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인생의 한 고비 넘어 고비사막으로 2

난해 2023. 8. 23. 09:30

숙소를 떠나 모래언덕, 홍고린 엘스로 가는 길

볼강이란 작은 동네를 들렸다.
학교도 있고, 사원도 있고.
 
 
 
 

거리의 큼직한 표지판

무슨 말인지?
볼강 고비식당 안내판이라네.
 
 
 
 

강물이 흐르는지

제법 키작은 나무들이 많았고.
 
 
 
 

황량한 사막의 언덕

사막화가 진전되고 있는 모양.
 
 
 
 

차도 쉬어가고

담배도 피우고. 전형적인 몽골인, 아귀.
자동차를 몰고 길을 만들어 가는 거친 솜씨,
남자다웁다. 저녁땐 술도 벌컥벌컥.
 
 
 
 

사진찍기 바쁜 기를 치맥

고향이 러시아 접경지역이라는데
전형적 몽골여인 같지가 않다.
아들이 하나 있는데, 몸매도 가냘프고.
 
 
 
 

소피도 보고

차를 타고 지나다보면
젊은 여인들, 길가에서 부끄럼 없이 엉덩이를 까고
급한 일을 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0여년전, 인도 대륙을 버스로 종단할 때
버스를 정차하고 한편에선 여자,
반대편에서 남자가 볼일을 보았는데
버스 밑창으로 들여다보다 혼난 일도 있다.
 
 
 
 

물통에서 물을 먹던 말들

우리가 접근하니 멀리 피해가고-
하여튼 자유로운 말들, 행복하지 않을까.
 
 
 
 

우리는 이곳에 있는

우물을 신기한듯 내려다보았고.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는지, 파안대소

여행은 즐거운 것.
 
 
 
 

지나는 길, 가축들 우리도 보였고

몽골기사들은 GPS없이도 
길없는 초원을 잘 달려 목적지를 간다 한다.
 
 
 

길쭉하게 뻗어있는 모래사막도 보이고

미국의 데스랜드와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그곳도 사막지대, 사막을 헤매다 죽은
사람들이 많았고 생물들이 살아가기 힘든 곳이라
death land.
 
함유하고 있는 광물종류에 따라
땅색이 다르다.
 
 
 
 

멋진 사막풍경

'당신에게는 사막이 필요하다'의 저자, 아킬 모저는 
30년 넘게 전세계의 모든 사막을 여행했다.
인생의 의미, 희망, 용기를 찾았고
황홀한 치유의 경험을 맛보기도.
 
그는 부처를 만난 순례자처럼 남고비를 여행.
모래의 고비사막을 '소리를 울리는 모래의 산'
으로 표현했고. 다양한 무늬의 모래를 보고
그림책에 그려진 사막이라 했다.
 
남고비에는 유명한 둔황의 동굴사원이 있고.
 
 
 
 

가벼운 놈만 타라 하고있는 낙타들

허르헉을 먹기위해 들린 아귀친구네 동네.
낙타타기를 할 수있다.
 
배경엔 모래언덕이 있고.
 
 
 
 

류시모회원의 낙타가 일어서기 직전

 
 
 
 

최종철 회원도

아킬 모저가 말한 바와 같이 고비의
낙타들은 아프리카 낙타보다 성질이 고약.
특히 일어설 때가 위험한 순간.
 
낙타는 스프링처럼 튕겨 일어선다.
 
 
 
 

80이 가까운 셋은 몸을 사려야했고

대표선수 둘이 낙타를 타고 한 바퀴.
 
 
 
 

빨랫줄의 휘날리는 깃발

가뜩이나 건조한 사막에 바람이 없다면
더욱 삭막하리라.
인간사회에 바람기가 없다면
역시 삭막할 것이고.
 
 
 
 

준비된 양고기 허르헉, 우리의 점심

몽골의 전통찜, 허르헉은 생일, 명절때만 
즐길 수 있는 요리. 주재료는 양과 염소.
 
원래는 고기를 가죽속에 넣어 달군 돌을 굴려 익히는데
과정도 복잡하고 어렵고, 7-8시간 소요.
요즈음은 달군 돌을 밀폐, 1-2시간 익힌다고.
 
 
 
 

다같이 뜯읍시다

곁에는 징기스칸, 에덴 보드카, 콜라.
많은 양이 남아서 싸들고 숙소로 갔는데
결국은 폐기 처분.
 
