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백마고지역에서 소이산, 노동당사로

난해 2023. 10. 5. 20:35

중간 기착지, 동두천역

10/2(월) 9시 도봉산역에서 입사동기 4명이 만나
철원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한 철원여행은 처음.
 
동두천까지 전철로, 다시 버스 타고
백마고지역(철원읍 대마리)으로.
 
이곳에서 소이산을 오르고 공산당사가 있는
철원문화역사공원(철원읍 사요리)에서 점심.
다시 평화누리자전거길로 백마고지역으로.
 
2만보를 걸었다.
다리가 뻐근.
 
 
 
 

동두천역에서 대기중인 경원선 열차중지 대체운송버스

경원선 동두천-연천 개통은 12월 예정인데
지금까지의 진행상황으론 언제 될지 모른다고.
 
옛날에는 신탄리역(연천군 신서면 대광리)이
경원선 종점.
 
 
 
 

버스는 만원.

타지못한 사람들은 1시간 후 다음 버스를 타야.
사고를 염려, 입석이 안된다는 버스.
서울시내버스는 입석이 되는데-
 
좋은 세상이 되었는지
불편한 세상이 되었는지.
 
지역민의 불편한 교통여건을 감안하여
버스요금은 500원.
 
 
 
 

버스는 전곡, 연천을 지났고

김장을 위한 파, 배추밭이 이어지고.
 
연천김치는 이름이 나있다.
임진강김치, 청산김치, 초성김치 등.
 
연천읍, 전곡읍의 인구는 8천, 19천 명.
(연천군 전체 42천 명, 경기도 최저)
전곡읍의 인구가 군청소재지의 두 배가 넘고.
 
 
 
 

고요에 쌓인 신탄리역

2012년 백마고지역이 영업을 개시 하기 전
이역에 내려,친구들과 고대산(832m)을
자주 찾았었다.
 
처음 이승부치과의원과 이산을 찾았었는데
2000년 훨씬 이전 일로 지뢰가 묻혀있었던 산.
고대산 장작불 오리고기가 명품.
 
겨울등산시에는 눈이 많이 쌓여 특별한 
재미가 있었고. 지탄친구는 부인을 비료포대에
태우고 급경사를 내려갔었다.
 
 
 
 

1시간 정도 걸려 백마고지역 도착

경원선 복원 당시 기존 철원역이 민통선 내부에 있어
민통선 밖 철원읍 대마리에 이역이 신설되었다.
 
백마고지-월정리간 구간은 기공식은 했으나
공사가 중단되었고.
 
2019년 전철화 공사로 열차운행 중단 중.
 
역 인근에 이태준(1904-1978)생가가 있다.
서울 성북동, 이태준고택은 수연산방이란
찻집으로 운영되고 있고.
 
이태준은 월북한 소설가.
 
 
 
 

백마고지역 앞에 있는 백마고지(395미터) 설명문

백마고지는 철원군 묘장면 산명리 위치.
가보아야 접근도 안되고 볼품도 없고,
 
전쟁전에는 눈여겨 보지 않던 무명고지.
6.25전선이 고착되면서 철의 삼각지 좌견부를
지키는 요지가 되었다.
 
전쟁중 포격에 의해 수목은 불탔고
그 형상이 누워있는 백마처럼 보였다고.
전투를 수행한 9보병사단의 부대애칭이 백마부대.
 
이고지에서 가장 치열한 고지쟁탈전이 전개.
김종호장군(1921-1966)이 이끄는 9사단과
중공군 3개 사단의 1952년 10월, 열흘간의 공방전.
 
중공군 1만명이 전사 또는 포로가 되었고 
아군의 피해는 3,400명 사상자.
 
 
 
 

우리가 걷는 중 우리를 따라오는 금학산(가운데 뾰족한 산, 947m)

과 고대산(오른쪽 길게 늘어진 산, 832m).
 
