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콜로라도를 거슬러 올라2(데스벨리)

난해 2017. 8. 20. 19:19

 

   

  2. 형형색색(形形色色)인 사막의 골짜기, 데스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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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나야 호수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데스벨리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  400키로.

멋진 설산이 우리를 안내했다.

 

네바다는 스페인어로 눈이 뒤덮인 곳이라는 뜻이니

보이는 설산은 네바다에 속할지도 모르겠다.

 

 

 

 

 

 

 

요세미티, 데스벨리 국립공원은 모두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명소.

캘리포니아 주가 미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인구는 39백만 명으로 미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주이고,

면적으로는 3위이며 한국의 네 배가 넘는다.

 

와이, 알래스카 다음으로 늦게 미국의 영토가 되었는데,

1848년 멕시코로부터 양여를 받아 미국 땅이 되었다

1776년 독립 당시 영토를 동부 13주로 보면,

캘리포니아는 미국에겐  큰 복 덩어리.

 

 

 

데스벨리 국립공원(Death Valley National Park)

캘리포니아주 남동부의 아마르고사 산맥과

페너민트 산맥 사이에 끼어있는 사막.

공원의 일부는 네바다 주에 속해 있다.

 

죽음의 계곡(Death Valley)2억 년까지 바다 밑.

여러 차례 지각의 변화를 거쳐 현재의 형태를 갖춘 것은

35백만 년 전에서 5백만 년 전.

계곡의 내부는 물이 고여 호수의 형태였는데,

9천 년 전부터 5천 년 전 사이에 물이 말라

메마른 땅으로 변했다.

 

 

 

지나는 길에 마호가니로 구운 고기집이 보였다.

저녁때도 가까워오고 고급목재로 구운 고기는

얼마나 맛이 있을까 침을 흘렸는데, 미국에도

나무의 결이 아름다운 마호가니가 자라고 있다.

 

 

 

 

 

 

 

 

데스벨리 서쪽입구를 통과한 후 계곡을 지날 때는 

 

인적도 차량도 없는 황량한 어둠 속 벌판이었는데

훠니스 크리크(Furnace Creek)에 있는 캠핑장에는

어둠 속에 유령처럼 파킹되어있는 차량이

얼마나 많았던지.

 

우리나라 같으면 왁자지껄 했을 캠핑장이

조용하게 어둠 속에 파묻혀 있었다.

우리도 어둠 속에서 소근 거리며 저녁준비를 했다.

 

훠니스 크리크는 공원의 서쪽 입구를 통과한 후,

스토브파이프 웰(Stovepipe Wells)빌리지를 지나.

이공원의 허리를 지나는 190번 도로 상의

동쪽에 있는 역사적 장소이다

붕사공장의 용광로(Furnace)가 이글거렸고,

데스벨리가 국립공원으로 탈바꿈하게끔

동기를 부여한 곳이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세 사람은

 

늦은 저녁 식사를 허둥지둥 마치고,

사막의 별을 찍는다고 삼각대를 피는 등 수선을 피웠다.

 

마침 화장실을 찾아가는 주대감의 모습을 보았는데,

화장실의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선글라스 때문인지, 잠결이어서 그런지.

 

 

그러고 보면 마지막으로 캠핑을 한 것은 아득한 옛날 일.

중일때 난생처음으로 청평의 대성리로 캠핑을 떠났는데,

지금 제기역 자리인 성동역에서 간신히 기차를 타고,

팔에 껴안은 꽁치 통조림이 떨어질까 조바심했었다

대성리에서는 그곳에 시는 우리 또래 아이들한테

둘러싸여 혼 줄이 났었다. .

 

고등학교 때는 효영이라는 친구와 둘이서

용인에서 여러 번 텐트를 쳤었다.

개구리를 잡아 짓이겨서 개울 바위틈 사이에 넣으면

큰 가재가 덥석 물고는 했었고, 텐트 주위에는

알밤이 떨어지는 소리가 툭 툭 들렸었다.

그림 그리기 좋아했던 친구는 석고성모상을

만들어 팔았다는데, 지금은 저 세상 사람이다.

 

대학교 때는 무거운 군용 삼각배낭과 텐트를

짊어지고 비교적 높은 산을 다녔다.

한번은 백담사 내설악으로 해서 대청을 올랐었다.

하산하여 속초항에서 얼쩡대다 고깃배에서

하역작업 중이었던 손수레와 부딪쳐

명태 세례를 받았었다.

바지엔 한동안 비린내가 진동했었고.

