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타이중, 아리산, 르웨탄 자유여행

난해 2024. 1. 25. 17:50

1/16(화) 5:40분 집을 출발

태릉입구역에서 흥구친구 만나 인천공항으로.
 
2013년 1월, 타이페이, 화리엔, 타이루거, 예리우.
2019년 12월, 카오슝, 컨딩, 타이난 자유여행에 
이은 세번째 타이완 자유여행.
 
 
 
 

인천공항에서 신박사, 지탄선생 만나

보험가입, 입국절차를 마치고,
아침은 면세점의 서울호떡 한 개씩.
 
9:45분 발 아시아나 항공 이용.
(11:30분 타오위안공항 도착)
 
배낭을 꾸리며 빠진 것이 없는지 체크를 했어도
모자를 잊고 와선, 면세점에서 모자를
사려했는데, 지탄선생의 모자가 두 개.
 
친구란 좋은 것이다.
내가 잊을 것을 미리 알고 준비했으니.
 
 
 
 

탑승 대기

왕복 1인당 18천원을 더 주고 프론트존을 이용,
편히 오갔으나 맨 앞자리는 돈을 더 줘야.
 
기내식은 별로, 와인도 안주고.
옛날만 못했다.
배낭여행이라 이동이 편했고.
 
 
 
 

11:30 타오위안(桃園) 공항 도착

출국절차를 마치고 처음으로 한 일은
대만정부의 여행지원금에 당첨이 되었는지
OR코드로 체크.
 
결과는 네 명 모두 낙첨.
젊은 친구들에게 양보해야지.
 
국제관광객 유치를 위해 대만정부가 실시하는
것으로 입국 일주일 전 신청하면 이메일로
OR코드를 보내준다. 당첨되면 5천 대만달러.
(20만원 정도)
 
1층으로 내려와 우선 타이중 가는 버스표 매입.
구어광커운(國光客運) 1860번 버스.
 
타이완은 버스회사마다 타는 곳이 틀리다.
종합버스터미널 개념이 없다.
 
 
 
 

흥구친구와 나는 심카드 구입

지난번 타이완 여행때는 병헌친구가 
와이파이도시락을 빌려, 친구들이 모두 사용할
수 있었으나 갖고 다녀야 하는 불편이 있다.
 
신박사, 지탄선생은 로밍요금제 가입.
요금은 심카드가 쌀지 모르나, 요번 여행에선 한국심카드를 잊어버려 귀국후 돈을 내고
구입해야 했고.
 
 
 
 

이지카드 하나씩 사서 대만달러 500원씩 충전

현금 교환시 대만 1원이 우리나라돈 47원 정도.
이지카드는 지하철, 버스, 편의점 등에서
편리하게 쓸 수 있으나,
 
이번 여행에선 효용가치가 적었다.
 
 
 
 
 

시간도 남고, 밀크티 한잔

타이완은 우리나라 면적의 1/3이지만
인구는 24백만 명,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
 
한족이 98%. 이중 84%는 명,청시대 이주해온
대만인(내성인)이고 14%는 1949년 전후
국민당정부와 이주한 대륙인(외성인).
 
불교신자가  35%, 도교신자가  33%.
북쪽지역은 아열대, 남쪽은 열대.
겨울철 날씨는 15도 정도.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공항주변 산책

타이중은 타이완 제 3의 도시.
인구는 284만 명. 가오슝과는 도토리 키재기.
왔다갔다 한다.
 
국립과학박물관, 국립타이완미술관이 있고.
타이페이 스린야시장과 맞먹는
펑지아시장(逢甲夜市)이 법석거리고.
 
타이양빙(과자)과 버블티가 명물.
 
 
 
 

플루메리아꽃이 피어있고

협죽도과 열대지방 식물.
다양한 색에 향기로운 꽃. 하와이 환영화환,
나라에 따라 신전, 장례식에 쓰인다.
 
 
 
 

마편초과 란타나꽃도 피어있고

서인도, 열대아메리카 원산의 관목.
자극적이고 고약한 냄새가 나고.
 
 
 
 

타오위안공항 2터미널

공항이 있는 타오위안(桃園)시는 북부에서 가장
발전이 더딘지역. 공장지대이며 축산업이 주.
 
최근에는 초코릿공화국, 코카콜라박물관,
가구박물관이 세워졌고, 타이완 최고의
뉴로미엔(牛肉麵)을 맛볼 수 있다고.
 
 
 
 

버스를 타고 타이중으로

2시 지나 버스는 남쪽을 향해 출발.
 
