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따라가는 여행6(모로코)
10/1(토)우리는 유럽 스페인, 타리파에서
훼리를 타고 지브롤터해협을 건너,
아프리카, 모로코의 탕헤르에 도착했다.
거리는 38키로, 배로 두시간반.
배안에는 면세점이 있어,
아몬드초코릿, Bounty 한 상자를 샀고,
딸내미용 목걸이도 샀다.
탕헤르의 프린스파리에 짐을 내려놓고
호텔식 식사를 하였으나, 마땅치않아
방에서 누룽지를 끓여먹었고.
모로코 현지식은 처음으로
우리를 낯설게 하였다.
탕헤르의 인구는 70만.
전략적 요충지로, 7세기에는 아랍,
15세기에는 포루투갈, 스페인, 영국의
치열한 다툼이 있었고,
1925년 영구 중립 국제도시였다가,
1956년 모로코가 독립되자,
모로코에 반환이 되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니,
로비에는 청순한 모로코 소녀가 걸려져 있었다.
햇살, 친절과 환대가 가득하고,
신화와 현실 사이에 있는 양탄자같이
신기한 나라.
아프리카인지, 유럽인지 구분이 안가는
옛날과 신세계가 혼재해 있고,
순종하는 땅, 반항하는 땅이라는 복잡한 나라,
아프리카 유일한 왕국(입헌군주국)에서
하루를 잔 것이다.
모로코는 한반도의 두배가 넘는 면적에
인구는 33백만명.
실제는 4천만이 넘는다고.
푸른 들판, 바다와 사막,설산이 어우러져 있고,
침입자들로 인해 인종, 문화가 다양한 나라이다.
모스크를 보니, 아, 이슬람국가에 왔구나.
모스크는 기도와 공부의 장소.
기원전 이천년 전부터 이곳에는
짙은 피부에 검은 눈, 그리고 곱슬머리의
베르베르인이 살아왔으나,
685년 아라비아의 이슬람교도들이 점령했고,
이어 이들은 711년 스페인을 침입했으며,
12세기에는 베르베르 민족이
이베리아반도, 세네갈에 걸치는
광대한 제국 알모아데왕조를 건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소왕국으로 분열되어
15세기 후반에는 스페인, 포르투갈의 침략을
받았고, 이후 서구열강에게 시달리다
1912-1956 프랑스의 통치를 받았다.
미나레트(Minaret)도 보이고.
사람이 이곳에 올라 나팔, 종대신
육성으로 예배시간을 알렸다. (아잔)
50%세일은 이곳에서도 유행이다.
모로코의 농업인구는 아직도 50%. 밀은 물론
야채, 과일, 특히 올리브가 많이 생산된다.
허름한 상가건물도 보였고,
모르코 오기전에는 모로코는
물사정이 나쁘고, 전기가 자주 나가며,
방이 어둡고, 냄새가 난다.
또 화장실 갈 때 돈을 내야되며,
현지인과 관광객이 치루는 가격이 틀리고,
모닝콜 대신 문을 쾅쾅 두드린다는 등
좋지않은 얘기를 들었지만,
실제는 큰 문제가 없었다.
넓은 초원에 양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이나라의 인사말이 재미있다.
쌀람말리꿍하면, 거꾸로 말리꿍쌀람하면 된다.
이나라에선 당나귀가 심한 욕이라고.
모로코, 튀니시, 알제리, 리비야, 모리타니 등
아프리카북서부 일대를 마그레브라 한다.
아랍, 페르시아 중심의 동방세계의 반대쪽,
아랍어로 서부땅의 끝, 해가 지는 곳이다.
천년 이상의 지리 언어 종교적 동질성을 갖은
이나라들 간에는 유대가 좋다고 한다.
아름다운 호수도 있고.
탕헤르에서 페스까지는 270키로.
모로코인구의 70%는 서북부, 중서부해안에 살며,
인구의 36%를 차지하는 원주민 베르베르인은
산악, 농촌지대에 주로 산다.
