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야생화 만발한 격랑의 풍도(2017.3.13)

난해 2017. 8. 2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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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 서해누리호에서 본 인천대교,

길기도 했다.

 

사진동호회원 몇명과 떠난 두번째 섬여행.

야생화도 찍고, 섬마을도 찍으려고.

 

인천항에서 9:30 출항한

정원 90명 정도의 자그마한 배에는

교회처럼 종이 달렸다.

 

이배의 운항횟수는 하루에 한번.

 

 

자그마한 이층선실.

바다도 흐르고, 시간도 흐르고

나그네의 마음도 흐른다.

 

배만이 무심하게 소리내며 달렸다.

 

 

파도가 높아 중간 기항지 입출항시

머뭇머뭇하며, 예정시간보다 늦게

12시 반, 풍도선착장에 내리니

우측 낮은 벽엔 마을풍경 그림,

 

 

좌측 돌담에는 물고기들이 놀고있다.

풍도맛집(힐링캠프)의 간판도 보이고.

힐링이란 유행어가 이곳에도 입항했구나. 

 

풍도는 안산시에 속한 해안선 길이

5.5키로, 인구 130명의 섬.

대부도에서 24키로 떨어져 있고,

수산자원이 풍부한 편.

 

낚시, 봄철의 야생화로 이름났다.

단풍나무가 많아 풍도.

청일전쟁때 이곳 앞바다에서

일본이 승리했다.

 

옛부터 풍도는 중요한 뱃길이었다.

 

 

첫날 일정은 야생화 촬영과

북쪽의 북배에서 일몰보기.

 

풍어민박에서 농어찌개, 달래, 바디나물

겻들인 맛난 점심식사후

동네를 통해 뒷산에 올라

오백년 수령의 은행나무를 만났다.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한양에서

공주로 파천할 때 들려 심었다는.

 

 

마을이 내려다보이고,

멀리 육도(섬이 여섯개)가 보였다.

 

길을 오르는 도중 90세 노인을 만났는데,

얼마나 정정하신지.

 

 

가냘픈 노루귀꽃 두 송이.

백 청 분홍색의 꽃이 피고 난 다음

잎이 돋는다.

 

 털이 난 노루귀 같다 하여

붙인 이름인데, 꽃말은 신뢰, 인내.

눈을 뚫고 나온다고 파설초(破雪草).

 

 

곧 피어날 복수초(福壽草).

복과 장수를 상징하는데

꽃말은 영원한 행복.

 

가장 먼저 피는 꽃이라 원일초(元日草)

라고도 하고 얼음새꽃이라고도.

 

 

지난해 맺은 씨앗을 아직도 보듬고 있는

사위질빵. 꽃말은 비웃음.

가냘픈 덩쿨식물로 수백, 수천 송이가

꽃무리를 이룬다.

 

사위가 힘든 일 하지 않도록

지게 멜빵끈을 약하게 만든 장모님.

비웃음을 받을까?

 

 

풍도바람꽃.

변산바람꽃과 비슷하나 크기가 두배.

딴 바람꽃에 비해 가냘픈 맛이 없다.

꽃말은 사랑의 괴로움.

 

바람이 잘 통하는 고산을 좋아해

바람꽃.

학명은 아네모네(Anemone)로

바람의 딸이라는 뜻.

 

 

풍도붉은대극.

꽃말은 기다림, 덧없는 사랑.

잎이 어릴 때는 붉은 빛을 띤다.

 

풍도대극은 씨방에 털이 있다고.

 

 

다시 동네로 내려와 해변을 걸어서

북배로 갔다.

풍도의 절경이라 할까.

 

북배는 햇볕에 붉게 타는 바위라는 뜻.

바람은 엄청 거셌다.

 

 

등대가 보이고

왼쪽에는 젊은 한 쌍이 텐트를 쳤다.

거실텐트, 침실텐트가 따로 있었다.

 

 

노을의 환희.

