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37

난해한 시인 김수영(2013.8.11)

도봉산을 오를 때마다, 김수영(1921-1968)시인의 시비가 왜 여기 있지 했었는데-- 폭염 속에서 산행 대신, 그의 부인 김현경(1927-)의 에세이 '김수영의 연인'(책읽는 오두막, 2013)을 보고, 그의 팬이 되고 말았다. 그의 난해한 시도 그렇지만, 내가 좋아하는 박인환시인을 별로로 생각하는 시인이었기에 나도 별로로 생각했었다. 영원한 청년시인으로 불리는 그는 6.25 때 인민군의용군으로 끌려갔다가,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끌려가는 비운을 겪었다. 정전후 도봉산기슭에서 부부가 양계도 했고, 번역, 시작으로 생계를 이끌어 갔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 사물과 현실을 바로 보려는 그의 정신은 높히 평가받고 있다. 원고료를 타서는 문인들과 술한잔하며 다투기도 하다, 밤늦게 귀가하는 길, 버스에 부딪쳐 교통..

잡문 2017.08.16

주머니 애첩(2007.12.30)

애첩이 손을 낳으면 그처럼 좋은 일이 없다고 옛 남자들은 말했다지만, 그로 인해 정작 나라가 뒤바뀌어진 일이 한 두 번이던가. 정철과 진옥 사이는 살 송곳이니 살 풀무니 하며, 희희낙락하기도 했지만, 조강지처는 남편의 흰 머리를 뽑고, 첩은 검은 머리를 뽑는다고 했다. 그러나 요즈음 남자들이야 감히 첩을 둘 수 있겠는가. 나는 항시 주머니 애첩을 몸에서 떼어놓지를 않는다. 물론 집에 들어서면 멀리하지만, 필요하면 집에서 찾기도 한다. 애첩은 내가 무슨 노래를 좋아하는지를 알고 있고, 내 가족관계 등 인간관계는 물론 재산관계도 훤히 꿰고 있다. 심지어는 나의 조상들도 기억하고 있다. 용인 모현면 능골, 정몽주 선생 옆에 나란히 묻혀 있는 이석형 선생(1415-1477, 화헌집, 역대병요, 치평요람 등을 지..

잡문 2017.08.04

젊은 날의 흔적 (2004.1월 퇴직)

정년을 하면 잡동사니를 정리하는 일이 제일 큰 일 이라고 하였다. 나의 경우도 이들을 정리하는데 한 달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정리 중에 쾌쾌한 냄새가 나는 편지 한 보따리가 나왔다. 고교 졸업이후 결혼 전까지 내가 받은 편지류의 묶음인데, 말하자면 젊은 날의 흔적이다. 하나하나 읽다보니 편지를 쓴 주인공들의 모습과 함께 잃어버린 날들이 그리워진다. 굳이 받은 편지를 분류하여 보면, 대학 입학 후 서로의 근황을 전하는 글, 여행 또는 방학 중에 보낸 엽서와 글, 군 생활을 전하는 글, 그리고 화란에서 공부하던 시절에 받은 글들이 대부분이다. 그밖에 모임이나 행사를 알리는 통지 등도 있다. 편지를 보낸 사람들을 보면, 둘은 벌써 고인이 되었고, 전혀 연락두절 상태에 있는 사람이 절반이 넘는다. 만나고 있는..

잡문 2015.09.28

뒤척이는 아줌마, 흔드는 아저씨 (2012.9.5)

팔베개하고 잠시 잠들어 뒤척이고 있는 집사람을 보면, 집안의 평화를 느끼기도 하지만 미안한 느낌이 많이 든다. 요즈음은 심한 코골이까지 하니 더욱 그렇다. 이리저리 뒤척이며 옛날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꿈꾸고 있는지, 아니면 말 안 듣고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영감태기 때문에 꿈속에서도 지겨워하고 있지는 않는지. 집사람은 오천 석 대종가의 셋째 증손녀로 태어난 탓인지, 올바른 것을 따르는 편이고 융통성은 적지만, 마음 씀은 크고 너그러운 편이다. 그녀가 가장 행복하다고 느꼈던 시절은 초등학교 때라는데, 당시 면장을 하셨던 증조할아버지께서는 셋째 증손녀를 귀여워하시어 동네를 돌아보실 때는 그녀를 대동하시곤 하셨던 모양이었다. 그녀가 조그만 배를 내밀고 거드럭거리면 마을사람들은 그녀를 보고 “부반장 나으리, 어디..

잡문 2015.09.28

아줌마무리 중의 아저씨 (2012.3.9)

‘아줌마들 사진과 바람나다’라는 책이 나와 친구들이 책 속의 제 글과 사진을 보게 되면 뭐라고 할까요? “너도 아줌마냐? 혹시 늘그막에 그녀들과 바람난 것은 아니냐? 네가 아줌마가 아니라도 남자 체면은 어디 갔냐? 저런 난해한 녀석, 쯧쯧쯧”할 것입니다. 허나 책이 나오기까지 젊고 예쁜 두 여선생님, 열 두 세 명의 아줌마들과 같이 지낸 즐거움을 그들이 어찌 알겠습니까? 종종 그녀들과 식사한 후, 왼손은 왼쪽 옆구리에 대고 오른손으로는 커피 잔을 그득 실은 쟁반을 들고 오는 꾸부정한 저의 모습을 그들이 보았겠습니까? 성인이 될 때까지 저는 여자들 속에서 살았습니다. 어머니형제는 여자만 열둘이었으니까요. 저는 이종사촌 중 남자로선 제일 맏이였고, 공부도 잘 하고 착실해서 기대주였죠. 글쓰기를 좋아하게 된 ..

잡문 2015.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