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동유럽의 봄을 찾아6(부다페스트)

난해 2017. 8. 20.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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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에서 헝가리를 넘자니

출입국심사가

제법 오래 걸렸다.

 

국경을 넘으니 풍광이 틀려지고.

잘 가꾸어진 농경지.

 

 

 

개나리도 활짝 피어있고.

학명에 Koreana가 붙은 물푸레나무과의

꽃이 이곳에도 피어있다니.

 

봄의 화신인 이꽃은

우리나라가 원산.

 

 

자그레브에서 헝가리

부다페스트까지는 341키로.

 

 

이곳에 도착하여 오랜만의 한식.

부다페스트에는 한식당이 셋.

 

동네에는 산수유가 피어있고

나무엔 겨우살이가 많이 달려 있다.

 

 

길이 2,860키로, 러시아 볼가강에 이어

유럽에서 두번째로 긴 도나우강.

영어로는 다뉴브, 헝가리어론 두나.

 

독일 바덴에서 시작, 오스트리아,

항거리, 발칸을 거쳐 흑해로 흐른다.

 

요한 스트라우스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가 생각나는.

 

강의 왼쪽은 부다,

오른쪽은 페스트지역.

 

 

부다지역의 '어부의 요새'를 찾았다.

왕궁언덕의 동쪽, 옛 어시장이 있던 곳.

 

19세기 왕궁을 지키는시민군이었던 어부들이

적의 침입을 막기위해 방어하면서

어부의 요새라는 이름이 붙었다.

건국 천년을 기념하여 건축한

네오 로마네스크, 네오 고딕식 건물.

 

일곱개 고깔모양탑은 마자르족

일곱 부족을 상징한다.

헝가리는 아시아계 인종의 섬.

 

헝가리는 로마시대를 거쳐, 4-5세기에는

훈족의 심장부였고,

9세기말 우랄산맥 부근에서 목축하던

마자르족이 이곳에 자리잡았다.

헝가리 건국원년은 896년.

 

16세기 오스만터키, 17세기 합스부르크의

지배를 받았고, 1867년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이 되었다. 덕분에 1차대전

패전후 국토는 1/3로 줄어들었고,

2차대전후에는 공산화가 되었었다.

 

훈족의 후예라는 뜻이 들은 유럽사람들이

붙인 Hungary는 잘못된 것.

이들은 마자르족이다.

 

 

벽에 붙은 Mansfeld Peter는

1956년 소련의 침입에 의해 촉발되었던

헝가리혁명에 참여하여

꽃다운 나이 18세에 사형을 당했다.

 

 

이곳에는 이슈트반왕 기마상이 있다.

그(970-1038)는 헝가리 초대국왕이었고

가톨릭을 처음 받아들인 부다페스트의

수호성인.

 

 

어부의 요새 위에 마차시성당이 있다.

 마차시왕(1443-1490)의 이름을 딴 성당.

 

그는 중세 헝가리의 전성기를 일구었고

오스만, 보헤미아, 신성로마에 대항했다.

그리고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수용했다.

 

이곳에서 마차시왕의 결혼식,

합스부르크황제프란츠 요제프1세의

대관식이 있었고. 리스트(1811-1886)가

 대관식을 위한 미사곡을 작곡했다.

 

16세기 오스만 지배시 이슬람모스크를

성당으로 개조했고, 18세기

바로크양식으로 재건축.

교회지붕은 원색타일의 모자이크.

 

 

 

성당안에는 프란츠 요제프1세 왕비

엘리자베트 시시의 조각상이 있다.

그녀는 헝가리 적대국의 왕비였지만

헝가리인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녀는 헝가리를 사랑했으며

남편인 황제에게 헝가리독립을 주장했고,

 

황제는 오스트리아가 프로이젠과의

전쟁에서 패한후, 이민족의 독립을 누르려고

마자르족귀족과 타협, 헝가리왕국을 건설,

국왕을 겸했으며,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을

건국했다. 그후 그는 1차대전(1914)을 일으켰고

 1차대전후 제국은 망하게 되었다.

 

 

피아노왕이라고 불린 리스트는 헝가리환상곡,

랩소디, 파우스트교황곡 등을 작곡.

 

해외에서 생활했던 그는 54세때

공작부인과 열애에 빠져, 교황청에

그녀와의 결혼을 신청했으나 거절당하고

상심한 나머지 고국에서 성직자가 되었다.

 

그는 프란츠 요제프1세의 대관식

미사곡을 작곡, 마차시성당에서 공연했고.

 

마자르어를 몰랐던 그는 죽어 조국에 묻히는

것도 허용이 안되어 독일에 묻혀 있다.

 

 

마차시성당은 합스부르크시절

조직적으로 저항한 성당이며,

이곳에서 콘서트가 자주 열린다.

성당 옆에 있는 성삼위일체탑. 14세기 횡횡했던

흑사병이 멈춘 것을 기념해서 세웠다고.

 

 

도나우강과 구름은 유유히 흐르고.

 

 

왕궁가는 길.

 

헝가리는 남한보다 조금 작고

인구는 1,020만. 가톨릭이 68%.

 

부다페스트는 건국이후 나라의 중심지이며

인구는 180만이 넘는다.

