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도산 2박3일
4/15(월) 8시, 벼르던 가야산 등반을
위해, 중곡역에서 자동차로 출발.
고교 수학여행때 하루밤 잤던
해인사도 들려
추억도 되돌려 보는 여행
천안IC에서 아산친구 태우고,
청주, 영덕 고속도로 타고,
상주시 화서휴게소에서 쉬었다가,
합천읍 산수갑산에서 점심.
산수갑산을 가더라도,
합천 생막걸리 한 잔 하고.
합천의 인구는 5만 명.
금관가야의 세가 약해지자 고령, 합천은
가야연맹의 맹주가 되었던 대가야의 터전.
합천은 합천지역(황강), 초계지역
(동부 낙동강), 삼가지역(남강 상류지역)
으로 나뉜다.
합천농협 하나로 마트에서
먹을 찬거리 사가지고,
합천 봉산면에 위치한 오도산자연휴양림
가는 길, 벚꽃이 져가고
새잎이 나고 있었지만,
휴양림은 벚꽃이 한창.
(2:50분 도착)
우선 하나로마트에서 산
보르도 포도주 한 잔씩 하고.
여유있는 여행의 시작.
휴양림의 산보길 시작하니,
아녀자들, 아들 낳게 해달라고
소원을 비는 다산나무가 있고.
인적 드문 산길
오도산 정상 위에는
반달이 떴다.
진달래 화사했고,
야생화는 많지 않았고,
여기저기 현호색과의 산괴불주머니.
괴불주머니는 오색 비단헝겊을 이용,
수를 놓아 만든 옛날 어린이 노리개.
산불이 났다.
우리가 이틀 유숙할 호수실.
잠못이루는 친구를 위해,
독방이 있는 6인실로 예약.
입구에 구상나무 두 그루.
학명이 Abies Koreana. 미선나무,
게느삼과 같이 우리땅에서만 자란다.
제주도, 지리산, 덕유산에만 자라는
나무를 이곳에 심었다.
저녁은 맛있었는데-
표정들은 심각하다.
다음날 4시 기상,
오도산 정상으로.
정상(1134m)에서 본 합천읍내.
오도산은 합천 묘산, 봉산면과
거창 기조면에 걸쳐있는 산. 소백산맥의
지맥인 가야산맥에 위치.
도선국사(827-898, 통일신라 풍수지리설
대가)가 깨달음을 얻은 곳이라고.
산꼭대기가 까마귀 머리처럼 검다고
오두산이라 불려졌다기도 하고.
이곳의 일출, 일몰이 장관.
KT통신중계소탑이 있다.
탑을 세우느라 산을 13m깍았는데,
탑의 높이가 13m.
해가 부끄러운듯
얼굴을 내밀었다.
일출시각은 5:52분.
합천호수.
합천 봉산, 용주, 대병면에 걸쳐 있다.
산을 내려오는 길,
한국의 마지막 표범 서식지가 있다.
표범은 백두산호랑이와 함께
전국에 골고루 서식했고
개체수가 많은 편이었다.
이곳의 마지막 표범은 창경원
동물원으로 옮겨졌다고.
새벽 오도산의 진달래
숙소에서 아침 먹고,
9시 가야산으로 출발.
우리는 해인사관광호텔을 지나
돼지골탐방지원센터에 주차(윗부분).
상가지역은 관광호텔을 비롯 낙후되어
있었다. 요즈음 해인사로 수학여행 오는
학생들이 있겠나.
옛기억은 나질 않고.
가난하여 많은 친구들이 수학여행에
참여를 못했는데, 참여했던 친구들은
브르조아라고?
오늘 일정은 토신골탐방지원센타에서
상왕봉, 칠불봉을 올랐다 내려와서
해인사를 둘러보는 것.
차를 다시 타고,
성보박물관 옆에 주차하고,
경비실을 지났다.
입구에는 김영환장군(1921-54)을 기리는
게시물이 있다.
그는 6.25동란 중 가야산을 폭격하라는
명령을 거부해서 상부에 출두당했으나,
"영국사람들은 세익스피어와 인도는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팔만대장경은 세익스피어와
인도를 다 주어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므로
전쟁으로 이곳을 불태울 수 없었다"
라고 말해 그공을 인정받았다.
그는 공군 창설멤버이며, 만 33세에
준장으로 승진했으나, 그해 비행 중
사고로 순직했다.
우리는 해인사를 우측에 두고
토신골탐방지원센타를 지나
가야산을 오르기 시작(10시).
정상 가까이 갈때까지
네사람을 만날 정도로
산길은 호젓했다.
