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정순왕후의 삶의 터전을 찾아

난해 2023. 5. 24. 20:21

5/21(일) 벼르고 벼르던 정순왕후의 삶터를 찾아 나섰다

창신역 2번 출구를 나와 쌍용아파트 언덕을
올라 자주동샘을 물어 물어 찾았다.
자주 찾았던  낙산공원에서 멀지 않은 곳.
 
정순왕후 송씨(1440-1521)가 단종(1441-1457)과
이별한 후 그녀의 일터랄까.
 
 
 
 

창신쌍용아파트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대신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1452년, 단종은 12세로 왕위에 올랐고
1454년, 정순왕후와 결혼,  1457년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유배길에 올랐으니
 
정순왕후는 결혼 3년에 생이별하고
64년간의 모진 생을 살은 셈.
그녀는 역대 왕비중 2번째로 장수한 왕비.
(단종재위 기간: 1452-1455)
 
 
 
 

오르는 길에 오디도 따먹고

 
찔레꽃은 시들었고
쥐똥나무꽃, 진한 향기를 내품고 있었다.
 
 
 
 

큰길가에 올라서 숭인교회

그리고 명신초등학교를 지났다.
옛날 낙산 판자집 동네를 생각했는데
이젠 깨끗한 아파트 동네로 변해 있었고.
 
 
 
 

빨간 장미들 꽃피우고

담장의 조형물도 세련미 넘치고.
 
 
 
 

원각사 일주문

원각사는 태고종, 단종대왕 천도도량.
즉 단종을 모시던 절.
 
일주문을 들어서니 달맞이꽃, 인동꽃, 장미
피어있었고.
 
 
 
 
 

일주문으로 들어서  계단길 내려가니

담장 곁에 가지런히 놓아둔 미니어처들
가지런하고 보기 좋았고.
 
 
 
 

안쪽 방으로 안내받으니 불당

조그만 원각사인가?
 
 
 
 

밖으로 나오니 지붕이 참하다

지붕 넘어로는 큰 불전 보였고.
보살한테 절이 운영이 잘 되냐고 물었더니
신도수가 많아 걱정이 없다고.
 
 
 
 

잘 가꾸어진 화단

 
 
 
 

우측으로 돌아서 가니  불전같은 여담재

2020년 서울여성역사공간 이름으로 서울시가
투자한 것. 여성관련 도서관, 전시장,
소규모 모임공간.
 
원각사 대웅전을 리모델링했고
큰도로쪽에서 보면 현대식 건물.
 
 
 
 
 

언덕 위 도로쪽에서 본 여담재

불교양식과 현대식건물이 조화된 여담재 건물.
 
 
 
 

100년간의 낯선 女行(여행)

여담재 홍보창에서는
 
아시아 아줌마 화이팅, 깔깔마녀들의 수다콘서트,
통큰 엄마와 언니, 그리고 명랑딸들의 축제 등의
홍보물,
 
아마조네스의 꿈,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등 연극프로그램을 볼 수 있었다.
 
 
 
 

여담재 옆에 위치한 비우당(庇雨堂)

오른쪽에는  자주동샘(자지동천,紫芝洞泉).
 
초가삼간을 처음 지은 사람은 하정 류관(1346-1433).
황희, 맹사성과 함께 조선초 3청.
세종때 명재상이며 청백리.
비가 오면 우산으로 빗물을 피했다고.
 
류관은 지봉 이수광(1563-1628)의 외가 5대
할아버님. 이수광의 부친이 집을 조금 넓혔다.
지봉은 임진왜란때 타버린 집터에 집을 짓고
비우당이라 이름 지어 조상의 유풍을 이어받고.
 
비우당 위에 지봉(芝峯)이 있고 그 위에
넓은 바위와 소나무들이 있었는데
이수광은 호를 지봉이라 하였다.
 
비우당은 원래 씽용2차아파트 자리에 
있었으나 낙산공원을 조성하면서 
이곳으로 이축했다고.
 
 
 
 

조순시장때 세운 비우당기(이수광지음)

이수광은 대사헌, 이조판서를 역임한 문신, 학자.
실학파 선구적 인물. 강직 온화한 선비의 표본.
 
지봉유설은 최초의 백과사전.  3차례 중국사신
으로 가서 본 견문을 토대로 쓴 책(1614년 간행).
 
 
 
 

자지동천(자주동샘), 화강암 바위밑 샘물

정순왕후는 이곳에서 자줏빛 띠는 풀, 지초를 이용
비단에 자색물을 들이고, 댕기, 저고리 등을
만들어 생계를 이어갔다고 한다.
 
지초가 이곳에 많았고 지봉(芝峯)에도
지초가 많았으리라.
 