 
 
 

홀로 자동차를 몰고 여행중인 60대 초반 싱가폴여인

영어도 유창했고.
육류를 싫어해 같이 먹자는 제의를 거절.
머리디자인 전문가로 서울도 자주 들린다고.
 
우리가 먹고있는 자리에서 그녀가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쫓아낸 셈.
 
우리는 70대로 모래언덕을 오른다 하자
기가 찬 모양, 모래언덕을 같이 오르자 하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팔씨름에 자신있다는 류시모 막내회원

낙타몰이꾼 친구에게 팔씨름 제의.
힘도 못쓰고 완패, 오른쪽 왼쪽 모두.
 
 
 
 

세 젊은이, 멋져

그러고 보니 몽골친구, 미남이다.
인정 많고 손님 접대도 후하게 하는 유목민.
 
 
 
 

또 자동차 시동이 걸리지 않고

몇 번째인지.
세루모터를 갈으면 될 터인데.
 
 
 
 

모래언덕 가기전

아귀, 애인을 만났다.
대학원을 졸업한 수재, 여행사를 운영한다나.
아귀 힘도 좋고 여자들에게 인기가 좋단다.
여행업에 종사하다보니 기회도 많을 테고.
 
 
 
 

볼강마을에서 만난 가이드

치맥을 통해 최종철회원이 좋아한다 했더니
우리차로 찾아왔다.
 
 
 
 

드디어 우리가 오를 홍고린 엘스, 모래언덕 도착

이지역을 흐르는 강 이름이 홍고린,
제법 강이 넓고 수량도 넉넉하다고.
이곳에서도 낙타를 탈 수 있다.
 
 
 
 

러시아 군용차량, 푸르공

우리가 탄 스타렉스 대용으로 이용되는.
4륜구동차로 오프로드에 적합한 차량이나
에어컨이 없고 승차감이 좋지 않다고.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선호하기도.
 
 
 
 

개미처럼 모래언덕을 오르는 젊은이들

노래하는 모래언덕, 높이 300m.
고비 구르반사이칸 국립공원내.
오르느데 1시간 반 내지 두 시간.
 
 
 
 

모래썰매를 끌고 오르는 젊은이들

우리는 맨발로 오르니, 부드러운 모래 촉감.
 
 
 

작은 모래언덕을 넘고

 
'어느 날 내가 사는 사막으로
빗방울처럼 그대가 오리라
그러면 전갈들은 꿀을 모으고
낙타의 등은 풀잎 가득한 언덕이 되고
햇빛 아래 모래알들은 빵으로 부풀고
독수리의 부리는 썩은 고기 대신
꽃가루를 탐하리
가난한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세상이란 오직 이것뿐
어느 날 나의 사막으로 그대가 오면
지평선과 하늘이 입맞춤하는 곳에서
나 그대를 맞으리라'
(유하, 1963-, 어느날 나의 사막으로 그대가 오면)
 
 
 
 

어느길로 오르는 것이 힘이 안들까

50대 아줌마, 아들이 모래썰매를 타고 내려오니
함성을 지른다. 안 오르시겠냐 물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중간 쉼터에서, 싱싱한 얼굴들

 
'모래만 사막이 되는 게 아니지라
사람 사는 세상도 사막이 될 수 있지라
 
그 속에
오아시스를 
품고 있지 않으면'
(박방희, 1946-, 사막)
 
 
 
 

뒤돌아보니

모래썰매를 지지대로 만들어 올라왔으면
미끄러짐을 방지할 수 있었는데.
 
 
 
 

정상을 향하는 젊은이들

5.60대도 볼 수 없었고.
경사진 곳은 부드러운 모래 때문
미끌어지고 또 미끌어지고.
 
올해도 울진 응봉산을 올랐지만
모래언덕을 오르는 것이 더 어렵다.
 
내가 힘들어하자 다른 팀의 가이드
줄을 건네줬고 줄을 잡고 오르니 가뿐.
지팡이라도 가져올 껄.
 
 
 
 

3/2지점에서 푹 쉬고 말았고

한 회원이 네발로 오르니, 치맥도 네발로.
그모습이 얼마나 재미있던지.
 
세사람은 인생의 고비를 넘자면
포기할 줄도 알아야 된다고 말하며
오르는 젊은이들을 응원했고.
 
헐떡이며 의지를 꺽지 않고 오르는 여학생들,
어찌나 이뻐보이는지.
 
 
 
 

정상에 오른 두 회원의 환희

엄청 힘들었다고 몇번이나 말했다.
잘 했다, 두 친구.
 
