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마음을 따라가는 여행3(라만차 톨레도 사라만카)

난해 2017. 8. 20.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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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에서 라만차 풍차마을로 가는 길,

끝없는 밀밭이 펼쳐진다.

 

여행을 떠나기전에는

빵을 먹으면, 속이 거북하였는데-

요번 여행에서는 얼마나 잘 먹었는지.

 

귀국하니, 여전히 빵이 안먹혔다.

이 넓은 밀밭의 나라 것과

수입밀로 만든 것과 어찌 비교하리오.

 

라만차의 풍차마을까지는

한가롭고 느긋한 여정이다.

 

톨레도는 마드리드 서남쪽으로 80키로,

라만차지역은 톨레도 동남쪽.

 

 

라만차는 스페인 중남부 고원지대이다.

라만차는 고원을 뜻하는 아랍어에서 유래.

 

우리에겐 돈키호테가 연상되는 지명이며

스페인에서 포도가 가장 많이 재배되는 지역.

 

콘수에그라, 돈키호테의 상상의 여인,

둘시네아가 살던 흰벽의 거리,

엘토보소를 지나,

 

캄포데 크립타나 마을 언덕 위에 있는

풍차를 찾았다.

 

좁은 골목 사이를 큰 버스가 잘도 갔다.

 

 

멀리 풍차가 보이고

 

 

길가에는 스페인의 상징,

투우소가 지나갔다.

 

 

언덕을 오르니 열개가 넘는 풍차.

 

세상은 이상과 현실,

환상과 사실이 충돌하는 공간이다.

소외, 적막, 좌절이 꽉 차있다.

 

돈키호테는 이를 저돌적으로 돌파,

애마를 타고 풍차로 돌진한다.

 

우수꽝스러우나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꿈과 이상을 위해 행동을 아끼지 않는

충동적 몽상가이다.

 

 

언덕의 바람은 왜 그리 쎈지.

과연 풍차로 방아를 찧는지.

 

 

화란의 풍차와는 달리

내겐 괴물로만 보이고,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니

전원풍경이 마음에 들어왔다.

 

 

썬그라스의 세여인

바람에 대해서 얘기하는 걸까?

 

한 풍차 안에서는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언덕 위에 성채가 있다.

마을은 시에스타가 안끝났는지

조용하기만 하고.

 

 

이어 우리는 톨레도에 도착했다.

 

톨레도 알카사르가 우뚝 서있다.

알카사르는 아랍에서 온 말로 성이라는 뜻.

13세기 무어인을 몰아내기 위해 축조되었다.

 

지금은 군사박물관 등으로 이용된다.

 

 

대성당을 가려면

높은 언덕을 올라야 한다.

 

 

종루도 보이고 좁은 골목이 이어진다.

 

톨레도는 이천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가 융합된 도시.

 

로마자치도시, 서고트왕국의 수도.

이슬람의 코르도바에미레이트의 요새,

무어인과 싸운 기독교왕국의 전초기지였다.

 

도시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며,

상공업이 발달되었고,

칼 제조 등 무기산지이다.

 

 

톨레도는 하회마을처럼

타호강이 도시전체를 반원으로 돌아흐른다.,

인구는 83천명,

수도가 1560년 이곳에서 마드리드로 이전됨.

 

타호강은 길이가 1,007km이고

반도의 동부 쿠엥카, 1,600고지에서 발원,

리스본 부근에서 삼각형을 이루며

대서양으로 흐른다.,

 

 

우리는 톨레도 대성당을 찾았다.

 

1225년 이슬람세력을 물리친 것을 기념,

페르난드3세의 명에 의해 1277-1493년

사이에 고딕양식으로 지어졌다.

 

스페인 가토릭의 총본산이다.

 

페르난도3세(1199-1252)는 1231년

카스티야왕국과 갈리시아-레온왕국을

통일한 위대한 왕중의 하나.

이슬람세력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화려함의 극치, 둥근 천정.

 

대성당은 다양한 문화의 소산.

회랑은 무데하르양식(무어인들의 양식)이고,

서고트식 예식에 따라 미사를 한다.

 

이슬람사원이 있던 자리이다.

 

 

보물실에 보관된 Custodia(성체현시대)는

금과 은 5천개 부품으로 되어있다.

높이 3m, 무게 180kg.

독일작가, 엔리께데 아르페가 만들었다.

 

 

엘 그레코 등 유명작가의 작품이 많다.

