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 속의 가리산
화랑대역에서 출발한 총동문 산행.
3/23일(토) 아침은 눈비 온다는
일기예보와는 달리 눈부셨다.
버스가 출발한 화랑대역 5번 출구는
집에서 10분 이내 거리.
일기예보 탓인지 고속도로는
뻥 뚫렸고, 출발한지 2시간, 9시30분,
가리산 자연휴양림 도착.
주차장엔 해병대 가리산 전투 전적비.
서울 수복후, 1951년 3.19-25일
해병 1연대와 미해병 1사단 장병들은
북괴 6사단을 이곳에서 격파했다.
가리산은 홍천, 춘천, 인제를 잇는
전술적 요충지.
1958년에 제작되어 2007년에 퇴역한
M48A2C 전차를 이곳에
전시해 놓았다.
80명 가까이 참여한 동문들의 일정은
오른쪽 주차장에서 왼쪽방향으로 길따라
걷다가, 오른쪽 등산로거쳐 가섭고개,
1,051미터 정상을 거쳐
왼쪽 샘터쪽 등산로를 거쳐 다시
주차장으로.
7키로 정도의 거리이고,
4시간 소요.
시작은 휴양림 아스팔트길.
가리산 휴양림은 홍천군
두촌면 천현리 소재.
가리(加里)산은 단으로 묶은 곡식이나
땔나무를 쌓아둔 큰 더미 같다고.
옛날 맥국의 가리왕이 피난하여
성을 쌓은 가리왕산과 착각하기 쉽다.
홍천군 두촌면, 화천면, 춘천 동면,
북산면 경계를 이룬다.
정상에 오르면 소양호가 보이며,
가리산 1봉 남쪽에서 홍천강이
발원한다.
(후배들 사진)
전나무 숲도 있고.
아직 겨울인 산길을 계속 오르면
가리산 1,2,3봉이 보인다.
능선이 보이고, 가섭고개를 향해.
원색이 갈색과 어울어진다.
(이정상회장 사진)
정상 900미터를 남기고
능선 밑에서 점심, 11시 30분 쯤.
대열의 최고 고참, 18회 4명.
땀이 식으니 으슬으슬했고.
본격적인 험로는 시작되었고,
날씨는 꾸물거리기 시작.
하산하는 젊은 친구, 걱정이 되었던지,
"안전이 제일입니다, 천천히요"
소양강 멋진 풍경은 어데 가고
눈이 내리기 시작, 온통 잿빛 세상.
기상청 예보가 참말로 맞구나.
(이종상회장 사진)
봉우리 오르는 도중, 쥐가 나기 시작.
눈은 오고 발밑은 미끄럽고,
쇠로 만든 발받침 거리는 멀고.
내가 온전히 오를 수 있을까?
김인호전회장의 부드러운
손길로 다리를 좀 풀었다. 고양이를
데려올껄 하는 소리도 들렸고.
(이종상회장 사진)
2봉에서. 이곳에는
큰 바위 얼굴이라는 표지판이 있다.
2봉 암벽은 밑에서 보면 얼굴모양.
영조때 이곳 출신 판사가 이곳에 올라
호연지기(浩然之氣, 사람의 마음에 차있는
너르고 올바른 기운)를 키웠다고.
(후배들 사진)
3봉의 얼굴들, 의미심장하다.
1봉 쪽을 보니
오르는 길이 허옇게 보였다.
(후배들 사진)
정말 만만치 않았던 산행.
철봉으로 만든 보조대,
눈으로 미끄러워 도움이 안되었고.
(이종상회장 사진)
드디어 십팔기 젊은이 네명
가리산 1봉에 올랐다.
(이종상회장 사진)
내려가는 길,
역시 만만찮았다.
내려오다 마주친 연리목.
소나무와 참나무의 사랑은
식을 줄 모른다.
눈이 쏟아지고 흰 세상으로 변하자,
이들은 더욱 쎄게 부등켜안았다.
올 겨울 맞은
최다, 최고의 눈.
지팡이에서 나온 빛?
아니, 눈송이빛이다.
오후 두시, 거의 하산의 끝자락.
눈은 왔지만, 계곡물은
봄을 노래했다.
(후배들 사진)
무슨 조화냐?
하늘은 다시 파래지고,
뭉게구름 뜨고.
휴양림 도중에 있는
가리산 강우 레이더 관측소.
두 눈에 설경이 비쳤다.
이곳은 강우관측을 위해
전파를 발사한다고.
휴양림 숙소들도 보이기 시작했고.
4시간 산행을 눈 때문에
5시간이나 걸렸다.
휴양림내에 있는 식당에서 뒷풀이.
벌써 많은 후배들이 내려와
한 잔 하는 중.
우리가 이렇게 뒤쳐져 하산한
적이 없는데-
닭요리 식사가 거의 끝날 때까지
해군장교 출신 동기가 안내려와
전화해보니, 후배들과 내려오고 있다고.
내가 쥐가 나서 도와줄 때
자기도 넓적다리에 쥐가 오른다 하더니,
후배들이 배낭을 져주었다고.
그러더니 술 먹던 우리친구 하나
이제서야 쥐가 오른다고.
올해는 '나이는 속일 수 없다'는
말을 실감하는 해?
아침 교통이 원활하여 술자리도 여유만만.
기별로 대표 한 사람씩 나와
덕담하는 시간도 있었다.
술기운이 돌아 하는 말들도 재미가 있었고.
우리 2년 후배의 얼굴표정,
행복이 흘렀다.
흰머리가 많은 회장(16년 후배) 왈,
자기가 최고 고참이라고.
막내는 23년 후배.
그래도 나이가 오십줄에 들어섰다.
우리들은 후배가 배낭들어준 데 대한
답례로 적지만 소정의 찬조금을
갹출하여 회장에게 전달.
(M48A2C전차의 포신)
기수별 인사 후, 모교 찬가를 부르고,
주차장으로.
식당 안에 난로가 없어 모두들
추웠던 모양.
눈이 올때 꺼냈던 핫팩을
오는 버스에서 등 뒤에 넣었더니
엄청 뜨뜻했다.
버스안에서는 장갑, 배낭 등 주인찾는
소리로 시작, 후배들의 뒷풀이는 계속되고,
십팔회 형님들은 일팔회 형님으로
부르자는 등의 소리도 들렸다.
'봄이 고개를 쑥 내밀기는
아직은 춥다
겨울이 등을 돌리고 돌아서기에는
아직은 미련이 남아 있다
뼈만 남은 나무들이
봄을 기다리고 있다
기다림과 설렘으로
가득한 계절이다'
(용혜원의 3월)
7시 가까이 되어 원위치.
아직도 해가 남아있다.
오른쪽에 내가 사는 아파트가
석양에 빛나고 있고.
집에 들어서자 바지, 장갑 등이
흙투성이라고 마나님
걱정은 시작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