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곱돌 퇴뫼 옛성산 산책
친구들 얘기로는 카페베네는 2008년 창업,
스타벅스를 이겼던 토종카페라고.
나는 금시초문.
무리한 체인점 확대, 애매한 경영으로
2013년 적자를 시작으로 망했다는데
2016년 개편하여 기업회생중이라고.
뉴욕에서 살아남은 점포도 있고.
하루 전 점심모임에선 기분이 우울.
회원의 절반도 안나왔고.
나온다는 한 회원은 응급실에 있었다.
우리보다 나이 적은 한 동인은
식도암으로 살 날이 얼마 안남았다 하고.
강진에 탐진강이 있고, 조선 태종때
탐진과 도강이 합쳐 강진현이 되었지.
시골칼국수도 있고. 옛날 시골에서 멍석피고
칼국수 만들어 먹던 생각도 나고.
신종 업종같아 보이기도.
영업내용이 무엇인지 궁금.
남양주시 퇴계원읍의 인구는 31천 명. 대한민국
읍중에서 면적이 제일 작은 인구밀집지역.
누구나 걷고 싶은 길?
남양주시는 인구 737천 명의 부자도시.
옛날 남양주가 속했던 양주의 목사 자리는
평양감사와도 바꾸지 않았다는
좋은 자리였다는데-
퇴계원 하면 퇴계 이황 선생이 생각나지만
전연 아니다.
조선시대 여행하는 관원을 위한 원의 하나.
춘천으로 향하는 도로변에 있는.
이곳을 흐르는 왕숙천과 더불어
이태조와 관련된 지명이다.
우리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퇴계원 유래에 대하여는 여러 설이 있지만
이태조와 관련된 설이 흥미를 끈다.
개국공신 남재가 함흥차사 이후 태조를 한양으로
모시려 애를 써, 태조가 퇴계원까지 와보니
삼각산이 보이고 부아가 올랐지만 내곡리에
풍양궁을 짓고 살았다.
(남이장군은 남재의 후손 )
조정신하들은 서남쪽 퇴계원 밖에서 풍양궁을
향해 절만 하고 물러갔다. 그래서 퇴조원(退朝院).
이곳에 살던 연안이씨 월사 이정구의 후손
조온이란 자가 퇴조원 이름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아 퇴계원으로 고쳐 부르게
하였다고.
별내신도시가 보였고.
퇴계원에서 왕숙천을 거슬러 오르면 밤섬유원지.
갈래길이 나오는데 왼쪽길로 접어들어
골짝진 곳에 궐리 대궐터 마을이 나온다.
이곳이 풍양궐터.
궐터임을 알려주는 비석 2기와 보호비각이
주택들 사이에 남아있다.
(문화재청, 문화유산 e야기 등에서)
푹신푹신한 흙길, 이처럼 좋을 수가.
퇴계원을 흐르는 왕숙천은 한강의 제1지류로
길이는 38.5km. 포천 내촌면 수원산 발원.
남양주시, 구리를 흘러 구리 토평동과
남양주시 수석동 사이에서 한강으로.
이태조가 옛양주의 한 냇가에서 여덟 밤을 잤다하여
팔야리, 여덟배미, 왕숙천.
촌부와 태조가 오른 산이 천마산.
이때 이태조가 '내팔이 한자만 길어도 하늘을 만질 수
있겠건만'하고 아쉬워했다고.
하늘 천(天) 만질 마(摩).
(중부일보 기사중에서)
개나리군락이 많다.
동네도 아닌데.
태조(1335-1408)는 1392년 58세에 등극.
1398년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상왕으로 물러남.
태종은 첫째부인 신의왕후 한씨의 5남.
방원이 정몽주를 격살했을 때부터
태조와의 갈등이 시작되었고.
패전을 몰랐던 이태조는 자식들간의 싸움,
두번째 왕비 소생의 세자 책봉 등으로
불행한 말년을 보냈는데
태종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아주 만족한 표정.
산행때마다 마나님이 쑤어주는.
지나는 아줌씨들 같이 먹자해도
들은척 만척.
'강물은 흐르다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나는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정호승, 1950-, 봄길)
보기가 좋다.
남산길에서도 볼 수 있는 분홍과 노랑의 조화.
노랑저고리와 분홍치마를 입은 처녀.
임실이 고향이라는 장년 한 명을 만났는데,
임대주택 13평에 혼자 살고
8달 일하고 4달은 쉰다고.
