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진부, 월정사 산책

난해 2019. 5. 8.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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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화) 진부에 있는 젊은 농군

만나러 가자니 오랜만에 KTX를 탔다.


세상일에 어둡다 보니, 상봉에서  KTX를

탈 수 있고, 동해안 산불대책으로 어르신

요금이 30% 할인되는 것을 처음 알았다.


통상요금이 25,600원인데

할인되어 9,900원.

진부까지 한 시간 소요.




자리에는 세련된 여행안내서,

KTX월간지가 꽂혀 있었고.


봄의 화사한 꽃, 박태기에 대한

설명도 재미있다.


홍자색 화사한 꽃, 7-30개가 가지에

다닥다닥 붙어있어 밥티기 닮은 꽃.


유다가 목을 매단 나무가 서양박태기,

그래서 영어로는 유다트리.


중국원산인 이꽃은 형제간 우애를

상징한다고. 옛날 삼형제가 유산을 나누는

중, 박태기나무도 삼등분하다 보니,


결국 죽고 말겠기에, 부모를 생각,

공동의 것으로 했다나.




천문학, 해부학 등에서도 조예가 깊고,

천재화가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한 설명도 재미있다.


그의 고질병은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는

것이었는데, 현존 24점 작품 중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 등 대부분이

미완성.





열차가 양수리를 지나는 것 같다.


천 미터 이상의 산지로 둘러싸인 평창은

인구 43천명. 딴 농촌지역과 마찬가지로

인구는 줄어만 간다.


오대산, 대관령, 용평스키장 등의 관광업

이외 고냉지채소, 목축 등이 주산업.


예맥국이었고, 신라통일 이전은 고구려.

이성계 고조부 목조의 비 고향이 이곳

이라 겨우 평창군으로 승격했다고.




KTX경강선의 단점은 터널이 많은 것.

좋은 풍치를 사진에 담으려면,

굴을 지난다.




어릴적의 고향풍경도 지나가고.


진부면은 인구는 9.3천 명.

평창읍 8.9천 명보다 많다.

두 읍면의 인구는 평창인구의 42%.


인구나 지리적 여건이나 군청은

진부에 두는 것이 합리적.


고속도로가 뚫리기 전에는

도로가 평창, 대화로 이어졌었지만.





농촌은 바빠지고.

간혹 모내기를 끝낸 논이 보였다.


500-1,000미터의 산지인 진부는

살기에 적합한 곳,

비록 겨울엔 춥지만.


겨울엔 강릉, 여름은 진부에서

보내는 노인들이 늘었다고.

물론 미세먼지도 피할 수 있고.




열차가 조그만 만종역에 정차.

원주시 호저면 만종리에 있는 역.


열차가 원주시내를 통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KTX는 서울-청량리-상봉-양평-만종

-횡성-둔내-평창-진부-강릉으로.


만종하면 밀레가 생각난다.

교회의 종소리가 해질 녁을 알리는

가운데 농부 부부가 기도하는 모습.


이곳 만종은

마을 앞에 있는 비로봉을 바라본다는

뜻, 망종(望宗)에 어원이 있다고.




한 시간 걸려 진부역 도착.

뭉게구름 한가롭고.




화장실의 세련된 그림.


신혜림(1971-)의 '태양과 달

그리고 동종'    동계올림픽 중

우리문화를 홍보한 듯.




평창 동계올림픽은 이름 뿐.

강릉, 원주는 재미보고,


평창은 죽쑤고. 그나마 시설도

대부분 철거되었다.


진부역 앞의 정선시티투어 버스.

허다못해 월정사 가는 버스도 없다.




상진부에 있는 농군 찾아

일부러 걸어가는 길,


오대천의 낚시꾼, 고기를 많이

잡았는지, 우릴 보고 껄껄 웃었다.




농군을 만나 대관령한우로 점심하며

그의 얘기를 들었다.

대관령 한우의 맛, 끝내준다.


그와 인연을 맺은지도 10년이 넘었고.

여전히 순박한 얼굴.


이젠 월남처녀에게 장가들어

아들이 여섯살되었다고.

부친은 돌아가신지 몇년 되고.

마침 장인, 장모가 놀러 오셨다 한다.


그의 얘기로는 진부는 여전히

활력이 없다고.


기온 상승으로 고냉지채소는 설 자리

없고, 옛 부농들은 돌아가시고

후손들은 대부분 재산보전을 못하고.


이곳 진부에는 부자들이 많았었다.

농지도 많았고, 고냉지 채소는

때론 일확천금의 기회도 주었었고.


강릉 왕산면의 안반데기를 가보았다면

고냉지채소 등이 얼마나

대규모로 경영되는지 짐작할 것이다.




택시 잡아타고 오대산의 월정사로.

오대천을 보니 쌀쌀한 날씨에도

시원한 느낌.




천왕문을 지나자니, 초파일(5/12) 앞두고

화사한 느낌.


월정사(月精寺)는 조계종 4교구 본사.

643년(선덕여왕 12년)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문수보살 감응으로


사리와 대장경을 일부 갖고와 통도사와

함께 이절을 창건했다.




천왕문 오른쪽에 그려진

옛설화.


이절은 가람배치의 질서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가 보다. 더구나 많은 불사와


탬플스테이 등으로 옛날 그렇게

 넓어보였던 절이 협소해 보였고.




연등 사이로 걸으니




많은 가설물도 설치되어 있고.




천왕문 지나

불이문 대신 금강루를 지났다.




보화각 (종무소) 창문도

연등 덕에 화려했고.





용금루를 지나면 적광전.

용금루는 문에서 주불전을 바라보면

불상의 금빛이 밖으로 내비친다는 뜻.


주불전 앞에는 보통 만세루가 있다.

