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37

운무산행(2009.5.23)

때 이른 태백산 철쭉구경을 한다고, 아침 일찍 잠실역에 대기 중인 버스에 올랐더니, 박수세례가 쏟아졌다. 얼마 늦지도 않았지만 겸연쩍었다. 재작년 회갑여행 때는 30분 이상 늦어 빈축을 샀던 박 진영 회장은, 우리부부를 보고 빙그레 웃고 있지 않는가. 선출직 의원들이 우리 회장만 같다면, 나라정치가 크게 발전할 텐데. 그러고 보니 직장을 떠난 지 6년차. 아직도 직장을 다니는 친구도 있지만, 나름대로 노후에 대한 생각과 생활의 틀이 잡혀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과연 잘 살아왔는가? 남은 생을 어떻게 의미 있게 보낼 것인가?’라는 명제에 항상 번민을 하며 지내지만. 버스와 기사가 여행 당일에 갑자기 바뀌어서, 우리가 제천, 영월을 헤매고 있을 때, 노대통령이 자살했다는 둥, 실족사 했다는 둥 소식이 전..

잡문 2015.09.28

아비가 무식하여 (2008.3.10)

막내가 신병훈련을 마치고 공군사관학교에 배치된 후 얼마 안 되어 면회를 갔다. 입대할 때는 진주까지 배웅하지 않았다고, 집사람의 비난이 거세었다. “당신 졸병 때, 면회 온 아버님 붙들고 울었다면서요. 그러면서 애한테 너무 하는 것 아니에요?”라는 비난이 또 쏟아질까봐, 절친한 친구, 명식 내외와 도시락 싸들고 나들이를 나섰다. 공사 후문 뒤 호젓하게 자리 잡은 면회실 근처 잔디에는, 일찌감치 면회 온 가족들이, 아직 군인이기엔 엉성한 폼의 이등병을 둘러싸고 편한 자세로 담소하고 있었다. 면회실의 둥그런 탁자 건너편에 앉았던 집사람의 얼굴이 환해지는가 싶었더니 어는 새 막내가 나타나, 큰 소리로 “아버님, 어머님 오셨습니까?”하며 경례를 턱 붙였다. 어깨에는 다른 이등병에겐 없는 노란 견장이 붙어있었다...

잡문 2015.09.28

물개바위 넘어 봄을 찾으러(2008.2.20)

대보름 하루 전일, 망월사역에서 수요산행을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야간 산행이 좋았을 터인데, 둥근 달도 보고. 한 무리 여인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포대능선 밑, 민초 샘은 아직도 얼음이 꽁꽁 얼어붙었지만, 그 맛은 왜 그리 시원한지, 봄기운이 완연했다. 임춘호 회장은 지난주 정기산행에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노흥범이며 새로운 식구 하나 늘었고, 상갑이 호랑나비 춤이 살아 난 것을 보면, 그의 건강도 회복된 것 같고. 정선이며, 수학선생 등이며, 묘령의 여인들은 누구인고? 친구들 얘기 들어보면, 현직이도 현직을 물러날 때가 되어서 그런지, 솜사탕처럼 부드러운 남자가 되었다고 하고. 어쨌든 그 많은 식구들이 돈 만 원으로 갈매기살, 삼겹살로 포식을 했다니. 더구나 대부분 친구들 얼근해질 만큼 소주병..

잡문 2015.09.28

고기를 잡으러 물고기밭으로 갈까요 (2007.6.18-20)

1. 미인을 짝사랑하는 태백성 유월 중순, 우리는 작년 겨울 약속한대로, 물고기 잡이 여행을 나섰다. 어렸을 때, 고향 냇가에서 고기 잡던 추억이 없던 친구는 몇이 될까? 그때는 중랑천, 벌리(지금의 지명은 번동)도 고향의 냇가와 다름이 없었으니까. 생각해보면 옛날 삼촌의 견지 바늘에 걸린 무지개 빛깔 피라미의 몸놀림은 황홀함 그 자체였다. 여주 천서리 막국수를 맛보고, 속초 동명 항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일곱 시 반이 되었다. 잔챙이 물고기, 멍게, 성게 등을 오 만원 어치 샀는데,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생선가게 앞집에서는 양념 값 이외 할복비라는 명목으로 고기값의 10%를 더 받았고, 매운탕은 오도바이로 따로 배달이 되어, 별도의 비용을 청구했다. 고도의 서비스 사회였다. 소주 한잔하며 서쪽하늘 ..

잡문 2015.09.28

쌀쌀맞은 봄바람(2007.3.14)

봄은 늘 변덕스럽고 쌀쌀맞은 것인데도, 늘 잊어버리고 있다가, 화창한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고 봄비가 휘몰아치면, 올해는 왜 이리 봄이 요란스러운가 한다. 지난 주초, 은행에서 환전을 하며, 이번 주 떠나기로 되어있던 중국여행은 정작 출발해야 출발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김 대리에게 농담으로 말했었다. 왜냐하면 작년에 계획된 여행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연기되어, 올봄에 가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여행을 준비하며, 스추안(四川)성과 관련된 기행문과 역사책을 찾아 읽어보았더니, 그런대로 흥미가 있었다. 위치우이(余秋雨)가 쓴 중국문화답사기에는 싼샤(三峽)의 션뉘훵(神女峰)을 노래한 시가 실려 있었다. 강가 언덕을 따라 금빛 찬란한 지조와 여인의 정절을 요구하는 큰 물길은 새로운 배반을 부채질하고 낭떠러지에서 천년을..

잡문 2015.09.28

건봉사에서 찾은 사랑하는 까닭(2006.11.27-29)

1. 모처럼 베푼 선행(善行) 11월 27일 밤 9시, 양지 아시아나 골프장 입구에 있는 ‘이다의 숲’이란 식당 앞에서 세 친구를 만나기로 했었다. 끝나지 않은 모임을 멋쩍게 빠져나와, 기다리던 친구들과 합류하여 동해안으로 향하려하니, 자동차 시동이 걸리지 않아 쩔쩔매는 아낙이 있었다. 모임의 일원이었던 Y신문의 박 사장이었다. 네 놈팡이는 건수 찾았다하며 갈 길을 잊은 채, 앞 식당에서 점프 케이블을 빌리는 등 한참 수선을 피웠지만, 경보장치와 관련이 된 듯 쉽게 시동이 걸리지 않아, 결국 알라딘 서비스를 요청하고 말았다. 가을비인지 겨울비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가랑비를 맞으며, 구조차가 올 때까지 앉았거나 서성이며, ‘이다의 숲’에서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팝송을 들으려니, 왠지 센티해졌다. 그러다가 전형..

잡문 2015.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