 

그 이후로는 사회생활에 쫓기다보니

텐트를 치고 자본 기억이 별로 없는 것 같다.

 

 

 

 

108, 처음 경험하는 사막의 아침은 아름답고 상쾌했다.

하늘에는 파란 색과 연한 갈색이 제멋대로 요술을 부리고.

 

 

 

 

 

 

 

데스벨리공원은 모하비사막 북쪽의 일부분이다.

 

여기서 사막이란 보통 305미터(1천 피트) 정도 고지대에

연 평균 강수량이 250미리 이하이고,

산과 숲, 대초원과 모래벌판으로 이루어진 곳을 말한다

인적이 드물고 종려나무로 둘러싸이고 온통 모래뿐인

사하라 사막 등과는 그 의미가 틀리다.

 

모하비는 모하비인디언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지만,

넓이는 57천 평방키로 미터, 남한의 절반 보다 크다.

캘리포니아주 동부를 남으로 달리는 시에라네바다 산맥,

로스앤젤레스를 둘러싸고 있는 샌가브리엘 산맥

그리고 샌베르나디노 산맥에 둘러싸인 산악 분지이다.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네바다, 애리조나, 유타 주에 걸친.

 

라스베이거스는 모하비사막 가운데 있는 도시이고,

지금은 폐광촌이지만 갤리코 은광 촌도 이곳에 있듯이

모하비사막은 철, , , 중석 등 지하자원이 풍부하.

사막 지하에는 영혼의 강,

 

 

 

 

 

모하비강이 흐르고 있다. 바다로 흐르지 않는 강이다.

 

 

당시 사막의 광산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독사에 물려 죽거나 다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막의 원주민에게는 파란색이 뱀을 쫓는 영험한

힘이 있다는 민간신앙이 있었는데,

리바이(Levi Strauss)는 이를 이용하여

누런 천막 천에 푸른색을 물들이고 청바지를

만들어 팔아 공전의 히트를 쳤다.

 

 

 

 

 

 

 

여섯시의 아침식사는 해물국수.

 

왜 그렇게 음식이 맛있었는지

방문했던 곳의 매력에 푹 빠졌던 모양이다.

 

주위를 돌아보니 이른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길 떠난 차량이 많았고 주위는 썰렁했다.

 

 

 

 

 

 

 

이곳의 강우량은 40미리 내외이고,

 

여름철 평균기온이 45도를 넘지만,

봄에는 화려한 야생화 천국이고,

가을에서 봄 사이에는 기후가 쾌적하여

피한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한번 찾으면 그 매력에 빠져 다시 찾는 국립공원이다.

 

 

 

 

 

 

 

데스벨리공원의  면적은 경기도의 10분의 8.

알래스카를 빼고는 북미에서 가장 큰 국립공원이다.

미국사람들은 데스벨리공원을 가장 덥고, 건조하며,

낮은 곳으로(Hottest, Driest, Lowest) 표현하고 있다.

 

 

 

 

 

 

 

훠니스 크리크에 있는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화장실 청소를 하고는 어제 어둠 속에서 왔던 길을

거꾸로 달리니 비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모래뿐인 사막과는 달리 다양한 색들의 퍼레이드가 계속되었다.

 

 

 생떽쥐베리(Saint Exupery, 1900-1944)

어린 왕자가 연상되는 사막.

 

 

 

 

 

 

 

멀리는 새파란 강물이 흐르고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파란 부분은 실제로는 빛의 조화로 생긴 음영이라고.

건조한 대기에 하늘이 반사되어 환상을 만들어 낸다.

 

 

 

 

 

 

 

시원하게 뚫린 도로의 양 옆에는 짚단을 낮게

 

쌓아놓은 모양의 관목들이 나타났다.

악마의 옥수수 밭(Devil's Cornfield).

 

 

스토브파이프 웰 빌리지(Stovepipe Wells Village)

못 미쳐 메스퀴테 모래사막(Mesquite Sand Dunes) 도착.

이곳의 일출 일몰이 무척이나 장엄하다고.

 

데스벨리 공원에서 모래언덕이 차지하는 것은 1% 미만.

모래언덕(Sand Dune)이 생성되려면

모래의 원료, 바람, 그리고 집적 장소가 있어야 되는데,

메스퀴테 사막의 원료는 사막의 남쪽에 있는

터키산(Tucki Mountain)에서 날라 온다고 한다.

 

 

 

 

 

 

 

 

막에는 죽은 메스퀴테(Mesquite)나무가 널브러져 있고,

 

살아있는 조그만 나무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물론 사막의 이름도 이 나무에서 왔고.

