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친구 찾아 우이령 넘어 (타이완여행 뒷풀이)

난해 2019. 12. 29.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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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라과, 마리아 겔로의 '화관')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억지 노력으로 인연을 거슬러

괴롭히지는 않겠소


하고 싶은 말 하려 했던 말

이대로 다 남겨두고서


혹시나 기대도 포기하려 하오

그대 부디 잘 지내시오

(김광진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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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목) 우이령을 넘어 친구를 만나서

타이완 여행 뒷풀이 하기로.


우이령은 도봉산과 북한산의 경계.

좌측으론 상장능선이 길게 늘어져 있고,

우측으론 여성봉, 오봉, 우이암이 있다.


상장능선의 상장봉(上將峰, 534m)은

장수와 같은 기상으로 우뚝 솟아있다.

고양시 덕양구 효자동소재.




우이탐방센타에서 신고하고 1.1km오르면,

우이령이 위치해 있는우이령 대전차 장애물.

이후부터는 계속 내리막길.


탐방센타 여직원에게 석굴암 가는길 물으니

힘들텐데 왜 올라가는냐는 식의 대답.

 완연한 노인취급.




강북구 우이동에서 양주 장흥면 교현리까지

이르는 4.5키로의 우이령길.


6.25때 미공병대가 만든 작전도로.

68년 김신조 침투사건으로 출입통제되었다,

2009년 개방.


월남파병(1965-73)에 따라 호지명이 김일성에게

대응조치를 요구하자,  김신조 등을 남파하는 등

우리전선을 시끄럽게 했었다고.

(병헌친구의 말)



우이령에서 250m내려가면

전망대에서 관음봉, 오봉이 보인다.


다섯총각들이 원님의 어여쁜 외동딸에게

장가들기 위해 상장능선의 바위를 오봉에

던져올려, 기묘한 오봉이 되었다고.





조금 더 가면 1966-67년 공사한 우이령 사방사업

기념비가 있고. 소요예산은 현금 1.6억원,

양곡 107톤(3.4억원 상당)


임금을 양곡으로 주었나?

옛날 냄새가 나고.




유격장도 나오고.


월남 파견을 위한 화천 오음리 유격장 생각.

태욱친구나 나나 월남 가지도 않았으면서

이곳서 훈련을 받았다.




삼거리에서 우회전 석굴암으로.

불이문 바로 뒤에 놓여진 돌다리,

딴절에서 볼 수없는 구조물.


세속의 일을 잊고

건너오라는 뜻이겠지.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 소재 석굴암.

좌측부터 삼성각, 범종각, 우측이 대웅전.


관음봉 중턱에 자리잡았다.





윤장대가 있고.


석굴암은 의상대사(625-702)가 창건하고

고려말 나옹선사(1320-76)가 3년 수행했다고.


단종왕후, 정순왕후가 단종의 명복을 위해

원찰로 삼았던 도량이기도 하고.

6.25 직후 재창건됨.





석굴암 유래가 된 바위 속 나한전.

석굴암은 나한기도도량.




청산은 나를 보고 말 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사랑도 벗어 놓고 마음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나옹선사의 선시)




탐방센터 앞에서 기다리던 영우친구 만나

평양면옥(장흥면 교현리)에서

수육+빈대떡+꿩냉면+빨간 딱지.


오랜만에 먹어보는 꿩냉면

푸짐하고, 맛있고.




알커피 빠은 것을 찾는다고 영우친구가

들린 Coffee, Coffee에서


에스프레소+카페라테 각 한 잔씩.

강한 압력으로 추출한 이탈리아식 커피,

에스프레소는 일터로 가는 바쁜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젊은 여주인, 선우정아의 그러려니,

이은미의 편지를 틀어주었다.

병헌친구, 가져온 귤을 그녀에게 건네주었고.




장흥면 삼하리 전원일기 마을 지나

이수광(1563-1628)선생의 묘를 찾았다.

선생의 묘비에는 탄흔자국이 있고.


지봉유설의 저자. 선생은 최초로

천주교와 서양문물을 소개했다.

실학의 선구자이며 대사헌, 이조판서역임.


지봉유설은 우리나라 최초의 문화백과사전.

천문, 지리, 경서, 문장, 인물, 식물 등

다방면에 걸쳐 언급.




묘는 장흥 삼하리에서 고양시 효자동

넘는 지방도 길가에 있다.


위로부터 본인, 부친, 아들내외 순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왜 부친묘가 아래에 있는지?


너무 시대에 앞서가는 사람이라설까?




선생의 비석엔

총탄자국 투성이.


전란때 격렬한 전투가 일어났던

곳임에 틀림 없다.

총탄을 피하려고 비석 뒤에 숨었던 사람,

목숨을 부지했을까.




다음으로 대자산(大慈山) 숲길에 있는

최영장군(1316-88)의 묘로.





뒤의 묘는 장군부친(최원직)의 묘.

무속신앙의 숭배대상이 되고 있는 장군의

 기가 하도 세서 묘에 풀도 안났었다고.

고려양식의 방형묘.


철원태생인 장군은 왜구, 홍건적을 물리쳤으며

원나라에 속했던 압록강 서쪽지역을 되찾았고

요동정벌(명과의 싸움)을 단행하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따라

처형당했다.


최영장군의 손녀딸과 맹사성(1360-1438)이

 결혼, 맹씨와 사돈지간이 되었고.


소를 타고 다녔던 맹사성은 황희와 더불어

조선의 명재상.




우리는 고양시 덕양구 고양동에 있는

중남미문화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코스타리카, 도미니카공화국, 아르헨티나,

멕시코대사를 역임한 이복형, 홍갑표 부부가

30여년간 수집한 것들을 보여주는 박물관.


