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초, 터키가는 패키지여행 싼 것이 나왔다하여, 갑자기 결정된 여행.
여행이란 이런 맛이 있어야 제격이지.
4/11 10:20분, 타슈켄트행 우즈베키스탄 비행기는 떴다.
위스퀴다르 바다 건너 찾아갔더니
세상에서 처음 보는 신기한 나라--
터키는 인구 8천만명, 국토는 남한의 8배.
북경, 고비사막을 지나,
이어 텐샨산맥을 지나는 것같았다.
터키는 부민카간이 돌궐을 세운 해, 552년을 건국시기로 보고 있다.
오스만투르크 이전 셀주크투르크가 아나톨리아고원에 진출한 것이 11세기의 일인데도 말이다.
몽골에서 발원한 이들의 조상 흉노는 기원전 3세기 대제국을 세웠고,
이후 동서투르크로 갈라졌으며,
서투르크는 비단길을 따라 아나톨리아반도에 진출하여,
13세기에 오스만투르크를 건국하고, 15세기 콘스탄티노풀을 점령했다.
이어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러고보니 우리는 이들 조상의 행로를 따라 터키로 가고 있는게 아닐까?
터키어를 쓰는 인구는 본토인구의 두배.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탄, 아제르바이젠 등 중앙아시아지역에서
터키어가 많이 쓰이고 있다고 한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칸트에 도착하여,
이곳에서 이스탄불가는 비행기를 타기위해 5시간을 머물렀다.
7시간반의 비행후 다섯시간은 정말 지루했다.
작은 규모의 면세점, 버거점 그리고 음료수, 맥주파는 가게가 각 한개씩.
2달라짜리 물 한병에 싸온 음식 먹으며, 몸을 비비 꼬아댔다.
4시간 반 비행후 드디어 이스탄불.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
비단길의 서쪽 종점. 아시아와 유럽에 걸친 도시,
비몽사몽간에 좋은 이스탄불 야경을 놓치고, 겨우 한컷 찍었다.
이스탄불은 터키 제일의 도시.
인구는 13백만명.
신시가지 베욜르, 구이스탄불 그리고 아시아쪽에 있는 위스퀴다르, 셋으로 나뉜다.
다음날 아침 7시, 아르테미스호텔을 떠나 첫나들이를 나섰다.
5,6,7. 다섯시 일어나고, 여섯시 식사, 일곱시 출발.
어제 이스탄불공항에서는 생쑈를 연출했다.
항상 행동이 뜨는 나는 입국심사때 거의 끝으로 나왔다.
심사대를 먼저 나온 집사람과 친구부인이 뒤따라오라고 손짓하며 생글거리는 모습을 보았는데,
짐찾는 곳에서 이쪽에서 저쪽까지 왔다갔다했는데도 보이질 않았다.
이스탐불의 짐찾는시스템이 인천공항보다 한수 위인가하며, 출국장을 나오니,
마중나온 인파의 줄이 두겹 세겹,
그러나 눈에 익은 사람들은 보이지않고.
미아가 된 나는 오락가락하다,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전송실패'표시만 나오고--
나중 친구의 전화를 받고 재회는 했지만, 마나님의 인상이 험악했다.
'원배아빠'부르며 큰가방 두개 끌고, 남자화장실까지 수색을 했다고.
혹시 화장실에 쓰러져있지 않나해서.
여행일정은 이스탄불에서 보스포루스해협을 건너,
아시아 아나톨리아반도에 있는 앙카라, 카파도키아, 콘야, 파묵칼레, 에베스, 트로이를 거쳐,
다르다넬스해협을 건너 유럽소재 이스탄불로 돌아오는 것이다.
신시가지 지나,
첫방문지 히포드럼, 고대 이스탄불의 심장부.
3세기 콘스탄티누스대제때 완성되었고, 3만명을 수용할 수 있었으며,
전차경기 등이 이곳에서 열렸다.
이곳의 대표명물 오벨리스크.
기원전 16세기 이집트파라오 투트모세3세가 룩소르 카르나크신전에 세운 것을 콘스탄티누스황제가 이곳으로 옮김.
오벨리스크는 세계의 중심임을 상징.
기원전 5세기, 그리스도국가가 페르시아를 물리친 것을 기념한 탑, 뱀기둥.
그리스 델포이신전에 있던 것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가져왔다.
히포드럼에서 멀지않은 그 유명한 성소피아사원.
537년 교회로 세운 것을, 1453년 이스람사원으로 바꿨으며,
1934년부터 터키공화국은 종교행위를 금지시켜,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화려한 천장엔 아랍글자?
예수상 왼쪽은 성모마리아, 오른쪽은 가브리엘,
엎드린 사람은 비잔틴황제.
아래 둥근 원판엔 알라신과 마흐메트를 나타내는 아랍글자
예수와 성모마리아 그리고 요한
엄지를 구멍에 넣고 한바퀴 몸을 돌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블루모스크(슐탄마흐메트사원)는 17세기초 오스만트루크 14대슐탄 마흐메트1세때,
성소피아사원을 모방하여 지은 순수한 이슬람사원.
