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작동국립묘지, 서달산 산책

난해 2019. 11. 17. 15:41


몇 번이나 세월에게 속아보니

요령이 생긴다 내가 너무

오래 산 계절이라 생각될 때

그때가 가장 여린 초록

바늘귀만 한 출구도 안 보인다고

포기하고 싶을 때, 매번 등 뒤에

다른 광야의 세계가 다가와 있었다


두 번 다시는 속지 말자

그만 생을 꺽어버리고 싶을 때

그때가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보라는

여름의 시간 기회의 시간

사랑은 한 번도 늙은 채 오지 않고

단 하루가 남았더라도

우린 다시 진실해질 수 있다

(송경동의 '먼저 가는 것들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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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토) 대목산악회 정기산행.


동작역에서 내려, 동작동 국립묘지 옆길로

해서 오르던 서달산행을

국립묘지 안으로 해서 올랐다.




조경진친구의 안내로  동작동문으로 들어서니

충혼승천상.


 정기산행시 서달산을 걷기 시작한 것은--


퇴직후 다녔던 국민학교를 더듬다보니

2학년때 다닌 학교가 흑석동 은로국민학교.


그때 살던 집은 없어지고

재래시장은 그대로였지만, 학교는

축구장이 있는 멋진학교로 변신해 있고.


갔던 김에 학교 뒤 산을 올라보니, 그산이

서달산이었고, 산책코스로는 적격이었다.




노랗게 물든 잎들은 

승천이 아니라 낙하.



 


국립묘지는 어느 공원 못지않은 휴식공간,

물론 영혼들의 공간이기도 하겠지만.





1955년 6.25전사자 위주로

국립묘지로 개장되었다. 그 뒤로

보국, 보훈및 추모시설로 바뀌었지만.


국민학교때 막내 이모와 수영복차림으로

묘지 앞 강가에 있으면, 군인들의

휘파람 소리가 요란했었다.


요즈음 이곳에 묻힌 대부분의 영령들은

혼돈에 빠진 시국을 보고 무어라 할까?




나이 먹은 은행나무의 잎들은

아직도 청춘.


묘지들을 보면 이름없는 무명용사들의

비가 더욱 애잔해 보인다.


사병묘역에 안장된 채명신장군의 묘가

어느 대통령 묘보다 돋보이고.




초록 속의 단풍이 더 돋보이듯.




젊어서 타계한 남편, 박중위를

눈물로 그리는 아내의 마음도 있고.

가신 님 언젠가는 볼 날이 있겠지.




7인의 대목들.


1998. 9월에 시작한 월 1회 산행은

21년이 넘었다.




낙엽쌓인 오솔길을 걸어





박정희대통령 부부 묘에 분향.

부부 각기 총탄에 가버린 불행한 영혼들.




한 마리 까치 그들의 영혼을

지키고 있었고.




못을 둘러싼






풍치, 햇볕이 그리웠다.





오솔길로 해서

묘지 서쪽에 있는 서달산(179m)으로.




가는 길 도중에 있는

호국지장사.


신라말 풍수지리설에 도통한 도선 창건.

칡넝쿨이 엉켜있고 약물이 샘솟는

명당에 토굴짓고, 갈궁사라 명명하고.


고려말 공민왕때 보인스님이 중창.


선조때 할머니, 창빈 안씨 무덤을 국립묘지

안에 안치하고, 절이름을 화장사로 개명.


이절에서 한음과 오성이

공부를 하였다고.




서달산 정자 위에 올라서 본

상도동쪽 단풍.


이곳에서 오징어부침개 등에

막걸리+맥주 한 잔.




아침부터 쾌청하다는 예보였는데

그제사 햇볕 들기 시작.




올해 히말라야트래킹 못간 것을

못내 아쉬워 하는 윤성식친구.




잣나무?그늘이 이어졌고.





중앙대 캠퍼스 지나려니

주말인데도 젊은이 무리.


시끄러운 중국학생들 목소리,

귀에 거슬렸다.


캠퍼스마다 들리는 이들의 목소리,

이나라도 이들의 세가 시작되려나 하는

우려가 생겼고.




학생들이 즐겨찾는 부대찌개에서

맛있는 점심과 담소.


1인분에 6,500원이니 술값 포함,

1인당 만원이면 뒤집어썼다.




미국에서 담 넘다 떨어져, 아직도 혼수상태인

친구, 전구 갈아끼다 감전한 친구,

나무에 올랐다 죽은 가지 붙들다 떨어져

맨땅에 헤딩한 친구,


이날 산행 같이 한 친구의 손가락,

구멍 파다 그랬나?


최근 일련의 사고들.

정유론친구의 말과 같이

아직도 청춘이라는 생각을 버리게.


손가락 깁스한 친구와 어울려 당구장에서

다섯시 넘게까지 있었는데,

의미있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