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경주 청도 유람

난해 2026. 6. 29. 18:57

6/25(목) 서울역 7:50분 발, KTX로 경주를 향해

3명의 친구와 함께.
2시간 걸리는 기차여행.
 
 
 
 
 

금호강을 건넜다

포항시 가사령(500m)에서 발원,
경산, 영천을 거쳐 대구에서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114.6km 길이의 강.
 
낙동강 유역 면적의 9.2%.
동서에 걸쳐 긴 띠 모양의 금호평야를 
일구고, 포항제철 용수 등을 공급.
 
 
 
 
 

경주역에서 차건동친구의 차로 달리니

싸이클 부대 조우.
마지막 주자는 하반신이 튼튼한 여성.
 
 
경주의 인구는 24만 명이지만 넓이는 서울, 고양,
부천, 광명을 합친 크기.
 
형산강 유역, 안강읍 일대의 넓은 평지를 이룬다.
여름에 가장 뜨거운 도시 중 하나이고,
한국수력원자력 본사가 위치한다.
 
신라의 고도이고 기원전 57년에 성읍국가 
사로국이 경주 계림 일대에 세워졌다.
(기원전 108년 고조선 왕검성이 함락됨)
 
남북국시대 인구는 수십만 명.
고려시대 삼경의 하나였고 조선시대 경상도의 경.
안동시와 함께 대표적 양반도시.
 
지금은 대표적 관광도시.
 
 
 
 
 

첫 방문지는 무열왕릉

경주시 서악동, 선도산 동쪽 능선의 끝부분
무덤 중 가장 아래쪽에 위치.
 
무열왕(604-661)은 29대 왕, 김춘추. 진덕여왕
사후에 추대되었고, 외교역량이 탁월했다.
 
왕권 중심의 집권체제를 수립하였고, 백제를
멸망시켜 삼국 통일의 토대를 마련.
 
아들,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했다.
 
왕릉은 굴식돌방무덤이고 봉분장식이 소박.
무덤 주위에 자연석으로 둘레돌을 돌렸다.
 
 
 
 

태종 무열왕릉비(국보)의 거북모양의 받침돌과

그 위에 있는 몸체 위의 머릿돌(이수)만 남아있다.
머릿돌엔 6마리 용이 서로 능을 향해 구부림.
비문이 적힌 비신은 없어졌다.
 
경주의 유생들이 비신으로 벼루를 만들었다고.
 
문무왕 원년에 건립되었고, 이수 중앙에 무열왕의
둘째 아들 김인문(629-694)이 '태종무열대왕지비'
라고 썼다.
 
 
 
 
 

비구름이 오락가락

 
 
 
 

다음으로 찾은 곳은 노서동의 오아르미술관

2025년 4.1일 개관한 미술관.
 
 
 
 
 

미술관 안내

전시실이 3개.
1층엔 커피점이 있고
3층엔 루프탑 전망대.
 
 
 
 
 

김정우의 '시간의 중첩'

1층에선 개관 1주년 기념사진전 중.
 
 
 
 
 

이민서의 '동상이몽'

 
 
 
 

정철재의 '쉼'

 
 
 
 
 

최영욱작가의 '쉼표'전

작가의 30년 작업세계를 전시.
달 항아리로 풀어낸 시간과 삶.
 
탐색--발견--내면화--확장.
능과 작품 사이에 멈춰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시간.
 
 
 
 
 

내면화

달항아리를 그리기 시작한 이후,
오랜 시간 연습을 거듭.
 
젯소와 돌가루를 수십 차레 도포하고 연마하는
반복 행위는 시간을 물질로 침전시키는 제작방식.
 
달항아리는 더 이상 재현의 대상이 아니라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자 존재를 벼리는 장이 
되었다.
 
 
 
 
 

달 항아리

카르마 2025 12-31.
카르마는 운명, 업의 뜻.
 
 
 
 
 

달 항아리

카르마 2018 4-49
많은 것을 말하지 않지만
많은 것을 품고 있는 존재.
 
