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인생의 한 고비 넘어 고비사막으로

난해 2023. 8. 23. 09:37

8/13(일) 태릉입구역 5:20분 출발 공항버스,

강화도를 지날 때, 밀물때인지 바닷물이 차있었고.
 
코로나 발생 이후 처음 떠나는 해외여행,
몽골 고비사막투어.
 
지금나이를 보면 인생의 한 고비라할까.
앞으로도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을까 하는 나이.
 
 
 
 

KT에서 로밍데이터와 함께 4GB 가입하고

출국수속후 대기 중,
색유리창이 좋아보였다.
 
요번 여행은 원우회에서 2월달에 발의한
여행으로 이종호대장이 성의 있게 추진.
47년생 3명, 52년생, 53년생 각 1명 참여.
 
원우회는 농협대학 재직시 결성된 모임.

오랜만의 해외여행이라, 깜박한 것도 많고.
두 회원, 핸디캐리어에 칼을 넣었다가
검사대에서 압수당했다.
 
 
 
 

비행기에서 본 몽골

면적은 우리나라의 15배.
인구는 340만, 수도는 울란바토르.
라마교 신자가 절반, 1제곱km에 겨우 두 명이 사는
러시아, 중국 사이에 낀 나라.
 
평균고도가 1,585m인 고지대이고
초원, 사막, 준사막으로 이루어진 나라.
80%가 목초지.
 
아침은 기내식, 소고기덮밥에
화이트와인 한 잔.
 
 
 
 

문자는 러시아 알파벳, 카릴문자에 기반을 두었다

13세기에 징기스칸이 세계를 휩쓸었고
1691-1921 타민족(중국,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1921년 중국으로부터 독립하였고
1992년 사회주의 노선 포기.
조상은 훈족(BC3- 1세기).
 
 
 
 

입국통로의 전통의상을 입은 몽골여인

석탄, 동이 풍부하고 석유도 나오는
10대 자연부국의 하나.
노동력의 절반이 목축업에 종사하고
1/5이 울란바토르에 집중하여 광공업 종사.
 
 
 
 

가이드 치맥, 운전기사 아귀와의 첫 만남

우리는 몽골여행사, 허스 알스 트레블과 직접 계약,
국내여행사를 통한 여행보다 저렴하게 여행.
 
국내에서 계약금을 보냈고
입국현장에서 잔금 지불.
 
허스 남자사장이 나온다 했으나 다른 친구가
나와서 잔금 지불에 30분 정도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12인승 스타렉스를 타고

남쪽으로 이동, 초원을 달리기 시작.
 
점심시간이 되어 울란바토르 인근
투브아이막에 위치한 노밍마트 식당에서
피자를 겻들인 식사를 했고.
 
몽골 보드카, 징기스칸과 인연을 맺기 시작.
 
 
 
 

우리의 몽골여행 일정(이종호대장 작성)

공항에서 바가가즐링 촐로, 220km(첫날),
바얀작까지 470km(2일차),
홍고린 엘스(고비 모래사막)까지 160km(3일차),
달란자드 가드까지 265km(4일차),
 
울란바토르까지 590km(5일차)
그리고 공항까지 50km(6일차).
 
총일정 1,755km. 무리가 아닌가?
둘째날, 다섯째날은 거의 차만 타는 일정.
 
이삼일 기간을 늘였다면 좋았을 텐데.
 
 
 
 

초원인지, 사막인지?

넓은 광야에 속이 탁 트였지만.
 
 
 
 

달란자드가드 인근에서 부터 사막

사막은 연평균 강수량이 250mm이하인 곳인데
(지구 지표면의 5%)
우리는 모래사막만을 사막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다.
 
몽골, 중국 내몽골자치구에 걸친 고비사막은
130만 제곱km(우리나라의 13배).
동서 1,500km, 남북 800km.
 
북쪽의 고비사막은 반건조 초원지역이 
사막으로 옮겨가는 지역이고
남고비(내몽골)는 끝없이 펼쳐진 모래땅.
 
 
 
 

울란바토르에서 달란자드가드까지

포장도로라고 했지만 공사중이라며
비포장도로가 이어졌다.
 
길이 있는지, 없는지
아귀가 모는 차는 멋대로 움직이는 것 같기도.
덜컹덜컹, 허리가 망가지지는 않았는지.
 
 
 
 

간식은 과일, 과자 부스러기에

보드카가 빠지질 않았고.
정인훈회원이 주동자.
 
맨정신보다는 술 한잔 하는 것이 울퉁불퉁길엔 좋다.
 