 
 
 

전원풍경은 정겨웠고

어디에서 내리나 하고 있으니
기사양반이 내리란다.
타이중기차역 근처.
 
출발해서 두 시간 걸렸다.
 
 
 
 

네거리에서 숙소찾기

신박사, 구글지도로 숙소를 찾자니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젊은이에게 물어 방향을 잡고.
 
숙소예약시 숙소이름은 Green Hotel-Tea Way.
도착하니 葉綠宿-茶覺旅이란 이름.
타이완에서 영어이름으로 호텔찾기는
무척 어렵다.
 
숙소는 작은 호텔이지만 정갈하고
직원들 친절했고.
아침식사 제공은 없다.
 
 
 
 

숙소골목에서 보니 타이중기차역이 보였고

구글지도가 있으니 찾아갈 수가 있지.
배정 받은 방에 짐을 풀고 나와 바로 역으로.
 
역근처에 숙소를 잡은 것은 잘한 일.
 
 
 
 
 

내일 펀치후를 가려면

열차를 타고 자이로 가서
펀치후 가는 버스를 타야.
 
역원에게 표를 예매하려고 이것저것 물으니
우선 여행정보센타를 가라고.
 
당초 아리산역으로 바로 가려했지만
호텔은 동났고 펀치후 민박집만이 남아있어,
그나마 다행.
 
 
 
 

정보센타 아가씨에게 자이에서 펀치후로 가는

버스시간을 알아보았고.
(하루에 두 번)
이에 맞추어 내일 자이로 가는 기차편을 정했다.
 
아리산역으로 바로 가는 버스는
두 시간에 한 번 정도로 잦은 편.
 
왕앵교라는 아가씨, 얼마나 친절하고
쾌활했던지.
 
사진을 찍자며 여러가지 포즈를 주문했고.
 
 
 
 

기차표 예매하고 나오니 예쁜 노을

 
'방안 가득
노래로 채우고
 
세상 가득
향기로 채우고
 
내가 찾아 갔을 때는
이미 떠나 버린 사랑아
그 이름 조차 거두어 간 사람아
 
서쪽 하늘 가에
피 빛으로 뒷 모습만
은은하게 보여줄 줄이야'
(나태주, 1945-, 노을)
 
 
 
 

노을을 찍는 여인

같은 마음일까.
 
 
 
 

택시를 타고 펑지아(逢甲)시장으로

저녁도 먹을겸, 술도 겻들이고.
 
 
 
 

펑지아야시장 도착

타이중역보다 북쪽, 시툰구(西屯)에 있는.
1963년 펑지아대학교가 이곳에 오면서
시장이 형성되었다.
 
 
 
 

누나치킨도 있고

한국사람들도 많이 찾는 모양.
 
신박사는 닭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고교진학 준비시 어머님이 생닭을 사오셨는데.
하인은 없고 친구가 목을 쳤다고.
 
목은 목대로 날아가고 몸뚱이는 푸드득.
피는 사방으로 튀고-
그날부터 닭고기를 못먹는다 한다.
 
 
 
 

시장은 젊은이 세상

그러니 각종 간식거리가 즐비.
 
타이페이 스린(士林)야시장에선 
어물전문식당엔 식탁과 의자도 있었고.
새우, 생선요리에 진먼고량주를 겻들였었지.
 
아이스크림을 파는 터키아저씨와
아가씨들 찍다가 친구와 헤어져
길을 잃기도 했다.
 
 
 
 

친구들은 배고프다 하고

주골목에서 벗어난 음식점에 들어섰다.
소고기를 주로 취급하는.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소고기 등 푸짐은 했지만

음식을 남겼고.
맛은 별로.

보통 식당들은 술을 팔지 않는다,
고급식당 빼놓고.

덕분에 술은 건너뛰고,
그러니 여행기분도 안났고.

 
 
 
 

다시 시장거리로

KTV는 대만 노래방.
음식도 먹을 수 있는.
 
 
 
 

하늘엔 초생달

갑자기 쓸쓸해졌고.
 
 
 
 

거리를 걷다보니 병원거리

안과 등 병원들은 야간진료중.
우리나라에도 야간진료 병원이 많았으면.
 
 
 
 

택시를 타고 숙소로 오다가

세븐일레븐에서 진먼고량주, 육포, 오징어포를 
사서 숙소에 와서 한잔.
 
진먼고량주는 우리 입맛에 딱.
비싸지도 않고.
 
