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마지막날, 남부터미날에서
9:45 구례가는 버스를 탔다.
4년전 10월2일 천왕봉 1박2일 후 세운,
변동걸친구의 지리산종주계획의 실행.
마나님은 '무모한 도전'이라 하고.
한 달 전부터 같이 가는 친구들에게
부담이 안될까 고민했었다.
몸이 옛날같지 않으니.
직장 입사동기의 종주는 두 번 계획에
한 번은 실패했고,
두 번째는 겨우 두명이 참여.
하동의 안규철친구에게 동행할 수 있냐고
전화했더니, 구례버스터미날로 마중나왔다.
병원예약 때문에 동행은 안되고
마지막날 중산리로 오겠다고.
버스의 연착으로 30분 이상 기다렸는데도
내색않고, 구례맛집에서 육회비빔밥을 쏘고,
잠간 동안 소주 세병 비웠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인연은
거의 60년이 다 되어 간다.
성삼재까지 택시를 타고,
국립공원입구에서 배낭무게를 체크.
성삼재는 구례 산동면, 광의면사이 고개.
천병헌친구 11키로 훨씬 넘고,
다음이 변동걸친구,
다음이 류흥구친구 10키로,
내것은 겨우 8키로 넘는다.
내가 제일 인생을 가볍게 살은 것인지.
식구들의 정성이 부족한지.
(천병헌친구 사진)
노고단의 일몰,
왼쪽 약간 볼록한 것이 무등산.
노고단은 구례 산동면 토지면에 걸쳐있고.
성삼(姓三)재는 삼한시대 마한군에게
쫓기던 진한왕이 달궁계곡에 피난, 성이
다른 세 장수를 보내 이곳을 지켰다고.
팔랑채는 8명의 장수가,
정령채는 정장군이 지켰고.
지리산- 옛부터 치열한 싸움터.
(류흥구친구 사진)
우리의 첫 취사는 시작되었다.
된장풀고, 미역 황태국 소스 풀고,
베이컨 썰어넣으니 훌륭한 맛.
노고단은 민속신앙 영지.
국모신 마고할미를 모시는.
왕건, 박혁거세 모친을 모셨다는,
신라, 고려시조를 잉태한.
다음날, 벽소령대피소를 향하기 전
결의를 다지고.
시월의 마지막밤은 언제 갔는지.
3박4일 종주일정, 너무 길지않냐고?
첫날 성삼재-노고단 2.5키로,
둘째날 벽소령까지 13.6키로,
셋째날 장터목까지 10.2키로,
마지막날 순두류까지 7.1키로, 총33.4키로.
첫날 느긋하게 출발하는 여유가 있고,
마지막날은 목욕하고 저녁먹고 출발.
(천병헌친구 사진)
멀리 오른쪽은 광양 백운산(1,222미터)
줄기, 운해가 가득.
왼쪽 나무는 구상나무(Abies Koreana).
소나무과이고 천미터 이상 고산지대에 산다.
잎뒤의 기공선이 희어서, 전체가 은녹색.
솔방울이 고추 선다. 우리나라 특산.
반면에 주목은 주목과이고 줄기가 붉다.
잎이 뾰족하고, 솔방울 대신 빨간 열매.
(변동걸친구 사진)
구례 토지면 내동리에 있는 임걸령 샘터에서
목축이고, 또 걸었다.
현장조사를 하고 있는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직원을 만났다. 멸종위기에 있는 구상나무
살리기의 일환으로 묘목심기 등을 하고 있다고.
그래서 그런지 어린 구상나무를
많이 볼 수 있었다.
임걸령은 나무가 호걸처럼 많다 하기도 하고,
옛날 의적 임걸의 본거지였다고 하기도.
노고단출발 2시간 반에 구례 토지면에
속한 노루목도착.
옛날 그 많던 노루는 다 어디로 갔는지.
전북, 전남, 경남이 만나는 삼도봉에서.
해발1,500미터, 반야봉 바로 아래 위치.
날라리봉이라 하기도.
반야봉(1732미터)은 천왕봉 마고할미와
결혼한 도사 반야가 불도를 닦던 곳.
반야바라밀다와 관련이 있겠지.
(천병헌친구 사진)
광양 백운산쪽의 첩첩산중.
뱀사골에서 오르는 남원 산내의
화개재를 지나고.
뱀사골에서 오르자면 첫능선이 화개재.
옛날 화개장터자리.
경남의 소금, 해산물, 전북의 삼베,
산나물 등이 교환되었다고.
토끼봉 헬기장.
남원 산내와 하동 화개의 경계,
1,534미터에 위치.
토끼봉은 여순사건이후 지리산에
숨어든 빨치산들이 봉우리에 꽃이
만발하여, 꽃대봉이라기도.
(천병헌친구 사진)
단풍이 한참이라고, 만산이 홍엽인줄
알았는데, 이미 갈잎의 산 뿐.
