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길 걷고, 바다열차 타고
5/27(월) 한강을 건너 잠실운동장으로.
결성된지 20년이 넘은
봉화회 여행출발지.
노년이 되면 성질이 급해져
문자나 카톡을 대충 본다.
여행사를 통한 여행은 잠실출발이
많은지라, 두 회원이 잠실 들렸다
'아차'하고 종합운동장으로.
묵직한 봄비가 내리는 남한강.
광주-원주 고속도로 타고
원주에서 영동고속도로 합류.
언제 생긴 고속도로인지.
강릉에도 비가 올까가 초미(焦眉,
눈썹에 불이 붙은 것같이)의 관심사.
2시간을 달려 횡성휴게소엘
들렸더니, 이중섭의 황소그림.
횡성은 한우고장이라서 그렇다나.
강릉 정동진에 도착하여 부채길을 걷고
정동진으로 다시 이동, 식사를 한 후,
바다열차를 타고 추암역 이동.
그리고 촛대바위 구경 후
귀경 예정.
강릉의 인구는 21만 명, 강원도의 강은
강릉을 의미하듯, 강원도 대표도시.
강릉남대천이 도시를 남북으로 가른다.
경포호는 사구가 해수면 상승으로
생긴 호수이고, 연중 기온차가 적은편.
겨울, 봄의 강한 서풍이 산불의 원인.
신라, 고구려의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상업, 서비스업이 발달.
신사임당, 이율곡선생이 이곳 태생이며
조순 전 경제부총리총리도 이곳 출신.
그는 평양고보를 졸업했다.
썬크루즈에서 시작하는 부채길은
급경사를 내려가는 것으로 시작.
다행이도 강릉은 태백산맥이
가로막혀서인지 비는 오지 않았고.
초입의 때죽나무, 벌써 꽃잎을
떨구고 있었다.
수많은 열매들이 떼를 지은 스님들의
머리같아, 떼중나무가 어원이라고.
쪽동백꽃과 같이 때죽나무과.
다소곳이 아래를 향하는 꽃은
사춘기 소녀의 모습이랄까.
모자가 바람에 날려 나무데크 밑으로
떨어지자, 이를 데크 밑에서 찾아
난간을 넘어오는 회장님.
그리고 이를 받쳐주는 조장로님.
부채길 초반에서 기념촬영.
네 부부와 두 명의 싱글이 참여했다.
부채길은 4키로 정도의 해안단구 위에
설치되었다. 해안단구 높이는 75-85미터.
2,300만년전 지반의 융기로 해수면이
80미터 정도 후퇴, 바다밑 해저지형이
지금같이 육지화 되었고. 한반도에서
보기드문 지형적 특성을 보인다.
해안을 따라 대체로 표면이 평탄하고
주위가 절벽으로 끊긴 계단형태.
절벽에 핀 인동(忍冬)꽃.
꽃은 처음 흰색이 노란색으로 변한다.
겨울에도 줄기가 마르지 않고, 봄에 새순을
내어, 곤경을 이겨내는 인내와 끈기의 상징.
줄기로 망태기를 만드는 낙엽덩굴나무.
날씨 탓인지 한적한 부채길.
작년 6월초에 찾았을 때는
맑은 날씨로 붐볐었는데.
투구를 쓴 모양의 투구바위,
강감찬장군의 형상같다고.
옛날 육발호랑이가 밤재길을 넘어
강릉으로 가는 사람을 내려보다,
스님으로 변해 바둑을 두자 하여
이기면 사람을 잡아먹고 하였는데,
강감찬장군(948-1032)이 이곳에
부임하자 백두산으로 도망갔다고.
장군은 우리나라 삼대대첩의 하나, 귀주
대첩의 주인공으로 거란의 수십만 대군을
물리치고, 고려 안정의 기틀을 잡았다.
서울 봉천동 낙성대(落星垈)는 장군의
출생지이며 그를 모시는 사당이 있고,
(원래 위치에서 옮겨왔음)
낙성대 삼층석탑에는 강감찬낙성대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절벽에는 기린초가 꽃을 피우고.