이 나무들은 콩과에 속해 있는 식물로 보기와는

달리 50미터 넘게 깊게 뿌리를 내리지만,

높이는 2-3미터 정도 밖에 안 자란다.

수명은 놀랍게도 200년 이상이나 되는데, 이들은

야생의 동물들이 거주할 수 있는 언덕을 만들어 준다.

 

서양 사람들이 발붙이기 전에 이곳에는

쇼숀(Timbisha Shoshone)족 인디언이 살았는데,

그들은 주로 동물들을 사냥하는 외에

메스퀴테 나무의 열매(Mesquite Beans)

피니온 소나무(Pinyon Pine Tree)의 열매

(Pine Nuts, Indian Nuts)를 채취하며 생활을 했다.

그들은 이곳을 매우 신성한 곳으로 여겼다.

 

 

 

 

데스벨리공원 서남쪽 쇼숀(Shoshone)이라는

타운에는 아직도 이들 인디언이 살고 있다.

 

 

모래언덕 위로는 구름이 한가로이 떠다니고 있지만,

이곳은 무언가 죽음의 촉감도 느껴지는 곳이다.

이곳에서 욕심은 금물이다.

 

1848년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Sacramento)냇가에서

금이 발견되자, 1849년부터 골드러시가 이어졌다

1849년 골드러시 당시, 황금을 찾아 이곳을 찾았던

사람들의 일부는 살아 돌아가지 못했고,

일부는 고생을 하다 겨우 빠져나갔다. 이때 같이 왔던

노새의 후손들이 야생화 되어 이곳을 떠돌아다닌다.

 

그래서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란 이름도 생겼고,

 ‘오 마이 달링 클레멘타인이라는 노래,

영어 가사 속의 클레멘타인 아버지는 어부가 아니라

1849년에 황금을 찾아 떠났던

훠티나이너즈(Forty-niners) 중의 한 사람이었다.

 

미국의 역사를 1492년 아메리카 발견에서

1776년 미국 독립까지의 개척기,

독립에서 남북전쟁(1861-65)까지의 성장기

20세기 강국이 되기까지의 도약기,

강국이 된 이후(1901-)로 나눈다면,

1849년은 1846년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영토가 태평양까지 확장되는 성장기의 절정이다.

이 모래사막의 입구에는 1900년대 이곳에서

죽은 사람의 무덤사진을 넣은 빨간 경고판이 있다.

여름의 이곳 방문은 자제하는 것이 원칙.

 

 

죽음의 촉감이 느껴지는 이곳 사막이지만,

바람이 만든 이 부드러운 언덕 한쪽에서는

사랑이 익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곳에 무수한 족적과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지만,

바람은 새로 오는 사람들을 위해

이 족적들을 말끔히 지워버린다.

 

 

메스퀴테 사막에는 어린왕자의 독백이 들리는 듯 했다.

 

나는 늘 사막을 사랑했었어.

너도 모래언덕에 앉아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하지만 뭔가 빛나고 있어.

뭔가 고요함 속에서 흥얼거리지 않아. “

 

 

크라우리신부전망대(Father Crowley Vista Point)가는 길,

산들은 색깔 뿐 아니라 모양도 가지각색이었다.

한마디로 형형색색.

 

 

처음 여우가 왕자를 만났을 때 그에게 길들여지기를 청했다.

 

네가 나를 길들이면 내 생활은 해가 돋은 것처럼 환해질 거야.

나는 어느 발소리하고도 틀린 발소리를 듣게 될 거야.

네 발자국 소리는 음악소리처럼 나를 굴 밖으로 불러낼 거야.

난 빵을 안 먹어. 그래서 밀밭을 보아도

내 머리에는 아무 것도 떠오르는 것이 없어.

그렇지만 네가 나를 길들이면 금빛깔이 도는

밀을 보면 네 머리를 생각할 거야. 그리고

 밀밭으로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좋아질 거야. “

 

 

길들여진 여우가 어린 왕자와 작별 인사를 하는 날이 왔다.

 

내 비밀을 알려줄게.

잘 보려면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네 장미꽃을 위해 허비한 시간 때문에

네 장미꽃이 그렇게 까지 중요하게 된 것이야. “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정찰비행 중 행방불명된

생떽쥐베리는 진정한 의미의 삶은

개개 인간의 존재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정신적 유대에 있다고 보았다.

