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도드람산에서 세 돼지가 울다(2007.5.23)

난해 2015. 9. 28. 16:07


  오월 네 번째 목요산행은 석가탄일을 피해, 수요일 날 이천에 있는 도드람산을 올랐다. 이천의 지형 군도 함께 함도 기쁨이요, 또한 그의 집에서 가든파티를 함도 더없는 즐거움이기 때문에 목적지를 그곳으로 하였다.


  도드람산은 높지는 않지만(349미터), 바위능선을 타기가 아기자기한 산이다. 옛적에 이곳 암자의 스님이 밧줄을 타고 석이버섯을 따던 중에, 웬 돼지 우는 소리가 들려 주위를 살펴보니, 밧줄이 끊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돼지 울음이 스님의 목숨을 구했기에 산 이름이 도드람산 (돗울음의 변형, 일명 저명산)이다. 첨언하면, 이천 도드람 양돈조합에서 생산되는 돼지고기 맛은 가히 일품이다.


  재혁 군, 지형 군, 그리고 상갑대장과 산 입구를 찾으려니, 입구는 땅 주인이 심통을 부려, 땅을 온통 파헤쳐놓아 엉망이었다. 그리고 출입금지 현수막이 여기저기 걸려 있었다. 하이닉스 공장 증설문제로 시끌시끌한 이천은, 공수부대 이전 문제로 또 한창 전쟁 중이었다. 왕년의 이천 왕초, 이 정재의 기를 당국이 잘 모르는 모양이다.


  열한 시 넘어, 흐린 날씨에 가파른 산길을 오르려니, 땀이 범벅인데다, 달려드는 날파리에 몸에 떨어지는 벌레 새끼들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들려오는 검은등뻐꾸기의 울음소리조차 싫어졌다. 일봉에서 삼봉까지 오른 뒤, 드디어 정상(사봉)에 올랐다. 딸내미 결혼을 앞둔 재혁 군은 바위 타는 것도 피해가며, 몸조심했다.


  정상에서 간식을 먹는데, 온통 작은 벌레 천지이고, 옷에 붙은 벌레를 띠어내도 어느새 여러 마리가 또 붙어 있다. 그러고 보니, 녹음이 우거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연하고 먹기 좋은 나뭇잎의 성장에 맞추어 부화된 곤충들의 지혜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겠지. 그리고 벌레가 많다는 것은 그래도 이곳 자연이 자연다운 까닭이겠지.


  반대편 돼지 굴 쪽 철사다리를 타고 효자샘을 거쳐 하산하니, 입구의 산딸나무가 예쁜 잎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정상에서는 시끄러웠던 고속도로 위 차 소리들이 조용해졌다. 두 시간의 산행을 마치고, 우리는 지형 군의 농장으로 향했다.


  농장에는 야생화들이 한창 꽃을 피우고 있었고, 지형 군의 부인은 그중 제일 큰 꽃 한 송이였다. 빨간 인동 꽃은 처음 보았고, 그 밖의 금낭화, 노루귀, 매발톱, 화살나무 등 해마다 종류가 늘어난다. 앞 원적산에서는 꾀꼬리, 새매, 산비둘기 등이 울고 있었다. 정원의 잔디 위에는 테이블 두개에, 의자가 열 서너 개 놓여져 있었다. 지형 군이 하루 전 닭 다섯 마리를 손수 준비했다고 했다. 요즈음 닭이 많아도, 잡을 줄 모르는 사람이 많다던데. 닭 감자탕, 빈대떡, 쑥떡이 나오고, 지형 군 친구가 회갑 선물로 가져온 맑은 빛깔의 인삼주(미삼으로 담근) 한 항아리가 나왔다.


  지형 군 부인께서 맛없다던 감자탕은 왜 그리 맛있는지. 술맛은 왜 그리 깨끗한지. 한 잔 두 잔하니, 지형 군 부친께서 아드님 회갑을 맞이해 백만 원을 내놓으셨다는 얘기, 지형 군 옛날 아버지한테 매 맞던 얘기, 재혁 군 아버지와 처음으로 양주 까던 얘기 등 하다가___

재혁 군 한말 또 하고, 또 하기 시작했다. 결혼식을 앞두고 허탈해선가, 술이 약해져서인가.


  나는 빈 테이블, 빈 의자, 남은 음식을 보니, 지형 군 부인에게 미안스러운 감정이 더해갔다. 전 일요일 광교산에서 상갑대장이 도드람산 산행 계획을 분명히 공고를 하였는데. 친구들아, 곧 조금 있으면 친구들 부르려 해도, 부를 이 없을 때가 올 것이네. 그때는 혼자 술 마시며, 저 의자 위에는 봉주가 앉아 있었고, 저 의자 위에는 병기가 앉아 있었고 할 터인데. 지형 군 부인 닭백숙 가져온다는 것을, 배부른 우리들 말리느라 혼났다.


  상갑대장은 이천에 사는 대광 3년 후배이며 산(山)동지인, 서 권석 군한테 전화를 하더니, 지형 군에게 소개를 해준다며 농장으로 불렀다. 후배는 이천 토박이이며 땅부자인데, 현재 렌트카 사업을 하고 있다. 그가 오는 사이에 우리는 술이 얼근하게 올라, 용문, 지탄 군이며, 재혁 군의 부인에게 전화를 해대었다.


  서 후배는 시원스러운 친구였다. 우리들의 술 취하여 하는 얘기 다 받아주고, 반가운 표시를 몇 번이나 했다. 상갑대장은 좋은 후배를 두었다. 그러다보니, 재혁 군, 대장, 서 후배 모두 동대 동문이란다. 인연은 모진 것이다.


서 후배의 차를 타고, 버스터미널에서 그가 끊어준 차표로 서울로 오면서, 따뜻한 정을 느꼈다. 옛날 시골가면 차표며 용돈 쥐어주시던 큰 아버님 생각이 났다. 그러나마나, 정해년 도드람산에서 왜 돼지 세 마리만 울었는지 아는가, 그대들. ( 2007. 5.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