기린초는 돌나물과 여러해살이풀로
어린 순은 나물로 이용되고, 한방에서는
혈액순환제, 항우울증제 등으로 사용.
파도는 점점 거세지고.
파도여 당신은
누워서도 잠들지 않는
바람의 집인가
어느날 죽어버린
나의 꿈을 일으키며
산이 되는 파도여
오늘도 나는 말을 잃는다
사랑하지 않고는
잠시도 못견디는
시퍼런 고뇌의 당신
파도여 당신은 누워서도
잠못드는 기다림인가
(이해인의 '파도여 당신은')
해안선이 바다로 둥그스럼하게
펼쳐있는 모양이 부채끝같아
이순원작가가 부채길이라 명명.
(멀리 왼쪽에 보이는 바위는 부채바위)
강릉이 고향인 이순원의 대표작은
은비령. 사고로 남편을 잃은 여자와
오랜 동안 그녀를 마음에 품었던 남자의
사랑. 그들이 죽은 친구와 남편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곳이자, 시공간을
초월한 장소인 은비령으로 향하면서
겪게되는 사랑과 신비로운 인연에 대한
이야기. 이소설로 이름없는 한계령
아래에 있는 고개가 은비령이 되었다.
작년 여름 가족여행시 한계령을 들렸다,
우연히 이 고개를 넘어, 필레약수를 거쳐
원대리 자작나무숲을 들렸었다.
포말을 일으키는 파도.
잠들지 못하는 기억 하나가
되돌아오고
되돌아오고.
(정숙자의 '파도')
뒤돌아보니 부채바위가 보였고.
앞에서 보나, 뒤에서 보나
내눈엔 부채로 보이지 않는데-
강릉 부채길은 정동진에서 심곡까지
2.86키로. 국내 유일의 단구관광지.
임금이 거처하는 한양에서 정방향에
있는 정동진. 6.25때 전쟁이 일어난줄
몰랐다는 깊은 골짜기 마을, 심곡리.
심곡항의 빨간 등대가 보였고.
빨간 버스가 서있는 곳이 헌화로.
오른쪽에 심곡항이 숨어있다.
이곳서 금진항을 지나는 헌화로는
바다와 가장 가까운 도로로,
해안도로를 따라 해안단구 절벽 밑을
드라이브하는 기분은 바다 위로
달리는 기분이라고.
신라시대 순정공이 강릉태수 부임시
부인 수로부인이 절벽 위 철쭉에
반해서 따달라고 부탁하자
아무도 반응이 없고, 소를 끌고 지나던
한 노인이 꽃을 따다 바치면서
헌화가를 부른 곳이 이곳 어디라고.
우리도 이런 멋쟁이 노인이
되어야 할 텐데.
조그만 어항, 심곡항의 담장길,
지나는 소녀도 그림의 일부분.
심곡항, 말만 초당순두부집인 식당에서
순두부 맛은 못보고,
순두부 짬뽕과 만두.
따님이 서울대 교수가 되었다고,
김선배가 한턱 쏘며, 희희낙낙.
식사 후 우리는 정동진으로
버스 타고 이동.
정동진 골목의 '낮커 밤술'.
여자들, 정동진에 오면 밤낮 없이
술을 드리킨다고.
역 건물이 단아하다.
진짜 역건물일까 할 정도로.
정동진 해수욕장의
한참 동안 바다향기로
머리감는 여인.
그 향기,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듯.
아직도 그 자리에서
머리를 감는다.
우리가 부채길을 시작했던 썬크루즈.
강릉시 강동면 헌화로에 있다.
앞에는 새끼 썬크루즈가 있고.
10만원 조금 더 주면 숙박이 가능하다고.
20여년전, 커피 한잔값도 엄청 비쌌는데.
철로길 위의 포말.
그대를 향한 나의 마음은
평행선일까?
거품일까?
