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폭력남편(2007.1.31)

난해 2015. 9. 26. 21:59

 

요즈음 남자들의 형편이 말이 아니다. 결혼한 지 삼년이 안 되어, 고분고분하던 남편이 말대꾸하는데 어찌하면 좋으냐고, 라디오 음악 프로그람에 사연을 띠우는 젊은 아낙이 있어, 공연히 해보는 소리겠지 했더니, 며칠 후 신문 칼럼에는 부인에게 핸드폰을 사준 한 지식인의 사연이 실려 있어 실소를 했다. 노부부가 같이 외출을 하면, 항상 부인이 남남인 양 상당한 거리를 두고 앞서 가기에, 혹시 그녀가 그를 떼어 놓고 영영 가버리는 것은 아닐까하고 걱정이 되어, 핸드폰은 불필요한 물건이라는 평소 생각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시대에 상당히 뒤떨어져 있는 사람 같다. 집사람 말에 의하면, 집안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 않는 사람은 나 하나이다. 그렇다고 내가 집안일을 도울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집사람이 돌리고 있는 진공청소기를 내가 빼앗아 청소를 하자면, 그녀는 답답하여 볼 수가 없는지, 금방 되가져가 버린다. 그러니 집사람 손은 거친 남자 손, 내 손은 고운 여자 손이 될 수밖에. (집사람은 남자 이름을 갖고 있다.)

 

몇 년 전 봄의 일이었다. 잠자리에서 화장실을 갔다 오다 그만 집사람 왼쪽 손의 새끼손가락을 밟고 말았다. 안경을 벗어 놓은 탓이었다. 그것까지는 괜찮았는데, 그 다음날이 문제였다. 근처 농장에 분갈이를 간다고 화분을 옮기다, 나 혼자로는 힘이 부쳐 집사람의 도움을 요청했고, 그러다 문제의 손가락 인대가 아주 끊어지고 말았다. 후회 막급하여 백 병원을 찾아 수술을 하였으나, 완치가 되지 못했다. 한동안 손가락에 나비모양의 붕대를 감고 다니던 집사람이,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남편이 밟았다고 답하면, 그들은 설마 아직도 그러한 남편이 있겠냐하며 의아해했다. 졸지에 나는 폭력 남편까지 되고 말았다.

 

그해 추석 즈음 부엌에서 일하던 집사람이 앗 소리를 지르기에 가보니, 쇠고기를 썰다 손가락을 다친 모양이었다. 조그만 사업을 하던 사람을 조금 도와주었더니, 고맙다고 보내 온 선물이었는데, 땡땡 얼은 고기였다. 받을 때는 언제인데, 이런 고기를 보냈냐고 나는 화를 벌컥 내었다. 그의 사업이 어렵기는 어려운 모양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집사람에게는 한없이 미안스러웠기 때문이다. 풍족하지 못한 살림에 받아온 선물마저 변변치 못해, 가뜩이나 거칠어진 집사람의 손가락에 또 상처를 내게 했으니 말이다.

 

동네 정형외과를 다녀온 집사람은 왼쪽 약지에 또 하나의 나비를 달고 왔는데,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엑스레이 검사 결과는 손가락 관절에 이상이 있으니, 큰 병원으로 가야 된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찾은 백병원의 진단 결과는 육종연골암이었다. 곧 엉덩이뼈의 일부를 떼어 손가락에 이식하는 수술을 했는데, 집사람에게는 고통 그 자체였다. 육체적 고통도 컸지만, 암에 대한 공포는 대단한 것이었다. 수술 후 얼마 안 되어, 공교롭게 처형의 친구가 비슷한 병으로 타계했다는 소식은 집사람을 더욱 공포에 떨게 했다.

 

다행히 수술 결과가 좋았고, 지금은 집사람도 암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난 것 같다. 동네 의사와 백병원 담당의사 그리고 추석 선물을 보낸 이에 대한 고마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나의 고마워하는 마음과는 관계없이, 동네 의사는 간호사와의 불륜으로 이혼을 당해, 병원도 이사 갔다고 하고, 사업하던 친구는 부도가 나버렸다고 하니, 고마워하는 마음은 마음뿐이다. ( 2007. 1. 31.)