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강화나들길 걷기 1박 2일

난해 2022. 9. 19. 13:18

9/16(금)9시 강화로 출발

중곡역에서 세 명은 류흥구친구차로
신촌역에서 네 명은 오길수친구차로.
 
뉴질랜드에서 온 길수친구,
그리고 송승현친구와의 여행은 오랜만.
 
친구들간에는 고교졸업후 
처음 보는 친구도 있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기도 한 여행.
 
 
날씨는 비온다는 예보와는 달리
푸른 가을하늘이 보였고.
 
 
 

아직 9월 중순이라

아직 김포, 강화들판은 푸르르고.
 
 
 

강화대교를 건넜다

우리나라에서 제주, 거제, 진도 다음으로 큰 섬.
 
1232-1270년 사이 고려의 수도(江都),
1627년 정묘호란시는 인조가 오랑케를 피해
피난갔던 섬이기도.
 
1800년대 후기에는 열강의 침입을 받았고
종내에는 일본군의 강화도 포격으로
나라가 흔들리기 시작.
 
그만치 4기의 고려왕릉 등
문화재(83개소)도 많고.
 
 
 

강화풍물시장에서 일곱 친구 만났고

지금은 인천광역시 강화군이고
인구는 7만 명이 안됨.
 
강화, 석모, 교동도 중심으로
10여개의 작은 섬들로 구성.
 
마니산(469m), 고려산(436m) 등 저산성 산지이고
충적지, 간척지 등으로 논이 많은 농업지대.
 
고구려때 혈구군, 갑비고차(甲比古次),
신라때 해구군, 혈구현이었다가
이태조때 강화로 개칭.
 
구석기 유물로부터 고인돌, 마니산 참성단 등
많은 유물, 유적이 있다.
 
 
 

우선 풍물시장 2층, 밴댕이 가득한 집

놋그릇집에서 점심.
 
철이 지났지만 밴댕이회+밴댕이무침
+밴댕이구이+강화인삼막걸리.
 
막걸리도 놋그릇에 담겨져 나왔고.
 
 
밴댕이가 성질이 급해 밴댕이 소갈딱지란
말도 나왔고, 오뉴월밴댕이란 말도 있고.
 
작고 볼품은 없지만 음력 5, 6월에 후한
대접을 받는 생선. (청어과, 크기 10-15cm)
 
임금님 진상품이었고 이순신장군은 
임진왜란중에도 밴댕이젓을 챙겨
어머니에게 보냈다고.
 
 
 
 

밴댕이(네이버백과사전 사진)

 
'계절이 단오절에 이르니
어선이 바닷가에 가득하다
밴댕이 어시장에 잔득 나오니
은빛 모습 마을을 뒤덮었다
상추쌈에 먹으면 맛이 으뜸이고
보리밥에 먹어도 맛이 달다
시골 농가에 이것이 없으면
생선 맛 아는 사람 몇이나 될까'
(광해군때 시인, 이응희, 1579-1651)
 
 
지금은 신안 앞바다, 충무산이 대부분이라고.
 
 
 

식후 풍물시장에서 강화나들길 1코스 시작

심도역사문화길, 이곳에서 연미정까지 18km,
6시간 소요.
 
가는 길에는 강화인물 10인에 대한 
설명이 되어있고.
 
고려시대 허유전(1243-1323, 충숙왕때 정승)
조선시대 김상용(1561-1637, 병자호란때 순절)
윤집(1606-1637, 병자호란떄 척화론자)
 
민진원(1664-1736, 숙종비 인현왕후 오빠, 우의정
까지 오르고 숙종, 경종실록 편찬 참여), 
어재연(1823-1871, 신미양요시 전사) 등 10인.
 
 
 

강화산성을 올랐다

몽골침입시 축조된 성곽(토성). 송도의 것과
비슷하게 도성, 궁궐, 관청을 건립.
강화도로 천도한 강도(江都)시기(1232-1270)에.
 
몽골이 전쟁에 승리하자 헐렸고
조선시대에는 석성으로 개축,
 
 
 

산성을 오르내리다 동문(망한루)으로

강화산성은 몽골침입 대비 내성, 중성,
외성으로 이루어졌고 대문 4개소,
암문 4개소, 수문 2개, 
 
그리고 남장대와 북장대.
 