그녀는 근처에  있는 원각사에서 단종의 3년상을
치루었다고. 원각사 산신각에 있었던 단종의
영정과 유품은 어디로 가고 표지석만 남았다.
 
 
 
 

이곳에 핀 자주색 자주달개비

지초와 같은 자줏빛.
북아메리카원산 닭의 장풀과 여러해살이풀.
 
동묘 남쪽마을 싸전골에는 채소를 파는
여인시장터가 일제때까지 있었다 한다.
숭인초등학교 정문 옆 담에 표석이 있고.
 
이곳 여자들은 이 시장을 열고 가련한
단종비에게 채소를 공급해주었다 한다.
 
정순왕후는 어려운 중에도 세조의 도움을 
일절 거부했다고.
 
 
 
 

창신역 2번출구에서 시작하는 비우당, 자지동천

 
 
 
 
 

다시 창신역으로 돌아와

3번 출구에서 동망산길, 언덕을 올라
종로 센트레빌 아파트-청룡슈퍼를 거쳐
정업원터로.
 
 
 
 

정업원(淨業院)터와 청룡사

정업원은 조선초부터 왕실과 비빈들이
이용하거나 출가한 비구니 사찰.
정순왕후는 정업원에 기거하여
그나마 품위유지를 하였다고.
 
스스로 정업원 주지라 했다 하기도.
 
 
 
 

정업원은 정순왕후가 단종과 이별하고

궁에서 물러난 뒤 평생을 살았던 곳.
정업원과 마주하는 봉우리는 그녀가 영월쪽을
좀더 잘보기 위해 올랐던 동망봉,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라는 비석이 있는 비각

영조가 이곳이 정순왕후가 머물렀던 곳임을 알고
이비석을 세워 표지로 삼도록 했다.
비석의 글씨와 현판 모두 영조의 친필.
 
세조 즉위후 정순왕후 흔적은 삭제되었고
17세기 단종복위운동이 거론되면서
그녀에 관한 기록과 흔적이 등장.
 
숙종이 등극한(1674년) 후 사육신이 복권되고
단종도 복위. 임금시호는 단종, 능호는 장릉,
부인 송씨 휘호는 정순, 능호는 사릉.
 
정조는 사릉 참배를 하였고 영정조때
행적과 관련있는 유적이 정비되었다.
 
 
 
 

정업원 비각옆에 있는 청룡사, 비구니절

노산군의 묘지를 찾아 봉분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라는 명을 한 임금은 중종(1506-1544재위).
또 정순왕후를 대군부인의 예로 대우하라 하여
해주정씨 가문이 돌보기 시작.
 
 
 
 

오래된 티가 나는 우화루

이곳에서 단종과 정순왕비가 하루를 지내고
여인시장 바로 앞, 영도교에서 이별을 하였다고.
당시에는 영미교란 나무다리였는데
영이별다리, 영도교(永渡橋)가 되었다 한다.
 
영도교는 그후 돌다리로 바뀌었고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시 석재로 사용됨.
청계천 사업후 복원된 상태.
 
 
 
 

청룡사 게시판

석가탄일이 얼마 안 남아
절 안팎으로 청소하는라 정신이 없었고.
 
 
 
 

이절의 비로자나불 삼신괘불도

우리나라의 보물.
절의 역사를 알 수없으니-
정업원이 청룡사의 전신은 아닐까.
 
 
 
 
 

청룡사에서 조금 가면 동망봉 가는 표시판

청룡마트를 지나니 산딸나무, 하얀꽃을 피웠고
 
 
 
 

아직도 이곳엔 봉제업을 하는 곳도 있고

이젠 없어진 사양산업이 아닌가 보다.
할리우드파크아파트를 지나고.
 
 
 
 

숭인근린공원 입구의 비운의 왕비, 정순왕후

결혼-수양대군 왕위 찬탈-이별- 동망봉-사릉
 
남양주 진건읍 사능리에 있는 사릉(思陵).
정순왕후는 죽어서도 단종을 생각하고.
사릉의 소나무들도 동쪽을 향한다고.
 
1999년 소나무 한 그루를 장릉으로 보냈는데
이름이 정령송(精靈松).
정순왕후의 영혼이 살아있는 소나무.
 
 
 
 

단종왕후는 매일 산봉우리에서 소복하고

단종의 명복을 빌며 통곡하고.
온 마을 여인네들도 땅 한번 치고
가슴을 한 번 치는 동정곡을 했다고.
 
백성들은 정치적인 것은 모르지만
인간적 감정이 앞섰다.
세조는 조카를 죽인 비정한 사람,
정순왕후는 애달픈 존재.
 
 
영월 청룡포 뒷산에선 단종은 왕비 송씨를 
생각하며 돌을 쌓아올렸고(망향탑).
 
 
 
 

이곳에서 본 풍경

오른쪽이 남산쪽.
 