금학산(철원, 동송읍 이평리)은 학이 막 내려앉은
형상. 901년 궁예가 태봉국을 건국하여 철원도읍시
이산을 진산으로 하면 300년을 통치할 것이라
 
했으나 구철원의 고암산(김일성고지, 780m)을
진산으로 하여 태봉 18년에 쇠락하였다고.
 
고대산(연천군 신서면 대광리)은 연천군과
철원군의 경계를 이룬다.
 
두 산 모두 오르기 만만치 않은 산.
 
 
 
 

평화누리길이란 표시가 있는 길에 있는

정미소, 역시 강원도 제일의 곡창지대.
 
 
 
 

곧고 넓은 농로길을 따라

조생종 오대쌀을 선호하는 이곳.
수확이 오래 전 끝난 논엔 벼가 파랗게 자랐고.
 
 
 
 

오랜만에 본 돼지감자(뚱딴지)꽃

루드베키아꽃으로 착각.
국화과의 북미출신 귀화식물.
덩이줄기 여러해살이 식물.
 
돼지감자는 당뇨에 좋다고.
 
 
 
 

이젠 흔히 볼 수 있는 둥근잎 유홍초꽃

메꽃과 열대아메리카 원산,
덩굴성 한해살이풀.
 
 
 
 

갓 수확한 논도 있고

아직 수확 전인 논도 있고.
옛날엔 11월초에도 수확하지 않았나?
 
 
 
 

촌뜨기처럼 그려놓은 촌뜨기길

촌뜨기길은 이태준이 지은 단편소설.
소설 속 촌뜨기, 장군이가 걸은 길.
 
옛 철원경찰서에서 시작, 이태준 생가터를 거쳐
새우젖고개를 넘어 떡전거리가 종점.
 
일제강점기, 시골 산마을에 사는 촌뜨기, 장군이가
일제의 수탈과 문명의 발전에 쫓겨 삶의 터전을 
잃고 고향을 떠나는 과정을 담아낸 소설.
 
 
 
 

촌뜨기길(정중지와<井中之蛙>의 촌뜨기길 둘러보기)

화전, 숯굽기, 덫놓기가 어려워진 후
장군이는 방앗간을 시작했으나 완성되기도 전
발동기가 들어와 사업은 실패하고
 
아내는 친정으로 보내고 자신은 도시로 돈을
벌어 농사를 지을 밑천을 마련한다는 계획으로
마을사람들 배웅 하에 마을을 떠나는데
 
친정 가는 아내와 헤어지기 전, 읍내에서
이차떡(인절미)을 사먹인 후 이별한다.
 
이날 우리는 촌뜨기길의 많은 부분을
답사한 셈.
 
 
 
 

길가의 습지, 동식물 생태계의 보고

우리가 접근하니 야생오리들이 날라가고.
촌뜨기가 고향을 뜨기로 결심을 굳힌
웅덩이가 촌뜨기길 6번.
 
 
 
 

논으로 날아간 백로 무리

 
 
 
 

수확후 볏짚을 말아놓은

볏집 마시멜로(스폰지 형태의 폭신폭신한 사탕류).
아이들이 아니고 소가 먹는 마시멜로.
정식 명칭은 곤포 사일리지(Bale Silage, 
소전용김치).
 
미생물 첨가제를 활용, 혐기발효를 유도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다고.
한 덩이에 5-7 만 원.
 
 
 
 

길가의 큰 뽕나무

민통선내 구철원에도 제사공장이 있었다고.
 
철원은 6.25격전지, 군사분계선이 있는 곳.
 
내륙지역 유일한 용암대지.  54만년전에서
12만년 전(신생대 4기) 평강 680고지와
오리산에서 분출한 용암이 흘러내려 형성된.
 
읍이 넷, 철원, 갈말, 동송, 인구는 45천 명.
김화군은 전쟁후 1963년 읍으로 철원 편입.
삼국시대에는 철원군. 통일신라때 철성군.
 