 
 
 

소떼가 나타나고

물이 제법 있었다.
 
 
 
 

양, 염소떼가 출현했고

규모도 상당했다.
과연, 목축의 나라.
 
 
 
 

왕초가 소떼를 리드

주인 없이도 무리지어 이동을 하고.
주인은 가끔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나
무리를 이탈하지 않도록 주의를 환기시켰고.
 
 
 
 

광야 한복판의 사원

불교국가다웠고.
지푸린 날씨.
 
 
 

사람들은 쓰러져 버둥거리는 말을 본척만척

성질 나쁜 말들의 성질을 고친다고.
 
 
 
 

목축인 가족이 사는 게르

게르 1동 짓는데 2백만 투그리가 든다고.
투그리에 0.4를 곱하면 한국 원화.
 
이들에게 울란바토르의 아파트는 그림의 떡?
 
 
 
 

끝 없는 초지

전봇대는 이어지고.
몽골의 전력사정은 어려워 제한 송전.
러시아에 많이 의존한다고.
 
 
 
 

바위능선이 나타나기 시작

하늘은 맑아졌고.
 
 
 
 

바가가즈린촐로(Baga Gazriin Chuluu, 작은 돌이 많은)산

트래킹 시작. 해발 1768m의 산.
몽골의 평균고도가 1,585m이니 높은 산도 아님.
 
 
 
 

담이 있고

엉기사원의 터.
18세기말 러시아군인들이 스님을 잡아갔다고.
 
 
 
 

제법 많은 관광객들

대부분이 한국 젊은이들.
 
 
 
 

오를수록 넓어지고

시야는 트이고.
 
 
 
 

곳곳에 소망들이 쌓이고

처음엔 불교신자들이 쌓았으리라.
 
 
 
 

귀여운 한국젊은이들

70대는 우리들뿐.
 
 
 
 

정상의 기쁨

계속 건강이 유지되길 빌었고.
 
 
 
 

색깔 선명한 패랭이꽃 종류

들국화, 이름 모를 야생화들 소박하게
피어있었고. 결코 화려하진 않은 꽃들.
 
 
 
 

산에서 내려와 눈에 샘물을 넣으면 눈이 좋아진다는 샘으로-

아귀가 우리 한사람 한사람에게
조그만 구멍으로부터 샘물을 퍼주고 있다.
 
 
 
 

또 먼지 풀풀 나는 길을 달렸고

류시모회원, 치맥에게 몽골 스모선수
이야기를 해주었고.
 
2천년초 아사쇼루(朝靑龍), 2010년대 최다승을
달성한 하쿠호, 2020년대 호소류 키리바야마 등.
치맥도 잘 알고있는 듯.
 
몽골인의 관용에 관한 이야기.
1945년 북한에 있던 일본인 58만명 정도가
소련, 몽골에 끌려갔고, 그중 몽골에 간 사람들은
울란바토르 건설에 참여.
 
몽골인들은 사망한 일본인들을 소련인과는
달리 개별묘지로 안장해주었고, 그후 일본인들은
몽골스모선수들을 후원했다고.
 
 
 
 

첫날밤은 바가가즈린촐로에 있는 게르에서

전기사정, 샤워시설도 열악했던 곳.
스마트폰 충전도 어려웠고.
 
 
 
 

이날, 우리의 여행운이 좋았던지(최종철회원 사진)

쌍무지개가 떴다.
숙소의 젊은이들 사진찍느라 바뻤고.
 
 
 
 

이날 저녁 메뉴는 삼겹살구이.

징기스칸, 에덴 두가지 보드카로 Cheers!
 
숙소는 두 동의 게르,
가위 바위보로 룸메이트를 정했고.
최종철회원이 내 룸메이트.
 
피곤했던지 꿀잠을 잤다,
여행사에서 마련한 새 슬리핑백 속에서.
 
 
 
 

날이 밝았다, 8/14(월)

게르사무실 식당안에는 징기스칸 사진도 있고,
하루 전 인사했던 폴랜드친구들도 있었고.
 
 
 
 

야외식탁에서의 조찬

치맥과 아귀가 준비한.
초코파이도 있었고.
 
 
 
 

아침에 조우한 염소떼

무리가 적지 않았다.
자연을 만끽하는 가축들.
말, 소, 양, 염소, 낙타의 수는 몽골인구의
20배가 넘는다고.
 
가축들의 겨울나기는 건초도 일부 마련되겠지만
눈을 헤집고 풀 뿌리를 찾아 먹으면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10년 넘게 한번쯤 겨울한파로 가축이 몰살하는
재앙, 조드가 온다 한다.
 