내일 아리산 일정, 잘 될까. 아리산에서 떠나는
일출열차는 하루 전 예약이라는데-
펀치후에서 아리산까지는 어떻게 가고.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타이중으로 가는 기차시간은 7시

아침은 세븐일레븐에서 신라면으로.
 
 
 
 

역에 도착하여 본 타이중지도

빨간구역 밑에 타이중공원.
그 아래 타이중역이 있고.
 
빨간구역 상단에 펑지아시장이 있다.
그 아래에 타이중국가가극원(오페라하우스).
 
우리가 이번 여행에서 돌아본 타이중시는
시의 중심지를 벗어나지 못했고.
 
좌측 아랫부분에 고속철도역이 있다.
고속철을 타면 KTX처럼 빨리 갈 수 있지만
시내접근이 어려운 편.
 
 
 
 

우리가 탈 Mountain선 열차 앞에서

완행열차는 아니고 급행.
 
 
 
 

농업지대를 지내고

경지정리는 잘 되어있다.
논도 많고. 쌀은 자급자족.
 
 
 
 

8:15분 자이(嘉義)역 도착

건물도 독특. 펀치후가는 버스시간 확인.
7322-A번.
 
우리는 시간 스케쥴을 넉넉하게 잡아,
혹시 모르는 돌발사고에 대비.
 
자이는 타이완 중서부에 있는 인구 51만의 현.
북엔 윈린(雲林), 난토우(南投)
동으론 가오슝(高雄), 남으론 타이난(臺南).
 
아리산맥이 동부를 차지하고 서쪽으론 해안평야.
주요 목공업지역.
 
 
 
 

큰 사거리엔 각종 광고와 선거포스터

2024년은 타이완이 재출발하는 해.
총통선거에서 민진당의 라이칭더 당선.
제1야당, 국민당의 허우유이를 물리치고.
 
그렇지만 젊은 유권자들의 지지가 낮고
입법의원(국회의원)선거에선 51/113.
여소야대.
 
지난번 타이완 남부여행시는 총통선거기간.
결과는 차이잉원이 승리했고.
 
 
 
 

골목길 등 썰렁한 거리를 돌다가

Daily카페에서 차 한잔.
 
 
 
 

출발시간(9:30)이 가까워지자 줄은 길어졌고

이곳 아줌마들도 새치기가 심했다.
 
 
 
 

고도는 높아지고

길의 굴곡이 심해졌고.
 
 
 
 

아리산 가는 버스는 11:45분 펀치후역 근처 도착

(버스를 타고 2시간 15분 걸림)
 
기사보고 숙소근처 소방서, 충호초등학교를
물으니 버스안에 있던 한국젊은이가 나와
역에서 숙소가는 길을 가르쳐 주었다.
 
이때 당황해하던 내 모습이 그려진다.
주변은 꽃동네. 목련, 동백 등
우리의 봄이 아닌가.
 
자의-펀치후는 45.8km.
펀치후-아리산은 25.6km.
 
 
 
 

펀치후역을 관통하여

꽤 많은 사람들을 조우하고.
우리버스 승객들이 아님.
 
 
 
 

음식점 골목을 지나고

한국사람들은 눈에 뜨이지 않았다.
 
 
 
 

젊은이 말대로 골목을 따라 아래로

삐엔땅(便當), 일본말로 벤또를 파는 식당도 있고.
국민학교시절, 벤또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다.
도시락을 말한다.
 
 
 
 

골목길엔 군자란꽃이 피었고

화사한 벗꽃도 피었고.
타이완에 근무했던 후배의 말대로.
 
후배는 타이완친구 차로 아리산을 왔었고
나에게 아리산을 적극 추천했다.
 
 
 
 

대나무, 삼나무 숲이 보이기 시작

조형물은 구름같아 보였고.
 
 
 
 

우리의 숙소는 라오라오지에(老老街)에 있는 민박집(民宿)

 
 
 
 

흰동백꽃은 처음

차나무과 동백나무속.
동백은 꽃전체가 통째로 떨어지는 것이 특징.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깊은 사랑에 비유.
 
숙소앞엔 경찰서가 있고.
 
 
 
 

아담했지만

밤엔 추워 잠이 안오는 집, 민박집.
인근엔 성공회 성당이 있고.
 
집주인인지 영어가 유창한 사람이
다음날 아리산역까지 우릴 데려다 줄
기사를 소개.
 
가격과 약속시간 등 협의.
기사도 파파고앱을 사용,
소통에 별 문제가 없었다.
 