 

 

화려한 내부장식

 

 

크레타 출신이나, 톨레도에서 예술적 이력을 쌓은 

엘 그레코가 그린

'그리스도의 옷을 벗기다'

 

 

웅장한 파이프오르간

 

 

로마병사들의 조각

 

 

이태리화가 루카 지오르다노(1634-1705)의

프레스코 천정화

 

프레스코는 석고가 마르기 전에

그림을 그리는 양식

 

 

 

18C 바로크양식,

이태리조각가 나르시소 토메작품

 

 

우리는 대성당을 나섰다.

 

 

파래시오스 레스토랑에서

현지식으로 식사를 하고 나오니

저녁노을이 물들었다.

 

 

타호강 줄기

 

 

성당을 뒤돌아 보았다.

 

 

아침 7시 홀리데이인 호텔에서 식사를 하던 중

한사람이 가방을 잃어버렸다.

경찰도 있었는데.

 

의자 뒤에 가방을 놓고 식사하는 중에

날쌘돌이가 여권이 든 가방을 채갔다.

그녀는 여권 발급을 위해

천유로의 금전적 손실외에

모로코여행을 포기해야 했다.

 

여행 4일째(9/29,목) 포르투갈 가기 전

사라만카 가는 길, 아침노을이 이뻤다.

 

 

나무 세 그루, 외롭지 않아 좋았다.

 

Novis Olivo점에서 올리브 쇼핑.

 

 

스페인 여행을 하다보면

담장이나 벽에 예쁜 글씨, 그림이 있다.

젊은이들의 솜씨라는데.

 

Auto Grill에서 잠시 쉬고.

 

 

가축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멋진 다리가 지나갔다.

 

 

또 밀밭이 나타나고.

이들은 격년제로 밀을 심는다.

 

 

드디어 사라만카의 광장(플라자마요르)에 도착.

광장은 18세기 필리프5세때 지어졌고,

호화로운 바로크벽돌로 지어졌으며

스페인의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 한다.

 

사라만카는 마드리드에서 215키로.

토르메르강이 흐르고,

로마시대 다리가 있다.

 

이곳은 농산물, 가축거래의 중심지.

비료, 피혁, 양조, 제분이 활성화 되었다.

 

 

거리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사라만카는 기원전 3세기 한니발에 점령당했고,

로마, 서고트, 이슬람에 점령당했다가

1085년 그리스도교로 되돌아 왔다.

 

 

점심은 중국집에서 먹었는데, 좀 짰다.

스페인의 음식값 등은 가격이 헐한편.

 

유럽의 4Pigs는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태리인데 서구사람들은

스페인을 선호하는 모양이다.

경제는 잘 나가지않지만, 물가는 싼편이고

볼 것도 많고, 놀 것도 많고.

 

 

젊은이의 도시라 캠퍼매장이 있었다.

 

13C 알폰소대주교가 사라만카대학을 창립후

이도시는 학술,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고,

유수의 대학들이 자리하고 있어,

 

이도시의 인구 16만명중 대학생이 7만명.

 

 

젊음이 가득한 도시, 사라만카

 

 

광장의 번화가에는 하몬 전문점이 있었다.

이지방의 도토리로 사육한 하몬이 유명.

 

Jamon, J는 스페인어로는 ㅎ으로 발음.

이곳이 기온차가 큰 점을 이용,

돼지의 지방을 제거한다.

 

어, 돼지뒷다리 걸어논 것이 안보이네.

 

바셀로나에서 하몬을 사서

요즈음 멜론 잘 익은 것과 먹는데,

맛이 괜찮다.

 

 

이도시 중심에는  로마네스크, 고딕, 무어,

르네상스, 바로크양식의 건물들이 남아 있다.

 

대성당은 16세기 건립된 고딕식 건축물.

 

 

12세기 로마네스크양식의 대성당.

고딕에 비해 단조로워 보인다.

 

로마네스크는 초기 크리스트교 건축이후

고딕이 출현할 때까지의 예술양식.

 

 

우리도 젊은이들 따라 골목을 누볐다.

이곳에는 벽에 조개모양을 넣은 집들이 많다.

조개는 성야곱을 상징한다고.

 

 

토르메스강이 흐른다.

 

스페인 북부사람은 육식을 좋아하고,

나무자르기 등 힘자랑을 좋아한다.

반면 남부사람은 샐러드, 생선애호가다.

 

 

다시 들판이 연속되었다.

우리는 포르투갈의 파티마를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