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양구 산책

난해 2019. 8. 1.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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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와 휴가철은 시작되고, 선풍기 앞에서

책이나 뒤적이는 게 제격.


조경진 저 '느낌의 미술관'은

현대미술을 이해하는데 조금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오랜 가뭄 끝에 소낙비는

웬지 시원치않고,


잘익은 복숭아, 잘쪄진 옥수수도

맛이 없다고 하니


친구는 헤이즈의 노래,

'비도 오고 그래서'를 보내왔다.




비오는 날에는 추억이 있는 장소,

같이 먹었던 음식, 같이 들었던 노래가

사람들을 괴롭히기도 한다고.



'오늘은 오랜만에 네 생각을 하는 날이야

일부러 난 너와 내가 담겨있는 노랠 찾아

우울해도 괜찮은 맘이야


비가 오고 그래서 네 생각이 났어

생각이 나서 그래서 그랬던거지 별 의미 없지

우산 속에 숨어서 네 집을 지나쳐

그날의 감정을 다시 느껴보고파서'




비오는 날의 하루, 7/30(화)

태릉역에서 일곱친구 모여

양구로 달렸다.


한강을 건넜다, 다시 건너와

경춘고속도로를 달리니

비가 올똥말똥.




흥구친구가 운전하는 차가 배후령터널을

지나기까지, 세사람은

비오는 날에 맞는 이야기를 했다.


터널은 화천 간동면과 춘천 신북읍을

연결하며 길이는 5,057m.

아직까지 국도에선 최장의 터널.




2시간 조금 더 걸려 양구 도착.

양구는 한반도의 배꼽이라고.

8월에 들어서면 배꼽축제도 있고.


배꼽 빠지게 웃고 즐기는 축제,

더운 여름날 배꼽춤을

열심히 추겠지.



화천과 인제 사이에 위치한 양구

인구는 겨우 2만 4천.

울릉, 영양, 장수 다음으로 적다.


사천, 수입천이 파라호로 흐르고,

서부의 금강천은 북한강으로.


태백산맥의 분수령이라 희귀 동식물이 많다.

양구쌀, 맹진사댁 경사가 있고

요즈음은 사과, 무청 시래기가 유명.


고구려때 이름은 요은흘차,

6.25전에는 이북땅.


선조 25년 새로 부임한 감사가 금강산에

이르는 길목의 첫고을을 지나다

아름드리 수양수림을 본 것이

계기가 되어 양구(楊口)가 되었다고.




먼저 도착한 우리는 박수근미술관 입구,

카페 수근수근에서 음료 한잔 씩.

나는 엉겅퀴 효소음료.


젊은 시절, 문학소녀였고,

조각상을 닮은 카페지기 여인은

책을 읽고 있었고,


LP판에서 나오는 

 음악이 흘렀다.


용문친구가 이끄는 친구들은

추곡약수 들려 오느라 늦어지고.


카페를 둘러보니 연대출신,

김인숙(1963-)의 소설 '바다와 나비' 등

책들이 꽂혀있었다.


납북된 시인 김기림(1908-?)의

'바다와 나비'란 시도 있지만, 바다를

건너려는 나비의 좌절된 꿈을 그린.




양구읍 정림리 소재. 박수근(1914-65)

미술관에선 창신동 특별전을 열고 있다.


건물을 화강암 벽으로 한 것은

돌밭이나 화강암의 질감을 연상시키는

 그의 화풍상 큰 특징 때문.


그는 붓과 나이프를 사용, 자잘하고 깔깔한

물감의 층을 거듭 고착시켜

화강암 표면 같은 바탕을 창조하고,


그 위에 굵고 우직한 검은 선으로

형태를 단순화시켜, 한국적 정감이

넘치는 분위기를 자아내게 했다. 






운치가 있는 미술관에서 우리는 다시 합쳐,

미모의 문화해설사, 이름 끝에

해를 붙인 여인과 양구의 하루를 시작했다.

흥구친구 덕이다.


양구문화해설사의 리더이고

여행과 산을 즐기는 여인.


그녀와 연을 맺으면

그녀의 팬이 된다고.




정원의 자작나무들

자작자작대어 운치를 더했고.


근처에 박수근 내외의 묘가 있다.




박수근 선생이 보는 앞에서

애들은 졸고 있었고.




우리는 미술관 안으로

들어섰다.




선생은 양구보통학교를 졸업한 것이

학력의 전부이지만

국전심사위원을 역임했고,


18세에 화가로 입문, 주변 가난한

농가 정경과 서민의 생활을 그려

유화로서 한국적 독창성을 발휘한 작가.


날품팔이 노동자로 생활을 하면서도

그림을 그리다, 1940년 부인 김복순과

결혼, 그녀를 모델로 삼았다.


평양시청 서기, 미술교사를 하기도

했고, 1952년 단신으로 남하, 극적으로

가족을 만나 정착한 곳이 창신동.


이시기가 작가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고.


미팔군의 초상화를 그렸고,

미국인 등 외국인이 주고객이 되었다.

박완서(1931-2011)작가의

도움도 받았고.