1434년 세종때 경기도에서 강원으로.
 
 
 
 

새우젖고개를 향하여

철원의 동부는 산지, 중부는 평야, 서부는 구릉지대.
남쪽의 금학산, 명성산(923m)이 경기도와의 경계.
 
북한 평강고원에서 흘러온 한탄강이 중앙을 
남서로 흘러 임진강으로.
희귀조류, 어류가 많다.
 
 
 
 

현위치는 새우젖고개

고개를 넘어 수도국지, 소이산으로 향한다.
 
오른쪽으로는 삼국시대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동주산성, 철원향교, 도피안사가 위치.
 
철원향교(철원읍 월하리)는 고려태조때 창건.
왕건의 사저자리에 설립하였다 하기도.
2010년 현위치로 옮김.
 
최북단 위치 천년사찰, 도피안사(동송읍 관우리)는
865년(신라 경문왕 5)에 도선국사가 세움.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와 통일신라시대
3층석탑(보물)이 있다.
 
새우젖고개는 한강에서 임진, 한탄강유역을
배로 운반한 새우젖을 용담에서 철원읍장에
팔기 위해 가다 쉬어갔던 곳.
 
 
 
 

새우젖고개를 넘어 수도국터로

1936년 세워진 강원도 최초 상수도시설.
당시 급수시설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곳이며
분단과 전쟁의 아픔을 증언하는 시설.
 
한국전쟁당시 이지역을 점거했던
북한군이 북쪽으로 도주하며, 노동당사, 내무서에
붙잡아둔 친일, 반공사상가를 포함 300명을
이곳에서 총살하거나 저수조에 생매장.
 
일제강점기의 철원은 일제의 물자와 보급을 위한
경원선, 도로가 발달, 교통의 요지였고
금강산유람의 거점. 화신백화점이 위치할 정도.
 
그런만큼 상수도시설이 일찍 건설되었고.
 
 
 
 

참깨는 수확이 끝났고

수확을 기다리는 들깨.
 
 
 
 

참깨와 들깨

깻잎을 먹는 것은 들깨.
 
 
 
 

참깨와 들깨

육안으로 구분이 쉽고.
 
참깨는 인도, 아프리카 원산의 참깻과의 한해살이풀,
들깨는 동남아원산 꿀풀과의 한해살이풀.
 
들깨보다 참깨가 키가 크다
참깨는 불포화지방이 풍부, 필수미네랄공급원.
들깨는 오메가지방산 함량이 높고 필수 영양소를
포함 균형식단에 중요첨가물.
 
참기름은  고소한 맛에 상징적 가치와 영양가로
고기, 샐러드, 떡에 사용하고
 
들기름은 조미료, 튀김에 사용하고
된장, 비빔밥, 순대국 등 전통요리에 사용하나
맛, 향이 강하고 산패가 쉬움.
 
과거보다 들깨의 선호도가 높아 그만큼
가격도 높은 편.
(사진과 글, Sunne's story 참조)
 
 
 
 

드디어 소이산(所伊山, 362.3m)오르는 길로 접어들었고.

왜 소이산인지 불분명. 그냥 저기 저산이 아닐까.
철원읍 사요리소재.
 
 60년간 통행금지되었던 산.
지뢰밭이 지킨 평화의 숲이라 할까.
 
덕분에 생태계가 잘 보존되고 아카시아, 포플러가 
많은 산. 아카시아는 척박한 땅에 잘 자라나, 수풀이
우거져 햇볕이 부족하면 절로 세가 약해진다고.
 
고려시대부터 함경도 경흥과 서울을 연결하는
봉수대가 있었고.
 
 
 
 

곤충아파트도 있고

소이산은 철원평야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산이며 한국전쟁 이전 화려했던 구철원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산이기도.
 
철원평야 논바닥에 떠있는 작은 섬.
 