숙소로 돌아오는 길, 뒤따라오는

청년, 누군가 했더니, 북배 텐트족.

 

애인이 너무 술을 좋아해

동네슈퍼로 술사러 간다고.

왕복 한시간 반 거리인데,

그곳도 어둠을 뚫고.

 

순한 청년과 보통이 넘게 보이는 아가씨.

우리 아들도 저럴 터인데.

 

 

김용숙여사 민박집에 돌아와 저녁.

꽃게찌개에 바디나물(사생이나물), 달래,

농어졸임 그리고 소주 한 잔씩.

미나리과의 바디나물, 맛이 괜찮았다.

 

바디나물 뿌리는 전호(前胡).

감기 기침 천식에 좋다.

 

화장실에 붙어있는 ' 잊지마세요"

70 넘었지만 그렇게 안보이는 김여사 글씨.

싯귀같다. 잊지마세요, 저를.

 

영흥도에서 더 작은 섬으로 시집왔다는데

행동거지도 도시여자같아 보이고,

음식솜씨도 그만.

 

손님 뒤치닥거리에 지친 모습.

영감님은 도움이 안되고.

 

섬이 그렇게 추운지 모르고

얇은 옷차림으로 왔다고 하소연했더니

영감님의 잠바를 빌려주었다.

얼마나 요긴하게 입었는지.

 

 

다음날(3/14) 일출보러 나왔더니

둥근달이 져갔다. 음력으로 2/17.

일출은 밖에 나오지않고

민박집에서도 볼 수가 있다.

 

 

어제 출항했던 배가 들어왔다.

 

 

한가한 아침 항구,

괭이갈매기소리 만 들리고.

 

 

3/14일출시각 6:47

일몰이 오후 6:40분이니

밤이 조금 길다.

 

 

우리가 숙박했던 김여사네(풍어민박)는

앞열 오른쪽 빨강지붕 옆집, 나무 있는 집.

 

 

선박회사에서 풍랑으로

배가 못뜬다고 문자가 왔다.

 

떠나는 날 마나님의 말이 꼭 맞았다.

우습게 알았는데.

 

아침먹고 나서니 바다가 눈부셨다.

얼마나 멋진 바다인가.

 

 

동네 한 바퀴 돌며 사진 찍자니,

바다가 보이는 골목.

 

 

옛날 어렸을 때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낡은 집, 항아리

그리고 엉성한 담장.

 

 

신구가 합쳐진 풍도경로당.

 

 

그리고 풍도카페.

 

 

좋은 집과 낡은 담벼락.

새집과 헌집의 혼재.

새로 지은 집과 허물어져가는 대문.

 

이섬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묘하게

어울어지고 있었다.

 

어제 만난 90대 어르신.

옛집 위에 아들이 새집을 지어주었다고.

 

 

기동이네 민박.

 

 

불타고 있는 벽.

 

 

풍랑으로 인해 주어진 섬의 하루.

하루가 공짜로 생긴 것 같기도 하고.

숙박비 부담이 하루치가 늘었지만.

 

김용숙여사는 숙박비 깍아주고,

점심과 다음날아침은

라면과 찬밥으로 때우란다.

밥하기 지쳐서.

 

 

바다를 보니 물결이 높았다.

내일도 못갈 확률이 있다는데-

 

 

점심은 달래라면.

어제 이곳 할머니한테 구입한

달래 몇 뿌리 넣었더니,

봄의 향기가 물씬 품어나오고

맛도 일품

 

이곳 달래, 바디나물은 순 자연산.

 

 

산으로 해서 북배 가는 길,

이처럼 큰 두릅밭은 처음 보았다.

 

섬의 서북쪽에선 염소를 방목하는데

일년에 한번 잡는다 한다.

 

 

산으로 난 길이 없다고 보고

말 그대로 가시밭길을 헤치고 갔다.

가시밭은 찔레덩굴이 새순을 뻗치고 있었다.

 

 

가시밭길의 복수초가 여기 저기.