 
 
 
 

카르마 2026 2-6

 
 
 
 
 

미술관 앞은 대릉원 고분군

독특한 분위기를 낸다.
 
 
 
 
 

어느날 이야기 2026-9

 
 
 
 
 

탐색-발견-내면화-확장

탐색이 제일 먼저 단계인데-
거꾸로 관람을 했나.
 
최영욱작가는 처음부터 달항아리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어느날 이야기'라는 제목 하에 일기처럼
일상의 장면과 기억을 화면에 옮기면서
삶의 순간들을 기록했다.
 
사실적 재현을 넘어 고유한 조형 언어를 구축해야
한다는 과제에 직면, 화면 위에 쌓이는 붓질과 
색의 층위는 재현을 넘어 시간과 감정이 스며드는
공간으로 확장되었다.
 

고분들(전망대에서 본)

 
 
 
 
 

고분과 도시(전망대에서 본)

 
 
 
 
 

루푸팅 전망대의 한 여인

 
 
 
 
 

흑과 백 시리즈(지하공간으로 이동)

완전한 암흑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잠재된 형상과 기억을 품은 깊이의 공간.
 
 
 
 
 

카르마 2023 11-15

 
 
 
 
 

카르마 20238-8

 
 
 
 
 

관람을 끝내고 1층 카페에서 커피 한잔

거울벽이 있어 사람들이 두 배로 많아 보였다.
 
순서를 찾아 관람했다면 좋았을 텐데.
 
 
 
 
 

여유를 즐기는 친구들

고분도 감상하며.
 
 
 
 
 

경주시 서부동에 있는

삼영복식당으로 이동.
점심은 복요리로.
 
오랜만의 복요리.
그것도 경주에서.
차건동친구의 덕.
 
 
 
 
 

인근의 모감주나무 꽃(goldenrain tree)

우리동네 봉화산역 앞에도 피어있는 꽃.
열매로는 고승의 염주를 만들었던 나무.
 
식후 우리는 불국사로
 
 
 
 

불국사 앞에서 기념 촬영

고 2때(1964년) 수학여행후 처음 온 친구도.
나의 경우는 금년 1월, 가족들과 왔었다.
 
불국사는 통일신라시대 김대성(700-774)이
751년 공사를 시작했으나 그의 생전에 끝을
못보고 그후 왕실에서 완공.
 
 
 
 
 

입구의 반송,

100살이 넘었다.
 
 
 
 
 

연못 앞의 서양인 부부

 
 
 
 

문을 지키는 사천왕 중 둘

원래 고대 인도에서 숭상했던 귀신들의 왕.
불교에 귀의, 부처님과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
 
 
 
 
 

불국사의 청운교와 백운교, 국보

불국세계로 통하는 자하문으로 오르는 다리.
아래쪽 18계단이 백운교, 위쪽 13계단이 청운교.
연화교, 칠보교보다 남성적이며 웅장한 느낌.
 
옛날에는 구품연지로 흘러드는 물이 다리
아래를 통과했다고.
 
 
연화교, 칠보교도 국보.
극락전으로 통하는 안양문으로 오르는 다리.
아래쪽 10단이 연화교, 위쪽 8계단이 칠보교.
 
 
 
 
 

폼잡는 세 사람

왼쪽이 연화교와 칠보교.
 
 
 
 
 

다보탑, 남북국시대 8세기에 제작된 화강암제 석탑

동쪽에 있는 석탑. 전형적인 신라 석탑 양식과
매우 다른 이형 석탑. 국보.
 
돌사자를 네 모퉁이에 배치했으나
셋은 도둑을 맞음.
 
 
 
 
 

석가탑(삼층석탑, 무영탑), 국보

신라의 전형적 석탑 양식.
 
 
 
 
 

대웅전(보물), 석가모니불을 모신 불국사 중심 건물

임진왜란때 기단만 남고 불탄 것을
1765년(영조 41)에 건물만 다시 지었다.
 
