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다산유적지 산책

난해 2022. 11. 27. 09:54

11/22(화) 입사동기 4명, 상봉역 9:26분발

경의중앙선으로 운길산 출발.
 
문화해설사 이강을씨와 함께.
직장후배로 상무를 역임한 친구.
김재원대장이 미리 교섭을 했다.
 
 
 
 

운길산역에 내리니

운길산 중턱에 있는 수종사가 보였고.
 
1459년(세조 5년) 세조와 관련된 절의 창건설화가
있다. 임금이 금강산 구경후 양수리에서 밤을 
보냈는데 갑자기 종소리가 들려 살펴보니,
 
운길산 바위굴 속에 16나한을 발견했으며
굴속에 떨어지는 물소리가 종소리를 냈고,
이에 수종사란 절을 지었다고.
 
1439년(세종 21년) 세워진 정의옹주 부도를 보면
세조때에 중창된 것으로 추정.
 
운길사에서 보는 북한강과 두물머리풍경은
서거정선생(1420-1488)이 동방사찰중 
제일의 전망이라고 격찬.
 
 
 
 

버스를 타고 다산유적지로

겉모양은 물론 내부도 고풍스러운 버스.
처음 보는 멋진 버스.
유적지로 가는 버스다웠다.
 
 
 
 

전철 속에서만 보아왔던 대교

버스 속에서 보니 더욱 멋졌다.
 
 
 
 
 

다산유적지 도착

실학박물관을 먼저 보고 식사와 커피 한잔,
사당, 묘소, 생가를 돌아보고,
다산생태공원 산책.
 
남양주시 조안(鳥安)면 능내리 마재마을은
선생이 유년기를 보내고 벼슬, 유배생활후 
돌아와 여생을 마친 곳.
 
능내리는 수양대군의 계유정란 공신, 양절공
한확(1403-1456)의 묘가 있어서
능내, 능안이라 불리고.
 
마재는 말을 타고 넘어가던 고개.
임진왜란때 왜구가 정기를 눌러놓기 위해
산마루에 철로 만든 조그만 말을 묻었다고.
 
마을 뒷산이 쇠말산.
 
 
 
 
 

문화해설사 이강을후배(왼쪽)와 함께

 
 
 
 

실학박물관 밖에는 거중기,

다산선생이 쓴 글, '임금을 하직하려 하자니'
'어버이 무덤에 오르다', '어린 딸이 보고지고'
등이 돌에 새겨져 있다.
 
거중기는 선생이 개발하여 화성을 짓는데
사용한 기계. 무거운 물건을 들어올리는.
 
 
 
 

실학박물관에 들어서니

벌써 연말분위기가 났고.
이강을후배님의 세세한 설명이 시작되었다.
 
 
 
 

조선후기실학자들이 강력히 사용을 주장한

수레와 벽돌에 대한 설명이 있고.
 
 
실학(實學)은 허학(虛學)에 대립되는 말.
현실성, 실용성, 진정성을 강조하는 의미가 있고.
 
학문이나 주장이 현실성이 없어 헛되거나
실속없이 겉만 꾸미는 것을 비판할 때 쓰임.
 
시대에 따라 다르지만 조선전기에는 유학을, 
불교와는 달리 현실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학문이란 뜻.
 
고전(유학경전)연구를 통해 현실문제를 해결하는
창조적 방안을 찾았다는 점에서 유럽의
르네상스와 견주기도.
 
공리공론을 배격, 학문이 세상에 도움이 될 것을
강조하고 실제적 삶을 개선하려고 노력했으며
제도개혁, 기술개발에 관심.

유학 이외 학문에도 관심을 가졌다.
 또 실제의 일에서 옳음의 판단기준을 찾았고.
 
 
 
 

용인 백암에 있는 유형원의 묘비

실학의 비조(鼻祖)는 반계 유형원선생(1622-1673).
서울에 태어나 진사에 급제했으나
벼슬길에 오르지 않음.
 
하멜이 제주도에 표류한 것이 1653년(효종 4년).
17세기 중반에 실학이 태동한 것.
 
 
 
 

연행사는 청나라 수도, 연경(북경)으로 가는 사신

1644-1876년 612회 연행사가 보내졌고,
일본에 파견된 통신사는 12회.
 
17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연행사의 영향이 컸다.
연경, 청의 문화중심, 유리창은 사신들이
들려야할 명소가 되었고.
 
유리창은 명나라때 유리제품을 만들던 곳이나
조선에겐 중국문화 수입과 한중 
지식인 교류의 최전선.
 
홍대용의 담헌연기와 박지원의 열하열기가
대표적 연행기.
 
 
 
 

생년순으로 실학자들을 열거하면

유형원(1622-1673), 이익(1681-1763)
홍대용(1731-1783), 박지원(1737-1805)
 
박제가(1750-1805), 정약용(1762-1836)
김정희(1786-1856), 박규수(1807-1876)순.
 
정약용선생은 성호 이익의 제자들,
매형 이승훈(1756-1801)의 영향을 받았다.
 