2만1천개의 푸른색 타일을 사용했다.
블루모스크는 성소피아사원의 아래쪽에 위치.
오스만제국의 심장, 18만평 규모의 톱카프궁전.
36인의 술탄중 18명이 이곳에 살았다.
이곳에는 전쟁의 피해없이, 술탄의 왕관 의상 등이 잘 보관되어 있고,
모세의 지팡이, 요한의 유골 일부 등이 전시되어 있다.
톱카프궁전의 창문.
톱카프궁전의 튜립정원.
톱카프는 대포문이라는 뜻. 옛날에는 큰 대포가 궁전을 지키고 있었겠지.
굵은 철망으로 보호된 이곳엔 86캐럿 다이아 등 보물들이 전시되고 있다.
구이스탄불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
돌마바흐체궁전 입구의 시계탑
히포드럼에서 멀지않은 타마라식당에서 점심을 들고,
갈라타다리를 건너 돌마바흐체궁전을 찾았다.
갈라타다리는 구시가지에서 골든혼을 넘어 신시가지로 인도해준다.
1856년 오스만제국 말기에 압둘메지드1세가 지은 궁전.
베르사이유궁전을 모방하여 화려하게 지었지만, 제국멸망의 큰 원인이 되었다.
이곳에서는 골든혼 바다건너, 구시가지의 성소피아사원 등이 보인다.
궁전에서 보는 보스포루스해협 건너 아시아지역의 위스퀴다르
맘에 드는 궁전의 정원
대학로를 지나,
보스포루스대교를 통해 보스포루스해협을 건너 앙카라를 향하여--
이해협은 흑해와 마르마라해를 연결시켜준다.
터키어로는 보아지치해협.
그리스어로 보스포루스는 암소가 건너간 곳이라는 뜻.
강의 신 아나쿠스의 딸 이오를 바람둥이 제우스가 사랑했다.
어느 날 제우스와 이오가 같이 있을 때 헤라여신이 갑자기 나타나자,
제우스는 이오를 암소로 변신시켰다.
눈치챈 헤라에게 넘겨진 이오는,
헤라의 괴롭힘을 견디다못해 해협을 헤엄쳐 건넜다고.
구시가지의 모스크가 보이고, 마르마라해로 훤하게 시야가 터져있다.
한시간 쯤 달리니 사카리아강이 보였다.
오스만투르크의 세계1차대전 패전후, 비잔틴제국을 다시 세우려는 그리스왕의 군대와
케말아타투르크(터키의 國父)군간의 치열한 전투가 사카리아강변에서 벌어졌는데,
케말이 승리하였다.
투라산휴게소에서 날은 저물어오고, 나그네의 발걸음은 무거워보였다.
8시 되어서야 앙카라 시티호텔에 투숙.
이스탄불을 떠나 여섯시간만에 도착.
앙카라의 아침은 눈부셨다.
인구 430만, 해발 800-1,000미터에 위치한 앙카라는 교통의 중심지이며 행정수도.
시멘트 금속 트럭제조 등이 주요 산업이며 농산물집산지.
터키 건국전에는 오스만정권과 외세에 맞서는 저항의 중심지였다가,
터키공화국 수립후 행정수도로 지정됨에 따라 근대적 도시로 발전했다.
히타이트왕국(기원전18세기-기원전8세기, 청동기시대)의 중심도시였음.
한국공원을 방문하엿으나 휴일 휴무로 밖에서만 기웃기웃.
터키와 우리나라는 1971년 자매결연을 맺었다.
터키의 영웅 케말아타투르크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아타투르크기념관.
11세기 아나톨리아에 처음 진출한 투르크족은 1297년 오스만투르크를 건국하여,
강대국을 이루었으나, 점점 쇠퇴일로에 있었다.
그러다 오스만제국은 판단착오로 세계1차대전시 독일편에 섰다가, 1922년 쇠망하였다.
이때 케말은 그리스, 연합국들에 대항, 독립을 보장하는 로잔조약을 이끌어냈고,
결국은 1924년 터키공화국을 수립했다.
그는 15년 재임기간동안 종교와 정치의 분리, 여성참정권, 일부일처제의 확립,
아랍문자 대신 로마자 도입 등으로 공화국의 기초를 확립했다.
개인적으로 결혼은 했으나 독신으로 생을 보냈고, 사후 재산을 국가에 헌납했다고.
호치민과 비슷한 인물이랄까.
안개는 어디서 왔는지, 갑자기 세상이 안개에 휘덮이고,
카파도키아로 가는 길, 시원하게 넒은 들이 펼쳐있다.
소금호수가 나타났다.
터키소금의 절반이 이곳에서 생산된다고.
이곳 화장실에서 볼일 보고, 2인당 1불
하루 종일 설산이 우리를 따라왔다.
조그만 시골에도 사원이 보였다.
사원의 미나르(첨탑)는 두가지 역활을 한다고.
예배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멀리 퍼지게 하며,
사원의 위치를 쉽게 찾을 수 있게한다.
기도(살라트, 나마즈)는 일출 일몰 정오시각을 피한다고 한다,
태양숭배를 피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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