가운데칸이 두 배 이상 넓고 내부 기둥이 없어
공간이 더 넓어짐. 웅장한 규모와 화려한 
장식으로 우리나라 불교건축의 대표적 건물.
 
 
 
 
 

불국사 사리탑(보물)

고려 전기에 건립된 돌로 만든 사리탑형 조형물.
비로전 옆에 설치된 석등 모양의 석탑.
 
1905년 일본에 불법 반출되었다
1933년 극적 반환.
 
승려의 사리탑인지, 여래의 사리탑인지
분명치 않다.
 
 
 
 
 

비로전

1973년 창건 당시의 기단과 초석 위에 새로 지음.
국보 금동비로자나불좌상을 모신 전각.
 
통일신라시대 3대 금동불상의 하나.
 
 
 
 
 

돌나물과 기린초

6-7월 개화. 비교적 추위, 더위에 강하고
건조에 뛰어나나 과습에 약함.
 
 
 
 
 

불국사를 떠나 토함산 석굴암으로

자욱한 비구름.
 
 
 
 
 

인자한 석굴암 부처님(taucross 브로그)

이제는 유리안에 갇혀있으시고.
 
 
 
 
 

사시는 집도 초라

나오는 문에 '대학입시 100일 기도 접수'라고
쓰여있다.
 
 
 
 
 

석굴암 밑에 있는 수광전

복전함만 눈에 띈다.
 
 
 
 
 

아직도 달려있는 초파일 연등

 
 
 
 
 

오랜만에 본 다람쥐,

우릴 반겼다.
 
석굴암 안내문이 있고,
건립시는 석굴사라 불렸다.
 
김대성이 전세의 부모님을 위해 건립하였고,
경덕왕(742-765재위) 시절에 석굴암외에도
불국사, 황룡사 대종 등 많은 문화재들이
만들어졌다.
 
 
 
 
 

토함산 1.2km의 길을 걸었다.

도중에 성화 채화지가 있었고.
 
조금 더 가니 추령 갈림길이 나왔다.
추령은 경주 황용동에서 문무대왕면을
연결하는 고개. 높이는 310m.
 
 
 
 
 

토함산 정상에서

토함산을 오른 것은 처음.
 
토함산은 덕황동, 불국동과 양북면 사이에 있는 산.
신라시대 왜구의 침범을 막는 호국의 진산.
 
태백산맥 줄기, 해안산맥중에 있는 산.
서쪽기슭에 불국사, 동쪽에 석굴암.
일출의 명소.
 
동해의 영향으로 안개가 많아
안개를 토하고 머금는 산.
 
 
 
 
 

이곳에 석탈해왕 사당터가 있고

보문단지에 있는 캔싱턴 리조트로.
건동이 예약해준 숙소.
 
경북에 올때마다 친구에게
많은 신세를 진다.
 
 
 
 
 

근처에 있는 전촌참가자미에서

가자미회+고등어 묵은지조림+느린마을 증류수
그리고 꼬물이 만두.
 
 
 
 
 

식당입구에 있는 제비집

 
제비가 들면 장사가 잘 되지.
등 위에 집을 지었다.
 
 
 
 
 

다음날(6/26, 금) 아침

숙소에서 본 경주.
 
 
 
 
 

아침은 라면, 누렁지로 때우고

9시 숙소로 온 건동과 청도 운문호로.
운문호 도착시각이 10:05분.
 
소재지는 청도 운문면 대천리.
금호강 유역및 청도군의 안정적 수원 확보,
홍수 예방을 위해 1985-96년 공사.
 
 
 
 
 

이곳의 멋진 조형물

청도는 경북 최남단에 위치하는 군.
동쪽에 경주, 서쪽은 밀양, 창녕군.
대구와 밀양을 연결하는 요충지.
 
인구는 4만명이고 군청소재지는 화양읍 범곡리.
사방이 산지로 두러싸인 분지.
청도천 유역 중심이 평야지.
 