예로부터 남쪽의 사하라사막을 넘어서
흑인, 노예, 첩, 용병이 모로코로 넘어왔다고.
금빛의 문이 있는 호화롭고 장대한 페스의 왕궁.
현재의 왕, 모하메드 6세의 별궁이다.
페스(Fez)는 인구 백만의
모로코에서 세번째 큰 도시.
9세기 이드리스왕조, 11세기
알모라비드왕조의 수도.
1912년 수도가 페스에서
라바트로 이전 되었으나,
마그레브에서의 이슬람문화중심지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세계최초의
대학중 하나인 카라윈대학이 있다.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지만
벽그림이 멋있다.
엘리간자 레스토랑에서
11-12세기 베르베르인이 만들었다는
채소, 고기가 곁들어진
좁쌀모양의 쿠스쿠스를 들었다.
입맛에 안맞는지 모두 음식을 남겼다.
식당의 천장, 채광도 잘 되고 우아했다.
우리는 페스의 미로, 메디나를 걸었다.
메디나는 회교도거주지인 구시가지를 말하며,
페스의 메디나는 9천여개의 골목이 있는
12백년전 조성된 거리이다.
이슬람왕조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우리를 유심히 보고 있는 두 여인.
모로코인은 호기심이 많고, 외국인을 환영하며
산책을 사교적행위로 본다.
카페, 공중목욕탕 이용이 많고
음악, 연극을 즐긴다.
모로코사람들은 공적 사적생활이 다른
이중성격을 갖고 있다는데,
오랜 세월 이민족간의 다툼 때문이리라.
좁은 미로는 더욱 인산인해가 되었다.
수니파가 90%인 이나라에는 테러범이 없고,
도둑질하면 손을 자른다는 계율이 있듯,
소매치기가 심하지는 않다,
우리는 아름다운 아치를 지나,
머플러가게를 지나,
가죽제품을 팔고있는 상점건물 옥상에서
가죽염색하는 작업장(테너리)을 내려다보았다.
냄새가 많이 난다고 하여 입구에서
나누어준 민트잎을 코에 대고.
제일 비싼 것은 노란가죽.
귀한 샤프란꽃의 색소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가장 싼 것은 검은색 가죽.
이들은 천연염색자료만 사용하며,
그역사가 수천년되었다고.
그들의 친절한 안내에도불구,
싸지만, 유행에 뒤떨어진 가죽제품을
산 사람은 없었다. 미안한 마음뿐.
달동네?
우리는 페스에서 200키로 떨어진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로 이동하여,
핫산탑과 모하메드 5세 무덤을 찾았다.
붉은 벽돌의 44m높이, 6층의 핫산탑은
층마다 방이 하나씩 있고,
술탄이 말을 탄채 오르도록 되어 있다.
세비야의 하랄다탑을 설계한 자비르가
같은 방식으로 설계했다고.
12세기말 만스루왕이 300여개 기둥을 가진
모스크를 지으려했지만, 완성을 못하고,
핫산탑과 미나레트만 남아있다.
모로코최초의 알모아데왕조 술탄,
압두 알 아민은 이곳을 12세기
스페인 출정기지로 했다.
알모아데왕조는 이슬람 황금시대.
그의 손자며 흑인노예의 아들이었던
야쿠브 알 만스루가 기독교인 포로를
데려와 이곳의 건설노예로 부렸다.
스페인에서 거둔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계획된 '모스크 엘 핫산'은
왕의 사망으로 중지되었다.
하늘에 색동옷 입은 처녀같은 연이 나르고.
이곳엔 또 모하메드 5세의 관이 있다,
현왕의 부친, 핫산2세와 숙부의 관과 함께.
모하메드 5세는 현재의 왕
모하메드6세의 조부.
모하메드5세는 1912년부터 프랑스
식민통치에 항거하였으며,
1956년 독립을 쟁취했다.
한 모로코소녀, 무엇에 골똘하고 있는지.
이곳에선 대서양이 보이고.