 
 

서문에서 본 읍내

이곳을 떠나 고고미술갤러리카페를 지나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강화읍 관청리 소재.
 
1893년 갑곶이 나루터에서 선교 시작
1897년 선교본부가 강화성내로 이전되었고
1900년 성당 축성.
 
전통한옥양식으로 지어 친근감을 갖게 했다.
가장 오래된 한옥성당.
 
'삼위일체 하느님은 만물을 주관하시니
참근원이 되신다'는 주련도 있고.
 
 
 

십자가가 있는 교회종

1989년 교우들의 봉헌으로 제작.
 
 
 

130년 이상된 보호수, 보리수나무

1900년 영국선교사, 트롤로프신부가
인도에서 갖고온 10년생 보리수이다.
 
각 나라의 문화, 전통을 존중하는
토착화 선교정신.
 
반대쪽엔 회화나무가 있고.
 
 
 

성당내부

좌측엔 옛날사진들이 전시되어 있고.
 
 
 
 

1938년 사진

 

 

 

 

여름꽃, 목백일홍이 피어있고


 
 

밑에서 본 성공회성당

 
 

강화도령의 집, 용흥궁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살던 집.
1853년(철종 4년) 건립.
 
이전에는 농사꾼 이원범이 살았던
초가집이 있었겠지.
 
 
 
 

조그만 집터

안동김씨일파들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학식도 없었던 농사꾼을 왕위에 
앉혔으니, 나라꼴이 어쩠겠나.
 
 
 

이곳을 나와 고려궁 방향으로

강화문학관에는 조경희기념관이 있고.
조경희(1918-2005)는 강화 길상면 온수리 출생,
수필가, 언론인, 관료.
 
 
 

강화문학관의 벽화

고려자기를 만들고 있다.
 
 
 

천주교 강화성당

진무영 순교성지가 있다.(강화읍 관청리)
 
진무영(鎭武營)은 조선시대 해상경비의
임무를 맡았던 군영. 1866년 병인박해시
천주교신자들의 처형지이기도 했고.
 
 
 

한구석에 있는 분홍색, 흰색 목화꽃과 열매

어렸을 때 달콤한 목화열매를 먹었던 기억.
 
 
 

우리는 강화성당을 나와 고려궁지로

1232년(고종 19년)-1270년에 있었던 고려궁.
지금의 고려궁지보다는 훨씬 넓었을 것.
 
몽골의 요구로 궁궐, 성곽은 모두 파괴된 데다 
삼별초들이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또 한번
수난을 당했다고.
 
조선시대에는 유수부 동헌, 이방청, 외규장각
등을 건립하였으나 병자호란, 
병인양요때 대부분 손실되었다.
 
 
 

입구에서 해설사 설명을 듣고(오길수친구 사진)

같이 해설을 듣던 노부부. 할머니는 남편이
전주이씨이며 공부를 잘해서 서울대를 나왔다고
몇번이나 해설사에게 이야기했다. 
 
고려궁지에서 해설사한테 조선시대 이야기만
들으니 그것도 답답.
 
허기야 유물, 유적이 남아있어야지.
 
 
 

강화유수부 동헌(명휘원)

영조때 명필 윤순(1680-1741)이 썼다.
 
행정책임자 유수가 업무를 보던 공간.
팔작지붕에 겹처마.
 
 
 
 

외규장각

왕립도서관 규장각이 1776년 건립되면서
정조 6년(1782년) 외규장각이 건립됨.
 
왕들의 글과 글씨. 어람용의궤및
주요서적, 왕실관련 물품 등을 보관.
 
1866년 병인양요때 프랑스군이 의궤를 포함,
359권 서적을 약탈. 수천 권은 불탔고.
 
2010년 프랑스가 5년 단위로 경신하는
대여하는 방식으로 반환.
 
 
 

길거리에 있는

고려 고종황제 강도(江都) 행차.
 
700살 넘은 보호수, 은행나무가 있고.
 
 
 

아침에 개였던 하늘이 흐려지더니

비가 간헐적으로 오기 시작.
가을비네.
 
벌써 낙엽 뒹구는 길을 걸어 북문으로.
 
