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

봄은 오고

난해 2019. 3. 17. 17:29


봄은 왔지만

미세먼지, 그 속에 꿈을 잃은 나라.


개인적으로 보아도

예년의 봄과 같지 않다.


히말라야 랑탕계곡을 가자할 때는

10명 가까웠던 희망자가

한라산 전지훈련을 마친 후에

둘로 줄었다.


스탠트를 박았다, 마나님이 반대한다,

옛날 다쳤던 다리가 완전치 않다 등

움츠러드는 70대.


한라산 등정할 정도면

충분한 코스인데.




3/5일, 예년과 같이 친구들과 매실밭을 찾아

토양소독도 하고.


매실밭 경영은 수익이 날 수 없지만,

해마다 우리들의 건강을 확인할 수 있고,

수확해서 나누는 즐거움이 있다 할까.




전정을 하였는데, 한 친구 사다리에서

떨어져 갈비뼈에 금이 갔다.


바로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가서

병원에서 치료를 한 것이 다행이었지만,


친구에게 미안키 짝이 없고

6주 정도 치료를 받아야 되니,

얼마나 친구는 불편할꼬.




3/12일에는 직장 입사동기와

불광역-비봉-사모바위-청수동암문-

대남문-문수사-구기탐방센터 코스

16키로, 6시간 북한산 산행.


옛날에는 거뜬한 코스인데

모두들 바위길 산행은 힘들다고.




고려시대 1109년에 창건된 문수사는

이승만대통령 어머니가 기도를 하여

대통령을 얻은 절.


천연 동굴 현판은 전두환대통령이 썼다.

하루 전에는 법원에 출두하여

철없이 달려드는 기자들에게

"왜 이래!"했다.


언제까지 이 나라는

과거만 캐며 과거로 회귀할까.

중국은 문화혁명에서 바로 복귀했는데.




3/15일에는 동대문 DDP에서

곧 전시를 끝내는 키스 해링전을

보자는 친구가 있어


전시 참관에 앞서 동대문 먹자골목에서

닭 한마리.


요리를 해줄줄 알았는데-

우리가 도움을 청하자

조선족도우미 하는 말,

"외국인들도 잘 알아서 먹는데-"


맛도 그렇고.




키스 해링(Keith Haring, 1958-90)은

미국의 그래피티(낙서화)예술가,

공연예술가, 사회운동가.


앤디 워홀(1928-87) 등과 같이

낙서화의 형식을 빌려 새로운 회화양식을

창조했고, 간결한 선, 강렬한 원색,

재치와 유머가 특징.


20대부터 이름이 알려지고

팝 아트(Pop Art)로 돈을 벌었으나,

32세에 에이즈로 사망.


전시명은 '모두를 위한 예술을 꿈꾸다'.

탄생 60주년 기념.

나카무라 키스해링 컬렉션 주최.




그는 뉴욕지하철에서 세련되고

즉흥적인 그래피티를 보고

타인과 소통하려는 자신의 욕구를 깨달음.


탄생, 죽음, 사랑, 전쟁 등의 다양한

주체를 표출, 흰색 분필로 검은 종이로

덮힌 광고판에 아기, 동물, 사람들을


그리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세상과 소통했다.


공공장소에서 빠른 속도로 하루 40점을

그려 세상에 알려졌고,

주변 곳곳에서 나타나 에너지를 표출.




그의 작업은 페인팅, 드로잉, 조각,

퍼포먼스,비디오, 벽화, 공공예술,

예술상품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으며


'나는 가능한 많은 사람이 경험하고

탐구하는 예술을 만들어 가고 싶다.


내가 창조한 작품은 나를 비롯해

다른 사람의 생각과 만날 때

완성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시 마감이 이삼일 밖에 안 남아선지

전시장은 젊은 사람들로 꽉 찼다.




사람의 사다리.




The story of  red + blue.

어린이를 위해 만든 21개 석판화.

시리즈가 합쳐쳐 하나의 이야기를 이룸.


이야기 경연대회에서 교육프로

그램으로 사용.


키스해링은 많은 시간을 배경, 나이

상관없이 아이들과 함께 작업.


아동도서를 출간했고, 팝 숖(Pop Shop)

에서 판매할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상풍들을 디자인했으며,

아이들과 워크숍도 개최했다.




꽃.


'무엇을 하고자 하더라도 단 하나의

비결은 자기자신을 믿고

원하는대로 하는 것.


그것이 무엇이든지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하지 마라.'


젊은 작가답지 않은 노숙한 말씀.




블랙라이트 아래에서 형광색 컬러페인트

사용. 아기, 비행접시, 피라미드, 삶을

상징하는 형상들이 긴장감을 준다.



키스 해링은 '많은 사람들이 보고 수 많은

해석을 만들어낼 수 있는 예술작품을

만들고 싶다. 작품의 의미, 개념을 창조하는

것은 바로 관객이며 작가는 중개자일 뿐이다'

라고 했다.




스위스 시계브랜드 스왓치 후원

브레이크단스 포스터에도 그의 그림이.




브룩쉴즈(1965)와의 협업.




자선음악회 포스터.




레코드 재킷작업을 시작으로

뮤지션들의 다양한 장르의 음반

앨범커버 작업을 했다.


