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은 왜 이리 춥지?
우리는 한 겨울 추위에 떠는 나목들.
눈이 오고, 날씨는 좀 풀어지고.
12/19(일), 오랜만에 덕수궁을 찾았다.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을 했지만
제법 사람들이 있었고.
고교시절, 눈내린 남산과 덕수궁을 이모, 순자누이와
자주 찾았었다.
당시 이모들의 직장이 남대문근처.
남자들보단 여자들의 취향이지만.
초라하기 짝이 없으셨고.
중화전은 고종이 황제가 되면서 지은 덕수궁의 정전.
덕수궁은 월산대군(1454-88, 세조의 손자이며
성종의 형)의 집터이었고
1593년 선조의 임시 거처(정릉동 행궁).
1611년 광해군이 창덕궁으로 가면서 경운궁.
1897년 대한제국 황궁.
1907년 고종이 물러나면서 선황제가 거처하는 궁.
(고종의 장수를 비는 덕수궁)
국난극복의 상징적 공간.
석조전은 황제의 거실, 접견실이었으며 황후의
생활공간. 이오니아식 기둥, 실내의 로코코풍
장식이 특징.
-1986 국립중앙박물관.
-2004 궁중유물전시관.
2014년부터 대한제국역사관.
MMCA(Musi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2022.3.1일까지 박수근(1914-1965)의
'봄을 기다리는 나목' 전.
유화, 수채화, 삽화 등 170여점 전시 중.
이건희 컬렉숀에 포함된 33점 중 31점,
공개된적 없는 19점 포함.
1부 밀레를 사랑하는 소년
2부 미군과 전람회
3부 창신동 사람들
4부 봄을 기다리는 나목
으로 나누어 전시.
1부. 밀레를 사랑하는 소년
양구출신인 박화백은 양구보통학교 학력이 전부.
1932년(18세) 조선미술전람회 입선,
화가의 길로.
화가는 겨울을 좋아했나?
나목을 좋아한 것을 보면.
1940년 아래 윗집 사람끼리 결혼, 박수근 26세,
김복순은 낭랑 18세.
1940년 평야시청 서기,
1945년 미술교사
6.25때 헤어진 가족과 1952년 상봉.
1953년 미8군 PX에서 초상화 그리기 시작,
창신동에 집 마련. 대한민국 미술전 특선.
그의 특징적인 표현방식 나타나기 시작.
1959년 국전 추천작가
1962년 국전 심사위원
1965년 타계.
부농 아들이었으나 부친의 광산사업 실패로
일생 동안 가난을 면치 못했다.
둘 다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작(복사본)
대한민국 미술전 특선작.
내 마음에 드는 작품.
박수근화백은 인간의 착함, 진실함을 그려야한다는
평범한 견해를 가졌고, 인간상을 단순화하여
가정의 평범한 사람들을 즐겨 그렸다.
향토성 짙은 독자적 양식인
화강암의 질감을 연상시키는 마티에르가 큰 특징.
요약화된 형태를 평면적으로 대비시켜 배치,
특이한 구성에다 현대적 조형성에 충실.
유화로서 가장 한국적 독창성을 발휘한 작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같은 시대 작가인 이중섭(1916-1956)이 분방한
선묘에 다양한 색채를 구사했다면, 박수근은 절제된
화면효과를 추구했다 할까. (다음백과)
삽화, 표지화를 제작.
2. 미군과 전람회
(왼쪽에서 세번째가 박수근)
근무했던 박완서(1931-2011)의 글.
박완서의 데뷰소설, 나목.
박수근화가가 소설의 모델.
'나목'은 한국전쟁 이듬해 서울 수복 직후,
초상화가게에서 일하는 화가를 통해
예술과 삶 사이의 갈등을 그렸다.
주인공 이경은 오희도를 만나 사랑하지만
그사랑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그의 사후 유작전에서 본 그의 그림이 고목이
아니라 봄을 기대하며 나뭇잎을
떨어뜨린 나목임을 깨달음.
나는 홀연히 옥희도씨가 나목이었음을 안다.
판잣집이 예술이다.
용산 주한 미군사령부 도서관에서 열린
개인전에 출품한 작품.
알래스카대학교 박물관에서 국내로 반입되었다.