 
 

북문(진송루)를 통과했고

 
 
 

벌을 치는 양봉원 옆에 있는 오읍약수

약수 마시고 머리를 감으니 물이 얼마나 찬지.
탄산약수가 아니지만 물맛이 좋았다.
 
 
 

비가 오락가락

약수터에서 큰비는 피했고.
관절이 좋지않은 김도원친구 고생했고.
 
 
 

날씬해보이는 선괴불주머니꽃

현호색과 꽃으로 7-9월 개화.
괴불꽃 종류는 보통 봄에 피는데-
 
 
 

꽃말이 '좋은 추억'인 일일초

아프리카 원산 6-9월 개화. 협죽도과.
추위에 약하고, 잔디대신 심기도.
 
 
 

철모르고 핀 겹황매화(죽단화)

온 세계가 정신없고 하니.
 
 
 

큰 축사 안에 있는 건장한 소

비닐이 쳐있는 사과나무도 보이고.
 
 
 

푸른 하늘이 보이기 시작

비오는 덕에 산보길은 덥지도 않았고.
 
 
 

황금물결이 되기 시작

옛날에는 바다였으나
간척, 충적토 등으로 논이 되었다.
강화농경지의 3/4이 논.
 
70%도민이 농업종사자.
6%가 어민.
 
 
둘레길 표시가 제대로 안되어 있어
길을 헤매기 시작.
 
길을  물으면 논 저쪽을 가리키는데
감이 잘 안잡혔다.
 
 
 

강화읍 돌머루 대산 버스종점 지나고

석모도의 원이름이 돌머루인데
여기에도 돌머루가 있네.
 
대산리에 있는 돌머루돈대(적북돈대)는
민통선으로 인해 접근이 불가하다고.
 
전신주 보수공사 하는 사람에게 또
길을 물었고.
 
한참후 이친구 큰 공사차를 몰고와
길을 잘못 가르켜주었다고 수정해주고
차를 되돌아 몰고 가버렸다.
 
친절함에 감탄했지만
제대로 가르켜준 것이 아닌듯.
 
핸드폰 내비를 동원해 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드디어 감을 잡고

월곳리에 들어섰다
 
 
 

둘레길 이름도 하도 많아 헷갈리고

월곳리에 들어섰는데
다시 대산리.
 
강화도사람들 프라이드도 있고
괜찮은 사람들이라는데
무뚝뚝한 편.
 
길안내표시도 엉망이고.
둘레길을 만들지 말던지.
 
평화전망대는 양사면 철산리 소재.
 
 
 

오랜만에 보는 사루비아(깨꽃)

 

반갑기까지.
굴곡 있는 소나무와 어울렸고.
옛날 살던 석관동 단층집에 피었었는데.
 
남아메리카 원산 한해살이풀. 5-10월 개화.
꽃도 좋지만 밀원식물.
 
 
 

아직도 싱싱한 옥잠화

 

섬바람 때문인가.
 
 
 

드디어 오른쪽에 연미정이 보였고

 

멋진 풍경.
흐려서 더 좋은가.
 
 
 

월곳돈대의 문루, 조해루(朝海樓)

숙종때 53개의 돈대 설치.
 
돈대는 성벽 위를 석재, 벽돌로 쌓아올려
망루와 포루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은 누대.
 
 
 

오른쪽은 강화 십걸, 황형(1459-1520)의 옛집터

황형은 조선중기 무신.
1510년(중종 5년) 삼포왜란때 왜적을 물리쳤고
1512년 함경도 야인들 반란을 진압.
 
평안, 함경도 병마절도사를 거쳐
공조판서에 올랐다.
왕이 그 공을 찬양하여 연미정을 하사했고.
 
 
 

강물은 유유히 흘러 서해로

바닷물인지 강물인지.
 
 
 

보호수와 연미정

540년 이상된 보호수, 느티나무.
 
강화 8경의 하나인 연미정.
달밤의 경치가 특히 아름답다.
 
옛날에는 서해에서 서울로 향하던 배가
연미정 아래에 닻을 내렸다가 조류를
기달려 한강으로 진입했다고.
 
 
 

B가 연미정 위치

강화, 파주 사이는 김포.
우측 김포, 파주 상단 경계 부근에서
임진강과 한강이 만난다.
 
물길의 하나는 교동도쪽을 거쳐 서해로.
또 하나는 갑곳, 인천 서해로.
 