 

 

왕궁의 입구.

 

좌측에 머리는 용이고 몸은 독수리인

'투룰(검은 가마귀)'가 있다.

마자르 7족장의 우두머리,

아르파트 탄생과 관련이 있다.

 

 

왕궁의 뒷모습. 13세기 중반에 건설,

전쟁을 피해 높은 곳에 지어졌지만,

 6번 파괴되었다.

 

지금은 역사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대통령궁.

대통령은 국회에서 선출되지만,

국가행정은 내각을 이끄는 총리가 지휘.

총리는 의회다수당의 당수가 맡는다.

 

 

이곳에도 근위병 교대식이 있다.

 

 

부다페스트의 대표적인 다리, 세체니.

 

세체니(1791-1860)는 아버지의 장례를

위해 부다지역으로 가야했는데,

기상악화로  8일이나 지연 출발했다.

유산을 털어 1849년 다리를 개통, 1872년

부다와 페스트가  합병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는 국립박물관, 도서관, 자연사박물관을

위해서도 재산을 기부했다.

 

 

다리를 건너 페스트지역으로 이동,

성이슈트반성당을 찾았더니

아이스크림집의 행렬이 길었다.

 

왕궁 등이 부다의 언덕 위에 있는데,

페스트지역은 저지대로 상업지역, 공장,

집단주택, 국제공항 등이 있다.

 

 

이슈트반 성인을 기리는 성당은

신시가지의 중심에 서있다. 높이 96미터.

 

영어이름은 성스테판성당.

 

성당의 천장.

 

 

천장 아래의 벽화.

 

 

성당의 유리도 이쁘다.

 

 

스테인그라스로 된 마리아.

 

 

성당의 계단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시내투어버스가 지나갔다.

 

 

다음은 영웅광장.

1896년, 건국 천주년을 기념하여 만든 광장.

 

 

광장의 중앙, 높은 기념탑 위에는 

가브리엘대천사의 조각상이 있다.

 

오른손에는 왕관, 왼쪽손에는 십자가.

어부의 요새 이슈트반왕 동상에는

오른손에 십자가가 있었는데.

 

기둥을 따라 역대왕과 영웅이

연대순으로 새겨져 있다.

 

기념비 아래에는 헝가리민족을

카르파티아분지로 이끌었던 아르파트를

비롯 부족장 7명의 기마상이 있고.

 

 

기념비 좌측에는 성이스트반 등 7명

 

 

우측에는 헝가리 독립투사 7명

도합 14인의 영웅상이 있다.

 

 

우리는 젊은이 흉내낸다고 뛰었지만,

 

 

뛸 때 마다 4인 4색.

 

 

광장 남쪽에는 헝가리작가의

현대작품이 걸리는 현대미술관,

 

 

광장 북쪽에는 라파엘 등

서양 유명작가의 작품이 전시된

서양근대미술관이 있다.

 

 

큰 도로와 광장 여기저기에는

비어바이크가 움직인다.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맥주를 마시면서

페달을 밟으며 거리를 달릴 수 있다.

 

 

도나우강가를 즐기는 사람들.

 

 

우리는 세체니다리를 걸어서 건넜다.

왼쪽은 부다쪽의 언덕위 왕궁.

 

 

벌써 그림자가 길어졌다.

 

 

다리에는 사자상이 많았다.

마자르족의 상징?

 

서양인들이 보면 동양피가 섞인

헝가리인을 구별할 수 있다고.

 

 

하늘이 곱게 물들기 시작했다.

 

헝가리는 노벨상수상자 13명을 배출했다.

의술, 특히 재활부분에서 뛰어났다.

악마의 발톱을 아시는지.

 

 

저녁을 일찍 먹고 유람선을 탔다.

유럽에서 두번째 크다는 국회의사당.

 

 

세체니다리를 지나고

엘리자벳다리를 지났다.

 

 

고래등같은 건물은 미술관이라는데-

 

 

어둠이 깔리고 불들이 켜지고,

 

 

세체니다리에도 불이 들어왔다.

 

 

성이슈트반성당에도.

 

 

이날이 3/26 일요일.

 

레조세레스(1899-1968)가 작곡한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라는 노래가 있다.

 

연인을 보낸 슬픔을 곡으로 만들었는데,

이곡으로 헝가리에서 일련의

자살소문이 퍼져 나갔다.

 

이노래의 작사자, 야보르의 여자친구도

 자살했고, 작곡자 자신도

부다페스트 한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1999년 이와 관련되어 나온 닉 바로코프의

소설을 영화한 글루미선데이가 나왔다.

 

한여자와 그를 사랑했던 세남자의

불행한 이야기.

 

부다페스트에서 카페를 하는 부부에게

피아노연주자가 나타나

한여자를 두고 세사람의 동거가 시작.

게다가 2차대전이 일어나고,

여자에게 거절당했던 남자가

독일군 대령으로 등장한다.

 

 

왕궁쪽도 불이 환했다.

 

헝가리를 들칠수록 우리와의

유사점이 들어난다.

기마민족, 우랄알타이어, 성 다음에 이름을

쓴다던가. 손님접대, 냄비근성---

자살율이 높은 것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