 
 
 

아담 사이즈의 주택들이 나타나기 시작

호수도 보였고.
 
 
 
 

만달고비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고비는 물이 없는 곳을 말함.
고비사막도 그렇고.
 
만달고비는 돈드고비주의 수도.
인구는 1.1만 정도. 울란바르토 남쪽으로 300km
떨어진 고비사막의 가장자리.
경공업이 들어섰다고.
 
인구 1만 명만 되어도 주의 수도.
 
 

이곳에서 잠시 휴식

화장실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좋으나
협소하고 불결, 들어갈 수가 없었고.
 
 
 
 

근처 상가에 들렸고

우리가 사는 것은 과일과 보드카.
값도 싸고 무색 무취의 좋은 술, 보드카.
 
 
 
 

배도 사과도 잘다

맛은 먹을만.
물 등 음식거리는 여행사측, 치맥이 샀고.
 
 
 
 

앞차량은 먼지를 남기고

기를 치맥이 좋아하는 한국노래는
백지영(1976-)의  '총을 맞은 것처럼'.
 
 
'구멍 난 가슴에 우리 추억이 흘러 넘쳐
잡아보려 해도 가슴을 막아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심장이 멈춰도 이렇게 아플 것 같진 않아
 
어떻게 좀 해줘, 날 좀 치료해줘
이러다 내 가슴 다 망가져, 구멍난 가슴이---'
 
 
 
 

잠시 쉬어가며

허리 펴기 운동도.
터덜거리는 길을 오래 타는 일,
결코 쉽지 않다.
 
이종호대장이 멀미약을 준비하라고 해
준비는 했지만 허리에는 무용지물.
 
 
 
 

쌍봉낙타떼를 만났고

독일의 사막여행가 아킬 모저(1954-)에 의하면
몽골의 낙타는 사하라의 낙타보다 거칠다고.
 
 
 
 

포장된 넓은 길로 들어섰고

앞은 높다란 산맥이 가로막았다.
 
 
 
 

드디어 고비사막 관문도시, 달란자드가드 도착

인구 2만의 음느고비주 수도.
이곳엔 공항이 있다.
차를 오래 타기 어려우면 비행기로,
좀 비싸긴 하지만.
 
 
 
 

문옆의 낙타조각

역동적!
성질도 고약하겠지.

이곳에서 아귀가 없어져, 이친구 삐졌나 했더니,
한참후 그가 프라스틱병에 연료를 담아와선
연료탱크에 부었다.
이곳에 쉬고 있던 차를 타고 갔다온 모양.

나도 연료가 떨어져 이렇게 연료를 보충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가 점심을 들은 식당

비교적 큰 도시라, 거리엔 영어로 된
간판도 보였고.
 
 
 
 

식당 식구들의 사진

이곳의 고급식당은 아닌듯
손님들은 많았지만 보통사람들.
우유에 찻잎을 넣어 끓인 수태차가 나왔고.
 
우악스런 소갈비를 뜯었다.
수태차 맛은 밍밍, 먹을만 했고.
 
 
 
 

이곳의 노민 도매상가를 들렸고

예쁜 여직원, 진열대 등을 열심히 닦았다,
더위에 아랑곳 않고.
삼성냉장고도 진열되어 있었고.
 
 
 
 

부추꽃도 피어있고

무리지어 핀 부추꽃, 보기싫진 않았다.
 
 
 
 

부추꽃무리에

일렬횡대의 가축들, 질서 정연.
 
 
 
 

붉은 빛의 계곡, 몽골의 그랜드 캐년, 바양작의

동식물, 조류들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다양한 동식물, 가젤, 곰 등도 있고.
 
 
 
 

이곳에서 발견된 공룡알

 
 
 
 

어린 왕자의 여우

미국 데스랜드 모래사막에서 본 여우와는 틀리겠지.
실제로 몽골 여행중 지나쳐가는 여우를 보았다.
카메라로 잡지는 못했지만.
 
투아레그족(사하라사막에서 유목생활을 하는 민족)
출신, 무사 앗사리드가 지은 '사막별 여행자'.
 
무사 앗사리드는 취재를 위해 아프리카 사막을 
방문한 프랑스 여기자로부터 '어린 왕자'를선물받고.
죽은 생떽쥐베리를 만나보겠다 하고.
 
스무살 무렵 파리에 도착. 청년 앞에 문명세계가
펼쳐지지만 현대문명사람들은 행복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공룡관계 영상물을 보고

사막의 뜨거운 열기에 아이스크림 한개씩.
누가 샀는지 잊어버렸다.
은혜도 모르는 놈.
 
