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의 봄을 찾아9(프라하의 봄)
프라하의 봄이 활짝피었다.
체코의 체스키크룸로프에서
프라하까지는 170키로.
1968년 짓밟혔던 봄은 이젠 지나간
악몽이고.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프라하의 봄을 배경으로 한다.
삶과 죽음을 가벼움, 무거움
측면에서 조명한다.
프라하에 들어서자,
당찬 체코여인의 발걸음.
프라하의 인구는 126만명.
체코사람들은 그들을 억눌렀던 바깥세력에
강하게 반발하지 않는 대신
현실적응하며, 결코 마음을 내주지않았다.
프라하가 1,2차대전 별 피해없이
천년고도를 지킬 수 있었던 것도
이때문이리라.
이러한 국민성을 잘 대변하는 것이
하셰크가 지은 소설의 주인공
'착한병사 슈베이크'이다.
1차대전 때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군대에 들어가게된 슈베이크는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고집스럽게
완수함으로 제도의 기대를 저버리고
언제나 자기만의 존재로 남는다.
체코사람들은 하셰크를 엄청 좋아하는
반면, 독일어로 글을 쓴 카프카나,
불어를 사용한 밀란 쿤데라를 별로라
생각한다고.
사람들은 생각이 많은가 보다.
생각은 하늘로 날고.
분홍색이 예쁜 골즈킨스키궁전.
대표적인 로코코양식 건물.
프라하는 중세 각종 양식의
건물들이 잘 보전되어 있다.
골즈킨스키백작이 10년 소유했던
이 건물에서 1948년 공산당통치
선언이 있었으나, 지금은 국립미술관.
구시가광장 스크라피토기법을 쓴
건물, House of Minute.
16세기 이탈리아 벽화장식기법.
체스키크룸로프에서 보았던.
화약고탑과 시민회관.
화약고탑은 15세기부터 왕의 대관식행렬이
성비투스대성당으로 향하는 왕의 행차길의
기점(구시가지의 출입문)이었다.
18세기, 프러시아군에 포위되었을 당시
화약고로 쓰여 화약고탑이라 불린다.
날이 어둑해져 우리는 카를교로 이동했다.
카를교 입구.
입구쪽에는 이다리를 착공한
체코의 영웅, 카를4세의 동상이 있다.
건물의 집합체인 아름다운 프라하성.
블타바강의 서쪽편.
20세기 문호 카프카가 즐겨찾던 곳.
그의 소설 "성"의 배경.
블타바강 동쪽 강가에 있는 루돌피눔.
1884년 신르네상스양식으로 지은
유럽 최초의 아트센터.
당시 합스부르크 황태자 이름을 땄다.
드보르자크 동상이 있고,
체코필하모닉의 주무대.
프라하는 음악의 도시이다.
'프라하의 봄'은 원래 음악축제이름.
드보르자크, 그의 스승 스메타나를
들먹이지 않아도. 프라하는
모짜르트가 제일 사랑했던 도시.
프라하성과 그 아래 말라스트라나지역.
프라하성은 9세기 중반에 건설을 시작,
14세기 카를4세때 완성했다.
1918년 대통령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사용되고 있는 성중 가장 크다고.
카를4세(1316-1378)는 체코 가장 위대한 인물.
보헤미아왕으로 신성로마제국황제에
올랐으며, 가장 교양 있고 외교술에 뛰어난
군주로 프라하를 제국의 중심지로 육성했다.
특히 예술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프라하를 대주교구로 만들었고,
카를대학도 세웠다.
그리고 종교적 자율권도 주었다.
아파트식 호텔, 톱호텔에서 쉬고 나오니
아침노을이 그럴듯했다.
스와로브스키는 북부 보헤미아출신으로
아버지는 유리세공업자.
그는 오스트리아 티롤주 와튼스마을에
회사를 설립했다.
대통령궁 소광장(프라하성의 제2궁정)에
있는 분수대.
왼쪽은 성십자가성당, 앞은 우물.
바로크샘이 있는 곳으로 옛날
포위당하면 식수를 자체공급했었다.
비투스성당내 광장에 있는 오벨리스크.
1차대전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세웠다.
옛날에는 궁전이었으나
지금은 대통령궁.
프라하성 제3정원에 있는 성비투스대성당.
체코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성당이다.
1344년 카를4세 명에 의해 착공,
16세기 르네상스식 성당 완공.
17세기 바로크식으로 증축하여,
19-20세기 신고딕식 가미했다.
바츨라프왕관 등 보석이 보관되어있고,
왕실무덤 등이 있음.
왕관에는 세계 최대의 사파이어가
박혀있다고.
바츨라프1세(907-929)는 체코의 수호성인.
그리스도교를 전파했으며,
동생에게 습격받아 교회문 앞에서 죽음.
무덤에서 기적이 일어났다는 소식에
유해를 성비투스대성당으로 옮겼음.
성당 앞의 분수대.
말탄 사람은 여자같다.
프라하성 정문 입구.
18세기 제작했는데, 조각은 복제품.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왕가의
힘을 과시하고 있다.
고통받고 있는 사람은 체코인.
사백년을 지배받았으니-
경각심을 주기위해 그대로 놔두었다고.
참 대단한 민족.
정문을 통과하면 마티아스성문.
17세기 신성로마제국 마티아스황제
(1557-1619)가 로마개선문을 모델로 설계.
문 위에는 당시 영토가 기록되어 있는데,
항가리, 보헤미아, 모라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오스트리아 등이었다.
