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문화유적길
(농협은행달력, 4월, 봄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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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절은 누구의 것입니까
바람이 고요히 흐르고
흙내음 진하게 풍겨오는
지금 이곳은
햇살이 따스하게 자리잡고
푸른 하늘 가없이 펼쳐지는
지금 이곳은
오가는 사람들의 풍경이
다정하게 다가오고
어린 꽃들이
화사하게 달려드는
지금 이곳은
이 계절은 그대 것입니다
(홍광일 시집, '가슴에 핀 꽃'중에서)
4월의 첫날, 친구 다섯명이 문화유적길을
걸음으로 양평 물소리길을 졸업했습니다.
물소리길 6개 코스 중 첫번째 코스인데
마지막 날 걸었고, 그것도 거꾸로 걸었죠.
신원역에서 양수역까지 걷는 8.5km의 길.
첫번째 방문지는 양서면 신원리 소재
여운형선생(1886-1947) 생가및 기념관.
혈농어수(血濃於水),
피(민족)는 물(이념)보다 진하다.
선생의 철학이랄까요.
'적과 동지'란 책을 선생 서거 60주기를 맞아
강준식이 새롭게 엮은 소설의 제목이기도.
해방정국을 여운형 중심으로 서술했다죠.
선생은 1944년 건국준비위원회의 일원이었고
조선인민공화국을 발족시켰으나
좌우갈등이 첨예화됨에 따라,
남북분단을 저지하고 통일정부를 실현하려는
선생의 뜻은 극우청년에 의해 시해됨으로
좌절되었습니다.
기념관 가는 길의 벽화.
해방의 좋은 기회를 맞았으나,
좌우 내분으로 결국은 남북분단의 비극을
맞았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죠.
몇년전 부용산 오를 때는 없었던
자그마한 묘골애오와공원이 생겼네요.
묘골은 동네이름, 애오와는 선생의 친필이라네요.
愛吾窩는 '나의 사랑하는 집'이란 뜻.
2008년 노무현정부때 선생에게 건국훈장이
수여되었고 기념관은 2011년 건립되었죠.
좌편향 정부가 들어선 후
생긴 공원이 맞겠죠?
스포- 쓰 도장도 못보던 시설.
기념관은 우한사태로 2.24일 문을 닫았고,
담너머 선생의 생가가 보입니다.
묘소는 우이동 서라벌중학교
옆에 있고요.
기념관 근처에선 한 무리의 남녀
나물꾼들이 망초대나물을 뜯고 있었고요.
망초대는 북아메리카 원산의 밭을 망치는
국화과 잡초, 망초 개망초의 어린 싹. 나물로
많이 이용되면 잡초제거 효과도 있겠네요.
망초, 나라를 망치는 풀,
아메리카 고향을 그리워하겠죠.
묘골 북쪽마을, 양서면 신원2리
풀무골에 들어섰습니다.
동네 입구부터 제비꽃이 만발했습니다.
나비도 날아들었고요.
강남갔던 제비가 돌아올 무렵 피는 꽃.
제비처럼 날렵해 보이기도 하겠지만,
꽃모양이 뒤에서 보면
오랑케 머리같기도 하고
오랑케 투구같기도 하고.
나폴레옹과 조세핀이 좋아했다는 꽃.
이혼 후 조세핀은 한번도 쳐다보지 않았다고.
그리스 양치기소년과 소녀, 이아가 사랑했는데
비너스의 시기심으로 큐피드의 화살을 맞자,
소년은 이아를 모르는 사람이 되고,
이아는 절망 속에 죽어 제비꽃이 되었다고.
우리나라에는 60여종이 있다 하고요.
풀무골의 바람이 더운지
목련꽃은 벌써 추한 할머니가 되었네요.
할미꽃, 오랜만에 보았죠.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이 꽃은
꽃이 지고 열매를 맺을때
노파의 호호백발을 연상시켜요.
개체수가 적어 희귀한 흰젖제비꽃을
이곳에서 처음 보았습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의
가곡, 제비꽃을 한번 들어보세요.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의 시에 곡을 붙였죠.
모차르트가 사랑한 알로이지아를 노래했다죠.
'들판에 핀 제비꽃 한 송이 초라하고 가련한
이 꽃은 사랑스러운 제비꽃이었네
행복이 가득한 양치기 소녀가 가벼운 걸음으로
다가와 노래하네
제비꽃은 생각했네 내 사랑이 나를 바라보고
나를 안아준다면 그런 순간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운명은 잔인한 것 소녀는 다가와서
눈길 한 번 주지않고 제비꽃을 짓밟아 버렸네
꺽인 제비꽃은 죽고 말았지만 행복했네
그녀로 인한 것이었으므로 그녀의 사랑스러운
발 아래였으므로 슬픈 제비꽃
그것은 가장 사랑스러운 제비꽃이었네'
아늑한 샘골 마을,
샘이 마르지 않는 곳이라구요.
이 마을로 해서 부용산(366m)을 올랐었죠.
신원역에서 부용산을 올랐다 양수역으로
하산하는 코스는 7.5km.
험한 육산이지만, 여름에 오르면
파란 남한강물과 시원한 여름바람이 우리를
반겨주는 좋은 산.
부용은 이지역에선 연꽃을 말하죠.
연꽃은 수부용, 부용은 목부용으로 구분해요.
목부용은 아욱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으로
키는 1-3m, 꽃은 무궁화와 비슷하죠.
여름날 비맞는 부용(芙蓉)꽃, 감성을
일으킵니다. 청초한 여인상이랄까.
꽃말은 정숙한 여인.
조선시대 선비와 혼인한 부용이라는 기생,
선비가 과거 보러간 사이, 자신을 탐하는
관리를 거절하고 정조를 지켰다는 이야기.