 
성호 이익은 평생 안산에 칩거한  재야선비.
연경에 들어가 수천권 서적을 반입한
이하조의 아들.
 
선생의 영향을 받은 인문지리학자, 이중환이
있고, 종손 이가환은 형조판서를 역임했으나
천주교도로 옥사.
 
이이, 유형원의 학풍을 존숭했고 유교정치를 
지표하면서 사회변동에 따른 개혁을 지향.
 
 
 
 

중국인 지식인 엄성이 그린 홍대용 초상화

실학 전성기의 독보적 과학자로 지전설 주장.
박지원에게 중국지식인을 소개했고
그와 함께 대표적 북학파.
 
만리장성을 보며 중국역사를 비판했으며
북경 천주당에서 서양 선교사를 만났고
중국선비를 사귀어  깊은 우정을 나눔.
 
 
 
 

북학파의 산실, 탑골의 터줏대감, 박지원

열하일기를 통해 존명배청, 북벌 등의 허구를
풍자했고 청나라 좋은 점을 배우자고 역설.
 
문학(호질문, 허생전 등)을 통해 신분제 철폐를
주장했고 농업 위에 상업, 공업의 발달을 주창.
 
쉰살이 넘어 벼슬살이, 양양부사로 끝냄.
 
 
 
 

청나라 화가 라빙이 연경 유리창에서 그린 박제가 초상화

조선후기의 정치가, 외교관, 통역관, 실학자.
가장 많이 중국을 갔고 중국명사와 교류.
이를 근거로 북학의 저술.
 
서얼출신이나 정조 덕에 규장각 벼슬을 지냄.
 
 
 
 

실사구시파, 김정희

청의 학자, 옹방강, 완원과 사제를 맺음.
학계원로, 옹방강은 완당이란 호를 지어주었고.
 
청의 대학자,  완원의 고증학과 금석학의 이론과
학설을 지침서로 해서 실증과 고증의 대가가 됨.
 
 
 
 

평온의

박규수가 평면의 원에 별자리를 그려
시간을 표시한 것.
 
박지원의 손자로 개화사상가. 개화파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1875년 최익현 등의 척화주장을
물리치고 강화도조약을 맺는데 큰 역할.
 
효명세자와 교유, 세자의 명으로 박지원의 글을
모아 연암집을 만들어 올림. 세자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한때는 과거를 포기, 칩거하기도.
 
늦게 관료생활을 시작 우의정까지 오름.
중국과의 결속관계는 유지하되 서양과의
교류를 해야한다고 주장.
 
 
 
 

기타 실학관계자료로 용인의 큰 여성, 사주당이씨의

태교신기언해, 천상열차분야지도(고구려 천문도를 
바탕으로 돌에 새긴 천문도), 혼일강리역대국도 지도
(1402년 제작된 세계지도),
 
동국대전도(대동여지도보다 100년 앞서 그린
대형 조선전도) 등을 소개.
 
 
 
 

정약용선생(1762-1836)선생은

합리적 과학사상으로 정조를 도와 배다리 설치,
수원성 설계, 공사에 필요한 거중기 등의
기구를 고안했고,
 
벼슬아치로서는 넓은 도량으로 사람을 대하고
문벌, 당색의 타파를 주장했다.
 
정조 사후 유배생활, 향리 귀환후 생활에서는
유형원, 이익의 학문과 사상을 계승
실학을 집대성하고,
 
주자 성리학의 공리공담을 배격,
봉건제도 개혁을 주장했다.
 
 
 
 

선생의 생애는 4단계로 나눌 수 있고

22세까지의 과거 준비기.
 
1783년 진사 합격후 1801년 까지의 
성균관 수학및 공직수행기.
 
1801년 유배되어 1818년 향리
귀환까지의 시기.
 
그리고 1818년 귀향하여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시기.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는

다산선생의 대표작.
 
목민심서는 민생의 고통해결, 수령의 
부정을 막기 위해 쓴 책.
 
부임, 율기(자기자신을 다스림), 봉공(奉公), 애민,
이전, 호전, 예전, 병전, 형전, 공전, 진황(이재민
구휼), 해관(관원을 면직함)의 12편으로 구성.
 
경세유표는 치도의 방책(국가기본제도 개혁)에
관한 책.
 
흠흠신서는 공정한 형벌에 관한 책.
 
 
 
 

여유당집, 사형조삼의소(辭形曺參議疏)

여유당집, 열수전서로 불리는 다산의 저작집.
열수는 맑은 물이란 뜻으로 한강의 옛말.
 
여유당은 선생의 호.
 
 
 
 

1982년 회갑때 선생의 생애, 사상, 업적을
묘지명(墓誌銘)이라는 문체를 빌어 적은 것이
자찬묘지명(自讚墓誌銘).
 
문집에 넣기 위한 집중본(集中本)과 무덤에
넣기 위한 광중본(壙中本)이 있다.
 
 
하피첩(霞帔帖)은 선생의 귀양시절, 부인이
보내준 치마로 만든 서첩.
 
하피(霞帔)는 신부가 입던 예복으로
노을빛 치마.
 