주위의 젊은이들로부터 70세 초반 어른들의
모래언덕 등정을 축하받았다고.
 
 
 
 

우리와 함께 후미에서 올랐던 치맥

정상에서 두 친구와 합세.
얼마나 재빠르게 오르는지.
젊음이 부러웠고.
 
 
 
 

정상에서 보았다는 모래밭

스웨덴 탐험가, 스벤 헤딘(1865-1952)의 말,
'모래언덕의 바다, 아주 드물게 외딴 곳에 다소곳
자리잡은 풀덤불이 모래평원의 파도를
막아설 뿐이다.'
 
 
 
 

구름이 모여들었고

모래언덕에서 내려오는 것은 누워서 떡먹기.
순식간에 내려왔다.
 
 
 
 

7시정도  홍고린 엘스에 있는 숙소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
 
 
 
 

저녁은 치맥과 아귀가 끓여준

라면에 보드카 한 잔.
자다가 쏟아진 소낙비, 최종철회원의 기지로
천장문을 닫아 피해는 없었으나,
옆 게르의 두 사람, 침낭이 젖었다고.
 
밤중에 헤드랜턴 머리에 하고 화장실 갔다오다,
잘못하여 젊은이들의 게르로 뛰어들었으니-
얼마나 놀랬을까.
 
투숙객들이 많아 샤워장은 붐벼
샤워도 제대로 못했고.
 
 
 
 

다음날 아침식사

구수한 커피도 있었고.
둘째날 게르에서 한 식사보단 한수 위.
 
식당 안엔 그림 등 작품도 볼만했고.
 
 
 
 

안녕, 모래사막

또 길을 떠났고.
이여행의 목적지를 뒤로 하고.
 
 
 
 

이날도 시동이 안걸려 고생했다

아귀가 손을 보았지만, 시원찮고
정비소가 있는 동네에서 차를 손볼 동안
동네 게르에 머물었다.
 
아귀가 미안한지 보드카 한 병을 사왔고.
 
 
 
 

동네 두 꼬마가 우리를 방문

천원짜리, 1달러짜리를 건넸더니
공을 사가지고 와선 밖에서 뛰놀았고.
 
 
 
 

아귀의 보드카+정인훈회원의 비상식품, 참치캔

우리는 기다리는 동안, 지루한 줄 몰랐다.
그런데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이 안나고.
 
 
 
 

이어 배달온 칼국수

생각보다 맛있었다.
동네 강아지도 냄새를 맡았고.
 
이번 여행시 내가 맡은 준비물은
젓가락 50개, 종이컵 100개에 멀티아댑터 1개.
 
 
 
 

우리가 머물렀던 게르 밖은

길게 늘어진 모래사막.
모래산맥이랄까.
 
고비사막의 모래폭풍은 황사의 요인.
원주민은 고비를 아시아의 바람창고라 한다.
 
 
 
 

사막의 낙타

보아온 중에서 제일 낙타답다.
 
아귀는 기분이 좋으면  '나는 삶을 사랑합니다' 
란 노래를 불렀는데.
보레네바이알의 노래라고.
 
이곡 한 곡이라도 카톡으로 받았어야 했는데. 
 
 
 
 

또 비

사막엔 축복이 아닌가.
 
 
 
 

우리가 잠시 들려 쉬었던 조그만 동네, 바양달라

토드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
값이 만만치 않았다.
 
이날 이동네는 술을 팔지 않는 날.
그렇다고 못살 우리가 아니었고
몰래 한 병 구입.
 
 
 
 

초원을 또 달려

율링암 도착. 독수리계곡이란 뜻의 율링암.
한여름에도 녹지않는 얼음골.
이날은 얼음을 볼 수 없었고.
 
 
 
 

계곡트래킹 시작

평지가 아닌 제법 계곡이 깊은 곳.
그러나 나무는 별로.
강우량이 많지 않을 터이니.
 
 
 
 

계곡엔 물도 흘렀고

계곡에 물이 흐르는 것이 이상하다니.
 
 
 
 

독수리계곡 이름에 걸맞게

독수리가 날고.
 
 
 
 

두번째 다리를 향하여

나무가 없는 계곡.
 
 
 
 

계곡의 반환점엔 말들이 기다렸고

최근 낙마사고가 잤다는 소식에
70대는 묵묵히 걸었다.
 
10년전 이종호대장과 중국 윈남성 호도협과
옥룡설산 여행시 차마고도를 오를 때
다리는 지쳤고 나귀를 탔었다.
언덕을 오를 때 얼마나 엉치가 아팠던지.
 