호젓한 산길을 걸으며, 또는 쉬어가며
옛이야기를 했다.
57년의 인연, 그사이의 일들.
다녔던 직장이야기보다는
친구들간의 지나간 일, 학창시절,
어렸을 때 이야기들.
남은 책보 둘러매고 학교 가는데, 홀로 좋은
옷 입고, 가방매고 다녔다는 흥구친구.
주위 눈치 때문에 공부하기 싫었다 한다.
노고단 출발 7시간만에
남원 산내의 연하천(烟霞泉)도착.
샘물에 해먹는 점심, 꿀맛.
류흥구친구 딸같은 27-8세 여인들에게
정성지긋.
그녀들도 우리와 일정이 같았다.
(천병헌친구 사진)
식후의 산하, 여전하고.
지리산, 한 없이 넓고도 깊은 산,
무수한 산자락을 거느리고도 우쭐대지 않는.
하동 화개면과 악양면 경계에 있는
형제봉(1,115미터)
이젠 완전히 경상도에 들어섰고,
많은 봉우리를 넘자니, 오르막길에
헉헉대는 흥구친구도 익숙해지고.
아버님을 비롯, 어른들의 형제애가 부러운 시대.
일전 입원시 같은 방에 있던 젊은 미국교포.
맏형과 아우, 노상 들락거렸다.
여자들은 콧배기도 볼 수 없었고. 얼마나
부럽던지, 퇴원 후 밥 한 그릇 샀었다.
13.6키로를 9시간 걸어
함양 마천, 1,350미터 높이에 있는
벽소령대피소에 5시15분 도착.
저녁을 해먹고 자리를 뜨려니
젊은 그녀들이 도착했고,
흥구친구 헤드랜턴 빌려주랴, 부산했다.
날이 저물고, 붉은 노을이 져왔다.
산행 저녁마다 복에 겨웠고.
날씨가 춥고, 바람 불어 밖에서 놀 수 없고.
일찍 자리에 누워도(8시 소등),
잠은 안오고, 코고는 소리만 요란.
허리는 아파오고.
10/2일 아침, 또 행복감에 젖는다.
1,443미터 함양에 있는 선비샘에서 한 모금.
샘터 위에 묻혀, 물마시는 사람들로부터
본의 아닌 절을 받는다니,
얼마나 천대를 받았으면.
앙상한 가지들, 겨울추위를
어찌 지낼고.
노고단에서 천왕봉에 가려면
열두서너개 고개를 넘어야 된다고.
앞으로 넘어야할 큰 봉우리들.
하동 화개에 속하는 칠선봉(1,576미터).
7개 바위들이 우리 있는 곳을 에워쌓다.
천왕봉 가는 길, 뒤돌아보면
반야봉(1,732미터)이 우리를 쫓는다.
오. 예쁜 두 궁둥짝.
남원 산내와 구례 산동 경계를 이루는.
하동 화개, 함양 마천, 산청 시천
경계에 있는 1,652미터의 영신봉(靈神峰).
주요능선의 중심에 서 있다.
멀리 반야봉이 보이고.
벽소령대피소에서 5.7키로.
세석대피소에 12:30분 도착.
7:50분 벽소령을 출발했으니,
4시간 40분 걸렸다.
저 아래 떨어져 있는 샘물을 떠오는 것도
싫지가 않고. 잔돌이 많고 평평한
세석평전(細石平田)은 산청 시천면에 소재.
점심을 끝내고 출발해도, 두 처녀
오지않고, 흥구친구 뒤돌아보고,
또 뒤돌아보고.
세석습지는 1,520미터에 소재하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습지.
보호해야 할 동식물이 많다.
촛대봉(1,703미터)쪽에서 본 천왕봉.
이곳에서 천왕봉까지는 4.4키로.
촛대봉은 산청 시천, 함양 마천의 경계.
옛날 연진이라는 여인이 자식을 나으려고
금단의 세석고원 샘물을 마셨는데,
노한 산신령이 그녀에게 세석돌밭에서
평생 철쭉을가꾸는 형벌을 내렸다.
그후 여인은 촛대봉 정상에서 촛불을 켜고
산신령에게 속죄를 빌다가 돌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넘어야 할 연하봉을 바라보며 한 장.
다음 도착한 곳은 연하봉(1,721미터).
산청 시천에 속한다.
죽은 주목 한 그루.
20년전 지리산에 왔을 때는
주목 고사목 군락이 꽤 인상적이었는데.
풍화되어 많이 없어진 느낌.
일출봉줄기. 일출 광경이 일품이라는.
이 또한 산청 시천.
4:18분 장터목에 도착.
벽소령 출발한지 8시간 반.
함양 마천의 장터목대피소는 고도 1,750미터.
