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가야산

난해 2018. 6. 27. 16:38


자귀꽃, 대추꽃이 피고

유월이 얼마 안 남았다.


6/25(월) 9:40분 용산에서 출발하는

새마을호를 타고, 온양온천역으로 출발.


열차는 새로 단장하여

산뜻했고.




11시 넘어, 역에서 그리운 친구만나

가야산으로 출발.


덕산면에서 가야산쪽으로 옥계저수지

옆에 헌종대왕태실이 있다.


헌종(1827-1849)은 8세에 즉위

15년간 재위한 조선 최고의 미남군주.

김대건신부의 처형 등 실정을 했지만,


글과 예술을 사랑해 추사를 좋아했다. 

두번째 계비 간택시 낙점받지못한

경빈김씨(순화궁)를 사랑해

그녀를 위해 낙선재를 지었다.




부드러운 가야산 줄기가 우리를 맞이하고.


충남덕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된 가야산

(678미터)은 충남서부에서 제일 높다.


 예산 덕산과 서산 해미, 운산과의 경계.

가야산에서 북쪽능선을 따라가면

해미면 산수리에 석문봉이 있으며,


줄기가 서쪽 해미 정산에 이르면

산 아래 해미읍성이 있다.


서산 마애여래삼존불, 개심사, 

등이 가야산 품에 있고,

내포문화숲길, 아라메길을 통해

문화재와 자연경관을 즐길 수 있다.




주차장에서 더 올라 농가에 차를 주차하고

석문봉, 가야봉을 거치는 6키로의

산길을 시작했다.




남연군묘 위, 옥양폭포, 석문봉, 가야봉

그리고 쉼터거쳐 다시 남연군묘로.




우리는 6월의 숲속으로




급경사도 있고,

긴 나무계단도 있고.




능선에 오르니 내포마을 건너

바닷길도 보였고.


내포는 가야산 앞뒤에 있는 열고을.

예산, 당진, 서산, 홍성을 말한다.

옛날에는 예산당진의  예당평야가 중심.


이중환의 택리지에선 내포를 

충청도에서 가장 좋은 곳으로 묘사.

기름진 넓은 평야에 소금, 물고기도

풍부했으니. 왜구침입이 잦았지만.




능선의 바윗길에선 로프도 타고.




싸리꽃이 한창.




(변동걸친구 사진)


석문봉(653미터) 오르기전,

사자바위가 보인다.




나무계단 건너 석문봉의

국기가 펄렁거렸고.




모두들 째졌다.

웬 영문인지.




듬직한 돌쇠.




돌쇠가 싸온 구운감자,

약식 그리고 하석주의 눈물,




우린 대학시절의 얘기도 했다.


첫애인이 목사와 결혼했는데 불행하다고,

큰 교회의 목사도 아니니 생활도 궁핍하고.

군대시절, 여자대학 기숙사는

왜 찾아가서 할 말도 못했는지.


한친구가 요즈음 얼듯 본 '바보들의 행진'

얘기도 했고. 최인호소설을 영화한

Y대 철학과 영철과 병태의 얘기.


평소 고래를 잡으러 간다던 영철은

여자에게 채이고 동해안에서 자살했고,

애인이 자신을 떠날 것같자,

군대로 간 병태.


송창식이 고래사냥, 왜 불러를

불렀던 영화.

우리 모두 바보들, 감성을 가진.




우리는 다시 험한 길도 걷고,

로프도 타고.




덕유산처럼 확 트인 능선도 탔고.




새빨간 나리꽃.

우리들의 정열도 아직 새빨갛고.


나리라는 이쁜 처녀,

못된 원님아들로 인해 죽었는데,

그 무덤에서 피어난 꽃.




석문봉에서 1,5키로 정도 떨어진

가야봉(678미터). 꼭대기는 중계탑.

계단에 두 친구 모습이 보였다.



(변동걸친구 사진)


실제 정상은 중계탑 안에 있고.




다리가 아직 성치못한 친구 있어

조심조심 하산하다, 샘물 한 바가지

마시고 내려오니,

벼는 성숙하고 있고.




천안의 명물 호도나무 군락,

열매가 틈실했다.




남연군묘 옆에 있는

남은들 마을의 상여.







흥선대원군 하응의 부친,

남연군의묘. 1846. 연천에서 이장.


가야사를 불태우고 조성한 묘.

두명의 천자가 나왔지만

그들도 불행했고, 나라도 불행했고.


1868 통상을 요구하다 실패한 독일상인,

오페르트가 남연군의 시신을 담보로

통상을 강요하다 또 실패.


이 만행으로 반서양의식이 커졌고,

대원군의 쇄국주의가 더 강화되었다.




도고가는 길의 내포신도시.


홍성 홍성읍, 예산 삽교읍 일원에

조성되고 있는 도시. 넓이는 10제곱키로.

2012년 충남도청이 이전되었고,


인구는 35천명이나 10만명의 도시를

목표로 한다.




도고산이 보이고, 또 사람도 적고 깨끗한

아산 도고온천에서 땀 씻어내고.




예산 예당저수지로 냅다 달려,

예당소쿠리밥상에 안착.


수육+우렁된장+쌈밥+맥주

전부들 입맛을 다셨다.




소쿠리밥상집 뜰에는 접시꽃이

손님을 맞이했고.

열매도 꽃도 모두 접시 모양.


'적막한 황무지 한 모퉁이에

다복하게 꽃피어 가지 휘었네.

매화비 맞아 향기 그치고

보리바람결에 그림자 비스듬하네'


중국땅에서 최치원이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접시꽃을 묘사한 시.

매화비는 6월 매실이 익을 때 내리는 비.




예당저수지 둘레길을 좀 걸었는데,

다음날부터 장마인지라

달무리가 졌다.


오랜만에 걷는 저수지 달밤의 오솔길,

뭐라 할까. 


'어째서 신은 달빛을 만드셨을까?

밤은 망각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면


어째서 밤을 낮보다 매력있게 하였으며

여명, 저녁놀보다도 한층 그리운 것으로

만들어 놓았을까?'


(모파상 소설, 월광 중에서)




달의 여신 셀레네, 미소년 엔디미온왕자를

영원히 잠에서 깰 수 없게 만들었다.


엔디미온은 우리 자신이며, 주변의 자연이

아닐까. 달빛 속의 호수물, 숲길, 마을,

그것들은 엔디미온처럼 침묵하고 있다.


달빛(셀레네여신)의 사랑 속에서도

그 사랑을 소유하지 못한 채로 있다.


(이어령의 '시와 함께 살다')




21:15, 귀경을 위해 온양온천역에 갔더니,

 탈 기차표가 없고,

타고온 기차표(09:40출발)가 있었다.


아차, 도고온천에서 필요없는 표를

버린다는 것이 그만.


역원에게 재발행을 물어보았더니

우리가 예약했던 차는 20:47분차.


타고온 기차표를 보고 밤 09:40에

맞춰온 것.


결국 밤9:40분발 새마을호 표를 끊어

귀경했다.


바보들의 행진은 계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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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경기차, 앞좌석에 앉아있는

여인네, 스마트폰 삼매경.


애인이 보내온 글을 보고 있을까?


어째튼 친구들, 좋은 여행이었소.

고마웠네, 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