"천당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멀긴 멀어---"하고 운명했다는데,

병마(신장염, 간염, 실명 등)의

고통이 심했나 보다.




2007년 45억 넘게 낙찰된 '빨래터'

빨래터는 박화백이 처음 아내를

방문한 장소.





자상한 아버지는 호동왕자를 그리고,

어머니는 글을 써서,

고구려이야기 동화책을 애들에게

만들어주었다고.





언덕 위 풍경.

창신동 언덕이겠지.




노점상 세 여인에게서 화백이 과일을

사니, 부인이 물었다.

"왜 한 곳에서 안사고요?


'딴 아주머니 섭섭치 않겠서?"

그는 큰 상점보다 노점에서

 물건을 샀다고.




이중섭의 소와는 달리

그를 닮아 순해빠졌다.


이중섭이 자유분방했음에 반해

그는 최대한 절제된 화면효과를 추구했고.




갤러리현대 대표, 박명자씨(1943-)는

박수근을 알리는데 큰 공헌을 했다.


박화백 사후, 부인이 박명자씨에게

굴비그림을 선물했는데 형편이 어렵자

25천원에 팔았고,


30년 만에 그녀는 2.5억원에 다시 구입.

그녀는 이 그림을 박수근미술관에

기증했다고.


박수근의 아들 박성남씨도

화가인데, 박명자씨보다 네살 연하,

우리와 동년배다.




나무와 여인, 판화.


그가 그린 나무는 모두 나목(裸木). 양구는

추워서, 나목인 나무를 볼 때가 많았는지,

 나목이 그때 어려운 생활에 걸맞았는지.


박완서의 장편소설 '나목'이 있다.

동란의 혼란기, 서울을 배경으로 화가

옥희도와 나의 성장을 그린 1인칭 소설.


진정한 예술을 추구하는 한 예술가의 초상과

그를 보며 청춘의 성숙을 이뤄가는

여인의 모습이 드러나 있다.


박수근을 모델로 한 소설.

(여성동아, 1970)


'나는 인간의 착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해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리는 인간상은 단순하며, 가정의 평범한

할아버지, 할머니, 어린이들의

이미지를 가장 즐겨 그렸다.'고

박수근은 말했고.




아기보는 소녀.


'예술은 고양이 눈빛처럼 쉽사리 변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깊게 한 세계를

깊이 파고드는 것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박수근의 그림과 해바라기그림이

붙어있는 화천읍내 식당에서

민들레비빔밥 +막걸리.


식당 오는 길, 곳곳에 2사단 해체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도대체 이나라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주변국의 비행기가 우리 영공을 침범하고,

이북의 미사일이 난무하고 있는데.


군인 수만 줄여

젊은이의 표를 많이 얻으려는지.


국방, 외교가 나라가 존재하는

큰 이유의 하나 아닌가.




 을지전망대 매표소 앞에 있는

유영호(1965-)작가의 '인사하는 사람'

그는 인사가 모든 관계의 시작이라는


생각을 갖고, 세계 1,000곳에

그리팅맨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작가는 양구 출생 인사.




양구전쟁기념관 앞에는 이곳에서

벌어진 9개 전투를 상징하는

아홉개 기둥이 서있고.




을지전망대(1,049m) 오르는 길,

안개 만 자욱했다.


양구읍 동북쪽으로  27km 떨어진

전망대는 가칠봉 능선상에 있으며

DMZ 1km 남쪽 지점. 양구 해안면 후리.


안개 때문에 금강산쪽 이북을

보지 못하고 설명 만 듣고.


가칠봉전투도 이곳 중요 전투 중 하나.


이곳 지역에서 북한여군들이 벌거벗고

목욕도 했고, 남한측에선

미스코리아 심사대회도 했다고.




내려오는 길에서 본

해안분지(해안면, 亥安面),

펀치볼(punchbowl,화채그릇)같다고.


전지역이 민통선 안에 있는 유일한 면,

인구수 1,300명, 동서 8.5km, 남북 7km.

대표적 폐쇄형 분지이며 부자동네.


뱀이 많았던 지역이라 돼지를 키우면서

안심하고 살 수 있었다고.

그래서 해안면.


집가(家) 자는 돼지 우리 위에

지은 집, 뱀을 없애기 위해.

돼지는 뱀의 천적, 뱀을 잘 잡아먹는다.




우리가 다 내려오자

햇볕이 반짝 들었다,

오호 통재라.


재완친구는 인제 최전방에서 근무했고,

양구에는 ROTC동기이며 나의

대학동기인 친구가 근무하여 이곳에

자주 온 모양.


당시 한신장군이 이곳 사단장이었는데

대학동기인 친구가 보초책임자였을 때

철저히 경계하여 장군을 기어들어오게

한 결과, 표창을 받았다고. 


재완친구는 날이 맑아 적의 인공기도 보고,

아군의 태극기가 요즈음 게양되지

않는 것을 확인하지 못해

못내 아쉬워했다.




다음에 들린 곳은 방산면에 있는 두타연,

을지전망대, 두타연을 구경하려면

 신분증 지참이 필수.


이곳 입장은 09:00-16:00 이내에 해야.