그모양이 제비꼬리.
 
 
 

500년 보호수가 2019년

태풍 링링에 의해 쓰러졌고.
 
 
 

그자리에 연약한 가지가 나오고

흰줄 자리가 나무가 쓰러진 자리.
 
 
 

오른쪽 위에서 한강, 임진강이 합쳐진 물길은

좌로 흐르면 교동도 거쳐 서해로.
오른쪽으로 흘러나가면 인천 서해로.
 
 
 

비구름이 아직 안걷혔고

 
 
 

우리는 연미정 아래 할머니식당으로

 

류흥구친구가 소문을 듣고 권한 식당.
 
나이는 70세이지만 키도 작고
허리도 굽고 늙어보이는 아줌마.
 
허지만 위트도 있고
서비스 좋고, 인사성 좋고.
 
식후 과일을 부탁했더니
달콤하고 싱싱한 포도를 서비스로.
 
 
 

조촐한 가정식 백반, 1인분 9천원

우리가 주문을 하면, 그때 쌀을 앉히고.
방금 한 밥을 먹을 수 있다.
 
밤이 들어간 밥, 조기찌개, 김치찌개,
김치, 깻잎, 멸치볶음 등
여기에 막걸리 4 병.
 
음식재료는 직접 재배한다고.
 
모두들 만족해했고
한담도 했고.
 
 
 

버스시간에 맞춰 나와 버스를 탔다

풍물시장에 주차를 해놓아 택시를 탈 예정
이었으나 아줌마의 말대로 버스를 이용.
 
우리가 전세낸 버스.
 
 
 

풍물시장에서 시외버스터미널 쪽으로

걸어오르다 휴모텔을 발견.
방 4개를 차지.
 
엘리베이터에서 다리가 불편한 용인투숙객을
만났는데 내고향이 용인이라니 반가워했고.
 
강화의 기러기값이 비교적 헐해
기러기를 사러왔다고.
기러기농장을 하나보다.
 
기러기고기는 하늘을 나는 소고기라고.
칼슘이 많아 뼈를 튼튼히 하고
양기를 돕는다고.
 
불포화지방산 레놀린이 풍부.
기력회복, 풍비에 좋다 한다.
 
 
 

내방에 있는 그림

단풍이 한창.
 
다섯친구는 12시까지 당구치고 술먹고
먹은 술병이 일곱병이라나.
 
나는 샤워하고 일찍 취침.
여행 첫날 21천보를 걸었다.
예상한 시간 6시간은 안걸은 것같고.
 
 
 

다음날 아침에 본 둥근열매가 달린 낙우송(落羽松)

양옆으로 잎이 나란히 붙어서 새의 날개모양.
낙엽질 때 잎 전체가 떨어진다.
 
북아메리카 남부지방이 고향.
 
인근 로봇이 서빙하는 얼큰 순대국은
문을 닫았고 해서 풍물시장으로 이동.
 
 
 

풍물시장 앞에서 열린 활기찬 강화 5일장

 

2, 7일에 장이 선다.
친구들은  자두, 마늘, 순무김치 등을 샀다.
 
 
 

풍물시장 주차장 건너편에 있는

서강식당에서 소내장탕(1인당 9천 원)
또는 된장찌개+강화막걸리.
 
깔끔하고 맛잇었다.
 
살찐 가을자두는 초지진 가는 차안에서
디저트로 먹었고.
 
 
 
 

식당안에 붙어있는 좋은 말

'붕몽이생'(길수친구 사진)
 
대붕의 뜻을 품고
개미같이 열심히 살라는 문구.
 
승현친구 한자에도 조예가 깊었다.
 
 
 
 

초지진, 자동차로 이동

초지진인삼센타,  홍삼, 순무, 쌀, 약초가
강화특산물임을 말해준다.
 
 
 

초지돈대의 보호수, 4백년 넘은 소나무

1870년대 열강 침입시에 입은
포탄 흔적이 있다.
 
 
 

초지진 입장, 길상면 초지리

조선후기에 외적의 서해안 침입을 막기 위해
만든 요새 중 하나.
 
병자호란 이후 수비체계가 강화도
중심으로 개편. 안산에 있던 수군기지도
1656년 이곳으로 옮김.
 
