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칠봉여행을 한지 얼마 안되어,
전재혁친구로부터 엽서가 왔다.
언론인후배들과 여행하는데, 같이 안가겠냐고.
여행을 떠나는 마음은 언제나 조급한데,
양재에서 꽃시장까지 가는데 20분.
정선가는 길의 장전계곡,
가리왕산에서 발원한 물이 흐르는 곳,
단풍은 아직인가보다.
옛날 애인 정선이가 살던 곳.
정선이 가까와오자 단풍이 완연했다.
한시 반, 정선읍내 동강식당에서 한잔했다.
황기족발, 콧등치기의 맛은 여전하고,
정선의 생막걸리 곤드레가 출시되었다.
얼근해져 정선장터를 들렸다.
5일장은 하루전에 열렸지만,
상설시장이 되어 쓸쓸한 가을장터가 열리고 있었다.
취떡집이 눈에 띠었지만,
손바닥만한 수수부꾸미가 천원,
그래 외면하고,
농협하나로에서 장을 보았다.
네시지나, 가리왕산 산림문화휴양관에 안착했다.
저녁먹기는 이르고,
6,25동란전엔 10여호 화전민만 있었다는 어은골(魚隱谷)에 들려,
한동안 30대 여인이 살았다는 동굴도 들여다보니,
정선 회동계곡의 단풍은 한창이었다.
따뜻한 숙소에 들어와,
도드람 목살 삼겹살에 아우라지막걸리, 죽여주는 궁합이었다.
이 산골에도 테레비가 있어.
김장배추가 풍년이라 갈아엎는단다.
저 쓰레기 정치꾼들 갈아엎을 수는 없을까?
거울 속 내얼굴엔 단풍이 들고,
내일부터 추워진다는데,
산에 오를 수 있을까?
아침 밥은 콩나물+블랙라면+햇반+갓,열무김치
(정대표가 짠 메뉴, 이 또한 끝내주었다.)
8시, 심마니다리를 건너 산행을 시작했다.
왼쪽은 삼성전자 홍보실장을 하다 신문사사장을 했던 박고문,
오른쪽은 중앙일보에서 퇴임한 정대표.
안개가 자욱해서, 가을하늘을 볼 수 있을까나?
잠시 쉬면서도 뭘 보고, 뭘 생각하는지.
옛애인은 잊어버려야지.
가끔 폭포도 보였고.
숙소에서 정상까지는 5키로,
절반쯤 왔을 때, 임도가 나오고,
임도는 가을의 절정이었다..
왼쪽 하늘을 보니, 능선엔 구름이 지나고 있었다.
능선에서 왼쪽으로 가면, 중왕산으로 해서 평창 대화로 갈 수 있다.
퇴직후 대화에 머무를 때 가고 싶었던 가리왕산.
오른쪽으로 가면 마항치로 해서 가리왕산 정상에 이른다.
단풍사이로 임도가 가리워졌다.
정상가까이는 겨울이었다.
초목과 관목은 이미 누래졌고,
죽은 주목, 살은 주목만 가끔씩 보였다.
옛날 이곳으로 피난왔었던 맥(貊)국 갈왕의 외로움이 느껴졌다.
가리왕산의 이름은 갈왕에서 왔다고.
선사시대 북방에서 내려온 예맥족과
남쪽에 거주했던 삼한의 사람들이 합쳐져 우리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이 통설.
맥국은 맥족이 세운 조그만 소왕국.
수도는 춘천이었고,
태기산에서 마지막 태기왕이 신라에 저항했다는 전설도 있다.
삼악산에는 맥국이 쌓은 산성이 있고,
등선폭포에는 이들군대가 쌀을 씻었던 시궁치가 있으며,
아랫마을 의암에서는 이들이 옷을 말렸다한다.
춘천의 우두산성도 이들이 쌓은 성이라고.
구름은 무심히 흐르고 있었다.
죽은 주목과 살은 주목이 이웃해 있다.
생과 사는 이웃인가?
산사나이 정대표.
가리왕산 정상을 지키고 있는 주목,
얼마나 바람이 센지, 기형이다.
정상의 제단(?)과 죽은 주목.
1,561미터 정상
이날 우리가 만난 등산인은 세팀.
젊은 팀은 먼저 가버렸고,
우리가 계속 만난 팀은 가족팀, 부부와 두 아들.
어머니와 두아들은 항상 앞서고,
아버지는 비지땀흘려도, 항상 뒤처지고.
아버지가 힘들여 도착하면, 어머니는 "이제 가자."하고.
우리 아버지들의 운명을 말하는듯.
정상에서 우리는 아버지편이 되었다.
"아버님 힘들여 오셨는데, 바로 간다고?"
그제서야 가족들이 같이 쉬며 가족사진도 찍었다.
우리보다 그들이 먼저 떴는데,
힘든 하산코스를 잡고 가는 모자를 할 수 없이 뒤따라가는 아버지.
사방이 산줄기.
이곳에서 동해가 보인다했는데---
우리는 온길을 되돌아와, 임도와 또 조우했다.
7시간 걸려 숙소로 돌아왔다.
하루 걸은 길이 15천보.
다리는 천왕봉갔을 때보다 더 천근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숙소의 고도가 400미터, 1,200미터를 계속 오르는 힘든 산행이었다.
진짜 단풍들은 자화상.
저녁은 영월 산채집을 갈까, 둔내 막국수집으로 갈까나 했지만,
결국 옥봉식당에서 순대+선지국+봉평메밀막걸리
영월은 너무 멀고,
점심은 삶은 달걀에 초코파이였으니, 막국수는 약하고.
그나저나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맛있는 막걸리는 아우라지옥수수막걸리.
이제는 돌아온 길을 정리하고 수확할 때인데,
계속 이산 저산 돌아다니기만 할 것인가?
수확할 것도 없고
수확할 때도 모르는 나 아닌가?
지금 산하는 단풍으로 물들고 들에는 오곡백과가 무르익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추수 때가 된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지냅니다.
주께서는 '열매가 익으니 추수할 때가 이르렀다.'라고 말씀하셨고,
'눈을 들어 밭을 보라 누래져 추수할 때가 되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때를 분별하지 못하는 불쌍한 이 인생들이 때를 알게 하옵소서.
(임광진의 '하늘 사다리'중에서)
이번 여행을 통해 느낀 것 또 하나.
전재혁친구, 후배들이 아직도 따르는 선배이다. 부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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