 
 
 

그나마 초록색 계곡이 있어

마음을 푸근하게 했고.
 
 
 
 

제법 계곡이 깊었다

 
 
 
 

시발점을 향하여

예상외로 말을 타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언덕길에서 기아변속을 하다

시동이 꺼졌다.
고장이 나면 지나가던 차량들이 항상
도움을 주는 게 관례. 
 
이번엔 점프케이블을 이용.
 
 
 
 

달란자드가드에 있는 숙소 입실

한 바퀴 돌아 다시 달란자드가드로 회귀.
몽골 와서 처음 묵는 호텔.
전기, 물사정이 좋은.
 
 
 
 

호텔에서 경영하는 고급음식점,

코리안 연아레스토랑에서 닭도리탕+김치찌개
+보드카, 치맥은 맥주.
식사를 한 후 아쉽게도 아귀와 이별,
다음날 허스사장이 우리를 수송한다고.
 
아귀는 새로운 팀으로 합류한다 했다.
 
 
 
 

다음날 숙소앞 전경

게르도 있었고, 하늘은 쾌청.
 
 
 
 

호텔및 식당 전면

연아로 쓴 한글이 이색적.
 
몽골말은 정말 어렵다. 감사하다는 말,
바일사, 그  한 마디도 기억하기가 여렵다.
 
 
 
 

여행사 사장, 허스가 모는 차로

울란바토르를 향하여 오던 길로 북상 시작
새차로 경쾌한 드라이브.
 
회원들은 외일드하게 차를 모는
아귀를 그리워 하기도.
 
 
 

선텐한 스타렉스

비깥 풍경이 달라 보였고.
 
 
 
 

점심을 들은 만달고비, 오르항 적 식당 내부

징기스칸을 비롯 황제들의 사진이 붙어있고.
 
 
 
 

세계 유명인사들이

한 장의 그림 안에서 폼을 잡고 있다.
 
 
 
 

점심은 낙타고기

차속에서 낙타고기가 들은 만두(호쇼르)는
이미 먹어보았지만. 조금 질긴 느낌.
 
 
 
 

뭉게구름 둥둥 떠가고

양들은 풀뜯기에 여념이 없고.
 
 
 
 

차량을 길옆에 기울여 놓고

기사양반도 휴식을 취하고.
나의 자화상.
 
 
 
 

드디어 울란바토르가 보이기 시작

붉은 영웅이란 뜻의 울란바토르,
몽골군주의 주거지의 하나였고 라마교 중심지.
1924년 몽골인민혁명시 지금이름으로 개칭.
17세기 라마교 중심지로 되면서 발달했고.
 
해발 1,300m. 중국-러시아 국제철도가 통과하고
양모, 피혁가공업이 번성. 인구는 160만 명,
전국인구의 47%.
 
 
 
 

투울강이 시내를 흐르고

수량이 제법 많아 보였다.
대도시는 강을 끼고 형성되는게 순리.
 
 
 
 

자이승 전망대를 올랐고

한참의 극심한 차량청체를 겪고,
613개의 계단을 오른다.
수흐바타르광장 남쪽 3km 지점.
 
2차대전 승전기념으로 1971년 건립.
 
 
 
 

벽화 앞은 사진찍는 사람들로 붐비고

소련과 연합하여 일본, 독일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과정을 그렸다.
 
 
 
 

계속 아파트를 건설 중

그넓은 땅덩어리를 가졌는데-
생활의 편리함을 선호하는가 보다.
 
 
 
 

도시는 큰 건물로 답답한 느낌

 
 
 
 

용사의 얼굴

의미심장하다.
 
 
 
 

아파트 동네 뒤로는

산동네도 보였고.
 
 
 
 

전망대에서 내려가는 길

큰 불상이 보였고.
 
 
 
 

도시의 중심, 수흐바타르광장

전에는 징기스칸광장으로 불리기도.
전쟁영웅과 전사자를 기리는 광장이기도.
 
 
 
 

광장 한 가운데에 있는 담딘 수흐바타르(1893-1923) 동상

수흐바타르는 몽골인민공화국의 국부격.
공산혁명가및 독립운동가.
중국군, 러시아군을 물리치고
몽골의 독립을 선포.
 
30세에 결핵으로 요절.
 
그가 울란바토르로 개선할 때 말이 동상자리에서
오줌을 쌌고 이를 길조로 여겨 말뚝을 박음.
 
