
자유부인들, 여행길이 고달프지는 않았는지.
*일부 사진은 회원들이 찍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