 
 
 

점심을 들러 역쪽으로 가는 길의 사철베고니아꽃

베고니아과 상록성 여러해살이풀.
열대, 아열대지역이 이꽃의 산지.
다육식물.
 
꽃들도 세계화가 이루어졌다.
이곳의 꽃 거의가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있으니.
 
 
 
 

거대하고 괴기한 나무

이름을 알 수 없고.
 
 
 
 

찻잎으로 싼 계란

이곳의 차는 청정한 고산지대 풍토의 영향으로
품질이 좋다 한다.
 
 
 
 

이곳에 왔으면 이름난 펀치후 도시락을 먹어보아야지

아리산 삼림철도는 1912년 목재수송을 위해
건설되었고, 길이 72km. 고도 0에서 2,274m.
열대, 온대, 한대식물을 모두 볼 수 있다.
 
편치후역은 해발 1,405m. 1895-1945년
일제하에 있을 때 건설된 철도의 중간지점.
 
증기기차는 점심때 전후에 이역에 도착, 물,
석탄을 채웠고,  일꾼, 승객들은 도시락을 먹기
시작하여 펀치후도시락의 기원이 되었고.
 
아리산의 나무들은  이때 베어졌다. 소수의
거목을 빼고. 우리나라의 소나무들이 일본제국
전쟁용으로 베어진 것과 같이.
 
 
 
 

도시락에 버드와이저 맥주

도시락 한 개에 170원, 우리돈으론 7-8천 원.
옛날에 먹었던 도시락의 내용물은
지금과는 달리 빈약했으리라.
 
 
 
 

사람들로 붐비는 골목길을 뚫고

대부분이 타이완 관광객들. 펀치후에는 도시락, 차
외에 기차모양 과자(餠), 고추냉이가 인기가 있다.
 
 
 
 

닭발가게도 있고

무골봉조(無骨鳳爪)는 봉황의 뼈를 뺀 발.
 
 
 
 

우리는 삼림잔도를 걷기로

삼림잔도는 낙우송과의 삼나무(JapaneseCedar)
우거진 숲속의 길. 삼(杉)자는 삼나무 삼자.
 
삼나무는 곧바르고 아름드리로 자르며 없어서
못쓸만큼 쓰임새가 많고 우리나라에선 
1900년초부터 따뜻한 지역에 대량으로 심어졌다.
 
꽃가루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것이 단점.
 
 
 
 

펀치후(奮起湖)의 역사

1644년 청나라의 명나라 침입으로 중국대륙이
혼란에 휩싸였고, 후지엔(福建)남부, 꽝뚱(廣東)성
동부의 한족들이 타이완으로 이주했다.
 
당시 정청공(1624-1662)이 타이완에 진출, 중국식 문화를 심었으며 네델란드의 통치를
종식시켰고,
펀치후도 이때 농경지 개발이 되었다.
 
펀치후는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지역으로
지형이 삼태기(番箕, 번기)모양의 호수
같다 하여 이름이 펀치후가 되었다고.
 
 
 
 

건물과 벗꽃의 조화

펀치후에선 장뇌(camphor, 녹나무에서 채취)가
많이 생산되어 청나라시절 목재관련 사람들을 
끌여들였고,
 
철도 개설후 임산물, 목재생산지로 발전,
북쪽의 지우펀과 함께 산악지대
중요한 타운이 되었다.
 
지금은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고.
 
 
 
 

나무에 달린 파파야(중국어로는 木爪)

이곳에는 우리가 걷는 삼림잔도 외에
목마잔도(木馬棧道)가 있다.
 
목마는 산에서 벤 나무를 운반하는 썰매.
목마잔도는 일본이 나무를 운반했던 길.
 
 
 
 

삼나무가 호위하는 삼림잔도를 걷기 시작

일본서기, 신대(神代)를 보면 스사노오노미코토
(素戔鳴尊)라는 신이 나온다. 그가
 
'내 아들이 다스리는 나라에 배가 없어서는 안될일'
이라며, 수염을 뽑아 흩어지게 하니 삼나무가 되고
가슴의 털을 뽑아 흩어버리니 편백이 되었다고.
 
삼나무와 편백나무는 일본의 대표적 수목,
(박상진교수)
 
 
 
 

계단은 이어지고

측백나무과의 편백나무는 목질이 좋고 
향이 뛰어나 실용성이 좋다.
우리나라엔 제주도, 남부지방에 분포.
 