60년 만에 개방된 곳이다.




금강산, 장안사 가는 길이

표시되어 있고.




초입에 평화를 기원하는

자기로 만들어 놓은 종과 물고기.


양구는 백자의 본고장이라고.

질 좋은 백토가 생산되어 고려시대부터

600년 넘게 백자를 생산했다.


1391년 이성계가 왕조의 건립을 기원하며

봉안한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사리를 불탑에

안치할 때 사용하는 용기와 공양물)의

사리외함이 양구 방산산.


광주에 분원이 생기자,

생산이 중단되었다고.




조각공원 좌측에 있는 양구전투위령비.


도솔산(1,148m), 펀치볼, 가칠봉(1,242m)

피의 능선, 단장의 능선, 백석산(1,142m)

전투 등에서 숨진 혼들을 위로하는 비.


두타연 인근의 백석산 전투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결과,

휴전시까지 이곳을 지켜냈다.




이곳에는 또한 두타사가 있던 절터가 있다,

17세기 후반-18세기 전반에 폐사된.


높은 산이 삼면에 둘러싼

남쪽의 작은 동산.


두타(頭陀)는 속세의 번뇌를 끊고

청정한 마음으로 불도를 수행하는 것.




조각공원에서 편히 풀을 뜯고 있는

산양 세 마리를 조우했다.


해해설사에 따르면 대박.

이들은 사람을 보면 재빨리 대피한다고.

우리가 접근하자 숲속으로 도망쳤다.


이곳 백석산 인근은

남한 최우수 생태보전지역.




비구름은 좀처럼 물러나지 않았고

수입천의 물소리는 요란했고.




최용훈(1976-)의 '그리움',

전쟁, 분단으로 인해 가족과 헤어진

여인의 아픔과 그리움을 표현한.




민통선 안, 수입천의 지류이며

동면 비아리, 사태리 하류인

두타연 위에서.


북한땅 금강군 청송령에서 발원,

파라호로 유입된다고.




두타연이란?




두타연으로 흐르는 물길.

비오는 날, 수량이 풍부할 때 보는 장관.


태풍불 때 섭지코지를 돌아보는 것과

마찬가지의 기쁨이랄까.





이곳엔 돌배나무가 많다.

이목정(梨木亭)이름도 이런 연유에서 왔고.




두타연.


오른쪽 굴이 두타사지 보덕굴.

회정선사(1678-1738)와 관음보살의

전설이 깃든 곳.


이곳에서 관음보살이 모습을 나타냈고

두타연이라 칭해졌다고.


높이 10m, 폭 60m의 계곡물이

한곳에 모이고,

열목어 최대 서식지.




그 앞에서.


영우친구, 병원도 쉬고,

잘 왔지.


요즈음 세달 내리 정기산행에 참여했고

병원을 쉬고 양구에 간다하니,

마님이 이상한 눈초리로 보더라고.


도원친구 DMZ 방문도 처음일 테고.





'세월이 이따금 나에게 묻는다

사랑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안개처럼 몇겁의 인연이라는 것도

아주 쉽게 부서지더라


이제 세월이 나에게 묻는다

그럼 너는 무엇이 변했냐고'

(류시화의 '물안개')




마음으로 걸어보면

당신만의 길이 시작되는

평화누리길.




부인 김복순여사가 DMZ 일대를 지나다

박수근 작품 수백편을 넣은 항아리를

묻었다고.


지금 그 항아리가 온전히 남았다면

그 보물을 위해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두타교를 건너갔다 와서

발길을 되돌렸다.




이목정안내소로 돌아오는 길,

가곡 비목을 상기시키는 철모.


작사가 한명희씨(1939-,ROTC2기)가 화천

백암산 계곡 DMZ를 순찰했던 시절의

옛 기억을 되살려 비목 가사를 지었다고.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녁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되어 맺혔네'




마지막으로 방문한 한반도섬.

파라호 상류에 있는 최초의 인공습지.


양구 서천과 한전천 이 합류하는

하류지점에 저류보를 설치,

생태계 복원과 수질정화를 꾀했다.




한반도섬으로 다리를 건너갔다 왔고.

주위 풍경은 그런대로.




두타연, 펀치볼, 사명산, 광치계곡,

파서탕, 파로호, 후곡약수터, 생태식물원이

양구팔경.


우리가 하고싶은 두타연의 4시간짜리

 트래킹, 군청 동북쪽의 광치계곡

트래킹은 다음 기회로.




광치계곡 입구,  남면 가오작 2리에 있는

광치막국수에서 편육+감자전+막국수

또는 임자탕+소주.


가격도 착한 가격이었고 맛도 그만,

운전하느라 금주했던 용문,

흥구친구에게 매우 미안했고.


즐거웠던 여행! 우선 안내, 음식점

예약 등으로 하루 종일 수고한 해여사 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하고.


용문, 흥구친구 감사했고,

점심 저녁식대를 부담한 영우, 도원친구,

행사를 주관한 재완, 병헌친구에게

 

감사의 말, 전하고 싶다.


집에 오는 길, 소주 3잔에 기분이

좋아  최고로 엎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