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날, 웬 기차여행?
사랑에 실패하고, 추운 겨울 방랑의 길 떠나는 겨울나그네?
빌헬름 뮐러의 연작시에 맞춰 겨울나그네 곡을 끝낸 슈벨트는
그 이듬해 세상을 떴다는데.
세밑에 천애고아된 나는
그 추운 날(1/4,수) 배낭을 메고 청량리역으로 향했다.
열시반 가까이 되어 안동행 무궁화열차는 출발하여,
자작나무 숲도 지나고,
가끔 설경도 맞닥뜨리기도 했지만,
열차내에는 떠오르는 달도 있었다.
그리고 겨울나그네완 전연 안어울리는 얼굴들도 있었다.
허지만 겨울나그네의 검은 그림자는 드리워 있었고.
이별을 고한 연인에게 미련을 보내는 여인도 있었다.
풍기역에 내렸을 때는 매섭고 풍기문란한 바람에도 불구, 따사한 봄을 느꼈다,
여인들때문에.
우리는 중앙선을 타고 남쪽으로 한참 왔다고 생각했지만,
풍기역은 천안과 같은 선상에 있고, 소백산의 영향을 받아,
그 추운 바람은 뼈속까지 스며들었다.
풍기역 앞은 추위로 사람은 없고, 빈 차들만 줄서 있었고,
빈약한 청국장으로 점심 때우게 한 후, 초예는 돈 한푼 안주고,
우리를 부석사행 버스 정류장에 내동댕이치고는 서울로 가버렸다.
정거장에 써있는 시간표는 영주역 출발기준(풍기와는 30분이상 차이가 있음)인줄 모르고
추위에 떨고 있는데, 개인택시 박재형기사가 우리를 구해줬다.
다섯사람 버스값정도인 이만원에 우리를 부석사입구에 옮겨 놓았다.
박기사의 명언 "선생님, 네여자 버거우시겠어요."
의상대사와 선묘의 사랑이 진하게 남아있는 부석사엔 이런 건물이 없었는데-
장독대엔 겨울의 볕은 늘어져 있었고,
화엄종의 근본도량 부석사는 겨울나그네를 그나마 따뜻하게 맞이했다.
골목의 겨울그림자는 어렸을 때 겨울을 생각나게 했고,
초록은 초록끼리.
네모는 네모끼리.
북은 외로운 소리를 준비하고,
지붕은 지붕끼리.
귀의 공포는 외로이 지붕을 떠받치고 있었다.
때론 겨울의 화려함도 있었고,
고찰의 외로움도 빛나고 있었다.
겨울나그네에겐 마음을 열어줄 사찰의 문이 있지만,
우린 저 산들을 헤집고 떠나야겠지?
그림자가 길게 자라기 시작하자,
나그네들은 절문을 나서기 시작했다.
저녁추위가 슬금슬금 기어들자, 부석사의 노을촬영은 집어치고
여인들은 이미 절입구 장미식당에 자리잡았다하는데,
옥이씨는 아직도 미련이 많아 주춤거렸다. 강철의 여인인가?
천애고아는 음주가무의 금기를 깨고, 그만 여인들
그리고 풍기인삼막걸리의 유혹에 지고 말았다.
대기하고 있던 영주의 홍보맨, 박재형기사의 택시로 풍기역으로 돌아가다,
유명하다는 풍기 도너츠본점의 생강도너츠도 샀고,
풍기역전 매직 아래에서 영주곶감, 생강도너츠로 저녁을 보완했다.
취기는 아직 가시지 않고,
초예씨의 문자가 날아들었다. "저녁은요?, 풍기의 문란한 겨울바람 때문에 외박하는 것 아녜요?"
풍기발 18:12분열차는 왜 그리 빨리 달리는지--
덕소역에 서면(갈 때는 덕소역에 섰었다.) 잎하나님이 아구찜 쏜다고 했는데, 서야말이지.
20:58분 청량리역에서 헤어질때, 하도 추워서 사진이 동상걸렸는지
시커머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