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동유럽의 봄을 찾아8(체코,체스키크룸로프)

난해 2017. 8. 20.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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뵉부른 호텔의 아침

도나우강은 아름다웠다.

 

 

오스트리아, 독일호텔의 외양은

어딜 가도 맘에 든다.

이 호텔이름에도 샘(Brunn)이 들어있다.

 

 

체코 체스키크룸로프까지는 202키로.

수채화는 흘러야 제맛.

 

 

나무 한 그루, 멋졌다.

 

체코슬로바키아지방에는 5,6세기

서슬라브족이 정착했다.

 

9세기 이곳에는 동프랑크를 견제하던

모라비아왕국이 있었고,

10세기 이들이 헝가리 공격에 망하자,

서쪽에는 보헤미아왕국이 세워졌고,

동쪽 슬로바키아는 헝가리 지배를 받았다.

 

이런 역사 속에서 1993년 보헤미아의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갈라졌다.

 

 

농부들이 씨뿌리기 준비를 마쳤나?

 

보헤미아왕국은 10세기에 등장,

400년 역사를 가졌는데, 신성로마제국의

보호를 받았다.

1347년 보헤미아왕 카를4세가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자,

체코는 최고 전성기를 맞았었다.

 

1526년 합스부르크가의 통치를 받다가,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로 독립.

2차대전 후 공산권에서는 제일 잘사는

공업국이었던 중, 프라하의 봄을 맞았으나,

소련 등의 침입으로 원위치 되었었다. 

 

 

벌써 씨를 뿌리는지, 비료를 주는지.

 

체코는 남한의 4/5면적에

인구는 1,030만명. 가톨릭40%. 무교40%

 

15세기 얀후스가 종교개혁을 한 후,

신교나라가 되었다가,

주변의 가톨릭세력에 의해

30년 종교전쟁이 일어난 후

다시 가톨릭국가가 되었다.

 

 

알프스는 어디서 보아도 아름답다.

 

 

Landzeit식당.

아직도 오스트리아인가 보다.

대지도 시간의 영향을 받겠지.

 

 

보헤미안은 보헤미아사람 이라는 뜻도

있지만, 떠돌이 방랑자라는 뜻도 있는데,

15세기 프랑스사람들은

보헤미아에는 집시들이 많아, 집시들이

보헤미아지방 출신으로 알았다고.

 

집시의 고향은 인도인데.

 

 

농가와 잘 가꾸어진 농지,

마음이 평온해진다.

 

 

남보헤미아에 있고 인구 만오천이

안되는 체스키크룸로프에 도착했다.

안동의 하회마을이 연상되는 곳.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화 속

마을, 체코에서 프라하 다음으로

관광객이 많다고.

 

크룸로프는 말굽형 땅을 말한다.

 

 

성 안에 있는 해시계.

점심 때가 되었다.

 

 

블타바강이 마을을 휘돌아나가고.

왼쪽 위에 성비토성당이 보인다.

1309년 착공, 15세기에 완성된.

 

성당 안에는 이때의 프레스코화가 남아있다.

 

  

성과 마을을 이어주는 다리. 

 

봄과 초가을 사이에는 강에서

레프팅을 즐긴다.

 

 

성에는 4개의 정원, 큰 공원 한개, 곰 해자,

무도회장, 바로크식 극장, 초상화갤러리,

궁전, 고풍스런 주택, 예배당 등이 있다.

 

우리는 성을 따라 가면서

 

 

성벽에 나있는 반원의 창을 통해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이성은 13세기 대지주였던 비트코백

백작이 고딕양식으로 건축.

이곳을 보헤미아지역의 무역거점으로

활용할 목적으로 지었고,

건설완료 후에는 보헤미아의 귀족,

로젠버그가문의 소유가 되었다.

 

 

성의 마리아상.

 

 

르네상스양식으로 건축하였으나

17세기 후반 바로크양식이 추가되었고,

18세기 마지막 성주 슈바르첸베르크가

실내를 로코코양식으로 바꾸었으며,

가문들의 초상화, 고풍스런

가구 등을 구경할 수 있다.