야생화군락이 사진가들에 짓밟혀도

이들에 의해 재생이 될 것같은 생각.

 

 

아무리 헤매도 가시밭길,

그 아래는 낭떨어지.

 

 

두 시간 넘게 헤매다 드디어 북배도착.

강풍으로 날씨는 어제보다 더 맑았고,

바위는 말 그대로 황금색.

 

이곳에서 김여사네서 같이 민박한

나길도(나를 찾아 길떠나는 도보여행)팀을

만났는데, 북배로 통하는 숲속 오솔길이

있다고, 스마트폰을 보여주었다.

 

나이먹은 값을 하는가보다.

진작 지도를 검색하였으면 되었을 것을.

 

 

풍어민박은 풍도항 앞에 있다.

우리는 채석장 아래 당나무(당산)을 헤맴.

 

 

첫째날은 끝마무리가 시원찮은

일몰이었는데, 둘째날은 짱이었다.

 

 

바지가 뜯기고, 몸은 만신창이지만

멋진 날이었다.

 

농어 대신 닭요리가 나온 저녁,

어제와 똑 같이 소주 한잔.

전날은 잘 잤었는데

자다가 깨어 한참을 헤맸다.

과로 탓인가?

 

 

떠나는 날 아침(셋째날), 배는 정상적으로

뜬다 하고.  밖으로 나왔더니

작업에 열중인 어부.

 

 

어제와 달리 귀여운 일출.

 

 

떠나는 날의 해는 올랐다.

 

 

아침, 달래라면에 찬밥 말아먹은 후

북배가는 산길을 타고

후망산 정상 176미터를 올랐다가,

해군부대에서 북배로 가는

내리막길을 확인했다.

 

 

아침 일찍 비정기선을 타고

섬에 온 용감한 여전사,

엎드려 촬영을 끝내고 일어선다.

 

우리는 그렇게 까지 꽃촬영에

열성이지 못하다.

 

 

또 다른 비정기선 이용 사진동호회

사람들 줄지어 오른다.

야생화계절은 4월초면 끝난다.

 

사람들 등살에 섬과 야생화는

몸살을 앓고

섬은 내년 휴식년을 취할 계획.

 

 

우리가 탈 서해누리호가

들어오고 있다.

 

선착장입구에서 나물파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같이 모여있기에

사진 한 장 찍으려했더니

강하게 거절을 했다.

 

곧 갈 사람인데 하며,

나물팔기만 열심.

 

 

이층 선실은 올 때보다

더 쓸쓸했다.

 

아래층에서 쌂은 계란에 맥주 한잔하고

풍도여인과 결혼한 70대와 환담.

워커일 창립멤바였는데

 인천에 대해서는 훤했다.

 

지금은 풍도에 왔다갔다하며

농사를 짓는데, 배값이 버스값과 같다고.

 

풍도의 택지는 평당 백만원, 밭값은 50만원.

밭값은 너무 비싸지 않은가.

 

 

갑판에서 만난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

옛날 사람들이 풍도를 찾기 전

산야에 펼쳐진 야생화군락은

정말 장관이었다고.

 

지금도 때가 되면 풍도를 찾는데

풍도사람들은 너무 불친절하다 한다.

 

배는 인천상륙작전과 관련되었던

팔미도, 월미도를 멀리 지나고,

인천신도시를 지났다.

신도시는 이젠 공허한 도시가 아니라고.

 

 

그리고인천대교를 지났다.

 

12시 반에 출항한 배는 세시 가까이

인천에 도착.

 

택시를 타고 신포시장에 들려 민어탕을

든 것이 네시. 시장에서 공갈빵 먹고

닭강정 등 쇼핑하고 지하철 탄 시각이 다섯시.

 

우연의 일치인가 택시기사부인은

민박집 지으려고 풍도에 가있다고.

 

 

3일을 같이한 문화포럼 동지들에게 감사.

그리고 풍어민박 김여사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