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마음을 따라가는 여행4(포르투갈)

난해 2017. 8. 20.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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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에 들어서서

 

날씨가 어둑해서야 파티마성당 앞에 있는

쿠르즈알타호텔에 도착했다.

CRUZ는 포르투갈말로 십자가.

 

사라만카에서 파티마까지는 380km.

파티마의 인구는 12천명.

 

 

성당의 큰 광장을 건너 있는 건물

 

 

성당과 그앞에 있는 그리스도상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십자가형상이 예술적.

우리나라 곳곳에서 보이는

볼품 없는 십자가와는 틀리다.

 

 

멀리서 본 성당.

 

이성당은 1917년 5/13일 이곳 근처에서

세명의 양치는 어린이들이 성모마리아를

목격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졌다.

 

이때는 1차대전 중에 암울한 분위기였고

세번쨰 10/13일 마지막으로

성모가 나타났을 때는

7만명이 몰렸었다고.

 

 

감흥을 어떻게 표현할지.

늦게 도착한 것이 행운이랄까.

 

바티칸은 이를 공식 인정했고

내년(2017)에는 성모발현 100주년 행사를

거창하게 기획하고 있다 한다.

 

 

이곳에 양치기 세명이 묻혀있다고.

 

우리부부는 신자는 아니드라도

저녁후 미사에 참여하려 했지만

 

여독때문에 생각에 그치고 말았다.

아쉬웠다.

 

 

다음날(9/30 금) 6시반

까보다로까(로까곳)으로 떠나는 길,

노을이 아름다웠다.

 

 

포루투갈은 스페인과 같은 역사를 갖다가,

1143년 알폰소 엔리크왕때

카스티야로부터 독립한 후

서구 최초의 단일민족국가가 되었다.

 

1580년부터 60년간 스페인 통치를 받았지만.

스페인보다 앞선 해양국이었다.

스페인과 토르데시아협정에 따라

스페인이 신대륙을 개척한 반면,

포루투갈은 아시아, 아프리카에 주력하였다.

 

1822년 브라질이 독립한 이후

국력이 쇠퇴하고 혼란이 계속되었다.

1986년 EU가입.

 

남한 보다 면적으로 조금 작고

인구는 천백만명 정도.

 

스페인은 입헌군주국임에 반해

포르투갈은 공화국.

 

 

붉은 지붕들의 집들,

포르투갈 특유의 정취를 내뿜었다.

 

 

아파트도 그리 보기싫지 않고.

 

 

드디어 유럽대륙이 끝나고

대서양이 넓게 펼쳐진

땅끝마을, 까보따로까에 도착했다.

 

 

조그만 나라지만, 땅끝에 위치해

스페인보다 보다 먼저 해양강국이 되었고,

지금도 2억명이 포르투갈어를 사용한다.

 

세계에서 널리 쓰이는 말을 보면,

중국어 12억, 스페인 4억, 영어 3.4억,

힌디 2.6억, 아랍 2.2억 순이다.

 

물론 영어가 100여개국에서

통하고 있다 하지만.

 

 

CABO DA ROCA표지판

 

 

파도는 거세었다.

이들의 대중가요, 파두(Fado)를

생각나게 하지만.

 

파두는 숙명, 운명의 뜻.

우리나라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거센 바람을 즐기는 사람들

 

 

우리는 파티마에서 125키로 떨어진

리스본에 도착했다.

 

타호강(Rio Tajo) 하구의 벨렘탑이다.

테주강(포르투갈어로는 Rio Tejo)의

귀부인이라는.

 

16세기에 세워진 이탑은

1층은 정치범의 감옥으로 쓰였고,

탐험대의 전진기지였으며

선박출입을 감시하는 탑이였다.

 

지금은 탑이 육지로 올라서 있지만

밀물 썰물시 죄수들을 고문했다고.

 

1515-1521년, 바스코다가마의

업적을 기려 지어졌다.

 

 

강건너 리스본예수상이 보였다.

 

리스본은 이들말로 리스보아.

바다를 향한 거대한 꿈이 이뤄졌던 곳.

1255년 코임브라로부터 천도된 이후 수도.

 

인구는 57만,

주변 도시권을 합치면, 300만명.

 

1755년 지진, 해일로 2/3가 파괴되었었다.

 

 

왼쪽에 금문교를 본따 만든 현수교가 보인다.

 

 

이름은 4월25일 다리(Ponte 25 de Abril)

길이는 2.3키로이고

건너편에는 철강, 화학, 조선공장들이 있다.

 

1966년 완공된 이 다리는 당시 독재자

이름을 붙여 살라자교라 불리다가,

74.4.25. 포루투갈 혁명을 기념하여

4월25일 다리라 부른다.

 

 

한쪽에는 요트들이 집결해 있다.

 

시간이 없어 포르투갈 항해시대를 열은엔리케왕자,

사후 500년을 기념한 '발견의 탑'을

못본 것이 정말 아쉬웠다.