운문산(1,195m), 가지산(1,241m)이 동남에서 북으로.
서쪽은 비슬산(1,083m), 남쪽에 천왕산(619m).
 
청도 소싸움이 유명.
주말에 열린다.
 
고대에는 이서국이었으나 197년 신라에 복속.
고려초기에 청도현. 신석기 거주지가 
운문댐으로 수몰. 보물이 23건.
 
 
 
 
 

운문사 정다운 담장에

도착한 시각이 10시 5분.
2022년 4월 21일에 이곳에 왔었다.
 
담장은 비구니승의 탈출 방지를 위한 것이 아님.
 
 
 
 
 

옛날 호랑이가 살았던 산에 있던 운문사

운문면 신원리, 운문산에 있는 절.
560년 (진흥왕 21) 신승이 창건.
 
937년(태조 20) 중국 당나라에서 법을 전수받고
돌아온 보양국사가 까치떼의 도움으로
절을 짓고 작갑사라고 하였다.
 
943년 태조 왕건이 전답과 함께 운문선사라는
이름을 준 후 운문사.
 
최대 규모의 비구니 교육도량으로 조계종 운문
승가대학을 설치한 비구니들의 교육, 연구기관.
 
1250년 고려 고종때 일연선사가 주지로
삼국유사를 집필하기 시작한 곳.
 
 
 
 
 

입구에는 천연기념물인 '처진 소나무'

높이 6m로 국내 최대.
나이는 500세.
 
영어로는 weeping red pine.
 
 
 
 
 

가장 규모가 큰 만세루

조선 말기에 건립된 익공계 팔각지붕 건물.
주춧돌은 자연석 그대로 사용했다.
 
민흘림의 긴 기둥. 대들보, 퇴보를 사용치 않고
사방을 창호없이 모두 개방했다.
정면 7칸, 측면 3칸.
 
 
 
 
 

뒤에서 본 범종각(절 입구)

일전에 들렸을 때, 나이 어린 비구가 북을 치던 모습이
생생. 저녁 무렵.
 
 
 
 
 

천진 소나무 뒤

거북이 모양의 돌들.
 
 
 
 

마침 대웅전(옛 대웅보전 뒤에 있는 새 불전)에선

낭랑한 독경소리.
 
 
 
 
 

독경소리가 흘러나오는 신 대웅보전

 
 
 
 
 

법륜상(우측 대웅보전은 신 대웅보전)

부처님의 교법이 수레가 굴러가듯 
머물지않고 항상 전하여진다는 의미.
 
윗단은 8정도를 상징(正見, 正思惟, 正語, 正業
正命, 正精進, 正念, 正定)
 
아랫단은 최초의 설법지, 녹야원에서 다섯 비
구에게 법을 설함으로써 비로서 불법승 삼보가
이루어진 것을 상징.
 
 
 
 
 

옛 대웅보전(통칭 비로전)에서도 독경소리

비로전은 운문사 중심법전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 1655년 중창.
 
영남 조선 3대 불전으로 손꼽히는 수작으로 보물.
천장에 악착보살이 매달려 있다.
 
비로자나불 독존을 봉안.
 
 
 
 
 

비로전에서 독경 중

비로자나불 독존을 봉안했다.
 
 
 
 
 

오백전

대웅보전(비로전)을 향하여 좌측.
석가여래 삼존을 비롯 오백 나한상이 있다.
 
 
 
 
 

아름다움을 향해 활짝 열려있는 마음은

늘 여행하는 것과 같은 즐거움과 행복을 줍니다.
이 세상 모든 두려움과 걱정마저도
잊게 하는 힘을 줍니다.
(잡아함경에서)
 
여성 취향이 물씬-
 
잡아함경은 석가모니께서 설하신 법문들을
집성한 것. 불교의 기본 교리와 교훈을 설한 경전.
원시적 형태의 경전이다.
 
