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인을 짝사랑하는 태백성
유월 중순, 우리는 작년 겨울 약속한대로, 물고기 잡이 여행을 나섰다. 어렸을 때, 고향 냇가에서 고기 잡던 추억이 없던 친구는 몇이 될까? 그때는 중랑천, 벌리(지금의 지명은 번동)도 고향의 냇가와 다름이 없었으니까. 생각해보면 옛날 삼촌의 견지 바늘에 걸린 무지개 빛깔 피라미의 몸놀림은 황홀함 그 자체였다.
여주 천서리 막국수를 맛보고, 속초 동명 항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일곱 시 반이 되었다. 잔챙이 물고기, 멍게, 성게 등을 오 만원 어치 샀는데,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생선가게 앞집에서는 양념 값 이외 할복비라는 명목으로 고기값의 10%를 더 받았고, 매운탕은 오도바이로 따로 배달이 되어, 별도의 비용을 청구했다. 고도의 서비스 사회였다.
소주 한잔하며 서쪽하늘 바라보니, 초승달과 금성이 선명히 떠 있었다. 초승달 눈썹의 미인을 짝사랑하는 태백성의 눈빛도 만만치 않았다. 바쁘게 산 것도 아닌데, 관찰력이 부족하여서인지 달과 금성이 같이 있는 것을 처음으로 본 것 같았다. 여름이 점점 진하여 감에 따라, 여름 밤하늘도 파랗게 보임은 쾌청한 대기 탓이리라. 금성은 일출 전 동쪽하늘에, 일몰 후 서쪽하늘에 볼 수 있는데, 새벽에 보이는 것은 샛별, 저녁에 보이는 것은 태백성이라고 한다.
바람 부는 어두운 방파제를 거닐다보니, 친구들과 함께 하던 약수여행 때인가, 설악산 산행 때인가, 소주 만취되어 갯바위를 부르면서 한사모 회장임을 자처하며 바다로 뛰어들었다는 옛날이 그리워졌다.
열시 넘어 하조대 정형 별장에 도착하여, 심미안 노래방을 찾았다. 이번 여행에는 이형, 전형 외에, 정형의 친구 김형이 고기잡이 고수로 초대되었다. 그는 라이브 카페에 심취되어 있는 친구로, 속초카페의 유명한 가수 한 명을 심미안에 초대하였다. 노래로만 아는 사인지라, 김형도 얼굴을 처음 본다고 했다. 우리는 그가 속초의 미인가수를 대동하고 오는 것은 아닌지 하고 기대를 했었다.
속초 가수는 배호의 노래를 몇 곡 뽑았는데, 진짜 가수 못지않았다. 정형의 노래 솜씨 또한 일취월장하여, ‘ Help me make it through the night.’를 멋지게 불렀다. 마나님과 떨어진지 하루인데, 홀로 밤을 지낼 수 없다고?
자정 다되어 심미안을 나오니, 소쩍새 소리 구슬펐다. 전형의 입담이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밥 굶어 죽은 며느리, ‘솥 적다, 솥 적다,’하며 흐느낀다고. 잠자리에 들어서는, 철부지 소년들은 내일 고기를 잡으면 튀김을 할까 매운탕을 끓일까, 그러려면 무엇을 준비할까하고 잠을 못 이루었다.
2. 생태계가 회복된 어성전(漁城田)
일곱 시 넘어 우리는 출어하였다. 당초 계획하였던 곳은 양양 송천리 떡 마을 지나, 공수전 계곡이었으나, 게으름이 도져, 가까운 어성전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물소리 요란한 어성전 입구의 넓적한 보(洑)에 자리를 잡았다.
고기잡이 고수 김형은 보 위에, 나는 나대로 보 아래 여울에 어항을 놓고, 뜨거워만 가는 태양을 피해 둑 그늘에 누우니, 보의 물소리는 폭포처럼 요란했다. 그늘은 자꾸 적어지고, 여울 쪽에 놓은 어항에 물고기가 들기 시작하자, 우리의 맘과 몸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한 번에 열 마리 이상 들어가기도 하고, 손바닥만 하고 금붕어처럼 금빛 찬란한 수 피라미(불거지)가 펄떡 뛰었을 땐 우리들은 동심으로 돌아가 반바지가 젖는 줄도 몰랐다. 무지개 빛깔 불거지는 많이 보았지만 금빛 불거지는 처음이었다. 왕족인가?
유월 낮의 태양이 작열하자, 우리들은 열기를 참지 못하고, 잡은 고기 정리하여 별장으로 철수하였다. 오는 길, 한재 샘터의 시원한 물맛의 시원함이란. 생각해보니 풍수해로 큰 고난을 겪었던 어성전이 이제는 서서히 생명을 찾아가는 것 같았다.
민물 매운탕, 그 시원하고 신선한 맛은 우리의 싱그러운 유월을 빛나게 해주었고, 이어 우리를 한낮의 꿈속으로 인도했다. 자면서 햇볕에 구워진 발잔등과 종아리의 쓰라림 때문에 몇 번이나 깨었는지. 저녁으로 선택한 갈비탕은 하조대 해수욕장의 분위기와는 엇박자였지만, 여주인의 행복 가득한 얼굴이 조미료 역할을 했는지, 꿀잠의 효과인지, 꿀맛이었다.
3. 불바라기 약수에는 황룡과 청룡이 노닐고
매실 나물을 주 메뉴로 한 아침식사 후 주문진 어항에 들리니 유월은 싱싱한 학꽁치의 계절이었다. 단돈 만원에 꽁치가 50마리, 딴 친구들은 어느 여자가 그것을 손질하느냐고 외면했지만, 나는 위험을 감수하고 구매를 하였다.
언제나 그러듯이 송천리 떡마을에서 비싼 떡 사가지고, 우리가 당초 어장으로 점지하였던 공수전 상류 계곡을 답사하였더니, 아름드리 소나무들 꿋꿋하고, 6월의 푸름을 과시하는 것 같았다.
이어 양양 서면 미천골을 들렸다. 언젠가 우리들이 이곳에 일박하며 수영군 친구, 양양 양수발전소 소장이 보내준 회 맛에 빠져, 밤이 가는 줄 몰랐던 일이 기억났다. 내친 김에 불바라기약수 하이킹 코스(편도 4.8키로)를 답사하기로 했다. 여름 하늘은 그리움에 가득 차 잿빛이었지만, 바람은 솔솔 불고, 임도 곳곳에는 제멋대로 자란 산뽕나무가 검붉은 오디열매를 드리우고 있었다. 오디 따먹으며 밋밋한 길을 한참이나 오르니 황색의 약수터 쪽은 황룡폭포이고, 오른쪽은 청룡폭포라고 하던가. 송천 떡과 김밥으로 요기를 했다.
미천골 주차장에서 족탁으로 물을 흐린 후, 다시 차를 달려, 계방산 뒤 홍천 을수골 칡소에서 노니는 열목어를 구경하니, 종전에 들렸었던 쉼터에서 민물고기 팔던 주인이 뒤따라 왔다. 우리에게서 어부 냄새가 나던지, 그만 알고 있던 어장을 우리가 약탈당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는가보다.
우리나라 십생지(전쟁이 나도 살아남을 수 있는 열 곳의 생활 터)의 하나인 홍천 살둔산장과 인제 상남 미산동천을 을 거처, 출발할 때 들렸던 천서리 막국수 집에서 우리는 이별주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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