가톨릭 부활을 지원하여 30년 종교전쟁을
야기했고, 궁정을 빈으로 다시 옮겼다.
쉔부른궁 이름을 작명하기도 했다.
마침 근위병 교대식이 있었다.
만원인 전차를 타고 존 레논 벽을
보러 이동을 했다.
그라피티는 요즘 예술 속에 포함된다.
'너 자신에게 거짓말 말아라'하는
문구가 보이고.
오른쪽 위에 존 레논 표시가 있다.
낙서에는 공산주의시절의 아픈 역사가
녹아 들어 있다.
이벽은 블타바강 인접한 저지대에 있는
프라하 대수도원의 벽.
1980년 존 레논이 암살당하던 때부터자유와
평화를 열망하던 체코반공주의자들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듯한
비틀즈노래 가사와 하고싶은 이야기를
낙서로 올렸다.
체코정부가 수도원만큼은 건드리지 못했고,
1989년 소련해체이후 자유와 평화의
상징이 되었다.
진정한 자유와 평화가 무엇인지 모르는 우리
젊은이들, 국가의 안보가 뭐 필요하냐고.
일제압박, 6.25전쟁, 굶주림을 겪지않은 이들,
권력만을 쫓는 무리들의 의도를
언제나 깨달을까?
창문 수에 비례하여 세금을 부과,
창문 수를 줄였다고?
어제밤에 이어 다시 카를교를 걸었다.
1402바츨라프4세때 완공된 이 다리는
가장 먼저 놓어진 520미터 석조다리로
동,서유럽의 교역루트가 되었다.
지금은 보행자 전용도로.
다리 위의 조각상.
다리에는 바로크양식 30개의
성인 조각상이 마주보고 있다.
원래 조각상은 박물관에 있지만.
강 건너 붉은 지붕들.
강물은 인간사와 관계없이 흐른다.
카를교에는 얀 네포무츠키신부의 동상이 있다.
바즐라프4세가 출정한 사이, 왕비의 고해성사를
왕의 측근이 일러바쳤고, 왕비를 의심하는
왕은 얀신부에게 내용을 물었지만,
신부는 침묵을 지키고.
왕은 신부의 혀를 짤르고 신부를 카를교
밑으로 밀쳐 죽였다.
그 이후 좋지않은 일이 계속 일어났는데,
신부의 시신을 성비투스성당에 안치하자
다시 평화가 왔다고.
여섯번째 일곱번째 기둥 사이에
십자가표시는 신부가 떨어진 자리.
카를교 입구.
체코는 공업강국,
유리, 가넷 등의 가공에서도 뛰어나다.
말라스트라나광장에 있는 아름다운
바로크식 건물, 성니콜라스성당.
1787년 모짜르트가 이곳서 오르간을 연주했다.
그가 죽었을때 고향에서는 박대를 받았지만,
프라하시민들이 이곳에서 처음으로
그를 위한 장례미사를 드렸다.
프라하의 심장, 구시가지광장 바닥에는
십자 표시가 있다.
1621년 30년 종교전쟁때 처형된
귀족들의 머리가 놓였던 자리.
구시청사의 천문시계탑.
이 시계는 일출, 일몰, 태양과 달의 위치
뿐만 아니라 별자리도 표시.
이 시계탑 건립후 시계주문이 쇄도하자,
제작자 프라하대학의 하누시교수의
눈을 뽑아 다시 제작을 못하도록 했고,
이사건후 4백년간 시계가 작동을 안했다나.
우리는 시계탑 전망대에 올라
프라하를 네방향에서 조망했다.
가운데 틴성당이 보였다.14세기에
건축한 고딕 르네상스식이 혼재된 성당.
두첨탑은 아담과 이브, 높이 80미터.
첨탑 사이에는 황금성배를 녹인
마리아상이 있다.
광장 왼편에는 얀 후스(1372-1415)
동상이 있다. 그의 사망 5백주년 기념비.
얀 후스는 마틴 루터보다 백년 빠르게
14세기 후반 종교개혁을 주창했다.
그 결과 화형에 처해졌고.
합스부르크왕조 400년 지배, 종교개혁은
이 왕조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한
민족저항운동이었다.
페르디난트2세가 신교도를 탄압하자,
가톨릭귀족을 성밖으로 투척하는
사건이 있었고, 이 사건은
30년 종교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동상에는 '진리는 승리한다'는 문구가
있는데, 체코의 국가 모토이기도 하다.
프라하의 심장에 왜 그의 동상이 있는지
이해가 가능하리다.
이광장을 중심으로 도로가 쭉 뻗었다.
시계탑 창문으로 본 광장.
탑을 걸어 내려가며.
벽화 속에 프라하성이 있다.
삶은 치열하다.
프라하도 일자리가 적은가 보다.
전구가 끊어져 사람을 부르면
세사람이 온다고 한다.
사다리 갖고 오는 사람,
사다리 받치는 사람,
전구 갈아끼우는 사람.
사회주의의 잔재가 남아있는지 모르고.
정시가 되어 창문이 열렸다.
매시간 두 창에서 12사도가교대로
얼굴을 빼꼼이 내밀고, 닭이 울고,
종소리가 울린다.
수많은 사람들이 정시가 되면
이곳에 모인다, 할 일들이 없는지.
릴케(1875-1926)는 프라하에서 출생했고,
테니스의 나브라틸로바가 있다.
케플러, 아인슈타인이 프라하에서
활동했었고.
무엇을 갈구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횃불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고.
아름다운 오스트리아 곳곳도 좋았지만,
프라하 방문이 요번 여행의 클라이맥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