중남미 고대유물에서 현대미술, 조각작품

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박물관, 미술관, 조각공원, 종교전시관,

벽화, 연구소로 나누어짐.




메시코남부, 과테말라, 유카탄반도, 온두라스

등 중미일원의 마야족이 일으킨 마야문명은

제일 역사가 깊어 기원전 2,3천년 전까지로

소급. BC320년경 시작했다고도 하지만.




태양력, 거대한 석조건물 건축,

피라미드식 사원 등의 유적이 많다.


10세기말 갑자기 종말을 고한 마야문명은

10세기말 부터 11세기초까지 유카탄반도로

이동, 신마야문명으로.


인신공양 등이 이루어졌으며, 마야문명을

모방하는데 그쳤고


무정부상태로 되었다가

1546년 스페인에 정복당함.


마야문명은 중앙아메리카 다른 인디오예술과

구분되는데, 고도로 설화적이고 장식적.

회화적 성격이 강하다.


상형문자를 사용했고 수학, 천문학이

뛰어났다.




잉카문명은 페루남부고원 쿠스코를 중심으로

13-16세기 안데스일대 대제국을 건립.

잉카(태양의 아들)는 쿠스코부근의

종족이름이며, 왕족칭호.


에콰도르 북쪽부터 아르헨티나 중서부,

칠레중부에 이르는 4천km를 지배.





문자체계가 존재하지 않았으나 다양한

형태의 자연숭배, 동물, 인간제물이 행해졌고,


관개시설을 바탕으로 한 수준높은 농경문화,

우수한 정치조직, 사회제도, 토목 건축,

공예기술이 있었다.


1533년 스페인에 의해 멸망.




13세기말 선인장 위 뱀을 쪼는 독수리가

있는 곳에 수도를 세우라는 전설에 따라

떼노치뜰란(멕시코시티)에 수도를 둔


아즈텍 건국.

마야문명의 영향을 받았다.





아즈텍은 14세기-16세기초까지 멕시코

중부와 남부지역에 이르는 대제국을 이룸.


관개시설, 간척, 집약적 농업을 행했으며

잔인할만큼 전제주의 국가.

전쟁에서 용맹을 떨치면 신분상승할 수 있는.


1521년 스페인에게 멸망.




인디오 인구밀도.

고동색이 인디오 밀집지역.


인디오는 약 4만년 전후 빙하기에 아시아에서

육지로 연결되었던 베링해협을 건너

 아메리카로 이동, BC9천년경 최남단 도착.


초기 멕시코, 안데스고원에 정착,

BC7천년경부터 농경사회 형성.


16세기초 스페인 정복 시작 전

5-10만의 도시를 형성했다.





빅또르꾸띠에레스의 라우라




인디오의 도기




반죽으로 피를 만드는 여인




요호아(남자 인디오 형상).

엘살바돌, AD780




요초아(여자 인디오 형상)




각종 항아리와 인형




BC3천년부터 멕시코, 페루고원지대

토착민들은 구운 토기 사용.


멕시코 유카탄반도, 과테말라일원의

마야 고전기문화, 페루 사막지대에

모치카문화 번창.


후에 멕시코의 아즈텍문화.

페루 잉카문명이 주종을 이루었다.




콜롬부스의 산타마리아호 항해(1492)이후

스페인의 아메리카침략은 시작되었다.




아이티 목각.


아이티(Haiti)는 카리브해 에스빠뇰라섬

서부에 위치. 1804년 흑인노예들이

중남미에서 최초로 독립한 나라.

공용어는 불어.


아프리카문화를 계승, 부두(Voodoo)

라는 혼합종교가 농촌에 성행되었고.




죽음 부활의 가면.


AD900년경 마야문명시대 가면. 불교의

윤회사상과 유사한 세계관을 세개의

가면을 여닫을 수 있는 형태로 표현.




멕시코 가면


메소아메리카지역(멕시코, 중앙아메리카 북서부를

포함한 공동문화를 가진 지역) 인디오들은


우주를 지배하는 신을 상징하는 가면문화의

전통이 고대 신앙 속에 제도화되었다. 


16C초 스페인 정복과 더불어 스페인, 인디오가

혼합된 가면이 등장, 여러 의식에 사용됨.




아래 세개의 목각 기마전사.


스페인 근대 전설적 수호상.

이슬람통치에 항쟁해온 근대적 상징.





기적을 의미하는 밀라그로.


십자가, 성모상, 성인상 등 감사와 헌신의

종교적 의미를 가진 금속물 장식.


멕시코인들이 보호, 행운을 비는 의미로

이를 지니고 다닌다고.




상상속의 동물을 제작한

멕시코 전통공예품, 알레브리헤.




멕시코작가, Aida Emart의

'천사와 고양이 그리고 비들기.'




박물관 주인 부부와 김수환추기경




에쿠아돌 리카르도 다빌라의

'안데스의 요정'





멕시코 엔리크 오르티즈 메지아의

'또르소(머리와 팔 다리 없는 몸통만의 조각)'




아즈텍민족의 제식력인 태양력




멕시코 구즈만의 여인동체.


멕시코의 유명한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1907-

1954)의 작품은 없었다.




길이 23m, 높이5m의 도자벽화.


어떻게 옮겼지?

외교관 부부의 열성이 대단하지 않은가.




멕시코전통음식, 따코집에서

또르띠아 나초와 살사소스,

그리고 마테차.




또 기억에 남을 하루는 저물고.


이날 하루 안내하고, 경비를 부담해준

신영우친구, 우이령산책을 같이한

하태욱, 천병헌친구


모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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