 
 
 

소이산전망대는 나중에 가기로 하고

소이산 정상으로.
 
 
 
 

레이더기지였을 때의 옛미군막사

발칸포기지, 레이더기지가  소이산에 있었다.
지금은  한국군이 사용하다 미사용중인 군사기지.
 
 
 
 

지질공원 탐방안내소를

잠간 들렸고.
철의 삼각지 전투를 살펴보았으며
 
 
 
 

철의 삼각지

김화, 철원, 평강을 잇는 지도상의 개념으로
6.25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
 
1951. 6월 소련이 휴전협상을 제의, 전쟁은
교착상태로 들어섰고, 남북한은 최대한의 영토를
탈환하려고 전투는 계속되었고,
철의 삼각지는 전략요충지.
 
1951. 8월 이후 북한은 중공과 함께 피의 능선,
백마고지, 저격능선 등에 집중적 대공세를 폈다.
그결과 가장 많은 사상자 발생.
 
1953. 7월까지 전쟁은 계속되었고
7.27. 휴전협정.
결국 김화, 철원은 남한, 평강은 이북으로.
 
 
 
 

피의 능선 전투는 1951. 8. 17-9. 3.

백마고지 전투는 1952.10. 6-15.
저격능선 전투는 1952. 10.14-11.24. 기간동안에
벌어졌다. 백마고지 전투와 함께 6.25. 2대 격전지.
 
 
 
 

드디어 소이산 정상 도착

 
 
 
 

립싱크단은 넬라 판타지아를 부르고 있었고

 
'나의 환상 속에서 난 올바른 세상이 보입니다
그곳에선 누구나 평화롭고 정직하게 살아갑니다
 
나의 환상 속에서 난 밝은 세상이 보입니다
그 곳은 밤에도 어둡지 않습니다
 
나의 환상속에서 따뜻한 바람이 붑니다
그 바람은 친구처럼 도시로 불어옵니다
 
난 영혼이 늘 자유롭기를 꿈꿉니다
저기 떠다니는 구름처럼요
영혼 깊이 인간애 가득한 그 곳'
(영국가수 사라 브라이트만 <1960->이 부른 곡)
 
 
10월의 파란 하늘에 구름이 떠다니고 있었지만
소리가 너무 커 공해 수준.
 
 
 
 

좌로부터 우로 구철원을 조망하기 시작

가운데 산의 중간 건물이 보이는 곳이 백마고지.
왼쪽에 있는 큰 동네가 철원읍 대마리.
 
1967년 국가정책으로 제대군인들을 민통선 
북방 대마리에 입주시켜 개간을 유도했으나
원소유자와의 분쟁이 잦다고.
 
 
 
 

철원 출신 정춘근시인(1960-)의 시집,

지뢰꽃마을 대마리.
 
 
'월하리를 지나 대마리를 가는 길
철조망 지뢰밭에는 가을꽃이 피고 있다
 
지천으로 흔한 지뢰를 지긋이 밟고
제 이념에 맞는 얼굴로 피고 지는 이름 없는 꽃
 
꺽으면 발밑에
뇌관이 일시에 터져 화약 냄새를 풍길 것 같은 꽃들
 
저꽃의 씨앗들은 어떤 지뢰 위에서 뿌리를 내리고
가시철망에 찢긴 가슴으로 꽃을 피워야 하는 걸까
 
흘깃 스쳐 가는 병사들 몸에서도 꽃 냄새가 난다'
(정춘근의 '지뢰꽃')
 
 
 
 

남방한계선에 걸쳐있는 호수, 신명호

수확이 안 끝난 논도 상당했다.
출입영농이 가능.
아침에 농사지으러 갔다가 해지기전
나와야(민통선 출입통제).
 
왼쪽 뾰족한 산이 김일성고지(고남산, 780m).
궁예가 태봉의 진산으로 삼은 산.
 