나는 믿음을 씨앗으로 하고 행을 물로 하고
지혜를 소로 하고 부끄러움을 쟁기로 삼는다.
이와 같이 씨를 뿌리면 고통으로 벗어나게 될 것.
(시작의 말씀)
 
 
 
 
 

작압 내의 석가여래좌상(통일신라시대 후기), 보물

작압(전자가 빠짐)은 운문사의 전신인 대작갑사의
유래를 알게 하는 유일한 건물. 전면과 측면이
모두 한칸에 불과하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한 신승(神僧)이 중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신비로운 새 때가 날아오른 
것을 본 자리에 암자를 짓고 수행하여 큰 도를 이뤘다.
 
까지 鵲과 오리 鴨.
석가여래좌상과 함께 있는 사천왕 석주도 보물.
 
 
 
 
 

대웅보전(비로전)과 오백전

동서삼층석탑과 석등.
 
동서삼층석탑은 통일시라시대의 석탑으로
모두 보물.
 
 
 
 
 

층층나무과 꽃 산딸나무

북아메리카 원산 낙엽활엽수.
꽃과 단풍이 볼만하다.
 
꽃은 노란색을 띤 녹색이고
꽃을 싸고있는 잎은 흰색, 분홍색.
 
늘상 보는 산딸나무와는 틀리다.
 
 
 
 
 

명부전에서도 독경하는 스님

신라시대에 세워지고 신라말, 고려초
보양대사에 의해 재건.
수차례 보수를 함.
 
그러고보니 우리가 예불시간에 방문했나보다.
 
 
 
 
 

금당 앞 석등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보물.
내가 보아도 우아한 석등.
 
 
 
 
 

칠성각을 지나니 원응국사비

고려 중기 승려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비.
1,144년(고려 인종 22) 학일왕사가 93세로
입적하자, 원응국사를 책봉했다.
 
 
 
 
 
 

국립공원공단에선 스탬프 투어 실시

운문사, 사리암, 북대암, 내원암, 청신암을 도는.
운문사에서 사리암까지는 편도 1시간 20분.
 
사리암을 백일 안에 3번을 찾아 기도하면
한가지 소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전설.
수험생을 위한 기도처.
 
천여개 계단을 올라야 한다고.
 
 
 
 
 

우리는 긴담장을 따라 사리암으로

처음 걷는 길.
청도 운문 에코트레일 지도가 있었다.
 
 
 
 
 

꼬리말발도리가 운문산 깃대종

범의 귀과 낙엽활엽관목.
계곡에 분포한다.
 
5-6월 흰꽃이 꼬리처럼 길게 핀다.
경상남북도 분포하는 나무.
 
우리에겐 낯선 식물.
 
 
 
 
 

깊고 맑은 계곡

운문천 줄기.
 
문수선원을 지났고
소나무 우거진 명품길.
 
 
 
 
 

수월교 지나

둥근 목다리도 지나 적송군락 속으로.
 
 
 
 
 

포장길과 나무로 된 인도

인도는 없어지기도 했고.
 
 
 
 
 

이 숲속에도

청도 소싸움 광고.
 
사리암 주차장에 도착하니, 사리암까지는 1.1km.
이때 시각이 11:45분.
 
우리 나이에 간절한 바램이 있을까.
마나님과 건걍히 지내면 되지.
 
건동과 같이 포항에 사는 김윤호친구,
마나님 병수발에 이도 좋지 않다고.
같이 와서 기도를 해야했는데-
 
같이 못해 미안하다는 전화가 왔었다.
 
 
 
 
 

주차장에서 돌아오는 길, 산수국

꽃은 작았지만
심심산골에 사니 색이 선명했고 싱싱.
 
 
 
 
 

12:20분 다시 운문사 담장으로

우리도 싱싱.
 
 
 
 
 

절입구, 봉구네 토속음식에서 점심

봉구는 남편 이름.
청도 동곡 생막걸리+참깨칼국수+능이칼국수
그리고 깔끔한 반찬에 옥수수 한대.
 
 
 
 
 

인근 가비카페에서 빙수 두 그릇

가비는 별 뜻이 없고, 댄서 이름?
 