 
 
 

매년 가을 동망각에서 주민들이 제를 지낸다

정순왕후의 넋을 기리고
주민들의 얀녕을 기원하고.
 
 
 
 

어린이공원의 곤충아파트

나무에는 풍뎅이, 매미 등의 모형이 있고.
 
 
 
 

난 홀쭉

난 적어도 날씬이 되어야 할 텐데-
 
 
 
 

이런 넓은 공간에 시원한 바람은 불고

이곳 주민들은 얼마나 좋을꼬.
사람도 적고.
올여름에 이곳으로 피서를 와야겠다.
 
 
 
 

동망정도 있고

옛동네의 좁은 골목을 내려가자니
조그만 언덕 위에 오마이호텔앤코도 있고.

 

 

'동녘에서 불어오는 그대 숨결 사라질까

망연자실 산정에서 두 선을 모아봐도

봉우리 휘돌던 바람, 소리 없이 흩어집디다

 

정녕코 가신 임, 다시 보내지 않으리

업보라 여겨왔던 명줄이 끊기던 날

원 없이 울었던 산정, 자줏빛이 감돕디다'

(군포시민신문, 신완섭기자,

혜화문에서 창신동까지)

 

 

 

 

아기자기한 옛골목엔

관음죽도 꽃을 피우고.
낭만서점도 있고, 큰길로 나오니
종로구민회관 버스정거장이 있다.
 
종로 57길 바지락칼국수는 휴무.
 
 
 
 

창신역 3번출구에서 시작한

정업원터 그리고 숭인근린공원(동망봉터)
 
 
 
 

창신골목시장 한 바퀴

점심 먹을 곳 마땅치 않고
 
 
 
 

동대문 근처 진고개에서 갈비탕 한 그릇

 
 
 
 

시야게는 찾아보니 마무리란 뜻

큐큐는 한쪽 끝은 둥글고 나미지 한쪽 끝은
일자형으로 막힌 단춧구멍.
샤시는 뭐지?
 
 
 
 

동대문에서 한양도성을 따라 올랐다

18.6km의 도성은 1396년(태조 5년) 축조.
새겨진 글자, 돌의 모양을 통해 축성시기,
기술발달과정을 알 수 있다고.
 
사대문 사소문이 있는데 사대문 중 서쪽문,
돈의문이, 사소문 중 숭례문과 돈의문 사이의 문,
서소문이 없어졌다.
 
 
 
 

한 친구가 신기한 것을 보여준다더니

털이 없는 고양이, 스핑크스캣을 보여줬다.
징그러워.
 
 
 
 

벽에는 고흐? 그림도 있고

 
 
 
 

젊은이들이 좋아할 카페도 있고

전에 못보던 건물.
 
 
 
 

낙산공원 길엔 개뿔도 있고

 
 
 
 

서쪽 풍경

뒤의 건물이 서울대병원인가?
황사가 심한 날이었다.
 
 
 
 

낙산공원의 성벽 정상

 
 
 
 

이곳에서 본 북한산쪽 풍경

멀리 인수봉 등 삼각산이 보였고.
 
 
 
 

한양도성 성곽길 따라

성안으로 걷다가,
 
 
 
 

혜화역쪽으로

전에는 성밖을 걸어 삼선교, 성북동쪽으로
갔는데, 이 방향은 처음.
 
 
 
 
 
 

혜화역 1번출구 번화가에 있는 fair trade CAFE

 
 
 
 

이곳엔 상명대 아트홀, 선경대 공연예술세타 등

대학의 아트부문 건물들이 많다.
 
 
 
 
 

훼어트레이드카페, 야외공간에서 커피 한 잔

이곳은 시원한 바람이 불고.
 
 
 
 

컵받침도 특이하고

 
 
 
 

국제공정무역기구 한국사무소

낯선 말.
이기구는 제품의 수출입및 무역을 하지 않으며
공정무역인증제품의 생산자, 수출입자,
기업소비자를 이어주고, 계약체결을 지원하는
등 사업기회를 제공한다고.
 
1층은 북카페, 지하는 상점. 2,3층은 사무실.
 
 
 
 

지하상점을 내려가 보니

바나나도 있고.
원두커피, 와인 등도 있고.
 
 
 
 

의류도 있고

농약을 쓰지 않은 목화로 만든 의류 등
 
 
 
 

공정무역마크를 받으려면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야 한다고.
 
조건도 많다.
어린이 노동 금지, 여성인권 보호, EU금지 농약
사용금지, 유전자변형 농산물 금지.
 
 
 
 

정순왕후 관련장소를 방문하는 것으로는

걷기가 부족하여 낙산 한양도성길을 걸으니
15천보를 걸었고.
 
바람이 시원한 날,
벼르던 곳을 찾아보았으니
보람도 있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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