철원평야 뒤의 산줄기 너머가 이북의 평강고원.
 
 
 
 

구철원, 과거 철원의 중심지

철원역, 얼음창고, 농산물검사소, 금융조합터, 
월정리역(철원읍 홍원리) 등이 있다.
 
 
 
 

맨 오른쪽 아래가 보수중인 노동당사

 
 
 
 

구철원을 뒤로 하고 사진 한장

입사 사인방 오랜만의 외출.
 
 
 
 

6사단 청성부대(푸른별부대) 마크

1948년 창설되어 초창기 편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춘천방어, 용문산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올렸고.
 
가장 먼저 압록강 진격을 했고
제2땅굴(철원 동송읍 이길리)을 발견한 부대.
 
 
 
 

소이산을 오른 아이들

씩씩했고.
 
 
 
 

소이산에서 본 금학산과 고대산

뒤쪽의 희미하게 보이는 산.
이들산 정상에선 철원쪽이 잘 보인다.
 
 
 
 

추수전의 철원평야

이지역의 현무암이 흙으로 변할 때
땅을 비옥하게 만든다고.
그래서 이지역의 쌀은 밥맛이 좋다고.
 
 
 
 

철원평야를 찾아오는 두루미와 독수리

독수리는 몽골에서 찾아오는 겨울철새.
매년 수천마리의 철새가 찾아온다고,
이곳의 겨울에도 얼지않는 샘통의 물 때문?
과장이 아닐까?
 
 
 
 

소이산에서 내려다본 두루미

소이산을 처음 오른 것은 2021. 2.23.
7명의 친구들과 철원지질해설사 노여사의
안내로 이곳을 올랐었고 물 윗길 트래킹을 했다.
 
이때 두루미 사진을 찍고 있던 이태곤선생
(철원 거주 시인이며 소설가)을 만났고
덕분에 이 사진을 전송받았다.
 
두루미는 천연기념물로 학이라고 알려진 철새.
머리 꼭대기가 붉으며 목, 꼬리 등은 검은색.
 
시베리아, 북해도 등에서 번식하다 남하,
10월 하순-3월 하순까지 철원 등에서 월동.
이들도 오대미를 먹을 게다.
 
번식집단 9백여 개체의 45%가
우리나라에서 월동하는 귀한 새.
 
 
 
 

편한 목책길로 하산

뒤의 건물은 모노레일 소이산 종점.
 
 
 
 

숨가쁘게 올라오는 모노레일

아이, 숨차!!
 
2022년 7월 영업을 시작한 모노레일,
이용객이 10만을 넘겼고 1년 목표가 15만.
소이산하면 사람들은 모노레일을 얘기한다.
 
2022. 7월부터 23. 6월까지 이용객이 10만 명.
문화역사공원 방문객이 35만 명.
 
 
 
 

모노레일 설치와 함께 문을 연 철원역사문화공원

철원읍 사요리 소재.
 
철원군청 기획력이 있다.
물윗길 트래킹, 잔도 설치 등
 
 
 
 

원철원에 있었던 시설을 모방, 공원에 설치

금융조합은 농협은행의 시발점.
ATM도 설치해 놓고.
 
 
 
 

역사문화공원 한편에 있는 노동당사는 보수중

그을리고 총탄자국이 있는 노동당사는
1946년 완공하여 6.25전쟁전까지
북한의 노동당사.
 
역사문화공원(철원읍 사요리) 바로 옆에 있는
노동당사는 철원읍 관전리.
 
 
 
 
 

추석연휴라 그런지 많은 관광객들

시골장터 분위기.
 
 
 
 

번데기를 삶고 있고

내가 좋아하는 수수부꾸미는 벌써 다 팔렸다고.
 
 
 
 

이곳의 유일한 식당, 역전식당

손님이 주인 눈치를 보아야,
손님이 넘치니.
 