실업급여가 185만원.
임대료로 3천만원 보증금을 내면
월세가 거의 없다나. 그래도 여자는 안붙는다나.
참 좋은 나라이다.
형은 임실에서 비닐하우스를 열심히 가꿔도
사기만 당하여 빚만 있고.
왼쪽에 불암산, 오른쪽엔 수락산,
그 가운데 도봉산.
우리의 눈도 시원해졌고.
좋은 땅은 경쟁자에게 다 빼앗기고 생존의
극한 상황에서도 자라는 나무나라의
가난한 백성(박상진교수).
두견새가 밤 새워 피를 토하면서 울다가
꽃을 분홍색으로 물들였다해서 두견화.
고향, 어린시절을 떠올리는 꽃.
민족 정서에 닿아있는 꽃.
화전을 만들어 먹기도 하지만 술을 만들기도.
100일이 지나야 맛이 난다 하여 100일주.
(다음백과)
곱돌이와 곱순이가 소꼽놀이 하던 곳 같다.
이곳에서 3.3km 떨어진 퇴뫼산으로.
퇴계원에 있는 산이란 뜻 같은데-
뫼자와 산자가 붙어야 제대로 된 산.
퇴산? 퇴뫼?
퇴계원역에서 곱돌산까지는 3.5km정도.
진달래도 피고,
겨울나무들도 있고.
고압선이 지나는 것이 흠.
사람들의 기원이 모여있고.
이곳에서 더 가,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이태조의 이야기가 있는 내곡리 가는 길.
오르막은 계속된다.
앞서가는 리더, 임대장.
양지꽃 몇 송이외 다른 야생화는 없는듯.
현호색(玄胡索)은 양귀비목 현호색과
여러해살이풀. 그늘, 습한 곳을 좋아한다.
꽃모양은 종달새 모양.
붉은색, 자주색, 흰색꽃을 피운다.
산수유와 같이 노란꽃을 피우는 봄의 전령사.
녹나무과 작은 나무.
흑자색 자색열매에서 머리기름을 짜서 사용,
일부 지방에선 동백나무라 불리우고.
생강이 들어오기 전에 나무껍질, 잎을 말려
가루를 내 양념, 향료로 사용했다고.
불암, 수락산의 멋진 능선이 보였고.
물 한 모금과 간식으로 임대장의 찰떡 한 조각.
덜 다듬어진 돌길,
걷기에 편했고.
급경사를 내려간다는 말.
산정상이라 하기엔 너무 엉성?
정상 표시도 그렇고.
그래도 이날 세개 산의 정상을 밟았다.
둘레길 이름을 유네스코국립수목원길로
바꾸었다고.
우리나라둘레길, 너무 많고
너무 헷갈리고, 중복되고.
한 부부가 열심히 묘를 가꾸고 있었다.
요즈음 화장이 대세인데-
효성이 지극한 부부.
임대장과 나는 버스를 타고
두 사람은 걸어서 별내면사무소까지.
얼마 지은지 안되는 사무소.
위쪽 청학동에서 용암천이 흐르고.
수영장, 야구장, 축구장이 있고
축구장에선 경기 중.
둘은 버스를 타고 별내면사무소까지.
걸어서 청학동에서 와서 퇴계원쪽으로 가는
버스정거장으로.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채워지는 것이다.
잘 된 작품같지 않지만.
이곳은 기온이 낮아 아직 개화 전.
용암천은 별내면 용암리에서 발원하여
구리시 사노동, 퇴계원읍 경계에서
왕숙천과 합류하는 남양주시 지방하천.
별내, 갈매신도시의 산책로, 자전거 도로가 있고.
세친구는 버스를 타고 퇴계원에서 보리밥.
3시가 넘어 들은 점심.
나는 점심들고 전철 타고 하면 1시간 반 이상
소요되고 재활용 날이기에
바로 버스타고 집으로. 30분 정도 소요되었을까.
버스는 퇴매, 임촌, 넉바위마을을 지나더니
별내하우스토리부터는 별내신도시.
그린벨트 조용한 촌동네가 인구 7만명의
아파트단지로 변했다.
불암산 입구, 담터, 육사를 지나 화랑대역.
이날 18천보를 걸었다.
세 산을 올랐지만 산을 올랐다기보다
좋은 친구들과 봄의 산책을 한 느낌.
여러분, 함께 해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