 

데스벨리의 동식물은 극한의 자연에서도 생명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포유동물 51, 조류 307,

도마뱀 36, 어류 5종 그리고 1,000종이 넘는

식물이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파란 하늘이 형형색색의 산들과 잘 어울리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가을하늘과 단풍의 어울림도 아름답지만,

이곳의 색다른 조화는 잊지 못 할 것 같다.

 

 

고도가 1,500미터 까지 이르는 타운패스(Towne Pass)

위를 달려도, 달려도 질리지가 않았다.

어제 어둠 속에 달렸던 길이었지만,

이렇게 멋진 길인지 상상도 못했었다.

 

 

 

 

 

이곳 계곡의 밑바닥은 두꺼운 소금 층이 깔려 있고,

특수 타이어(Heavy Duty Tire)를 부착해야 차가 다닐 수 있다.

 

'나를 묶었던 끈과 바닥짐은 이미 내게서 떠나갔다.

나는 산맥을 에워싸고 내 손바닥도 대륙을 덮는다.

나는 내 비전과 함께 걷고 있다.'

 

롱아일랜드 출신, 월트 휘트먼(Walt Whitman 1812-92)

시집 풀잎(Leaves of Grass)’에 나와 있는 시,

나 자신의 노래(Song of Myself)’의 일부분이다.

 

 

그는 미국의 민주주의 정신을 잘 표현한 시인이다.

지구상의 어떤 시기, 어떤 나라 중에서도 미국이야말로

가장 완전한 시적 특성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미국은 본질적으로 가장 위대한 시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아마 이러한 넓고 멋진 대륙을 보고

그는 미국은 위대한 시라고 했을 것이다.

전 세계에서 온 선구자적인 정신을 지닌 사람들로

북적대는 자유로운 상상력의 땅,

미국의 영원한 이미지를 그는 창조했다.

 

이 장엄한 미국의 자연은 정말로 위대한 시였다.

 

 

크라우리(John J. Crowley, 1891-1940)신부의

이름에서 따온 전망대에서 본 황야.

두 사람은 넋을 잃고 있었다.

 

전망대 아래 계곡에는 무지개가 떠있지 않았지만,

계곡 이름은 무지개 계곡(Rainbow Canyon).

윌리엄 히트문의 여행기 중에 사막에 대해

이러한 말이 나온다.

 

'사막은 인간을 좋아하지 않으며

보금자리를 찾는 인간의 본능을 조롱하고

인간이 이룩한 건설을

한 없이 보잘 것 없고 덧없이 보이게 한다.'

 

 

무지개 계곡은 여인의 브라자처럼 부드럽기 짝이 없었다.

 

 

 

 

계속하여 보석 같은 색들의 바위가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이 색들의 원천은 광물질이다.

구리는 녹색, 철은 붉은 색, 망간은 보랏빛을 품어낸다.

 

 

 

전망대에서 다시 동쪽으로 되돌아가는 길,

올 때의 오르막은 내리막이 되었다.

이렇게 멋진 데스벨리의 풍경을 한 번 더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행운이었다.

 

 

 

쾌청한 날씨에도 마주 오는 차량들은 거의 빠짐없이

라이트를 키고 지나갔다.

졸음 오는 운전자에게 큰 도움이 되었을 것.

 

흐린 날, 어두운 저녁이나 아침에도

라이트를 키지않는 우리 운전자들은

다시 한번 생각을 해봐야할 것같다.

자기자신을 보호해야지.

 

 

우리가 하루 텐트를 쳤던 훠니스 크리크로 돌아오니

훠니스 크리크 인(Furnace Creek Inn)이 눈에 보였다.

태평연안 붕사회사(Pacific Coast Borax Company)

1927년 개장한 숙박시설이다.

 

붕사생산의 초기였던 1880년대, 이곳 근처에 있었던

하모니붕사공장(Harmony Borax Works)에는

20마리 노새(Twenty Mule Team)가 있었다.

이 노새들은 철도 수송과 연계하기 위해 공장에서

생산된 붕사를 이곳에서 260키로 미터 떨어진

모자브까지 수송했었다.

 

1970년대 붕사가 세제의 원료로 쓰이자 붕사는

사막의 하얀 금으로 불릴 만큼 인기가 솟았다.

Twenty Mule Team으로 이름 붙인 세제가 선풍적

인기를 끌었고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은

주변의 데스벨리 풍경에 매료되었다.

서서히 이곳이 관광단지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이다.

 

 

훠니스 크리크를 지나자면 고도가 제로인 팻말이 나온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가면 고도가 -86미터,

길이가 855미터인 배드워터(Bad Water)가 있다.