추억을 오래동안
틀에 가둘 것이다.
시간의 탄생, 아인슈타인 시간,
예술로 승회시킨 중세의 시간, 현대의
눈으로 바라본 시간 등을 볼 수있는
180m기차 속의 시간박물관.
기차를 타면 즐거워지는 시간,
우리는 곧 경험할 것이다.
선을 넘어선 남녀.
강릉관광개발공사의 예쁜 시계.
정동진의 관광상품들
잘 갖추어 놓았다.
세 명의 젊은이를 통해
1970-90의 현대사를 잘 묘사한,
모래시계, 그래서 정동진은 떴고.
해시계는 프랑스 성직자 리우트프랑이
최초로 고안했다고.
정동진의 시계는 세계 최대 시계.
모래를 다 내리는데, 1년 걸림. 기차레일,
둥근 모양은 시간의 무한성, 동해의
태양을 상징하며,
그려넣은 12간지(干支)는 하루시간을
알려주기 위함이고.
정동진역 가는 길,
강한 바람에 정신 못차리는 해당화,
양귀비가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듯.
원산 남동쪽의 명사십리의 명물, 해당화.
모래사장이 고향땅이고, 향수, 차의 원료로
쓰이고 뿌리는 한방 통증, 관절염약.
우리는 바다열차를 타러
정동진역을 들어섰다.
서두르자, 기차 떠난다.
아침, 회원들로 버스 출발이 지연되자,
회장님, 하루 종일 회원 챙기느라 바빴다.
레일바이크 타고 지나가는 두 중년부부.
이곳에서 언젠가 한번 타보아야지.
길가에 핀 꽃은 북미 원산 금계국.
바다를 향한 좌석,
좋은 아이디어다.
우리는 한 시간 동안 돌고래와
여행을 같이 했다.
무한상념에 빠져,
올해 4.7일 동해안에 번졌던
산불 피해 현장.
봄의 강한 서풍으로 불은 도로를 넘어
바닷가까지 덮쳤다.
2천년에도 화재가 있었고,
이조실록을 보면 성종, 중종, 헌종때도
큰불이 있었고.
동해 앞바다의 외항선
인구 9만의 동해시는 1980년
북평읍과 묵호읍이 합쳐져 만들어졌다.
인근에서 생산되는 무연탄, 철광석,
수산물을 실어내면서 국제항으로 발전.
서쪽 경계에 청옥산(1404m0, 두타산
(1453m)이 있고 일년내 비가
고르게 내리는 휴양도시.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서는걸 보니,
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침체되었던
경제가 살아나는 것인지.
기차는 추암 조각공원을 지나갔다.
목적지 추암역에 도착.
그러고 보니 열차의 색갈도 괜찮고.
촛대바위 옆 깨끗한 백사장.
파란 하늘이 조금씩 기웃거렸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내려다본 촛대바위.
20여년전에 오를 땐 바닷가로
돌아간 것같은데-
동해시 추암동 소재,
허기야 추암동의 주인이니.
내려가는 길, 정조의 어명을 받고
김홍도가 그린 금강사군첩 중
추암전망대에 올라 기암괴석과 절리를
그린 그림이 모사되어 있었고.
주위의 바위들, 모두 멋졌다.
삼척 심씨의 시조, 심동로가 건립한
정자, 해암정(海巖亭). 고려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지은 정자.
6시 조금 넘어 한양 도착.
하루 종일 내렸던 비가 그치는 중.
뒷풀이에 얼근히 취해여야
여행이 잘 끝나는 거라고.
잠실새내역, 봉평막국수집에서
뜨듯한 막국수에 메밀부침개,
주당들은 소주 각 일병.
회장님의 세밀한 여행계획과 내조,
영도력 하에 요번 여행은 성공적.
바다열차가 제일 좋았다는 평.
기념품까지 챙겨주신 회장님께
재삼 감사드리고, 점심을 제공하신
김선배님, 즐거운 동반자가 되어주신
사모님들과 회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