가베는 조직이 성글고 굵은 베.
일본어론 벽, 난관, 두부.
 
 
 
 
 

카페는 꽃정원을 잘 가꾸어놓았다.

호랑나비도 날라왔고.
 
 
 
 
 

삼잎국화라는데-

요즈음 나물로 먹는 삼잎국화가 아닌가보다.
 
카페의 인기 고양이 도감엔 러시안 블루도 있고.
실크같은 피부를 가진 북국 출신 파란 요정.
 
 
 
 
 

카페 옆집은 전라도 밥상, 고향정

4년전 4월, 미나리 삼겹살을 맛있게 먹은 집?
메뉴엔 안나와 있네.
 
한재 미나리(밭 미나리)는 화악산(933m)에서
재배되는 겨울 미나리.
11월 중순에서 다음해 3월말까지 출하된다네.
 
 
 
 
 

우리는 청도 운문을 떠나

경주 건천읍 단석산(829m)으로 출발했다.
 
 
 
 
 

단석산 정상(나무위키 사진)에는

김유신(595-673)장군이 칼을 내려쳐 쪼갰다는
바위가 있다.(삼국유사 등에 기록됨)
당시 단석산은 화랑 수련장이었고
경주에서 가장 높은 산.
 
김유신의 지소부인은 무열왕의 셋째 딸이고,
무열왕비, 문명왕후는 김유신의 누이.
말도 안되는 결합?
 
하여튼 둘이 의기투합하여 삼국통일을 이끌어냈다.
 
 
 
 
 

단석산 밑에 있는 신선사 국보를 보러 가는 길

얼마나 경사가 급하고 휘어졌는지
오륜구동으로도 오르기 힘든 길.
 
백하여 다시 돌고하는 곳이 두 곳.
내려올 때는 더 위험했다.
 
건동친구 땀좀 뺐다.
도중에 내려서 걸어올랐고.
 
입구의 안내원이 우리를 보더니
올려보내도 될까 머리를 갸우뚱.
다섯명이 한입으로 가겠다 했다.
 
 
 
 

신선사까지는 200m

단석산 정상까지는 1.4km.
 
 
 
 
 

신선사가 보였다

경주 건천읍 송선리.
주지는 여스님.
 
대한불교 법화종. 절에서 단석산 정상쪽으로 
더가야 미륵 삼존 중심 보살상과 인물상이 있다.
(고려풍 석불)
 
국보이다. 신선사가 국보를 관리하겠지.
 
 
 
 
 

절 입구에 두 석불이 앉아있고

 
 
 
 
 

산 정상으로 향하다, 미륵전이라 표시된 석실로

 
 
 
 
 

형체가 희미한 마애불상

단석산 정상 바로 아래 병풍처럼 ㄷ자형 석실안.
고대 석굴사원으로 법당겸 요사채.
7세기 전반기 양식.
 
북쪽바위에 불상, 보살상, 인물상이 7구.
국보로 지정되었다.
 
 
 
 
 

미륵입상(건동 사진)

왼쪽 아래에 소원등 1개 만원이라 썼다.
그정도면 싸지.
 
두 손의 방향이 재미있다.
 
 
 
 
 

이 역시 마모가 심하다.(건동 사진)

 
 
 
 
 

17시 23분 경주역 플랫홈

건동친구와 이별했고.
 
고맙다, 친구야.
일정도 아주 좋았어.
 
 
 
 

17:24분 열차는 정시에 출발

19:34분 서울역 도착.
 
서울역 2층 다복집에서 설렁탕+쐬주.
술맛이 얼마나 좋던지.
 
경주 토함산 정상 등반, 청도 운문 사리암까지
걷기, 단석산 신선사 국보는 이여행의 백미.
 
첫날 16천보, 둘째날 13천보를 걸었다.
내년 8월, 후지산 등반은 아무래도 어렵겠다.
 
 
친구들 고마웠고,
읽어주시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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