봄이 싹트고 있었다.
가야산은 합천 가야면, 성주 가천,
수륜면에 걸친산. 이산은 서남쪽에
해인사를 품었다.
가야산은 정견모주 산신이 있는 곳,
호국불교의 본거지이며
사람들의 유람처.
불교성지 부다가야 근처 부처의 주요
설법처가 가야산이며,
가야국이 있던 곳의 산.
이곳에도 반달곰이 출현하는지?
정견모주신은 하늘신, 이비가지와 감응,
금관가야시조 김수로왕과 대가야시조
이진아시왕을 낳았다는 전설이 있고.
1,000m 전후의 깊은 산에 서식하는
백합과의 얼레지꽃이 산 초입부터
군락을 지어 피어 있었고.
얼레지에선 개미 유충 냄새가 나
개미들이 검은 씨앗을 옮겨
번식을 하기도 한다고.
멋쟁이꽃이어서 그런지
꽃말은 질투.
멧돼지들이 이들의 뿌리를 좋아하고,
사람들도 얼레지를 나물로 이용한다.
바위 밑에 숨은
앙증맞은 꽃, 별꽃.
쇠잔해진 생강나무꽃.
생강나무는 일부지역에서 동백나무라
불리고, 나무 중 제일 먼저 개화.
어린 가지, 잎에서 생강냄새가 난다.
산죽과 참나무가 잘 어울어졌다.
경사가 가파라지고,
힘은 들고.
양지 바른 곳에 사는
장미과의 양지꽃.
험한 돌길 경사가 이어지더니
급경사.
아이고 힘들어.
운전하랴, 등산하랴.
하늘에 기우제를 지내던 곳,
봉천대(奉天臺)
마지막 힘을 다하여
가야산 주봉, 상왕봉(象王峰 1,430m).
소대가리 같다고 우두산이라 불리기도.
상왕봉 꼭대기에서
우비정에서 찍은 파노라마
가야산 꼭대기에 있는 샘,
우비정(牛鼻井)
상왕봉에서 친구가 준비한
토스트, 달걀, 사과 먹고,
칠불봉 오르는 길.
칠불봉(1,433m)은 주봉 상왕봉보다 높다.
김수로왕이 아유타국 허왕옥과
혼인, 왕자 10명을 두었는데,
큰 아들은 왕위를 계승하고, 2,3번째는
허씨의 시조가 되고, 7명은 칠불봉에서
도를 닦아 생불이 되었다.
허황후가 가야산을 찾았으나 올라갈 수
없어 아들들 그림자라도 보길 원하자
해인사 일주문 옆 연못에 비춰졌다고.
하동 칠불사의 전설과 같은 내용.
다시 원점 산행하는 길,
해인사 석조여래입상을 찾았다.
목부분이 잘렸고, 발과 대좌가 없으나
통일신라 불상의 특징이 엿보인다고.
하산하여 해인사 사천왕문
(봉황문)을 들어섰다.
<해인사 기준 산행거리는 왕복 10km,
소요시간 5시간 40분>
승려들의 모임을 총림, 수행승들이
숲을 이루고, 수목처럼 고요하다는 뜻.
총림의 어른은 방장.
의사들의 모임은 행림(杏林)
학자들의 모임은 광림(光林)
도둑들의 모임은 녹림(綠林)
우리나라에는 6개의 총림이 있는데,
해인사의 해인총림 이외
백양사의 고불총림. 송광사의 조계총림,
수덕사의 덕숭총림, 통도사의 영측총림,
태고종 선암사의 태고총림.
절은 초파일 준비 중.
해인사는 가야면 치인리 소재.
신라말기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최치원은 가야산 홍류동계곡에 살았다.
치원이 살았던 치원촌은 치인촌으로,
다시 치인리로 바뀌었다고.
해인은 화엄경에 있는 해인삼매(海印三昧)
에서 나온 말. 바다에 풍랑이 그치면 모든
형상이 온전히 비치듯이 법계의 실상을
본래의 모습 그대로 자각할 수 있는 상태.
소림시구(少林是句) 현판을 통과하면
이절의 주불전 대적광전.
이현판은 해강 김규진(1868-1933)글씨.
해강은 현판을 가장 많이 남겼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관을 개설했다.
해인사는 비로자나부처를 으뜸가는
부처로 모시는 화엄종 사찰.
정면에는 대적광전(大寂光殿)
건물 좌측에는 법보단(法寶壇),
뒤에는 대방광전(大方廣殿)
우측에는 금강계단(金剛戒壇)이라고
쓴 현판이 붙어있다.
문을 나서는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