 
 
 

철원오대미막걸리+소고기우거지탕

처음 먹는 오대미막걸리, 
맛이 좋아 세 병을 후딱 해치웠고.
촌길을 걷기엔 적당히 취했다.
 
 
 
 

식당 앞 꽃들도 있고

가을엔 역시 국화.
 
 
 
 

시간이 부족해

복고다방에서 커피 한 잔하며
레지의 손목 한번 못잡아본 것이 아쉬웠고.
 
 
 
 

풍물패 등장

늙수구레한 패거리가 아니고 젊음이 넘쳤다.
3시반부터 시작한다니 아쉬웠고.
 
한편에 철원역도 복원해 놓았다.
 
 
 
 

극장에선 아리랑 상영 중

진짜로 옛날식으로 아리랑을 상영한다면,
그렇지 않으면 옛날 필름을 구해 보여준다면
대박이 아닐까.
 
 
 
 

모노레일은 쉴 사이 없이 움직이고

왕복운행이라 소이산종점에선 탈 수 없다.
우리는 모노레일길 따라 다시 소이산으로.
 
 
 
 

소이산둘레길(지뢰꽃길)

이날 우리는 소이산둘레길 일부를 포함
10km는 족히 걸은 셈.
 
 
 
 

우리는 다시 소이산입구로

그림자는 길어지기 시작,
추분 지난지가 한참이나 된 듯.
 
 
 
 

소이산입구로 다시 와서

한갓진 길로.
온 길을 다시 걷는 것은 우리 입맛에 안맞고.
 
 
 
 

돌아가는 길도 들깨 세상

들깨값이 비싼 이유 중의 하나는
값싼 중국산 참깨가 대량 유입되는 까닭도 있다.
그러니 참깨 재배면적도 줄어들고.
 
 
 
 

나그네 그림자도 길어지고

사람없는 시골길 걷기는 오랜만.
옛날 고향길을 걷는 것같기도 하고.
 
 
 
 

가평역전에서 본 조가

이곳에도 심어져 있었고.
요즈음에도 충북지방에 수수가 재배되고 있을까.
 
 
 
 

고대산은 하루 종일 우리를 따라다녔고

고대산 등산을 마치고 신탄리역에서 기차로
귀경중, 타계한 이상갑친구가 배를 깍아 옆에 앉은
여자들에게도 나누어줬는데,
 
우연히도 그녀들의 고향이 친구와 같은 예산.
한 동안 그녀들과 산행도 했고
고스톱도 같이 쳤었다.
 
 
 
 

지뢰밭을 지났다

정춘근시인의 지뢰꽃 마을, 대마리를
다시 읊조려 보았다.
 
'철조망 지뢰밭에는 
가을꽃이 피고 있다'
 
가을꽃을 찾아볼 것을-
그나마나 우리는 대마리로 들어섰겠지.
 
 
 
 

그러고보니 우리는 평화누리 자전거길을 걷고 있었고

인적이 없는 길을 우리만 걷고 있다.
한적하기 그지없고.
 
김소현친구 심심한지
삼팔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김재원친구 따라부르기 시작.
 
 
 
 

친환경 재배농지에는 볏짚 마시메로가 없고

논으로 환원되고 있었다.
 
 
 
 

오랜만에 본 풍성한 코스모스 무리

멕시코 원산 국화과 1년초.
 
 
'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걸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김동규, 1965-,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소이산에서 돌아오는 길

 
 
 
 

통일을 염원하는 평화누리길

이날 우리가 걸은 것은 좌측 극히 일부분.
 
이제부터다, 평화누리길 걷기.
복주산 자연휴양림에서 머물기도 해보고.
 
 
 
 

백마고지역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

신탄리역, 드리워지는 어둠에 쓸쓸해 보였지만
지나가는 집의 벽화, 우리의 마음을 밝게 했다.
 
친구들, 덕분에 멋진 하루였소.
고맙소, 특히 김재원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