북미에서 가장 낮은 곳이다. 이곳은 아주 옛날에는

호수였는데 지각 변동으로 물이 갇히고

증발하면서 넓은 소금밭이 되었다.

이 짜디짠 배드워터에도 사는 고기가 있다고 하니.

 

 

훠니스크리크에서 조금 동남쪽으로 가면

자브리스키 포인트(Zabriskie Point)가 있다.

 

태평연안 붕사회사에서 36년 근무하고 1933년에 퇴사한

자브리스키(1864-1936)의 이름이 붙은 전망대이다.

데스벨리에서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기 시작한 관광지인 셈.

이곳에는 20마리 노새 캐니언

(Twenty Mule Team Canyon)도 있다.

 

 

이 전망대에 갔다 오는 길에는 

멋진 미녀가 멋진 풍경에 넋을 잃고 있었는데,

남쪽을 보면 화가가 파란 물감 등을 개어놓은 것 같은

화가의 팔레트(Artist's Pallet)가 있다.

 

 

데스벨리 공원지도에서 우리의 행적을 보면,

서쪽으로 진입하여 190번 도로를 타고

훠니스 크리크까지 와서 숙박을 하고,

다시 한 번 서쪽 끝까지 왕복한 다음, 훠니스 크리크에서

자브리스키 포인트를 거쳐 동쪽 입구로 나갔다.

 

 

요세미티, 데스벨리 등 우리가 방문한 공원이 있는 지도.

 

 

우리는 공원의 동쪽 문을 나와 데스벨리에 안녕을 고했다.

당초 계획했던 와이오밍주의 옐로스톤 대신에

이곳을 방문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정말 최상의 선택이었다.

 

 

데스벨리와 관련하여, 꽃과 사막을 그리는 추상화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1887-1986)의 그림.

 

그녀의 그림을 보면 야생화가 만발한 데스벨리를

다시 찾고 싶은 생각뿐이다.

그녀는 유명한 사진작가 스티그리츠(Stiglitz)

아내이며 모델이었다. 생의 후기에 뉴멕시코의

산타페로 이주하여 붉은 계곡과 야생화를 주로 그렸다.

그녀가 한 말도 우리의 마음에 와 닿는다.

 

'아무도 꽃을 보지 않는다. 정말이다.

너무 작아서 알아보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고, 무엇인가를 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친구를 사귀는 것처럼.'

 

그녀의 말대로 사막의 꽃들은 너무 작아

우리가 지나쳐버리는 경우가 많다.

 

스티그리츠의 누드모델로 서기도 하여 세간에는

그녀가 이용만 당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던 것 같으며 사실 그러한 사진들

중에는 남성들에게 상당히 고혹적인 것들이 많다.

 

 

Alfred Stieglitz, Georgia O'keeffe,

Squeezing Brest, 1918.

 

 출렁이는 바다, 우람하게 솟은 산, 조용한 사막을

비교한 에드워드 애비의 글도 흥미롭다.

 

바다의 다른 쪽에 도착했을 때는 떠난 해안에 있던

것과 같은 모든 것을 발견할 뿐이다. 항해하는 동안은

단지 단조로운 바다와 텅 빈 하늘을 볼 뿐이다.

바다의 가장 호소력이 있는 부분은 

그것이 육지와 만난다는 것이다.

 

산은 오른 다음에는 다시 내려가는 일이 있을 뿐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 산을 내려오면서

우리는 차츰 더 우호적이고 편안하고

인간적인 환경으로 접어들게 된다.

 이 낯익은 것들이 우리를 안심시켜 준다.

 

사막은 다르다. 산봉우리처럼 적대적도 아니고

대양의 표면처럼 광대하고 단조롭지도 않다.

인간이 살기에 적절치 않으나 강인하고 교활한

동물들이 간혹 살고, 식물도 끈질기고

이상한 돌연변이종들만 뿌리내리고 있다.

 

인간의 감성이 적응할 수 없는, 지금까지

적용할 수 없었던 그 무엇이 있다. 여러 해 동안

접한 후에도 낯설음은 그대로 남아 있다.

사막은 끝없이 사람을 유혹한다. 사막 어디엔가

엄청난 보물이 숨겨져 있을 것 같은 느낌에

이끌려 탐험에 나서고, 유혹에 빠져 평생 사막을

헤매게 된다. 사막은 신비의 베일을 쓰고 있다.

 

데스벨리를 떠나면서도 아쉬움이 남았던 것은

이러한 사막의 특질 때문이었던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