대피소에 자리를 잡으려니, 벌써 온 두 처녀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두 청년 만나
세석평전 대피소 들리지 않고 바로 왔다고.
친구여, 이제 신경 끄게나.
6:57분 장터목의 일출.
새벽 천왕봉 일출 본다고, 대부분
떠나고, 우리는 이곳에서 일출을 맞이했다.
이곳 대피소가 여러면에서 제일 낙후되어
있고, 직원들도 그렇고.
벽소령대피소도 그렇지만, 샘터가 너무 멀고
험했으며, 화장실 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음식물 잔반통에 몰리는 까마귀,
질서 있게 한놈씩 잔반통을 차지했다.
우리는 다른 때보다도 더욱 느긎하게
8:25분 숙소를 출발하여 제석봉 도착.
새벽 잠도 못자고 천왕봉일출 보는 것은
한번 봤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제석봉(帝釋峰)은 1,808미터.
산청 시천과 함양 마천 경계.
중봉에 이어 세번째 높은 봉우리.
산신에게 제사를 드리던 제석당이 있었고,
고사목 군락이 크다.
자유당 말기 권력자가 남벌하려다
뜻대로 안되, 불을 질렀다나.
제석은 도리천에서 살며 불법을
보호하는 부처라 할까.
우리는 산청 시천 소재,통천문을 지났다.
끝까지 험한 일정.
6년 전인가 전재혁친구하고 지리산에서
흘러나온 웅석봉(1,099미터,산청소재)을
넘다가 고생한 일이 생각나고.
친구는 수술한다고 입원해 있고,
중산리에서 만나자는 안규철친구도 병원에
간다더니 입원한다고 연락이 왔다.
9:40분 드디어 천왕봉에 올랐다.
일출때는 서로 먼저 사진찍느라
붐비던 이곳이 이렇게 한적할수가.
천왕봉은 산청 시천과 함양 마천 경계.
함양 방면으로는 칠선계곡이
산청 방면으로는 중산리계곡이 뻗쳐있다.
(천병헌친구 사진)
천왕봉 오르는 류흥구친구
벌써 프로가 되어있고.
(천병헌친구 사진)
변동걸친구도 만족한 모양.
다리에 철심이 있어, 잘못짚어 고통스러울 때
그 느낌이 나에게도 느껴질 정도.
우리는 개선문(1,700미터)을 지나,
남강 발원지, 천왕샘에서 목을 축였다.
이곳에서 솟구친 물은 덕천강을 따라 흐르고,
남덕유산 참샘을 발원으로 하는 경호강과
남강댐에서 합류, 남강이 되고,
다시 낙동강으로 흐르게 된다.
법계사 부처님 진신사리 3층석탑.
급경사길을 내려와 법계사에서 점심공양.
점심값 시주를 하려니, 이쁜 보살님
방 건너편에 있는 시주함을 가르켜주었다.
왜 눈에 잘 띄는 곳에 안 놓아두었냐 하니,
부담을 안주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4년전 가을에 변동걸친구와 이곳에 들렸을 땐
일주문이 풍수해에 망가져 일주문 복구
불사를 하고 있었는데, 올해는 지리산
할매당 조성불사를 하고 있다.
미신적 요소가 많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리산의 특성을 감안하면 수긍이 간다.
법계사(法界寺)는 1,450미터에 위치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적별보궁도량. (봉정암:1,244미터)
주불전에 부처상이 없고, 창을 통해
3층석탑에 경배한다.
법계는 속계와 다른 모든 사물의 근원,
진리의 세계, 진리 자체로서의 부처를 뜻한다.
순두류 가까워오니 가을의
느낌이 들고.
곳곳에 노각나무 (Stewartia Koreana)
매끈한 줄기를 볼 수 있었다.
산 중턱 이상에 자라는 이 나무는
6-7월 흰색의 예쁜 꽃을 피우며,
장식, 고급가구재료로 쓰이는데,
우리나라 것이 가장 아름답다.
오후 두시반, 산청 시천면 중산리 순두류
마을에서 법계사 버스를 타고
중산리 주차장으로.
가을은 한창이었다.
순두류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중
귀인(현대자동차 진주지점장)을 만나
그의 차로 진주까지 진출.
그도 휴가를 내어 천왕봉 갔다오는 길.
부산이 집인 그는 열성적인 직원, 답례로
현대자동차를 사랑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진주 버스터미날에서 우등버스표를 끊고,
터미날 뒷쪽에 있는 허름한 목욕탕에서
전세를 내어 목욕.
그리고 터미날 옆에서 맛있는 콩나물
국밥에 맥주 한 잔하고, 5:30분
진주 출발하여 집에 오니 10:30분.
일인당 비용은 128천원.
집에서 준비한 비용 빼고.
우리의 지리산 사랑은 멈추지 않고,
우리의 우정은 더 할 것이고.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이원규의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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