 

탑이 있는 자리는

바스코다가마가 항해를 떠났던 곳.

 

 

벨렘탑 인근에 있는 제로니모스 수도원.

 

석회암으로 된 수도원은

한변의 길이가 3백미터에 이르고

마누엘 양식의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 

 

수도원은 엔리케왕자가 세운 예배당에

마누엘 1세가 제로니모스파 수도사를

위해 건립했다.

 

마누엘 1세(1495-1521)는

 바스코다가마의 인도 도착,

브라질 발견 등으로 해상왕국을 실현.

 

이때 꽃피운 르네상스 건축양식은

마누엘양식이라 하며,

해산물, 항해용구를 곁들었다.

 

 

거리의 노란버스 친근감을 주고.

 

 

인근에는 유명한 에그타르트 원조점

Pasteis de Belem이 있다.

 

수녀들이 계란의 흰자위는

수녀복을 빳빳하게 하는데 사용하고,

남은 노른자를 사용하여 만든 페스츄리.

 

가이드 조나단 덕에 줄 안서고

한개씩 얻어 먹었다.

 

몇개 남은 빵은 퀴즈를 맞힌 사람에게

주었는데, 그것 얻어 먹으려고

우리는 열심히 손을 들었다.

 

 

우리는 마드리드의 톡톡이를 타고

시내 한바퀴를 돌았다.

기사는 선그라스 쓴 멋쟁이 처녀.

 

 

거리엔 젊은 악사도 있고,

 

 

이층버스도 지나가고

 

 

정겨운 귀요미전차가 좁은 길을 다녔다.

리스본은 여행자의 거리.

 

 

거리시장엔 코르크로 만든 백 등

코르크제품이 많다.

포르투갈은 세계 코르크의 60%를 생산.

그만큼 참나무도 많고.

 

19-21도의 디저트용 포르또와인이 유명하고,

세계 최대의 중석광산이 있다.

 

 

1755년 살아남은 대성당도 지나가고.

 

 

엔리케왕자(1394-1460)

포루투갈 10대왕, 주앙 1세의 세째 아들.

 

아프리카 지브랄타 해협에 있는 스페인의 고립된

아프리카영토,  세우타를 정복했고,

각국의 항해전문가들을 모아 항해연구소를 구축,

포르투갈 제국의 해양인프라를 구축했다.

 

 아프리카 적도를 남하하는 것을 금기시 하던 당시,

아프리카 서해안을 개척했고,

노예무역을 전개.

 

어떻게 보면, 아메리카 흑인노예의 원흉.

 

그는 아버지의 후계자제의를 거절하고

평생 독신으로 산 외로운 사람.

 

 

언덕 정상에서 미인기사와 함께.

 

스페인사람은 강렬, 선명한 유채색이라면,

포르투갈사람은 조용한, 은은한 무채색이라는데,

그녀의 성격도 은은하다 할까?

 

 

알칸타라전망대에서

 테주강과 도시를 내려다보는 맛.

 

리스본은 다시 와보고 싶은 도시이다.

군데군데 섞여있는 이슬람문화도 맛볼 수 있고.

 

 

리스본은 테주강 하구 우안에 자리한

7개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시가지는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대지진후 상업, 행정중심인 저습지,

페니키아 로마 이래의 옛시가지, 동부,

그리고 신시가지 서부.

 

최근엔 북부로 시가지가 확장되고 있다.

 

 

이곳도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벽, 담장은

아름다운 낙서로 덮혀 있다.

 

 

우리가 점심을 들은 Joao do Grac

레스토랑이 있는 골목거리.

 

 

이곳 리스본에는 해물음식이 많다.

 

 

종업원이 우리가 반가웠던지

즉석 공연을 했다.

 

 

우리가 먹은 음식은 대구포에

채소, 좁쌀?을 섞은 복음밥.

 

 

별 네개짜리 호텔?

분위기가 별 네개이겠지.

 

 

우리는 4월 25일 다리를 건넜다.

 

 

강 건너편에는 리스본예수상이 서있는데

브라질예수상과 비슷한 포즈를 하고 있다.

브라질 예수상보다 늦게 세워졌고,

기단 75미터, 상높이 28미터.

 

 

 

 

이 테주강가에서

아말리아 로드리게스(1920-1999)는

'검은 돛배'를 불렀다.

돌아오지 않는 선원에 대한 그리움.

 

그녀의 장례는 국장으로 치루어졌다.

 

파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좌절, 고난, 그리움 등

가난한 사람들의 애수어린 삶을 표현한다.

 

아프리카계 브라질의 노래,

리스본 전통의 노래,

시골에서 유입된 노래 등이 합쳐졌다.

 

 

리스본에서 스페인 남부 세비야로

가는 400키로 길.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비옥한

평야를 만드는 과달키비르강 하구.

이곳에서 강을 따라 90km오르면 세비야

 

 

버스창가로 밀밭이 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