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따라가는 여행 종편(바르셀로나, 몬세라트)
저녁 식사후 바르셀로나의 거리로 나섰다.
포장마차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고딕지구의 대표건물, 바르셀로나대성당
앞을 어슬렁거리다가,
이곳에서 콜럼버스가 데려온 6명의
아메리카원주민이 세례를 받았다.
벼룩시장을 한바퀴 돌았는데,
늙수그레한 가게주인,
가격이 싼 물건은 뚝뚝 잘 깍아줬지만
비싼 보석류는 에누리가 없었다.
가로등도 멋지고.
하늘엔 초생달이 떴다.
우리는 고딕지구 안의 왕의 광장(Placa Del Rei)에
들어섰다. 마침 매직아워도 되고.
이곳에서 콜럼버스가 이사벨여왕과
페르난도 2세에게 신대륙발견에
대해 보고했다는데-
밤거리의 악사들, 뭐 하노?
당신들은 뭐하고 있고.
대형간판엔 무어인인가?
남쪽항구에 정박한 대형유람선.
바르셀로나 남서부에 위치한
몬쥬익언덕(213미터)을 오르며,
주차할 곳을 찾았으나 웬차가 그리 많은지.
바르셀로나의 관광수입이
마드리드의 두배라더니-
바르셀로나의 야경은 포기하고 말았다.
내려오는 길, 올림픽박물관이 보였다.
92년에 열렸던 25회 하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황영조의 금메달을 비롯
12개의 금메달로 7위를 했었다.
초생달은 유난히도 밝았고
우리의 신세는 처량했다할까.
언덕에도 못올랐으니.
거리의 조각탑은 찬란했다.
샹그리아 한잔씩 한다고
적당한 카페찾는다고
빌딩 위를 몇바퀴돌다,
드디어 자리를 잡았다.
나보고 형님 형님하는 친구와 마주 앉았는데,
이따만한 샹그리아병을 놓는게 아닌가.
샹그리아는 스페인이 원조로,적포도주에
과즙, 레모네이드, 브랜디 등을 섞은 음료.
술이 아깝다고 둘이 다 자셨는데,
얼근해서 좋기는 좋았는데
마나님한테 혼이 났다.
이친구는 단신으로 여행을 참가했는데
내가 신세를 졌다.
큰 여행백에 위관련 흰약을 많이 넣었더니
검사과정에서 마약인줄알고
백을 풀어헤친 모양.
스페인에 도착하니 백이 풀려져 있었고
자물쇠가 도망가 있었다.
이친구가 마침 예비자물쇠를 갖고 있어
내가 얻어 썼었다.
쓸쓸한 바르셀로나의 밤.
여행11일째(10/6,목)아침 나서는 길,
비가 부슬부슬내렸다.
여행 중 처음 맞는 비였다.
톱니모양의 산이라는 몬세라토.
해남의 달마산보다는 못한 느낌.
몬세라트의 톱니바퀴라는 간판.
우리는 산악열차를 타고
수도원으로 향했다.
내려다보니 붉은 지붕의 집들뿐.
몬세라트수도원.
바르셀로나에서 50km 떨어져 있고
고도는 725m(산정상은 1,236m).
까딸루냐 칸타브리아주에 있다.
9세기 목동들이 몬세라트산 하늘에서
빛이 내려오는 것을 목격했고,
마을사제들도 동정녀 마리아의
이미지를 발견했다고 한다.
11세기 올리바 수도원장이
이곳에 작은 수도원을 세웠다.
1811년 나폴레옹군대가 이곳을 파괴하고
수도사들은 죽음을 맞았으나,
20세기초 복원했다 한다.
우리는 수도원을 들어섰다.
이곳에는 박물관과 음악학교도 있고
소년합창단을 운영하고 있다.
가우디는 이곳 자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친구들 무얼 찍고 있지?
무언가 우수에 찬 마리아상.
건물벽엔 조각상들이 있고.
성당 중앙의 시계탑.
창문 주위의 무늬도 아름다웠다.
중앙에 예수와 마리아상이 있다.
아름다운 스테인그라스
이곳의 유명한 검은 마돈나상.
성누가가 만들었고 50년 성베드로가
가져왔다고 알려졌었으나,
과학적 검증결과 12세기에 만든 것이라고.
적나나한 예수상
소망은 불타고 있고.
올라오는 산악열차들
올라올 때와는 달리
대형의 케이블카를 타고 하강.
비가 와서 그런지
흙탕물의 강이 흘렀다.
절벽에는 절의 암자같은
수도원 부속건물이 있었다.
우리는 Meson el Abuelo Asador이라는
맛집에서 점심을 들었다.
하몽이 매달려 있고,
여타의 식당보다 직원들은 정말 친절했다.
식당 근처 아파트 베란다에선
우리의 노인네들처럼
손자를 얼르고 있었다.
몬세라트, 우리의 마지막 방문지.
마음이 홀가분해졌는지, 아쉬웠는지.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귀국길에 올랐다.
EK186, 14:50분 비행기로
하루는 또 저물어가고.
10/7 00:35분에 두바이에 도착,
환승을 위해 3시간 머물렀다.
환승객은 별 도움이 안되는지
대기실은 좌섯도 모자라고,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아랍여행객들 단체로 바닥에 누워 있고.
아랍에미레이트에 대한 느낌이
손상되었다할까.
고국이 가까워졌다.
스페인의 교포수는 8천명.
스페인사람들은 우리나라에 대해 잘 모른다고.
우리는 스페인에 대해 좋은 생각을 갖는데 반해.
조용한 나라 포르투갈과 친절했던 모로코인들이
마음에 자리잡는 것같다.
진작 스페인어 공부 좀 할걸 하는 생각도 들고.
종심여행의 계기를 마련해준 천병헌친구 부부와
그의 누이와 제수씨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졸필 읽어주시어 감사합니다.
(우리의 행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