원래 신도들이 종교의식을 행하는 곳.


용금루 현판은 탄허스님 글씨.

탄허스님(1913-1983)은 오대산 상원사

에서 출가, 월정사 조실을 지냄.


스님은 팔만대장경의 한글번역을

시도했다.




이절의 주불전, 적광전.

화엄종 교주 비로자나불 대신

석가모니를 모신 것이 특징.


경주 석굴암의 불상 형태를 따른

석가모니 부처님을 비로자나불과

함께 모신다는 의미라고.


비로자나불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광명의 부처. 부처님의 진신

(육신이 아닌 진리의 모습)인 법신불.




적광전의 옆면,

규모가 있다.




적광전 앞, 국보 48호 팔각구층석탑.

고려전기 석탑을 대표하는 작품.




불전사물(범종, 법고, 목어, 운판)이

한곳에 있다. 불전사물은 아침, 저녁

예불때 치는 네가지 불구(佛具).


범종은 지옥중생, 법고는 육지중생,

목어는 어류중생, 운판은 허공중생을

제도한다. 중생제도(衆生濟度)는


고행에서 모든 중생을 구제하여

열반의 언덕으로 건너게 한다는 뜻.





이곳은 기온이 낮은지

아직도 벗꽃이 만발.




천년옛길, 선재길 입구.


문수보살(지혜와 깨달음을 상징하는

불교의 대표적 보살)의 지혜를 시작으로


깨달음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

 화엄경의 선재(착한 사람, 동자)라고.




선재길 입구의 오대천




시름을 떨쳐버리고

홀가분히 선재길로.





전나무 숲 속으로.


고려말 무학대사 스승, 나옹스님이 월정사

부처님에 콩비지공양 가는 중, 소나무

가지 위의 눈이 비지그릇에 떨어졌다.


이에 소나무를 나무라니 산신령이

소나무를 내쫓고 전나무 9그루를

번창하게 했다고.


그래서 이곳에 전나무 숲이

울창하다고.





대강당 현판도 탄허스님 글씨.


우리는 다시 절로 돌아와 경내의

못본 구석을 돌았다.


대강당은 요사채, 행사장, 수련법회장으로

쓰이는 정면 11칸, 측면 3칸의 서당(西堂)




대강당 정면에 붙은 설청구민(說聽俱泯),

이 역시 탄허스님 글씨.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함께

빈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참다운 경청이라는 뜻.




대강당에 붙은 또 하나의 현판,

정법보각.


경봉스님(1892-1982)의 글씨.

스님은 구한말 의병활동 후, 금강산

건봉사에 출가, 주지스님을 하셨다고.




아미타불을 모신 수광전.

아미타불은 서방극락정토의 교주인

미래불.




10분 고승과 통일신라시대 성덕왕(-737)을

모신 개산조각.


신라, 통일신라, 고려, 조선, 구한말의

고승을 골고루 모셨다.


성덕왕(효명태자)과 보천태자를

모신 것이 특이. 성덕왕은 신라 33대

왕으로 통일신라 전성기를 맞았다.


보천태자와 효명태자는 신문왕의 아들.

신문왕의 동생이 왕권을 다투자,


부하들이 오대산에서 수도중인 두

왕자를 찾았고, 형인 보천태자는

동생인 효명태자에게 왕위를 양보.




개산조각(開山祖閣)의 중앙을

이절의 창시자 자장율사가 차지.




진영각에는 근세에서 현대까지

월정사에서 큰 일을 하신

스님들의 진영을 모셨다.




초대종정을 지낸 한암스님(1876-1951)


한국전쟁 1.4후퇴시 국군중위가

상원사를 불태우려 하자, 자신을


불태우라고 하며 스님이 맞서

상원사와 국보문화재가 무사했다고.


1925년에 오대산에 들어가 열반할

때까지 상원사에서 주석하였고

앉은 채로 열반.







대법륜전, 선불장.


2003년 상량식을 한

대강당이 들어선 2층 건물.




요즈음 한창인 귀룽나무꽃이

이곳에도. 가지에서 냄새가 나고

꽃향이 진한 꽃.




청류다원(淸流茶院) 뒷뜰에서

허브차로 휴식을 취하고.



'피곤하고 산문적인 일상의 짐을 벗고

당신의 샘가에서 눈을 씻게 하십시오

물오른 수목처럼 싱싱한 사랑을

우리네 가슴속에 퍼 올리게 하십시오'

(이해인의 오월의 시)




알아차림?




법당의 지붕에는

오월의 봄볕이 작렬하고.




초파일 기념탑에는 저팔계?




불경기라서 그런지

주인없는 등이 아직 많았다.




진부역전에 되돌아오니 편의점에는

진부명물 강냉이를 팔고 있고.


진부 버스터미널 한 귀퉁이에서 파는

강냉이 생각에, 철이 안되었지만

한봉지 사서 해치우고.


편의점에선 그곳에서 물건을

사온다고.




진부역사, 암만 보아도, 잘 지었다.

진부해 보이지 않고.


평창도 딴 시군에 못지않게

관광전략을 펴나가겠지.




플래트홈에서 만난 모로코 처녀 둘과

프랑스 처녀 하나.


2016년 가을에 모로코를 갔었는데

그녀들이 어데를 갔었냐고 물으니,

카사블랑카 밖에 생각이 안났다.


수도인 라바트, 옛날 수도 페스,

탕헤르도 갔었는데 말이다.




돌아올 때의 전원풍경.


시골풍경은 언제 보아도

질리지가 않는다.




오월의 나른한 오후.


하루면 동해안도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월정사 중심의 관광이었지만

하루가 즐거웠다.


옛날 평창 대화에 잠간 머물었던 시절,

넷이서 쏘다녔던 평창 진부의 옛길 등

기억도 새로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