우리가 중학교 학생일 때는 정말
경제가 어려웠던 시기.
3. 창신동 사람들
박성남(1947-)은 아버지와 같이
전문교육을 받지 않은 화가.
종이에 색연필.
복잡한 배경, 인물이 함께 그려진
그의 그림은 드물다.
화가로서의 전성기.
4. 봄을 기다리는 나목
박수근은 겨울이 지긋지긋하다고.
진짜 추위는 정신적 추위이고.
본인이 이루어놓은 일이 무엇인가
더럭 겁도 난다 했고.
봄을 생각하는 가슴에는
5월의 태양이 작열한다 했고.
종이에 색연필.
종이에 색연필.
드물게 강한 색감을 보인다.
바위 모습이 두 사람이 사랑하는 형태.
그의 그림의 노랑, 푸른, 붉은 색 등의 흔적.
색의 절제를 보여준다.
전시관 한쪽에는 한영수(1933-1999)의
'서울 1956-63' 사진을 전시하고 있어
박수근전의 이해를 돕고 있다.
한영수작가는 학도병으로 한국전쟁에 참여했고,
PX에서 카메라를 구입, 독학을 하여
여유롭고 따스한 시선으로 서울풍경을 담았다.
두 아이를 거느린 새댁,
신선한 감을 주고.
여인들은 양담배?를 팔고 있는지.
주증녀(1926-80), 김승호(1917-68) 주연.
기혼자의 애정을 다뤄 주목을 받은 영화.
따스한 느낌이 들었고.
봄을 기다리는 나목의 영향인가.
언제 보아도 좋다.
1907년 왕위를 물려준 고종(1852-1919)이
거처하던 침전.
고종이 독살된 곳으로도 추정.
독살되었다는 소문이 3.1운동으로 이어졌다.
함녕전 후원에 지어진
동서양 건축양식이 절충된 건물.
역대왕의 초상화인 어진을 모셔두기도 했고
고종, 순종 초상화를 그리던 공간.
아관파천시 도망치듯 나와 러시아공관으로 망명.
청일전쟁 후 일본은 대륙침략의 발판을 마련.
러시아공사는 민비세력에게 친러정책을 권유.
1895년 을미사변 후 전국적으로 의병이 봉기했고
친미 친러세력은 고종에게 러시아공관으로
옮길 것을 종용,
친일정권은 무너지고 1896년 2월 파천이
이뤄졌고 1897년 2월 환궁.
'이제 모두 세월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눈덮힌 조그만 교회당'
(이문세, 1959-, 광화문 연가)
이젠 정말 먼 옛날의 이야기 같다.
덕수궁-러시아공사관 다리, 운교.
아관파천후 경운궁과 러시아공사관을
편하게 오가기 위해 놓았다.
유난히 눈을 끌었다.
최초의 본격적인 크리스트교 교회 건물. 고딕양식.
헨리 아펜젤러(1858-1902)가 정동 저택에서
감리교 신자와 함께 예배한 것이 교회의 시초.
최초 파이프오르간이 봉헌되었고
독립운동 참여.
그는 1885년 배제학당을 설립했고
1887년 정동교회 설립.
'김소월, 다시 써보는 진달래꽃'
평북출생, 김소월(1902-1934)은 오산고가 폐교되자
배재고에 편입, 이학교를 졸업했다.
할아버지와 같이 하던 광산이 실패하고
동아일보지국도 실패하자,
생활고에 아편을 먹고 자살.
덕수궁돌담길, 정동길을 돌자니
대학시절 자주 들렸던 이곳의 서울우유
밀크홀도 생각나고.
고종의 길, 대법원 자리 등은 마음을 찹찹하게 했다.
요즈음으로 보아선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지.
'바람이 부네
살아 있음이 고맙고
더 오래 살아야겠네
나이가 들어 할 일은 많은데
짧은 해로 초조해지다
긴긴밤에 회안이 깊네
나목도 다 버리며
겨울의 하얀 눈을 기다리고
푸른 솔은 계절을 잊고
한결같이 바람을 맞는데
살아 움직이는 것만
숨죽이며 종종 걸음치네
세월 비집고
바람에 타다
버릴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데
시간은 내 마음의 여울목
세월이여
이제 한결같은 삶이게 하소서'
(최홍윤, 1951-, 12월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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