40m키에 직경은 2m.
피톤치드로 알려진 나무.
가구용, 건물내부 마감재로 쓰이고.
 
 
 
 

피톤치드가 넘치는 길

친구들과 걷는 길,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이 산중에 군자란꽃

자연산이겠지.
 
군자란은 수선화과 상록다년생초.
난초과 식물과는 거리가 멀다.
아프리카 남부가 원산지.
 
햇빛이 약한 반그늘에 키워야 하고
4계절을 거쳐야 꽃을 피운다.
물을 좋아하고 추위에 약함.
 
 
 
 

포인세티아꽃인가

나뭇잎도 비슷하고.
 
 
 
 

철도길이 보였고

협궤의 철로.
길을 따라가면 역이겠지.
 
우리는 다시 삼림 속으로.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걷다보면 또 만나고, 또 만나고.
어느 나라 사람인지 관계 없고.
 
 
 
 

빽빽한 삼나무숲이 나오고

한 여자가 책상 위에 야쿠르트병이 많길래
전부 마셔버렸더니. 정자보관소라나.
지탄선생의 말.
 
 
 
 

숲을 맘껏 즐기는 신박사

골프, 등산 외에 헬스장도 열심히 다녀
턱걸이도 몇 번 할 수 있고.
성경말씀도 동창회카톡에 열심히 올리고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길

 
'사람에게는 사람의 길이 있고
개에게는 개의 길이 있고
구름에게는 구름의 길이 있다
사람 같은 개도 있고
개 같은 사람도 있다
사람 같은 구름도 있고
구름 같은 사람도 있다
사람이 구름의 길을 가기도 하고
구름이 사람의 길을 가기도 한다
사람이 개의 길을 가기도 하고
개가 사람의 길을 가기도 한다
나는 구름인가 사람인가 개인가
무엇으로서 무엇의 길을 가고 있는가'
(한승원, 1939-, 길)
 
 
 
 

더 가면 백살된 삼나무를 만날 텐데

아리산엔 천년 넘은 나무들이 있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사람에겐 연륜이 있지.
연륜이나 나이테나 쉽게 볼 수 없지만.
 
 
 
 

모두 누워

편하게 휴식을 취했고,
누구는 턱걸이도 했고.
 
 
 
 

장다리 나무들 속에 박힌 복(福)돌

나무에 둘러싸인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행복한 돌.
 
 
 
 

다시 하산

흥부가 놀부집을 찾았더니
놀부 마누라, 어찌 왔냐고.
"노상 서서 어쩔 수 없이 왔어유."
 
주걱들고 쫓아오는 놀부마누라를 보고
"저에겐 형수님밖에 없어유,"
보나마나 지탄선생의 말씀.
 
 
 
 

자연친화적인 츠스오(厠所)

뒷간이 높기까지 하니.
 
 
 
 

아스팔트 도로를 만나 다시 숲속으로 오니

쓰러진 나무가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농가 근처에 오니 커피나무가 있고

고산(高山)우롱찻집이 나왔고,
4시간 동안의 삼림 속 걷기,
심신이 모처럼 호강했다.
 
 
 
 

앞산엔 그늘이 지기 시작

 
 
 
 

다시 펀치후역으로 돌아오니

지탄선생, 퇴근하는 역원을 붙들어왔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민박집 주인 말대로 다음날 새벽, 예약 없이
아리산역을 가면 일출열차를 탈 수 있냐고
물어보았더니, OK.
 
 
 
 

일몰을 볼 수 없지만

멋지게 물들어 가는 산하.
 
 
 
 

벗꽃과 산골의 황금빛 햇빛

몽유도원이 아닌가.
 
 
 
 

시시각각 모습이 변해 갔다

슬슬 배가 고파졌고.
 
 
 
 

민박집 가는 길옆에 자리잡은

야외식당에서 서너가지 요리에 
58도 진먼고량주에 진로.
 
손님들이 이어졌고, 주방장 홀로
왔다갔다 뛰면서 요리할랴 시중들랴
정신이 없었다.
 
세친구의 술자리는 민박집으로 이어졌고.
지난 밤, 잠을 못잔 나는 사양하고 일찍 취침.
 
다행히 추운 방이었지만 잠을 잘 잤다.
밤중에 쿵하는 소리가 두 번 났는데
룸메이트, 흥구친구가 침대에서 떨어지는 소리.
 
술김에 떨어져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상처가 있었고, 그 영향이 여행 내내-
여행중 과음은 금물. 
 
이날 신박사도 한번 쿵.
(여행기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