1870년대 통상을 요구하는 열강과 격렬히 
싸웠던 곳. 1871년 미군이 점령, 시설을
파괴했고 1875년 일본군과 전투.
 
그결과 이듬해 수호조약 체결 이후
조선은 주권 상실의 시련 속으로.
 
 
 

초지진에서 바라본 초지대교

강화 간상면 초지리와 김포 대곳면 약암리를
있는 길이 720m 다리. 2001년 완공.
 
 
 

대포도 있고

 
 
 

초지진에서 강화나들길 8코스 시작

20개 코스 중 제일 좋다고 선택한 코스.
철새 보러 가는 길.
 
초지진- 황산도 선착장- 동검도입구
- 신두 5리 어판장- 분오리돈대까지
17.2km, 6시간 소요.
 
 
 

아스팔트길 조금 걷다 들어선 나들길

길도 없는 길.
 
 
 

강화인삼백화점, 초지인삼해수탕 지나고

 
 
 

러시아여자와 결혼한 부녀를 만났다

 

엄마가 러시아말만 가르쳤는지
귀여운 딸은 한국말을 잘 못했다.
 
스바시바(감사합니다),
그리고 빠가빠가(안녕)
인사를 나눴고.
 
 
 

갯벌엔 칠면초가 붉게 변해가고

서해안 갯벌에 사는 한해살이풀, 명아주과.
7-9월 개화, 녹색에서 붉은 색으로 변한다.
 
같은 과의 함초(퉁퉁마디)와 멀리서 보아
어떻게 구분이 되는지.

 


 
 

황산교회 지나고


 

칠면초와 어우러진 멋진 초지대교

부드러운 곳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멋내느라 일부러 곡선으로 건설한 것은 아니겠지.
 
 
 

강화경찰수련원 지나고

 

바람개비도 있고
조화도 있고
경찰맛이 안난다.
 
 
 

조그만 게들이 왔다갔다

목포식당에서 김에 살은 게를 싸먹다가
놓친 게, 얼마나 잘 도망갔던지.
 
 
 

강화캐라반캠핑장

주말인데 아직 한산했고.
 
 
 
 

해당화 한 송이


 
'해당화가 곱게 핀 바닷가에서
나 혼자 걷노라면 수평선 멀리
갈매기 한두 쌍이 가물거리네
물결마저 잔잔한 바닷가에서'
 
<장수철(1916-1993) 작사,
이계석(1922-)작곡 동요>
 
 
 

황산어판장

횟집들은 문 닫고
입구의 횟집만 손님들이 득시글.
 
옛날에는 황산도, 섬이었던 곳이
소황산도와 함께 강화섬 일부가 되었다.
 
 
 

맑은 가을하늘엔 흰 구름이

햇볕이 따가웠고.
빨간 바지 아줌마, 우산 받치고
무얼 하시는지.
 
 
 

잘 발달된 고운 갯벌

 

 
 

황산도선착장  8-A코스

 
 
 

배가 내려버리고 떠난 후

닻은 외로워.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나무를 보면 나무를 닮고
모두 자신이 보는 걸 닮아간다
 
멀어져서 아득하고 아름다운
너는 흰 셔츠처럼 펄럭이지
바람에 펄럭이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파서
내 눈 속의 새들이 아우성친다
너도 나를 그리워할까
분홍빛 부드러운 네 손이 다가와 돌려가는
추억의 영사기
이토록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았구나
사라진 시간 사라진 사람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해를 보면 해를 닮고
너를 보면 쓸쓸한 바다를 닮는다
(신현림, 1961-,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큰 꿩의 비름꽃에 나비 날아들고

 

큰 꿩의 비름꽃은 8-9월 개화. 돌나물과.
몸이 다육이라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람.
 
 
 

목책길과 뻘(이재춘친구 사진)

걸을만 하다.
 
 
 

칡이 못살게구는 쉬나무

운향과 낙엽활엽소교목. 7m높이.
중부, 북부, 울릉도 서식.
약재, 등유의 재료.
 
수유나무가 쉬나무로 변했다.
불을 밝히기 위해 선비집 근처에 심는 나무.
밀원식물이기도.
 
10월경 새까맣고 반질거리는 콩만한 
열매가 수없이 달림. 이열매로 기름을 짠다.
(박상진교수)
 
 
 

열심히 사진 찍는 이재춘친구

 

얼굴이 많이 탔다.
 