열심히 일하고 있는 샘골 농부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즐거운 마음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하니 반가웠고요.
실연의 아픔보다 쓰지않은 씀바귀.
쌉싸래한 맛이 입맛을 당기는 건강식품.
토끼에게 먹이면 병이 나지 않는다고 해요.
생강나무는 꽃이 지고
잎을 틔우는 중.
범의 귀과에 속하는 괭이눈.
골짜기 등 습기 많은 곳을 좋아해요.
급경사고 해서 겁먹은 친구들,
부드러운 고개를 넘어
양서면 목왕리로.
이곳엔 현호색(玄胡索)이 많었구요.
반그늘 비옥한 곳을 좋아하는 이꽃의
씨앗이 검은 데서 현호색이란 이름이 나왔어요.
그리스에선 꽃이 종달새를 닮았다고
코리달리스(종달새)라 한다고 하죠.
쭉쭉 뻗은 전나무 숲,
상쾌했고요.
이런 길만 걷는다면
얼마나 좋을꼬.
목왕리마을이 보였고요.
큰 마을이어선지
아스팔트길이 이어졌죠.
달구덩이산 아래 달구덩이마을 지나
다시 걷기 편한 길로.
한음 이덕형선생의 말씀.
달구덩이, 월계 다 같은 맥락의 지명.
벼슬살이 나그네의 설음이 느껴지고.
산길 돌아 풀밭에서
마지막 간식.
총각딱지 떼던 이야기, 고교때
순진했던 시절 여고생이 찾아와
당황했던 이야기 등을 하며.
목왕리에 있는 이덕형선생(1561-1613) 신도비.
묘역 아래 300m지점에 위치.
신도비(神道碑)는 무덤 앞이나 근처 골목에
세워 죽은 사람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
일제 시대 일본친구들이 선생의 신도비를
개울 속으로 쳐넣어 비문의 내용을
알 수 없도록 했다 하네요.
한음 이덕형선생은 임진왜란 당시 일급
외교관. 전쟁 당시 공이 컸던 3리 중 한분.
오리 이원익(1547-1634), 백사 이항복(1556-
1618)과 더불어. 3리는 나이가 젊은 순으로
세상을 먼저 하직했다죠.
오성과 한음의 우정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지만,
이항복선생이 이덕형선생보다 다섯살 위.
이덕형선생이 먼저 영의정에 올랐고요.
한음을 제향하는 서원은 포천의 용영서원,
상주의 근암서원이 있습니다.
진달래 핀 동산, 화사하죠?
혹시 진달래주 드셔보셨나요?
부용 4교를 지나서는
논두렁도 걸어 보았고요.
동네 정자도 지나고,
큰 규모의 기숙학원도 지나고,
가정천이 큰 길 옆으로 흐릅니다.
두물머리 참나무 표고버섯농장 지나니
가정천엔 야생오리 한 쌍 데이트 중.
용담리 가정천 하류에는 세미원의 연꽃은 물론
큰고니, 물닭, 민물가마우지, 쇠오리,
검은등할미새, 흰뺨검둥오리, 큰기러기,
흰꼬리수리 등의 탐조활동이 이루어진다네요.
정창손(1402-1487) 묘소입구 지나고.
정창손은 벼슬이 영의정까지 올랐지만.
세종때 한글제정, 불경 간행에 반대했고, 세조반정에
가담했으며(사위 김질이 단종모의 폭로).
남이장군 옥사에도 관여.
청백리였다지만, 영 그렇군요.
부용 2리 지나니
신록이 시작되었군요.
가장 좋은 계절.
지루한 아스팔트길 걸어, 부용산 하산길과
만나고, 전철길이 보이면
양서주민자치위원회가 운영하는 도예교실,
큰 규모의 양서탁구장과 만나죠.
문화유적길은 양서역에서 신원역으로
향하는 게 맞군요. 마지막 아스팔트길이
사람을 지치게 하네요.
양수리 맛집까지 좀 더 걷자고 했지만, 모두 지쳐
예전에 들렸던 허가네막국수(양수역 인근)에서
수육2접시+막국수+소주.
2/19일, 아신역에서 시작한 강변이야기길,
눈 덮힌 산을 넘었는데,
4/8일, 문화유적길을 끝낼 때는
꽃이 만발하고 신록이 시작되었네요.
양평 물소리길, 더위가 시작되기 전에
한 번 걸어보세요.
버드나무 있는 남한강길, 흑천길은
정말 좋았습니다.
4/2일 종각에서 식사후 그림그리기 동호회
회원들과 양평 반나절 투어를 했습니다.
오빈역에 내려 아담한 마을 지나,
양평까지 걷고, 양평시장 춘천닭갈비에서
저녁 먹고 귀가하니 8시가 좀 안되더군요.
양근성당, 양평미술관은 코로나로 문이 닫혔고,
오빈역에선 바로 강변길로 갈 수 없던 점이
무척 아쉬웠습니다.
들꽃수목원이 길게 누워 있어서요.
그동안 같이 해주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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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우레 소리 그쳤던가
문득 내다보면
4월이 거기 있어라
우르르 우르르
빈 가슴 울리던 격정은 자고
언제 먹구름 개었던가
문득 내다보면
푸르게 빛나는 강물
4월은 거기 있어라
젊은 날은 또 얼마나 괴로웠던가
열병의 뜨거운 입술이
꽃잎으로 벙그는 4월
눈뜨면 문득
너는 한 송이 목련인 것을
누가 이별을서럽다고 했던가
우르르 우르르
빈 가슴 울리던 격정은 자고
돌아보면 문득
사방은 눈부시게 푸르른 강물
(오세영의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