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파일 동대문역에 모여 낙산쪽 성곽길을 찾았다.
바로 전날 봉화산에서 술 한 잔 하며,, 마나님들은 바쁘고 우리는 뭘 할까하다,
돌발로 성곽길을 걷기로 했다. 잘 하면 북악산거쳐 부암동 백사실계곡까지 가보자고.
언제나 꿈은 야무지니까.
입하 때면 피기시작하는 이팝나무 꽃이 눈부셨다.
청계천가의 가냘픈 꽃과는 달리 풍성했다, 올 벼농사는 잘되겠군.
우리는 성 바깥 길을 걸었는데, 담 넘어 매실이 벌써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성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고, 하늘도 제법 파랬다.
아, 좋은 오월의 하루이군.
남산 쪽 조망도 비교적 선명했고,
왼쪽 멀리 백운대와 인수봉이 또렷히 보였다.
이팦나무 그늘밑을 지나,
낙산공원에서 베트남 처자 졸졸 따라가다 성안쪽 마을까지 내려갔다가는, 다시 제자리 찾아
혜화문 쪽으로 향했다. 헛돌지 않는 인생이 있을까?
옛날 쌓은 성과 새로 쌓은 성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재춘친구와 하태욱친구가 사이좋게 걸었다.
수학여행 때 같이 갔던 얘기를 하고 있을까?
창의문 지나 백사실까지 갈 수 있겠어?
주민등록증도 안가져왔고.
앞의 혜화문은 동소문의 정식 이름이다.
일제 때 없어진 문을 다시 복원한 것으로, 의정부방면으로 빠지는 중요 통로였다.
문 밖 삼선교, 돈암동 성북동등에는 중인들이 많이 살았다는데, 이들은 한마디로 재주꾼 아닌가벼.
한성대입구역 쪽으로 빠져, 유명한 이북식보신탕집, 40년 전통의 정주집을 찾았다.
옛날에는 마당에 멍석 깔고 보신탕을 들었다는데---
손재완 친구가 합세했고, 이어 김수동친구가 홍주 한병 들고 찾아왔다.
맛 있는 보신탕에 소홍주 들며 시간 가는줄 모르고 담소했다.
다시 입원한 임춘호친구와 관련된 얘기와 이삼열 소순영 김수동친구의 최근 활약상이
주제였다. 춘호친구의 재기를 바라며--
바람이 오면
오는대로 두었다가
가게 하세요.
그리움이 오면
오는대로 두었다가
가게 하세요.
아픔도 오겠지요.
머물러 살겠지요.
살다간 가겠지요.
세월도 그렇게
왔다간 갈 거예요.
가도록 그냥 두세요. (도종환의 바람이 오면)
수동군과 재완군을 위해, 다시 낙산으로 오르기로 했다.
없는 동네의 연등은 몇년을 썼는지 꾀죄죄했다.
삼선동의 오래된 지붕과 장독대가 그런대로 어울리고 있었다.
이 동네에 국민학교 삼학년 때 살던 집이 어디 그대로 있을텐데.
그때 잠자리 잡던 성터가 생각났고,
같은 집에 살았던 영희의 생각도 났다.
그녀는 조숙하여 콘돔얘기를 해주던 일도 생각난다.
다시 오르는 길,
올 때는 나이 든 사람이 꽤 있었는데, 오후는 젊은이들이 주류다.
대학로쪽으로 올랐겠지.
공원에서 내려갈 땐 성의 안쪽으로 걸었다, 문안쪽으로.
옛날의 판자촌 산동네?
세월을 지키고 있는 담장이넝쿨, 사람의 형태다.
벽화를 그리고 있는 젊은 처자들
초조한 가난한 마을의 미술선생님,
보증금 백만원에 월세 12만원.
휴일이라 그런지, 동대문 앞 교통량은 적었고,
디자인은 현대적이었지만, 낙산의 생활은 큰 변함이 없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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