그의 대표적 이미지를 이용,

눈길을 사로잡고, 그들의 음악과

떨어질 수 없는 이미지를 만듬.


즉 예술을 통해 소리와 메시지를 시각화.



게이들아 문을 박차고

바깥 세상으로!

그는 동성연애자였다.



남아공 흑인들에게 자유를!




적개심을 없애자!




베를린 장벽에 그림을 그리는 등

그는 사회운동가였다.


이프로젝트 또한 어떠한 스케치, 계획

없이 시작되었다.




24개 이미지로 이뤄진 회상.


옛사람들이 언어를 만들기 위해 선택한

도형들이 핼링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모든 형상에는 기본적인 구조가 있고


최소한의 선을 사용하여 완전한

대상을 가리키고, 그 선의 조합이

상징적인 기호가 된다. 


그가 만든 상징은 오늘날 사용되는

이모티콘의 시초. 웃는 얼굴, 돌고래,

빛나는 아기, 짖는 개.


상징들은 젊은이들의 사랑, 삶, 죽음,

대중문화 및 정치에 관한

 주제들을 다루었다.




종말이라는 디스토피아(Dystopia)는

초현실주의 그림 속에 불길한

주제를 그려낸다.

에이즈 진단 후 그가 경험하고

상상하는 지옥.


'선과 악은 설명하거나 이해하기 어렵다.

악이 존재한다고 확신하지만

떼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이는 완전히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며

종종 하나가 되기도 한다.'

키스 해링의 말.




시작의 끝, 그리고 끝의 시작.


해링을 떠오르게 하는 상징적인

이미지들이 그림 속을 채우고 있다.




'예술가는 다른이들의 삶에 감동을 주고

그들의 삶에 살아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나는 죽어도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 살아있을 테니까.'

그는 말하였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돌풍이 불고 입간판이 쓰러졌다.


기대보다는 좋았던 키스 해링 전시회.

사그라지는 70대의 봄기운을 되살렸다.




추위에 죽을까 조바심했던 군자란.

친구의 간절한 마음의 결과로

되살아나 꽃을 피웠다고,




우리집, 명이 다했다고 팽겨쳐둔

다육 선인장, 장미 모양의

싹을 냈다. 이심전심.




전시회 관람 다음날, 3/16일(토)

11명의 동창들이 안산 둘레길을 돌았다.




홍매화 활짝 피었고.

본격적인 꽃의 계절이 도래하겠지.




이날밤 봄의 특별 서비스를 받았다.


독립영화관의 '러빙 빈센트'


2017년 제작된 유화 애니메이숀.

107명의 아티스트가 참여 10년 동안

공들인 영화. 56천장의 유화로 이루어짐.


스토리는 빈센트와 동생 테오 간의

주고 받은 편지를 기초로 했다고.




빈센트 편지를 책임졌던 우체부 죠셉은

빈센트(1853-90) 죽음 1년 후,

아들(아르망)을 시켜 테오에게

보내는 빈센트편지를 전달시킨다.


파리의 테오도 죽었고, 그 편지를 다시

빈센트의 주치의 가셰박사에게 전하려

프랑스의 작은 시골마을 오베르에


오게 되고, 빈센트의 죽음과 관련된

여러사람을 만나는 중 , 그의 타살가능성을

인지하고, 탐정역할을 하다,


결국은 가셰박사를 만나

편지를 전하는 과정에서

의혹을 풀게 된다.


죠셉은 동네의 위험한 화가, 빈센트를

따뜻한 사람으로 여긴 유일한 사람.


빈센트가 죽음을 맞이한 여관주인의

딸, 라부는 빈센트는 따뜻한 사람이며

자살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




가셰박사의 딸, 마르그리티느.


그녀는 빈센트를 그리워했고,

매일 빈센트의 묘에 꽃을 가져갔다.


그녀는 아르망에게 빈센트는 꽃의

아름다움을 알았고, 어떤 생명도

가치있는 것으로 여긴 것으로 보아

결코 미치지 않았다고 얘기했다.




자기의 점심을 뺏어먹는 까마귀를

보고도 행복해하는 빈센트를 보고,

뱃사공은 그가 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




화가가 되려했던 가셰박사의 질투를

고흐가 비난하자, 빈센트에게

테오가 병에 걸렸으며 빈센트 때문에

혹사당하고 있다고 실토.


이것이 빈센트 자살의 원인이 되었고

죽기 전 그의 상처를 돌보지 않은 것은

고흐가 테오에게 짐이 되고싶지 않다는

바람에 따른 것이라고.


박사는 이에 대한 죄책감을 갖고,

'바닥 인생이지만, 언젠가 자신이


마음에 무엇을 품고 있는지 모두에게

보여줄 것이다'라는 빈센트 편지를

아르망에게 보여줌.




마을 사람들이 다녔던 교회.




(Starry Starry Night )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 죠셉을 만난

아르망. 까만 밤 하늘에 빛나는 별과

같은 사람, 멀리서 바라볼 수 있지만,


다가갈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하고 나서야

비로서 다가갈 수 있는 곳으로

가버린 사람, 빈센트를 생각한다.


정신 이상된 빈센트를 따뜻한

사람으로 보여주는 영화,

그의 찬란한 색깔을 다시 한번 더

느껴볼 수 있게 한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