 
 
 

선생의 귀양도

1801년 장기(포항)에 유배되었다가
가을에 강진으로 유배지가 변경되었다.
 
유배기간동안 독서, 저술에 힘을 기울여
그의 학문체계를 완성.
 
특히 1808년 봄부터 머무른 다산초당은
다산학의 산실.
 
1818년 유배에서 풀렸으나 고향으로 돌아와
자찬묘지명을 지어 자서전적 기록으로 정리.
 
 
 
 

김이재란 친구가 5년 귀양살이를 끝나서

서울로 떠나는 길에 다산을 찾았다.
다산은 10년 넘게 유배생활 중.
영영 이별이 될 수 있음을 안 두 사람.
 
이날같이 흐린 가을날이었을런지.
 
 
 
 

우리가 점심을 들은 감나무집 앞 한강 풍경

 
 
' 그 강에 가고싶다
사람이 없더라도 강물은 저 홀로 흐르고
사람이 없더라도 강물은 멀리 간다
인자는 나도
애가 타게 무엇을 기다리지 않을 때도 되었다
봄이 되어 꽃이 핀다고
금방 웃을 일도 아니고
가을이 되어 잎이 진다고
산에서 눈길을 쉬이  거둘 일도 아니다
 
강가에서 그저 물을 볼 일이요
가만가만 다가가서 물 깊이 산이 거기 늘 앉아 있고'
 
 
 
 

 
 
'이만큼 걸어 항상 물이 거기 흐른다
인자는 강가에 가지 않아도
산은 내 머리말에 와 앉아 쉬었다가 저 혼자 가고
강물은 때로 나를 따라와 머물다가
멀리 간다
강에 가고 싶다
물이 산을 두고 가지 않고
산 또한 물을 두고 가지 않는다
그 산에 그 강
그 강에 가고 싶다'
(김용택, 1948-, 그 강에 가고 싶다)
 
 
 
 

오랜만에 먹은 맛있는 닭도리탕

부침개도 맛있고,
음식도 깔끔하고.
 
 
 
 

윗층에서 커피 한 잔

아래층에서 식사를 하면
한 잔에 2천 원.
이강을후배님이 샀다.
 
 
 
 

선조할아버지와 함께

종현친구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고.
 
 
 
 

선생의 사당, 문도사(文度祠)

문도도 선생의 호.
 
 
 
 

사당 밖 풍경

가을이 아주 떠나지는 않았고.
 
 
 
 

선생과 부인 풍산 홍씨의 합장묘

선생은 가족을 지극히 사랑했다.
 
 
'어린 딸이 보고지고
딸애 단옷날이면
옥 같은 살결 씻고 새단장 했지
치마는 붉은 치마
머리 뒤엔 푸른 창포잎 꽂았었지
절하는 연습 한다 예쁜 모습 보여주고
술잔 전하며 웃음 띤 모습 드러냈다오
오늘 같은 단옷날 밤에는
누가 있어 우리 딸아이를 구슬릴까'
(여유당집에서)
 
 
 
 

선생의 생가 여유당, 다시 지은 것

선생의 호이기도 하고.
1800년 봄에 고향에 들어와서 집을 지었다.
 
 
 
 

가을이 저물어가는 여유당

 
 
노자의 말에
'與여!
겨울의 냇물을 건너는 듯하고
猶여!
사방을 두려워하는 듯 하거라'
라는 말을 내가 보았다.
 
두 마디의 말이 내 성격의 약점을 치료해줄
치료제가 아니겠는가.
(여유당기)
 
'몹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이며
온 사방이 두려운 사람은 자기를 감시하는
 
눈길이 몸에 닿을 것이니
참으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이다'
(노론 공세에 항시 놓인 선생의 처세)
 
 
 
 

다산생태공원으로 이동

면적 5만 평 규모.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

물이 산을 두고 가지 않고
산 또한 물을 두고 가지 않는다
 
 
 
 

팔당호 소내나루 전망대

팔당호는 광주, 남양주, 양평군, 하남시에
걸쳐 있는 인공호수.
 
1974년, 남양주 조안면 능내리와 하남시
배알미동 사이 575m의 팔당댐을 건설.
 
경세는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
 
배알미는 한양을 떠나며 또는 들어오며
임금을 배알하는 곳,
비탈 산기슭이라는 뜻이 있다고.
 
양자산은 양평군 강하면에 있는 산(710m).
 
 
 
 

전망대에서 본 풍경

 
 
 
 

억새가 가을분위기를 돋우고

 
 
 
 

물속에 비친 아름다운 달을 볼 수 있는 수월정

 
 
'벗이여 달 아래서 마시려거든
오늘 밤 달을 놓치지 말게나
만약에 내일로 미룬다면
바다에서 구름이  일 것이며
또 내일로 더 미른다면
둥근달이 이미 이지러질 거야'
(정약용 다산 시문집에서)
 
 
 
 

귀로에 들어섰다

58번 버스 타고, 전철 타고.
 
이강을 후배님, 재원친구 덕에
다산 정약용선생을 돌아보고
이곳의 풍치도 맛보고,
 
좋은 하루를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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