카사블랑카 가는 길 언덕,
수많은 무덤들이 보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있는 느낌.
인어공주와 데이트하고 있는 한 청년.
또 하루의 석양이 지고.
카사블랑카 타리크호텔에서 본 밤거리.
라바트에서 카사블랑카까지는 87키로.
카사블랑카는 하얀집이라는 뜻으로
포르투갈인들이 건설했고,
18세기에 무역항으로 재건되어
19세기 탕헤르를 앞질러 모로코
제일의 무역항이 되었으며
아프리카북서부에서 제일 큰 도시.
인구는 300만. 실제는 700만.
전기포트로 미역국, 햇반을 끓였다.
포도주도 한잔하고.
7시에 숙소를 나서, 핫산2세 모스크에 들렸다.
1990, 카사블랑카 서쪽끝 대서양해안을 매립,
완공하였다. 실내에 2.5만명, 외부까지하면
10만명이 동시에 기도할 수 있다.
세계에서 세번째 큰 사원, 메카의
'알하람 모스크', 메디나의 '예언자모스크'에 이어.
미나르트는 210M로 세계최고이다.
핫산2세는 현왕의 부친.
이어진 건물들.
아름다운 벽
카사블랑카에서 탕헤르까지 오는 길, 332Km
아파트가 잘 안팔리는가보다.
가이드 조나단은 카사블랑카를 보여주었다.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은 영화.
엄프리보가트(릭역)와 잉그리드 버그만(일자역)이
열연했던 영화이다.
주제곡 As times goes by보다는
영화의 감동을 노래한 버티히긴스의
Casablanca가 더 기억에 남아있다.
2차대전 당시 카사블랑카에서 술집을
경영와는 릭에게, 레지스탕스에서 같이 활동했던,
옛날 애인 일자가 남편과 함께 와서는
미국으로 탈출할 수 있도록 부탁을 한다.
처음에는 거절하는 등 갈등을 겪다가,
일자가 둘이서 미국으로 가자는 유혹에,
그만 부부를 탈출케 해주는
멋쟁이 신사, 릭.
거리에 릭의 카페가 보였다.
손님을 끌려고 허구의 카페를 열었다.
사실 영화도 카사블랑카에서 찍지 않았다고.
친절한 모로코 현지 가이드.
스페인의 가이드들과 달리 쇼핑을 할 때
통역도 해주는 등 성실했다.
탕헤르항에 도착, 카페 밖에서
점심도시락을 먹으려니, 고양이가 보챘다.
이곳 교포한테 주문한 도시락,
반찬이 얌전했다, 김치도 있고.
바다가 지중해인지, 대서양인지 모르겠다.
철도, 항공, 도로가 잘 구비된 모로코는
관광수입도 적지않으며,
지하자원, 농업자원이 풍부하나,
경제는 프랑스인이 장악하고 있다.
우리는 다시 출항준비를 하고.
모로코기가 펄럭였다.
곳곳에 현왕 모하메드 6세, 또는 부부의
사진이 게시되어 있다.
그는 몸소 일부일처제의 시범을 보여,
이나라에 일부일처제가 확립되었다고.
또 여성의 지위 향상에도 힘쓰고 있고.
모로코왕자는 왕이 되기 전에는
결혼을 못한다는데, 진짜인지.
스마트폰의 광풍이 이곳에도.
쾌청한 바다.
아쉬움만 남기고
또 지브롤터해협을 건넌다.
갈매기도 한가로운 오후.
짧은 모로코 일정에도, 어쩌면 같은 운명 속의
스페인 포르투갈사람보다는 왜 모로코사람들이
호감이 가는지 모르겠다.
아틀라스산맥 등산, 사막투어로 정평이 나있고,
옛왕궁, 사원외에 프랑스 근대적 시가가
형성되어 있다는 옛 알모아데왕국의 수도,
마라케쉬를 찾고싶다.
카사블랑카 맥주 한캔으로 목마름을 날리고.
배안에서 한캔에 5유로, 좀 비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