 

전쟁의 피해가 없었던 성과 마을을

돌아보는 것은 중세로의 여행이라 할까?

 

 

중세의 귀신이 출현했나?

 

 

문 위에는 두 가문의 문장이 있고.

 

 

곳곳에 문이 있고

고풍스런 벽을 볼 수 있다.

벽면은 16세기 이탈리아 벽화장식기법,

스그라피토(Sgraffito)라고.

 

 

성으로 오르는 양 옆의 해자에는

곰이 놀고 있다.

해자로 떨어지면 곰의 밥?

 

 

벽의 그림들과 무늬.

너무 오래되어 희미한지?

 

 

성당이 있는 골목.

성요스트성당이었는데

지금은 마리오네트 박물관.

 

 

목조로 된 이발사의 다리를

건너 구시가지로.

 

이발사의 다리(라제브니키교)에는

사연이 있다.

 

영주 루돌프2세의 아들이 이발사의 딸을

좋아했는데, 그녀가 거절하자

딸을 살해하고 말았다.

 

영주가 범인이라고 소문이 나자

영주는 범인이 나타날 때까지

매일 한명씩 주민들을 죽이겠다고

엄포를 놓았고,

이발사는 그만 자기가 범인이라고

거짓자수하고, 불행한 죽음을 당했다.

 

 

우리는 고풍스런 식당에서 현지식 점심.

 

 

실내 그림은 고풍스럽기는 한데-

 

 

마을 중앙에 있는 스보르노스티광장.

이곳을 시청사, 호텔, 은행 등이 둘러싸고.

 

이광장에서 음악회도 자주 열리고.

또 모짜르트영화 아마데우스를 찍은 곳.

 

 

이곳에도 오스트리아계 라이화이젠은행이 있다.

협동조합계열 금융기관.

 

 

광장탑 꼭대기에는 마리아상.

분수대위의 있는 탑으로

16세기에는 공동수돗가 역할을 했다고.

 

1714-16 페스트를 퇴치한 기념으로 세운 건축물.

 

 

골목에 있는 예쁜 인형가게.

거리에는 보헤미안들의 예술감각이

살아있는 기념품점들이 많다.

 

14-16세기에는 수공업, 상업이 번창했던 곳.

 

 

마리아테레제여왕 통치시절에는

체코어 사용을 금지했고,

이들은 인형극으로 언어를 보전했다.

 

 

예쁜 은행건물,

역사가 묻어있다.

 

 

파스텔톤의 라트란거리.

라트란은 도둑이라는 뜻.

 

예수와 함께 못박힌 두 도둑 중

한 사람은 회개했다고 하여

수도사가 붙인 이름.

 

이 거리에는 에곤 쉴레(Egon Schiele)의

아트센타가 있다는데, 아쉬웠다.

 

체스키크룸로프는 쉴레 어머니 고향.

생전에 그가 자주 찾아

그림을 그렸다고.

 

 

전문가들에게 역사, 의미 등을

설명받으면 좋을 벽, 벽, 벽.

 

 

이곳에도 봄은 흐르고 있었다.

 

 

돌돌빵(트르들러,Trdelnik)을 사려고

한참 줄을 서야했다.

 

 

왜 돌돌빵이라 하는지 알겠죠.

 

 

이곳의 상징, 흐라데크(Hradek)탑.

1680년에 증축했다.

 

 

탑의 밑부분.

탑에 오르면 전망대가 있다.

 

 

거리엔 멀쩡한 걸녀가 있고.

 

 

골목을 두세번 누볐다.

 

 

시청사, 고딕과 르네상스 혼합건물인데,

한쪽이 안나왔다.

 

 

허름한 벽이 마음에 더 들었다.

 

 

물레방아도 보였고.

 

 

올려다본 플라슈티교(망토다리).

복도를 통해 성의 지붕과 멀리

프란체스코 수도원까지 갈 수 있다.

 

 

집들의 벽이 성벽인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