 
 
 

국회의사당, 정부청사, 대통령 총리 집무실이 있는 국가궁

정면 가운데에는 징기스칸(1162-1227)상.
 
몽골과 고려의 관계를 되돌아보면
고려가 몽고 쿠빌라이에게 항복한 것은 1259년.
(1231년부터 6차례의 침입을 받은 후)
삼별초가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 것은 1273년.
 
이러한 결과로 원나라도 고려의 주권을 
넘보지는 못했다. (원나라 건립연도는 1271년)
 
*몽골의 유럽원정 : 1220년대-1240년대
 
 
 
 

국립오페라발레식당

눈에 확 띄는 건물.
 
 
 
 

중심가엔 현대적 건물이 여기저기

 
 
 
 

중심가를 떠나 국립백화점으로

선물용으로 낙타양말을 찾았으나 없었고
회원 1인당 징기스칸보드카 1병에 초콜릿 3개
구입, 공동비용에서.
 
나는 선물용으로 골든고비 초코렛 1다스 구입.
(정말 맛있는 초콜릿, 벨기에 노하우로 만든)
 
 
 
 

이날 우리가 묵을 그랜드 힐 호텔로

우리방에서 본 전경.
 
 
 
 

호텔에서 나와 더 불 레스토랑으로

화려한 시내를 거쳐.
 
 
 
 

더 불 레스토랑, 샤브샤브 전문 고급음식점

이종호대장이 점찍은 집.
 
 
 
 

샤브샤브에 소주 3병

세 명이 술을 삼가했으니
나머지 회원들, 얼근했다.
치맥을 이별하는 자리.
 
그동안 수고했다고 우리가 산 저녁.
치맥, 나이든 사람들과 여행하느라
고생했어요.
 
 
 
 

헤어지기 섭섭하여 호텔인근 맥주집에서

맥주 한 병씩.
나만 몽골맥주, 다른 회원들은 하이네켄.
 
치맥과 이별.
사는 아파트가 이곳서 가깝다고.
 
숙소에 돌아와 짐쌌고,
잠은 꿀잠.
 
 
 
 

다음날 15층에서 조반먹었고

음식종류는 많았지만 맛은 별로,
두번째 게르의 아침식사가 더 좋았다.
사람들이 많아 어수선했고.
 
공항가는 차량(5인승 승용차) 앞자리에
올라탔더니 웬 여인이 앞자리를 노렸다.
이날 우리를 태워줄 여인.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는 차량.
몽골차량은 운전석과 관계없이 차량이 다닌다.
일본제 차량이 많은 탓.
 
 
 
 

시내를 빠져나가기까지는 교통혼잡

공항가기까지 교통사고 2건을 목격.
시내에서도 굴뚝연기를 볼 수 있다.
공업이 울란바토르에 집중되어 있는 탓.
 
 
 
 

시외길이 뻥 뚫려 예상보다 일찍 공항도착

하늘은 맑고 뭉게구름 둥실둥실.
 
 
 
 

공항면세점에는 골든고비 초콜릿 사려는

젊은이들, 길게 줄서있었고.
낙타양말은 딱 두 켤레 남아있었다.
캐시미어 장갑도 샀고.
한 켤레가 27불이 넘었고, 엄청 비싼 가격.
 
호텔에선 양말 3켤레에 10불이었는데.
 
 
 
 

맛있는 기내식에 백포도주 한 잔

얼근해져서 백지영과 젊은 친구들의
노래를 들었고.
 
 
'길 잃었다
실없다
일없다
사랑에
 
길 잃었다
웃었다
누군가
웃는 바람에
 
길었다
질었다
굶주렸다
사랑 따위에
 
비웠다
지웠다
고작
너란 사람에
쉬웠다'
(Big Naughty, 사랑이라 믿었던 것들은)
 
 
 
 

8/18(금) 17:35 인천공항 도착

몽고여행 중 걸은 걸음수를 보면
12, 7, 12, 19, 14, 5천 걸음.
둘째날, 귀국일엔 만보를 못걸었다.
 
여행경비는 개인적으로 산 선물비용 빼고
160만원 정도.
 
여행중 회원의 좋은 점을 많이 발견하였고
잊지못할 기억들을 공유하게 되었다.
나이의 한계를 느꼈고.
 
치맥, 아귀에게 감사하고, 
동행한 친구들에게 감사의 말 전하고 싶다.
특히 준비부터 여행 끝나기까지 고생한 
이종호대장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