 
 
 

바양작, 사암절벽을 가기전

낙타인형가게를 들렸고.
일부 회원은 손자, 손녀를 위해 인형 구입.
 
 
 
 

여인이 온 방향으로 바양작 트래킹 시작

바양은 풍부하다는 뜻이고 작은 나무이름.
이사막에 작이 숲을 이뤘던 곳, 바양작.
이 나무의 키는 2m, 뿌리는 10m이상인데
난방용으로 소모되었다. 이제는 바양작이 아닌 셈.
 
미고생물학자, 로이 챕맨 안드류스가 
1920년대 이곳을 방문했고 공룡뼈, 화석을 발견.
이것들은 뉴욕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음.
 
 
 
 

라마승도 이곳을 방문 중

뜨거운 열기가 대단했다.
 
 
 
 

바양작, 타는듯이 붉은 사암절벽(Flaming Cliffs)

고비사막내에 있다.
 
 
 
 

보는 위치에 따라

모양을 달리하는 바양작.
 
 

키는 작지만 심근성인 작나무

옛날에는 무성한 숲을 이뤘다는데-
다 인간이 문제.
 
 
 
 
 

타이완의 예리우 지질공원을 생각나게 하고

바람이 쎄 모자를 날렸으나
다행이도 반대편은 바람이 잔잔,
잃어버리지는 않았다.
 
 
 
 

폼을 잡는 최종철회원, 룸메이트

매사에 긍정적이고 적극적.
 
 
 
 

70대 청년들

폼을 잡았고.
오른쪽엔 세명의 여인들이 폼잡고.
 
 
 
 

바양작, 온드르하 고비의 숙소에 도착

멋진 사막의 노을을 보았다.
 
 
 
 

풍선에 누워 자연을 만끽하려는

한국의 젊은이들.
 
 
 
 

게르는 띄엄띄엄

석사부부가 경영하는 게르.
남편은 영어가 유창했고,
한국에서 공부한 부인은 우리말이 유창.
 
우리가 잘 게르 앞에서 한참동안 담소.
부모를 도와주는 아이들을 칭찬했더니,
몽골의 70대는 집에서 손자나 봐주는데
우리가 대단하다고.
 
 
 
 

어둠에 잠겨가는 게르촌

매직아워가 되어가니 하늘은 파랗게 되었고.
 
 
 
 

치맥이 준비한 게르 안의 저녁 식사

맥주는 있는데 이상하게 보드카가 없네.
치맥은 맥주를 좋아한다.
아귀는 보드카를 벌컥벌컥 들이키고.
 
 
 
 

돗자리 깔고

하늘의 별을 보았다.
은하수가 흐르고
별은 왜 그렇게 많은지.
 
준비한 깔개를 펴고
누워서 볼 작정이었지만, 너무 협소.
 
별들을 눈속에, 머리속에 담아두었다.
 
 
 
 

다음날(8/15, 화) 아침

숙소 앞을 지나가는 염소들.
헤아리기 힘들 정도.
 
우에서 좌로 일렬횡대로 움직이기 시작.
 
 
 
 

뒤늦게 나타난 주인, 오도바이를 타고

염소떼를 몰더니 살고있는 게르로 복귀.
 
 
 
 

하늘이 멋진 아침노을을 보이더니

 
 
 
 

멋진 일출이 이어졌고

이종호대장은 명상에 빠져있고,
다른 회원들은 아침 산보.
 
 
 
 

네 사나이를 한군데로 모았다

좌측 이종호대장은 명상의 달인.
왼쪽에서 두번째 정인훈회원은 매일 테니스 치고,
세번째 류시모회원은 힘이 장사, 팔씨름에서
져본 일이 없는 막내.
 
맨 왼쪽 최종철회원은 얼마전까지
오디농장을 일구었고.
 
 
 
 

빨간 식당건물, 오른쪽은 나와 최회원의 게르

아침식사는 호텔부페 못지않은 식단.
가지수는 좀 적었지만.
역시 배운 사람들이 났다고, 우리들 한마디씩.
 
 
 
 

우리의 게르 앞에서

그림자도 넷.
 
 
 
 

게르의 내부

환기를 위해 천장의 반을 열은 상태.
몽골에는 한여름에도 모기, 파리가 별로 없다.
건조하고 웅덩이가 없는 탓.
 
 
 
 

우리가 다음 목적지로 출발하려니

짐을 나르는 주인집 아이들과 친척 아이들.
방학 중이란다.
기특하기 짝이 없었고.
 
 
 
 

도마뱀도 바빴다

아침부터.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