 
 

 

 

칡꽃의 향기

얼마나 향기로운지.
 
 
 
 

요번 여행으로 더 친숙해진 친구들

 
햇볕에 그을려 얼굴들이 벌겋다.
(길수친구가 핸드폰 자동셔터로 찍은 사진)
 
 
 

갈매기때

썰물이라 꼬마게들이 많이 기어나왔나?
 
 
 

 

초지진으로 돌아오는 길

포도축제장 근처 품바타령.
품바는 장터,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동냥하는 사람.
 
 
 

땡볕에 기온은 오르고

 

오늘의 걷는 일정을 마무리 하기로.
초지진으로 되돌아가는 길.
 
둘째날 10천보를 걸었다.
 
강화섬쌀이 강화도 대표브랜드?
 
 
 

앞서가는 길수친구차

부드러운 사나이,
운전솜씨도 부드럽고.
 
뉴질랜드에서 귀국하여
거동 불편한 노모 모시기에 정신없다.
 
장남이 해외에 나가있으니
심리적으로도 불편하고.
 
 
 

삼식이(쏨뱅이목 삼세기과)탕 먹으려고 대명포구를 갔으나

찬바람이 불어야 잡힌다고.
주말이라 교통만 복잡하고.
 
김포에 사는 류재명, 서홍덕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가한 김포의 맛집을 소개하라고.
그래서 김포 월곳에 있는 하늘채로.
반갑게도 친구들도 합류한다고.
 
요번 여행 전에 재명친구에게 전화를
했었는데 자기집에서 하루 자라고.
 
부인도 그렇게 하라고 했고.
여러번 홍덕, 재명친구집에
초대를 받아 오골계탕을 대접받았었다.
 
장작불을 때서 친구가 끓여주는 오골계탕,
잊을 수가 없지.
 
두 친구 모두 장가를 잘갔다.
마나님들의 내조가 보통이 아니다.
 
특히 재명친구부인은 친구가 사회적으로
어려웠을 때, 적극적으로 나서 위기를
벗어나게한 여걸. 
 
 
 

반갑게 두 친구 합류하여

장치매운탕+복지리+하태욱표 포도주.
 
포도주는 조카가 태욱친구에게
추석선물한 것.
 
때맞춰 포도주를 땄다.

류재명친구와 류흥구친구는 가까운 친척인줄
이제야 알았다고.

흥구친구가 3대 위 할아버지.
 
 
 

동해안 수심 300m넘는 곳에 사는 장치(농민신문 사진)

장어같기도 하고
일반적인 고기같기도 하고.
 
처음 먹어본 물고기.
 
김포에 사는 두 친구 안부를 물었다.
김대환친구는 큰수술도 했고
운영하던 보안업체에선 은퇴.
 
전화를 했더니 건강해졌다고.
 
얼마전 회사에서 은퇴했던 조용국친구는
서울시내에서 가끔 친구들과 만난다.
 
 
 

김포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는 승현친구

 

10월에 창경궁에서 만나
재명친구의 문화해설을 듣기로.
 
요즈음도 해설사로 봉사하고 있다.
 
 


 

카페빌리지에서 또 한바탕 떠들고

 

'좋은 일이 없는 것이 불행한 게 아니라
나쁜 일이 없는 것이 다행인 거야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말했습니다
되는 일이 없다고 세상이나 원망하던
나는 부끄러웠습니다
 
더러워진 발은 깨끗이 씻을 수 있지만
더러워지면 안될 것은 정신인 거야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말했습니다
돠는 일이 없다고 세상에 투덜대던
나는 부끄러웠습니다
 
자기 하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은
실상의 빛을 가려버리는 거야
어느 날 친구가 말했습니다
되는 일이 없다고 세상에 발길질이나 하던
나는 부끄러웠습니다'
(천양희, 1942-, 친구)
 
 
 

김포, 딴차를 탄 친구들과 헤어져 귀가하는 길

마곡대교를 지났고.
 
 
 

역시 한강과 서울은 멋지다

친구들, 여행을 통해
더 가까워지지 않았나?
 
운전을 마다하지 않은 길수, 흥구친구를 비롯
모두들 수고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